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열왕기상,하 강해

열왕기란 성경 이름은?

에반젤(복음) 2019. 11. 11. 19:04



  

열왕기란 성경 이름은?

 

 

 

열왕기(列王記)는 말 그대로 왕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윗 이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할 때까지 재위했던 왕들과 그들의 역사가 실려 있지요.  사무엘서와 마찬가지로 열왕기도 본래 한 권이었습니다. 분량이 너무 길기 때문에 그리스어 성서에서 아합의 죽음까지 잘라 두 권으로 만들었는데, 그 뒤 다른 성서들이 모두 이 분류를 따르게 되었죠. 또 그리스어 성서에서 사무엘서를 열왕기 1·2권으로 불렀다는 게 기억나세요? 그렇다면 열왕기 상·하권은 열왕기 3·4권으로 불렸겠죠.  열왕기는 이미 앞에 나온 여호수아, 판관기, 사무엘서와 함께 묶여서 ‘전기 예언서’ 또는 ‘신명기계 역사서’라 불려요. 전체적으로 보면 가나안 땅 정복으로부터 멸망해서 가나안 땅을 잃게 되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담아 보여주고 있는 셈이죠.
 

 

 

누가 썼지요?

 유대교의 탈무드 전승에는 예언자 예레미야가 열왕기를 썼다고 나와요. 하지만 이는 율법은 모두 모세, 시편은 다윗, 지혜문학은 솔로몬 하는 식으로 성서의 권위를 관련된 특정인에게 모두 연관시켰던 후대 유대교의 한 경향을 나타낼 뿐이지요. 열왕기는 이미 전해온 사료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인데, 이를 하나로 체계화시켜 편집한 이는 신명기계 역사가라고 해요. 그(들)은 주로 바빌론 포로기 시대에 활동한 인물인데, 특별히 야훼 신앙에 투철했다고 여겨져요.

 언제 썼지요?

 안타깝게도 분명히 알 수는 없어요. 우리나라의 ‘조선 왕조 실록’이나 주변 국가의 연대기처럼, 이스라엘과 유다에도 왕의 제위 때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한 문서가 있었다고 추정되어요. 어떤 것은 솔로몬 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거든요. 이런 기록들이 계속 전해오다 현재와 같이 하나로 정리된 시기는 아마도 바빌론 포로기나 그 이후일 거에요.

 왜 썼나요?

 열왕기는 역사서이지만, 현대의 역사서같이 ‘사실’을 비판적으로 정리 기록한 그런 역사서가 아니라, 신명기 역사가의 관점에서 정리된 ‘신학적 역사서’라 할 수 있어요. 바빌론 포로기를 겪은 그는 자기 민족이 멸망당한 까닭을 신앙 안에서 깊이 생각하고 그 이유를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에서 찾았어요. 즉 그는 야훼 하느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망한다는 역사의식을 갖고 자기네 역사를 되돌아보았던 것이 신명기계 역사서죠. 아울러 그 역사 중에 하느님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어 하느님의 능력과 성실하심도 일러주어요.

열왕기를 유심히 보시면 각 왕들의 치적이 일정한 도식으로 반복해서 기술되어 있으며, 요시아 왕이 가장 칭찬받는 반면 므나쎄 왕이 가장 나쁜 평을 받음을 알 수 있어요. 그 평가기준은 정치경제적 역량이 아니라 야훼 신앙에 얼마나 충실했는가에요. 결국 이를 통해 열왕기는 하느님 말씀에 충실하고 그분만을 올바로 섬기는 것이 다시 하느님 공동체를 회복하여 잘 사는 길임을 포로기 시대의 동족들에게 강조하는 것이에요. 나아가 우리 시대에도 진짜 중요한 것은 국력의 신장보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그분 말씀에 따르는 올바른 삶임을 일러주고 있어요.

 

 <새김과 나눔>

요즈음, 한 개인의 역사부터 가정이나 국가, 인류의 역사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역사를 많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역사를 볼 때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요? 세상의 기준과 성서의 기준은 어떻게 다른가요?

