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빌립보서 강해

[스크랩] 빌립보- 각권 연구

에반젤(복음) 2019. 12. 10. 19:15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빌 2:5-8절, 256.265.246장.A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빌립보교회가 개척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빌립보교회가 어떻게 개척되었으며 그 구성원들은 어떤 자들이었는가를 보여줍니다. 구체적으로 빌립보교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방인 여자와 로마 군인인 간수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빌립보교회는 이방인들로 구성되었던 교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에서 이 빌립보서를 쓰고 있습니다. 감옥 안에서 언제 사형 언도를 받아 죽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죽음과 삶의 길목에 서 있습니다.(1:23).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난도 수용하겠다는 결단도 있어야 합니다.(1:29). 빌립보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사상 일대 전기를 실현하는 계기가 됩니다.

바울이 아시아를 등지고 유럽에 복음을 선포하는 첫 일을 빌립보교회를 통해서 시작해서 앞으로 근 천년이 넘게 교회 역사가 유럽을 중심한 교회 역사가 됩니다. 최근에야 복음의 빛이 다시 우리 대륙 아시아에 오게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과거 바울이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증거 했던 소아시아에는 교회가 제일 없는 지역이 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1.기록 목적과 특징입니다. 바울은 이 빌립보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목적과 특징을 가지고 기록했음을 본문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빌립보 교회에 대한 감사의 표시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다는 말을 들은 빌립보 교회가 여러 차례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 헌금에 대한 감사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울의 이 같은 감사는 아주 의미 있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그 동안 평상시 자신이 복음을,증거 하기 위해서 자신과 동행자들의 쓸것을 손수 벌어서 충당했습니다.

마땅히 성도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전도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공짜로 복음을 증거 한다는 정신은 결국 자신이 손수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빌립보교회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심경은 어떠했겠습니까?

도움을 받고 난 이후 자신은 당연히 이런 도움을 받아야 될 줄 알았던 사람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자신이 돈을 벌어 보았기 때문에 그 헌금 속에 감추어진 성도들의 수고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교회에 감사의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빌립보서를 기록한 목적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어떠해야 합니까? 우리는 남을 도와 본 경험이 있습니까? 우리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들은 남을 돕지 못합니다. 가진 자는 더욱 인색한 자가 되어서 남에게 베풀 줄을 모릅니다.

자기 혼자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을 도우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습니다. 행20:35절에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는 진정으로 도움 받는 그 온정의 손길에 대해서 진정으로 감사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나는 당연히 받아야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안 됩니다. 바울이 자신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기 때문에 빌립보교회가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더라면 감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적게 보내 왔다고 불평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직 감사의 생활입니다. 둘째, 동역자에 대한 섬김을 부탁합니다. 빌립보교회가 바울에게 헌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헌금을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면서 그로 하여금 바울의 옥바라지를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시중을 들고 있었던 에바브로디도가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다가 겨우 나았습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가 많이 아팠다는 이야기를 듣고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걱정을 하므로 바울을 근심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런 걱정 때문에 에바브로디도와 디모데를 빌립보교회에 보내면서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그들의 오해가 있다면, 그 오해(誤解)를 해소하고 그리스도의 훌륭한 종으로 영접(迎接)하기를 바란다는 이야기입니다. 셋째, 분쟁에 대해 화해할 것을 부탁합니다.

교회 안에서 분쟁이 있다는 것은 복음의 진수를 모르는데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낮아지셨다는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들입니다.

2:3절에서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빌립보서 4:2절에서 바울이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말합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그들은 빌립보교회의 리더자들이었습니다.

그 둘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음을 보고 그 둘을 화해시키고 있습니다. 서로 화해하여 하나 되게 하려고 애쓴 것을 보게 됩니다. 넷째, 비진리에 현혹되지 않게 하기 위한 권면입니다. 3장에 보면 바울이 없는 동안에 바울의 복음과는 상반되는 율법을 지킴으로 우리의 믿음이 완전해 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옳지 못한 가르침들에 현혹되지 않도록 권면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다섯째, 빌립보서는 바울의 가장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보통 자신을 지칭할 때 나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빌립보서에서 만큼은 나라고 하는 단어를 이 짧은 서신에서 56번 정도 사용하고 있습니다.어떠한 때에 사용하고 있습니까? 나의 주 그리스도의 예수라고 칭합니다. 주라고 할 때에는 보통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빌립보서에서는 나라고 합니다.

이것은 바울의 아주 개인적인 신앙의 면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기(自己)와 빌립보 성도와 아주 개인적(個人的)인 관계를 반영하는 서신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심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 바울로서의 두려워하는 마음과 문제 앞에서의 조급함,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의 사랑의 풍부한 면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런 바울의 심정을 잘 노출시키고 있는 곳이 고린도후서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에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부드럽게 민감하게 표현한 것이 빌립보서입니다. 여섯째, 기뻐하라고 합니다. 또 하나 빌립보서의 특징 중의 하나는 기뻐하라라는 기쁨이 16번이나 나옵니다.

빌립보서를 쓰는 바울이나 받는 그들이나 상식적으로 말하면 또한 객관적으로 혹은 환경의 여건으로 말하면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감옥안에서 언제 사형 언도가 떨어질지 몰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감옥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로는 빨리 죽어서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가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위해서 더 살아야 되겠다고 합니다. 언제 사형을 받을지 모르지만 차라리 그것이 기다려지는 그러한 고통 속에서 바울이 이 빌립보서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한 바울이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외적인 것들로 핍박을 받은 상황이었고 내적으로 교회의 분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일관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하나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역시 기뻐할 수 있는 조건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서로 기뻐하라고 서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빌립보서에서 찾아야 합니다. 일곱째, 그리스도 중심적 서신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서신은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중심의 편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그리스도로 가득찬 편지다라고 합니다. 우리들은 빌립보서를 통해서 교회를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고난의 십자가는 우리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고 회복해 주셨습니다.

2.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아갈 때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 고난은 어떤 고난이었습니까? 복음을 위해서 일할 때 당하는 고난이었습니까? 아니면 내 욕심과 탐심 때문에 당하는 고난(苦難)이었습니까? 우리 자신을 성찰(省察)하며 무엇이 아름다운 고난인지를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서 영광을 누리지 못할지라도 우리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이미 보장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두려웁니까?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이 제일 좋아합니다. 사탄을 기쁘게 할 것입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입니까? 물론 우리들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이 무엇인지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쁨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영광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자신의 영광과 뜻을 계시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13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은 저와 여러분을 위해서입니다.
흉악한 죄인에게 십자가 사형을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죄없으신 의인이 만백성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죽음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속의 은혜를 믿고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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