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의 자유 갈5:13 02.06.30. 인터넷 설교 스크랩
◑1. 죄에서 자유도 은혜로! 갈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5:1
율법에서 자유, 죄에서 자유, 죄를 이기는 힘은.. 은혜로 그저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하기 쉬운데요..
▶착각하기 쉬운 크리스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헌신합니다.
그러다 보면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많은 열매를 거두다 보면 우리도 알게 모르게
‘내가 무슨 일이든지 다 잘 할 수 있겠다!’ 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승리도 계속되면 약간 도취되는 것 아십니까?
승리도 중독 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자꾸 승리하면 승리에 익숙해지고
승리에 중독 됩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을 갖게 됩니다.
▶2002월드컵축구 3-4위전, 터키 대전에서 깨달은 진리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의 축구 경기를 예로 듭시다. (2002년 당시 설교임)
이번 월드컵이 시작되기 이전, 우리의 목표는 1승 하는 것,
잘 하면 16강 진출,
이 정도의 아주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볼 때는) 우리 실력보다도 훨씬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세계적인 강팀을 하나씩 물리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까 우리도 모르게 승리에 도취되었습니다.
사실 한국 축구팀은 실력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은혜적인 요소가 있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은혜의 플러스 알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우리가 이겼던 팀보다 약하다고 보이는 팀들에 대해서,
조금 얕보기 시작합니다.
이제까지 모두 내 능력으로 이긴 양!
터키 하고 뛸 때는 마치 다 이긴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점치기를, 한국이 이길 확률 91%, 터키가 이길 확률은 9%,
그런데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확실히 터키를 이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터키가 얼마나 축구에 강한 나라인지 아십니까?
지난번 유럽선수권대회 우승했던 나라입니다.
유럽의 명문 프로팀들에서 뛰는, 탁월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너무 얕잡아 보았습니다.
그들의 능력보다, 우리가 더 탁월하다고 착각했습니다.
이제까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은혜라는 요소가 있었는데
그런 것을 다 무시했습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진짜 자기 실력만으로 뛰니까... 당혹하게 됩니다.
▶무게중심을 주기적으로 원위치 시키라
우리가 승리하다 보면 알게 모르게 무게중심이
자기 자신에게 쏠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별히 승리를 많이 이룬 사람, 여기에도 잘나가는 사람 있지 않습니까?
인생이 잘나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느 순간인가 속기 쉽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승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엎드리고 얼마나 많이 기도했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망각해 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기마다 한번씩 모든 무게중심을 아버지께로 옮기는
그 작업이 있어야만.. 계속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능력과 은혜가 항상 우리를 떠나지 않고
주님의 구속의 은총이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과 우리의 삶 가운데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죄에서 승리하는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론 못 이깁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의 도우심으로만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2. 우리를 구속해서 자유를 주신 궁극적 목적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갈5:13
▶진정한 의미의 자유란?
골로새서는 율법에서의 자유를 누리라고 가르칩니다.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고 난 다음, 우리는 은혜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유롭게 되었으니.. 방종하자가 아니라,
그것으로 자유롭게 섬기며 살라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한국 기독교를 생각해 봅시다. 예수 잘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죄 안 짓는 것입니까? 잊지 마십시오!
예수 잘 믿는 것은 죄 안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로 능력 있게 쓰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안 짓는 것에만 너무 축소시켜서 생각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예수 제일 잘 믿는 모습을, 마치 병상에 누워있는 모습처럼 생각합니다.
물론 아무 일도 못하니까 죄도 못 짓지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반신불수가 되어 누워있을 때가
가장 예수 잘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식의 접근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여러 가지 기회를 주셨습니다.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를 가지고 해야 될 일은 주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해서 열매를 거두는 일입니다.
그것이 구속과 자유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종 되었던 사람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유민으로서 능력 있게 살아가는 것이 온전한 구속 아니겠습니까?
아이들을 태어나게 만듭니다. 태어나는 것만이 다입니까?
태어나서 인간답게, 능력 있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구속redemption의 내용은 자유를 포함합니다.
골로새서의 주제는 ‘예수는 누구인가’이고
‘구속되고 난 다음의 자유’를 주제로 삼은 성경이 갈라디아서입니다.
갈5:1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즉, 자유를 얻고 난 다음 다시 종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을 보니까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즉,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 자유를 가지고 헛되게 쓰지 말고
육체를 위해서 헛되지 되게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면서
열매 거두는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사례 연구 : ‘자유’의 신념으로 강대국을 이룬 네덜란드
최근 들어서 우리가 히딩크 때문에 네덜란드라는 나라에 관심을 많이 갖습니다.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복음의 자유를 얻기 위해서 탄생된 나라입니다.