열왕기 상권

솔로몬의 즉위와 다윗의 죽음(1열왕 1,1-2,26)

다윗이 솔로몬에게 남긴 유언을 되새겨 보십시오(2,3)

다윗이 늙어 기력이 쇠하여지자 왕위를 둘러싼 싸움이 벌어집니다. 먼저 맏아들인 아도니야가 요압 장군과 사제 에비아달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모읍니다. 그러나 나단 예언자와 바쎄바의 측면지원을 받은 솔로몬이 다윗의 재가를 얻어 후계자가 됩니다. 다윗은 임종 자리에서 솔로몬에게 언제 어디서나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왕조를 굳건히 세워주실 것이라고 충고합니다. 다윗이 죽은 뒤, 솔로몬은 정적인 아도니야와 요압을 죽이고 에비아달을 추방한 다음 정권을 단단하게 굳힙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건축과 봉헌(1열왕 3,1-8,66)

솔로몬은 성전을 봉헌하면서 어떤 말로 백성들에게 축복해주었습니까?(8,54-61)

어느날 솔로몬이 기브온에 있는 산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잠들었을 때, 하느님이 나타나 그의 소원을 묻습니다. 솔로몬이 하느님의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만을 청하자, 하느님은 부귀와 명예도 덧붙여 주십니다.

하느님이 돌보아주셔서 솔로몬은 놀라운 지혜를 지니며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평화롭게 살게 됩니다. 그러자 솔로몬은 자신을 지켜주시는 하느님께 성전을 지어 바칠 준비를 합니다. 띠로 왕 히람과 계약을 맺어 레바논의 송백나무를 베어오고 전국에 근로소집령도 내립니다. 마침내 출애굽한 지 480년 되던 해에 성대한 성전을 짓기 시작하여 칠 년만에 완공시킵니다. 성전에 필요한 각종 기구도 다 만든 다음, 솔로몬은 계약의 궤를 모시고서 하느님께 기도드리고 백성들에게 복을 빌어줍니다. 야훼 하느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이 성전을 가득 채워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로써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이름을 불러 예배할 곳”(8,16)으로 굳건히 자리잡게 됩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예루살렘 성전과 병행해서 지방의 성소와 산당들도 유다가 멸망할 때까지 세력을 유지합니다. 결국 유다가 망했다가 다시 돌아온 포로기 이후 시대에 가서야 예루살렘은 유일한 야훼 예배처로 자리잡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통치와 타락(1열왕 9,1-11,43)

이스라엘이 분열된 것이라고 알려준 예언자는 누구입니까?(11,29)

하느님께서는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 당신의 계명과 법을 잘 지키면 그의 왕좌를 지켜주겠노라고 이르십니다. 잘 안 지키면 재앙이 덮칠 것이구요. 하느님의 경고를 받았지만 솔로몬은 점차 하느님의 길에서 벗어납니다. 왕궁과 기타 성을 쌓는데 주변민족들은 강제노역을 시키는데, 이는 이집트에서 강제노동을 한 이스라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많은 이방여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들의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결정적인 배반행위를 합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예고대로 나라가 분열되리라는 경고가 떨어지는 속에 솔로몬이 숨을 거둡니다. 무려 11장에 이르는 솔로몬 이야기 중에 우리는 하느님의 사람이 지닌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새김과 나눔>

자신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백성들을 잘 돌볼 지혜를 구하는 바른 지도자 솔로몬의 모습과, 백성들을 강제노동시키고 이방신을 섬기는 타락된 솔로몬의 모습은 우리의 두 측면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구하게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요?

왕국은 찢어지고(1열왕 12,1-13,24)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무슨 말로 거부합니까?(1열왕 12,14)

솔로몬이 죽은 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은 왕으로 추대 받으려면 세겜으로 갑니다. 이를 보면, 왕위가 자동적으로 계승되기보다 백성들의 동의와 추대가 있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백성들은 심한 일을 덜어달라고 요구하지만, 르호보암은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다윗 왕조를 거부하고 여로보암을 왕으로 이스라엘 왕조를 세웁니다. 여로보암은 베델과 단에 야훼를 상징하는 금송아지상까지 세워 종교적으로도 갈라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일이 하느님을 거역하는 큰 죄가 됩니다.

서로 다투는 분열왕국(1열왕 14,1-16,34)

이 대목에 등장하는 왕 중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곧은 일을 한 왕은 누구입니까?(15,9-24)

분열된 왕국 중에서 유다는 유다 지파만을 다스리는데, 다윗 왕조가 순탄하게 이어갑니다.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아비야와 아사, 여호사밧이 차례로 왕위에 오릅니다. 이들은 북이스라엘과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이집트의 침략을 받으면서 어렵게 나라를 이끌어갑니다.

