제 59강/ 쉰아홉 번째 구원드라마(갈 1:1-6:18)
그리스도인의 자유
I. 배경
갈라디아 지방은 소아시아 내륙에 위치한 지역을 말한다.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때 이 지방에 몇몇 교회를 개척해서 세웠다.(행 13:13-24) 그리고 2차 전도여행 중에도 다시 이곳을 방문했다.(행 16:1-5) 바울과 이곳 신자들 사이에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었으나 이후 예루살렘에서 파견된 유대주의자들의 책동을 받은 순진한 신자들에게 불신을 당하게 되었다.
이방인들도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유대인과 같이 할례를 받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교회 안에서 논쟁을 일으키게 되고,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 사이의 의견 충돌로 인해 이 문제는 더욱 격화되었다.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이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고 그의 사도권을 부정하며 또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라고 비난하였다.
이 같은 절박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낙망과 분노의 심정 가운데에서 복음의 자유가 유린되고 자신의 사도적 활동이 적지 않은 손상을 입게 됨을 통감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릇된 길로 빠져 들어가는 자들을 각성시켜 올바른 신앙의 길로 돌아가게 하기 위하여 이 격정의 편지를 써 보내게 되었다.
이 갈라디아서는 3차 전도 여행 중 에베소에서 약 3년 간 머물러 있는 동안 썼던 것으로 생각되며 그 기록 연대는 주후 54년 경으로 추정된다.
II. 본문과 해석
1. 첫 번째 주제 - 다른 복음은 없다.(1:1-2:14)
1) 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1:1-6:10)
편지 첫 머리에 인사를 끝내고 바울은 바로 심한 책망의 말을 쏟아놓는다. 한 마디로 저들이 지금까지 바울이 전한 복음과 다른 복음을 쫓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전혀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하나 밖에 없으며 그 이상 있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복음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다. 그것은 다만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평화와 생명의 진리 선포이다.
이런 기쁜 소식을 율법이나 의식이나 육신의 행동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부정하는 일이요 이런 배반은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사는 것이다. 그래서 엄청난 말로 경고하고 있다.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2) 바울의 사도권 변호(1:11-2:14)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에 대해 세 가지 체험적 사건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첫째로 바울은 다른 사도들을 만나기 전에 자기는 이미 사도로 부름을 받았다고 주장한다.(1:11-21) 둘째는 다른 사도들을 만나자 그는 그들과 동등한 사도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2:1-10) 그리고 셋째 그는 유명한 사도장인 베드로를 책망할 필요를 느꼈다는 것이다(2:11-21)
바울은 이 세 가지 체험적 사건에 근거하여 자신의 사도권을 설명할 때 그의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는 점, 지도적인 사도들의 승인을 받았다는 점, 그리고 베드로의 비행을 그의 면전에서 책망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사도로서의 권위를 주장할 때 초점은 어떤 사람들에게서 복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주었으므로 이는 절대적으로 신성하다는 것이다.
2. 두 번째 주제-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2:15-4:31)
1)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됨(2:15-21)
바울은 그가 전한 복음의 본질을 잘 요약하고 있다. 그는 율법의 볼완전성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힘을 들어 복음 진리를 요약한다. 아무리 뛰어난 유대인일지라도 율법의 활동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입는 것이다.
바울은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율법의 불완전성을 두 가지로 말한다. 하나는 도덕적 표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아무도 거기에 도달해서 의롭다함을 입을 수 없으며, 둘째로 사람으로 하여금 그 요구대로 해 보려고 할 힘이나 원칙을 주지 않는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극히 낮은 도덕적 표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죽음으로써 죄를 속량하고 그의 부활과 성령의 선물로써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2) 율법이냐 복음이냐(3:1-4:31)
갈라디아 교인들의 체험을 중심으로 복음의 핵심을 설명해 나간다.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바 축복을 들어 풀이하고 있다. 그 축복은 성령이 그들에게 베푼 은혜로운 역사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믿음을 통해서 온 축복이지 율법을 행함으로 온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지키려 하지 않고 율법의 복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려 함으로써 이제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간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한다. 그들은 거짓 교사들의 꼬임에 빠져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율법으로 돌아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미 십자가의 능력, 그리스도의 죽음의 의미, 그를 믿는 사람의 완전한 구원의 도리를 확실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갈라디아 교인들은 영적 은사를 받았다. 이 영적 은사는 그들이 회개한 표적과 증거요 그것을 받고 새 생활하게 된 증거였다. 이 은사가 율법의 준수에서 온 것인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온 것인가를 바울은 묻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듣고 믿음으로써 된 일이다.