▶원래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식민지였습니다.
네덜란드는 7개 귀족이 반란을 일으켜서 세운 나라입니다.
스페인이 가톨릭적인 표준을 가지고 억누르고 있을 때
거기로부터 독립해서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추구하면서
16세기 경 프로테스탄트 운동의 본산이 되었던 곳이 네덜란드입니다.
그러므로 네덜란드의 뿌리는 ‘복음 안에서의 자유’이고
갈라디아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그 나라의 국시(國是)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이 우리에게 어떻게 자유를 주는지
네덜란드를 통해서 잘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상황에서는 네덜란드를 벤치마킹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네덜란드는 강대국 사이에 있는 나라입니다.
강소국(强小國)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한 작은 나라!
주변에 영국과 프랑스가 있고, 북쪽에 스웨덴이라는 강력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강력하게 설 수 있는 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가 있고 중국이 있고 일본이 있고
바다 건너에는 미국이 있습니다.)
이 나라에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복음으로 그들이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그들이 했던 일이 무엇이냐 하면...
▶1. 첫째, 편견 없이 사람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복음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모든 장벽들을 다 깨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간 네덜란드가
가장 편견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여기고 다 품어 주었습니다.
여기서는 위아래 귀족…… 이런 것도 없었습니다. 다 품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로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복음의 ‘자유’ 신념으로 부강해진 나라
스페인 같은 곳은 편견이 심한 나라였습니다.
특별히 유태인에 대한 핍박이 엄청났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에 있던 유태인들의 상당수가 거의 다 네덜란드로 이주했습니다.
그때 네덜란드로 이주했던 사람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
철학자 스피노자 같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스페인 출신의 유태인입니다.
사람이 이주를 한다는 것은 몸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도 품고 갑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가지고 있었던 해양에 관한 폭넓은 지식들을 다 품고
네덜란드로 가 버렸습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후에
당시 강대국 스페인과 전쟁에서 이기고 독립해서 강력한 나라로 부상합니다.
이주할 때 물질도 안고 갔습니다.
그래서 암스테르담 같은 곳이 유럽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의 금융 중심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나이, 학력, 출신지를 차별하지 않고 오직 능력대로 사람들을 등용했습니다.
모두에게 신앙 안에서 ‘자유’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히딩크 감독의 생각은 히딩크 개인의 생각이라기보다는
네덜란드적인 풍토에서 나온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원뿌리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네덜란드적인 요소가 또 무엇인지 아십니까?
▶2. 모든 장벽과 편견을 깨버리고 품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그런 것을 붙들어야 합니다.
제가 일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저도 인생을 살다 보면 잘못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보십시오. 죄는 용서가 됩니다.
돈을 떼먹었든지, 물건을 훔쳤든지... 나중에 가서 용서해 달라면.. 용서해 줍니다.
그러나 용서가 쉽게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를 '모욕'한 것은.. 용서가 쉽게 잘 안 됩니다.
저는 우리 민족이 살기 위해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민족과의 관계이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이든,
잘못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은 모욕하는 것입니다. 모욕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용서받기가 힘듭니다.
우리 주변에 참 이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상당히 좋은 관계를 맺다가, 마지막에 상대를
다음에는 안 만날 것 같이 완전히 모욕감을 주어서 돌려보냅니다.
우리 한국 민족이 약 올리는 데 익숙한 민족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상대의 가슴을 아프게 만드는 데 실력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슴에 상처를 주는 말을 너무 쉽게 잘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민족의 미래는 없습니다. 악습을 끊어야 됩니다.
아무리 분노해도 상대방에게 다 쏟아 붓는 것 아닙니다. 적을 만들면 안 됩니다.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조용히 갈라지십시오. 침묵하라고요. 또 만날 사람입니다.
나중에라도 친구로 만들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정신입니다. 자유의 정신입니다.
네덜란드는 복음으로 모든 장벽을 다 깨버렸습니다.
우리도 복음의 능력 안에서,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적을 만들지 마세요!
그리고 아무도 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다 품어 줍니다. 자유를 주십시오!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 시간이 지나면서 강력한 사람은
팀을 만들 줄 알고, 적까지도 내편으로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에게는 암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쓸데없이 적을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친구 하나를 얻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아십니까?
국제적인 질서 안에 들어가 봅시다. 친구가 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굉장히 오랜 기간동안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공들여 만들었던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것은 삽시간입니다. 욕 몇 마디 하면 됩니다.
우리가 중국이라는 나라와 친해지기 위해서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까?
90년도에 수교하고 난 다음, 12년 동안 얼마나 쏟아 부었습니까?