북이스라엘의 사정은 좀더 복잡합니다. 열 지파가 연합하여 있는 데다가 예전의 평등했던 히브리 전통과 한정된 기간만 판관의 지위를 인정했던 전통들이 강해 세습왕조의 뿌리를 내리기가 어려웠습니다. 여로보암의 뒤를 이어 아들 나답이 왕위를 계승하지만, 바아사, 지므리, 오므리의 반란이 거듭됩니다. 열왕기 저자는 그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에 이러한 결과를 낳았다고 풀이합니다.

예언자 엘리야 이야기(1열왕 17,1-19,21)

엘리야에게 하느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까?(19,9-14)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 구약의 대표적인 예언자 엘리야가 활동합니다. 그는 하느님을 옳게 섬기지 않는 아합 왕에게 가뭄을 예고한 뒤, 사렙다 과부의 도움을 받아 살아갑니다. 그의 죽은 아들도 살려주고요. 삼 년 후에 엘리야는 아합 왕을 찾아가 가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하겠다고 제의합니다. 엘리아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승리한 다음 바알 예언자를 모두 죽이고 왕비 이세벨의 살해 위협을 피해 광야로 도망갑니다. 하느님은 의기소침에 있는 엘리야를 격려하시며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십니다.

 아합 왕 이야기(1열왕 20,1-22,54)

라못길르앗 전투가 하느님의 뜻에 부합되는지를 묻는 왕에게 예언자 미가야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22,19-23)

 아합 왕은 북이스라엘 오므리 왕조의 둘째 왕으로 역사적으로 국가를 퍽 잘 다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시돈왕 에드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숭배한 탓에 하느님의 질타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은 시리아 군대를 물리쳐 주시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또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폭력으로 빼앗을 때는 엘이야를 통해 심판을 선포하십니다. 결국 아합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라못길르앗 전투에 나갔다가 전사합니다. 이 대목은 참된 예언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하느님 말씀에 순종함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러줍니다.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에는 특별하게 예언자라는 이들이 등장합니다. 엘리야와 미가야 같은 참 예언자와 시드키야 같은 거짓 예언자를 보며, 이 시대의 우리 그리스도인의 예언직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십시오.

열왕기 하권

엘리사 이야기 1(2열왕 1,1-4,44)

엘리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2열왕 3,15)

엘리야가 마지막으로 한 일은 에크론 신 바알즈붑에게 병세를 문의하러 간 이스라엘 왕 야하지아에게 죽음을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야훼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은 잘못을 탓하는 것이지요. 그가 하느님의 말씀대로 죽고 여호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 뒤에 엘리아는 엘리사와 함께 가다가 불수레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 사라집니다. 이제부터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영검을 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지적을 행합니다.

그는 나쁜 물을 전하게 하고, 모압을 토벌하리라는 말씀을 전하며, 과부의 기름이 계속 나오게하여 빚을 갚게도 합니다. 또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예고하고 그 아들이 죽었을 때에는 다시 살리기도 하며, 독이 든 국을 문제없게 하고, 보리떡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입니다.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1,17;2,21;4,43-44) 이루어짐을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엘리사 이야기 2(2열왕 5,1-8,29)

시리아의 군사령관인 나아만은 야훼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어떻게 고백합니까?(5,15-18)

엘리사의 명성이 널리 알려져 마침내 시리아의 군사령관인 나아만이 그에게 찾아가 문둥병을 치유받습니다. 그런데 엘리사의 제자 게하지는 스승이 나아만으로부터 사례받기를 거부하자 아깝게 여겨 뒤쫓아가 은과 옷을 받아옵니다. 그는 부유하게 되었지만 그 욕심 때문에 문둥병에 걸려 스승 곁을 떠나게 됩니다.

그밖에 엘리사는 시리아의 강도떼를 사로잡기도 하고, 사마리아를 포위한 시리아군을 내쫓으시겠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기원전 9세기 초반인 이 당시 유다 왕은 여호람과 그 뒤를 이은 아하지야였고, 이스라엘의 왕은 아합의 아들 요람이었습니다. 유다 왕 여호람이 이스라엘 왕 아합의 사위가 될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아주 우호적이었답니다.