3. 세 번째 주제- 그리스도인의 자유(6:1-6:18)
1)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자유(5:1-15)
자유란 말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누릴 위대한 유산이다. 그리스도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고 그들로 하여금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 속에 아들의 영을 보내며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 이상 부자유한 종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또 아들이 되어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상속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지금 이 모든 권리를 상실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이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 다시 한 번 호소한다.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험의 씨를 뿌린 교사들을 질책한다. 저들은 구원의 둘째 조건으로 율법 준수를 덧붙였다. 바울은 구원의 조건이 둘일 수 없다. 의롭게 되는 것이 할례를 받음으로써 된다면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롭게 됨을 입을 수 없는 것이다. 할례를 받는다면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결과가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다. 다만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다.(5:6)
2) 성령을 따르는 자유인의 삶(5:16-26)
자유와 방종은 혼동되기 쉽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방종으로 곡해하는 일이 없도록 경고하며 사랑의 법을 성령의 인도를 따라 행하라고 말한다. 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은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라고 말한다. 그러려면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육체란 말은 그릇된 충동을 받는 인간 전체를 가리킨다. 그것은 그릇된 행동으로 인도하는 모든 욕심, 버릇, 성질 등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승리의 유일한 비결은 성령의 명령에 따라 우리들의 행동 전체를 내맡기는 일이다. 그렇게 하면 육체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만일 이렇게 영적 행동에 따르게 되면 그는 육체의 시험을 이기고도 남을 것이다.
육체와 성령의 싸움은 그리스도인의 믿음 속에 일어나는 실존적 갈등이다. 우리 안에서 육체의 욕심이 이기게 되면 우리는 육체의 일을 저지르게 된다. 즉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다. 반대로 성령을 따라 행하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곧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이다.
3) 마지막 당부(6:1-18)
우선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다시 한번 율법의 제한성과 믿음의 가치를 힘주어 강조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에 대한 전반적인 교훈을 갈라디아 교회가 당면한 현실 문제와 관련해서 교훈한다.(1-10) 즉 온유한 심령으로 피차간에 짐을 서로 질 것을 권면한다. 그리고 물질적인 도움도 나누며 선을 행하되 고난이 닥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어서 율법주의자의 유혹에 의해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구속의 원리를 저버리고 잘못된 길을 가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다시 한번 결론적으로 율법주의자의 추구가 육체의 자랑에 있음을 밝힘으로써 미혹됨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11-13) 또한 오직 십자가만이 성도들의 자랑할 것임을 강조한다.(14-16) 그리고 17에서는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진 사실을 밝힘으로써 자신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교훈에 근거함을 말한다.
III. 신학적 의미
갈라디아서 전체를 꿰뚫는 핵심 단어는 “자유”이다. 이 자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1. 속박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
인간을 부자유하게 만든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율법에 자신을 예속시켜 자신의 자유를 빼앗긴 갈라디아 교인들을 안타깝게 바라본다. 그리고 때로는 분노하며 때로는 연민의 정으로 복음의 본질을 다시 설명한다.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확인시키면서 바울은 바로 이 진리만이 인간을 자유하게 한다고 외쳤다. 이 진리라 인간을 부자유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해 준다는 것이다.
2. 섬김으로서의 자유(free for)
바울은 역설적 자유의 차원을 설명한다. 종이 됨으로써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바 된 예수의 종이 됨으로써 더 풍성한 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에게 붙잡힌 바 되는 그 때 하나님은 인간을 비로소 의롭게 여기시는 은혜 안에 두시기 때문이다. 예수에게 붙잡힌바 되는 순간부터 인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때문에 그 무엇에도 예속되지 아니한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사람을 섬기는 충성스런 종이 되었다.(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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