그렇게 어렵게 친구 만든 것을,
말 몇 마디로 금방 적으로 만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본도 우리의 친구로 만들어야 합니다.
적 만드는 것은 쉽습니다. 반일감정 돋울 수 있는 몇 마디 말만 던지면
얼마든지 적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과 우리가 얼마나 오랜 기간 동맹관계를 맺었습니까?
그러나 말 몇 마디로 적 만드는 것 시간문제입니다.
우리 안에는 적을 만들고자 충동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냉철해야 합니다. 친구는 친구로서 남겨 두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냉철하게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정확하게 실리를 얻을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번에 2002 월드컵을 하면서, 한국이 터키에게 졌지만
굉장히 놀라운 것을 얻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터키를 우리의 진짜 친구로 남겨두었다는 것입니다.
터키는 우리하고 친하다고 생각을 했던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터키를 친구로 남겨 놓았습니다.
비록 축구에서는 졌지만, 터키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터키를 얻었다는 것은 이슬람권을 다 얻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이제 유럽의 마음도 얻어야 합니다. 그것이 승리입니다.
▶3. 나그네 의식
또 하나 네덜란드적인 요소, 자유를 누렸던 요소 중 하나는 나그네의식이었습니다.
절대로 어떤 땅 한 곳에 정주하고 정착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국토가 좁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40%가 바다보다 낮은 땅입니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움푹 파인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땅에만 머무를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살 길은 바다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를 만들었습니다.
가장 활발할 때는 유럽에 있는 배의 3분의 2정도의 네덜란드의 배였습니다.
배를 만들고 움직이는 것에 힘을 썼습니다.
그리고 또 한곳에 정주 안 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금융업 같은 것입니다. 암스테르담이 금융법의 중심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와 참 유사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땅에다 자꾸 땅 투기하면 안 됩니다.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기마민족적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랍 속담 중에 이것을 좋아합니다.
‘알사파르 알자파르!’ ‘여행하는 자는 승리한다!’
우리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정주하면 힘이 없습니다.
움직여야 힘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고도로 성장하던 시기는 1970년대였습니다.
농촌의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오고 도시로 오고 움직이고 이동성이 있을 때
믿음도 제일 좋았고, 가장 활력이 있었던 때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 삼일교회 성도가 왜 비교적 강한지 아십니까? 이유가 이것입니다.
일년에 두 차례씩 막 뒤집어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목포로 보내고 통영으로 보내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강점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정주하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발휘할 줄 압니다.
▶여기 20대들 계십니까? 20대의 3년은 외국에서 사십시오.
거기에서 우리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복음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일 때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복음은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닙니다.
움직일 때에 복음의 능력이 힘 있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것을 붙들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 한국 민족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일본을 품고, 중국을 품고
러시아와 연해주를 다 묶어버릴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면 됩니다. 다 품을 수 있는 능력! 그것을 가지고 나아갈 때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머무르지 않고 뛰게 만드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에 머물러있던 사람들에게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펄쩍펄쩍 뛰면서 소아시아로 가고 유럽으로 가고……
땅 끝을 바라보잖아요.
복음은 그렇습니다. 절대로 머무르지 못하게 만듭니다.
뛰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듭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복음이 주시는 자유함을
우리 삶 가운데 그대로 누릴 수 있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치는 말 : 진정한 자유는 - 섬기는 자유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멋대로 뛰어다니면서 방종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자유는 기회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기회, 열매 맺을 수 있는 기회, 섬길 수 있는 기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나를 죄의 힘으로부터 끊어서
자유케 만들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냥 숨만 쉬고 움직이기만 하면 죄악의 열매를 맺어야 할 우리를 구속해 주시사,
자유케 하시사,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섬김으로 자유해야 합니다.
이 땅의 캠퍼스와 직장에 이 삶 속에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심어야 합니다.
편견이 있는 곳의 편견을 깨야 하고
원망, 불평,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 안에서의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야 될 것이고
서로 간에 이전투구하는 모습 가운데 새로운 비전과 꿈을 심겨줌으로써
더 넓은 곳으로 가게 만드는 등
그것이 복음 안에서 진정 자유로운 삶입니다.
'***신구약 성경강해*** > - 갈라디아서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제 59강/ 쉰아홉 번째 구원드라마(갈 1:1-6:18) (0) | 2019.12.12 |
---|---|
[스크랩] 갈라디아서 연구 (0) | 2019.12.12 |
갈라디아서의 배경과 주제와 사도의 복음 (0) | 2019.12.12 |
갈라디아서에 나타난 할례 문제 (0) | 2019.12.12 |
갈라디아서 개론 (0) | 2019.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