예후의 쿠데타와 엘리사의 죽음(2열왕9,1-13,25)

보기 드물게 요아스 왕이 칭찬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12,3)

엘리사는 제자를 시켜 북이스라엘의 장군인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는다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예후는 이 말씀을 쫓아 쿠데타를 일으켜 요람과 이세벨 등 아합의 일족과 바알을 숭배하는 자들을 모두 죽이고 야훼 신앙을 회복합니다. 그러나 그 역시 금송아지를 야훼로 섬기는 잘못을 바로잡지는 못합니다. 예후의 아들과 손자인 여호아하즈와 여호아스가 뒤를 이어 예후 왕조를 지속시켜 가지만, 계속 시리아로부터 괴롭힘을 받습니다. 그러나 야훼께서 도우시어 그들을 구해주십니다. 여호아스의 통치 중에 엘리사가 죽습니다. 열왕기 상권에서 엘리야가 차지한 비중과 하권에서 엘리사가 차지한 분량을 보면, 이 두 예언자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유다에서는 예후에게 아하자야 왕이 살해당하자 그의 어머니 아달리야가 다른 아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이 직접 통치합니다. 그러나 사제 여호야다가 칠년 후에 아달리야를 죽이고, 그동안 숨어 지내던 아하지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으로 세웁니다.

 

<새김과 나눔>

이스라엘과 유다는 경쟁과 협력 관계를 오갑니다. 현재 경직된 경쟁 관계에 있는 한반도가 화해와 협력관계로 나아가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떤 일을 하는 게 필요할까요?

북이스라엘의 멸망(2열왕 14,1-17,41)

열왕기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까닭을 어떻게 풀이하고 있습니까?(17,7)

이사야, 아모스, 미가 등 많은 예언자가 활동했던 기원전 8세기에 이스라엘과 유다는 잠깐 반짝하는 번영의 순간도 있었지만, 매우 어지러운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유다는 다윗 왕조가 계속 이어지고 한 왕의 재위기간이 비교적 길었습니다. 아마지야가 반란으로 죽었지만, 아들 우찌야가 대를 이어 무려 52년간 통치하고, 요담과 아하즈가 차례로 대를 이어 16년씩 유다를 다스립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에서는 계속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예후 왕조의 셋째 왕인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는 솔로몬 시대의 영토를 거의 찾을 정도로 국력을 키웁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즈가리야는 6개월만에 반란으로 무너지고, 이어 살롬, 므나헴, 베가 ,호세아 등이 계속 반란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면서 국가는 멸망의 길로 접어듭니다. 마침내 기원전 722/721년에 북 메소포타미아의 막강한 제국 아시리아가 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그리고 많은 유력자를 끌어가고 대신 다른 민족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이 생겼다고 전합니다.

 히즈키야와 이사야(2열왕 18,1-20,21)

히즈키야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였습니까?(19,15-19)

 이스라엘이 멸망할 당시의 유다 왕은 히즈키야였습니다. 그는 보기 드물게 야훼 신앙에 투철한 왕이었습니다. 아시리아가 유다마저 짓누르자, 그는 달걀로 바위치는 격이었지만 아시리아에 대들었습니다. 막상 아시리아가 유다를 공격하자 히즈키야는 각종 금은을 모아 몽땅 바치고 잘못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래도 아시리아가 철수하지 않고 히즈키야를 조롱하자, 히즈키야는 회개의 복장을 하고, 간절하게 하느님께 기도드립니다.

마침내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의 응답이 들렸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이 아시리아를 물리쳐주시고 유다를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 말씀대로 아시리아의 군대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철수하고 산헤립은 아들에게 피살당합니다. 또 중병에 걸려 죽을 지경이 된 히즈키야가 울면서 드린 기도를 하느님은 귀담아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늘려주시나, 그가 바빌론 사절단을 환대하면서 의지하려 하자 바빌론에게 망하리라고 이사야는 예언합니다. 이 대목은 아사야서와 함께 보시면 더욱 잘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하느님께 신뢰하는 자는 결코 망하지 않으리라고 일러준답니다.

유다와 멸망(2열왕 21,1-25.30)

요시아 왕은 하느님의 율법을 어떻게 준수하였습니까?(23,25)

 므나쎄는 아버지 히즈키야와 정반대로 주변 민족들의 우상을 섬기는 등 야훼 하느님을 거역하는 죄를 많이 지었기에,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겠다는 하느님의 선고가 떨어집니다. 그의 손자 요시아는 아시리아가 쇠퇴한 틈을 타서 대대적인 개혁을 하여 다시금 유다를 정화합니다. 일명 신명기 법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개혁은 이스라엘 종교사에서 무척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진노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뒤 유다는 이집트의 침략에 시달리다 결국 바빌론에 의해 기원전 587년에 멸망하고 맙니다. 하느님의 경고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새김과 나눔>

솔로몬으로부터 유다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몇 백 년에 걸친 왕조의 흥망사를 보며 여러분이 느끼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어떻게 느끼며 고백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