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도행전 강해

[스크랩] 사도행전/제 14 강 핍박 이후 (행 5:33-42)

에반젤(복음) 2019. 10. 3. 20:39




사도행전/제 14 강  핍박 이후 (행 5:33-42)

 


I. 말씀을 향하여


# 핍박 해결을 위한 하나님의 방법

 

1. 가말리엘의 등장
사도들이 핍박을 받고 있는 상황 가운데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가말리엘이다. 그러면 가말리엘은 누구인가?

 

1) 바리새인이다.
바리새인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사두개인들에 대응하는 종파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들은 율법을 엄격하게 준수했는데 율법 이외에도 수많은 법규를 정해 놓고 함께 지켰고, 거기에 정치적인 동기에 따른 많은 소리를 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기들의 법 준수와 다른 입장에 서 있었던, 자기들의 정치적인 행보와 다른 입장에 서 있었던 주님의 사역을 비판하고 공격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예수님 당시 가장 적대적 위치에서 방해를 했다. 주님도 이들을 강하게 비판하셨다. (마 23)

 

2) 가장 존경 받는 랍반이다.
가말리엘은 당대 최고의 랍비들에게 붙여진 랍반 칭호를 받은 여섯명의 교법사 가운데 하나였다. 쌍벽을 이루던 학파를 형성했다. 힐렐의 손자로서 가장 실력있고 유명하고 존경받던 랍비였다. 그는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그런데 힐렐 학파의 학풍에 따라 그는 율법에 대해 온건하고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변화되기 전 사울도 이 사람의 제자였다.

 

2. 하나님의 역사
사도들이 핍박을 받는 중에 가말리엘이 나섰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1) 가말리엘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가말리엘이 예수를 영접한 것은 물론 아니다. 또한 주님의 가르침을 인정했거나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입장에서 기독교를 대하도록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 가말리엘을 통해 역사하셨다.
가말리엘이 주님의 제자도 아니고, 주님의 말씀을 믿은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과적으로 사도들이 핍박에서 벗어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치 고레스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돌아오도록 하신 것과 같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II. 말씀 속으로


1. 가말리엘의 역할
가말리엘은 산헤드린 공회를 설득해서 사도들의 핍박을 중지하도록 했다.

 

1) 가말리엘의 주장
* 34/ 가말리엘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자기의 입장을 피력했다. 자기들끼리만의 모임 속에서 은밀하게 설득을 하고 있는 것이다.

* 35/ 가말리엘은 “조심하라”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사도들의 핍박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사도들의 사역에 간섭하거나 방해하지 말고 그저 지켜만 보라는 것이다.

* 38-9/ 그의 주장의 핵심은 이런 것이다. 사도들의 가르침이 하나님께서 온 사상이라면 막을 길이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그러나 사도들의 가르침이 하나님께로서 오지 않은 사상이라면 스스로 쇠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잘못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한 것이다.

가말리엘이 이렇게 주장하게 된 실제적인 이유는 이렇다. 당시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사도들을 처형했을 경우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을 보았다. 그랬을 경우 산헤드린 공회에 책임 공방이 일어나고 공회의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난 후 소요 진압을 위한 로마군의 개입을 내다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결과 자기들에게 더 큰 문제가 발생될 것이다.

* 36-7/ 가말리엘이 자기 주장을 설득하기 위해 역사적 사건을 예로 들었다. 드다와 유다 사건이다. 이들은 유대 지도자로 백성들의 일부가 그들을 따랐지만 이들이 죽은 후 곧 이들을 따르던 무리가 지리멸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가 하나님께로 온 자가 아니라면 그를 따르는 사도들과 같은 무리들도 저절로 소멸할 것이라는 것이다.

 

2) 산헤드린 공회의 반응
*옳게 여겼다/ 40절을 보면 산헤드린 공회가 가말리엘의 주장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채찍질 하며 예수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금하고/ 산헤드린 공회는 사도들을 처형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고 사도들의 사역을 인정한다는 뜻도 아니다. 방임을 하고 지켜보겠지만 공인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금하는 제스츄어는 취했다. 그래서 채찍질 했고, 일종의 공갈 협박을 가했다.

*놓으니/ 사도들이 채찍에 맞고 협박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처형당하지 않고 풀려났다. 저들의 사역이 철저하게 법적으로 차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2. 사도들의 태도

 

1) 사도들은 또 다시 심문을 받았다.
* 33/ 사도들은 다시 산헤드린 공회에 붙들려 와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회의 분위기가 심각했다. 이 번에는 정말 끝장으로 가고 있었다. 저들이 처형당할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2) 사도들이 핍박을 받았다.
* 40/ 사도들은 우선 채찍에 맞았다. 여기서 말하는 채찍은 유대 율법 규정에 따른 매질을 말한다. 즉 고후 11:24에서 볼 수 있듯이 40에 하나를 감한 매 즉 39대의 채찍질을 말한다. 바울은 이런 매질을 무려 다섯 번이나 당했다고 적고 있다.

또한 말로 협박을 받았다. 입에 담지 못할 욕과 공갈이 포함된 협박을 받은 것이다. 오늘도 전도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말의 협박을 흔히 받곤 한다.

 

3) 사도들이 기뻐했다.
사도들이 풀려나면서 기뻐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박해를 받으면서도 기뻐했다는 역설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라고 말씀한다. 저들이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를 보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또 다시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저들은 너무도 뜻밖의 방법으로 자기들이 풀려났음에 놀랐을 것이다. 자기들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풀려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가말리엘이라는 사람이 저런 논리로 자기들에게 유리한 발언을 하리라고는 전혀 기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결론은 하나님께서 지금 자기들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주님의 고난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저들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생하게 목격했던 사람들이다. 주님의 고난의 현장을 피했던 자신들의 모습을 떠 올리면서 늘 죄송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러던 자기들에게 주님 때문에 고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니 오히려 빚 갚은 마음으로 고난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들은 이렇게 핍박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주님의 이름 때문에 이런 핍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일이요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음이다.(마 5:10-11) 자기들이 이렇게 주를 위한 고난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되니 기뻐할 수 있었다.

 

4) 계속 복음을 전했다.
* 41/ 사도들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었다. 두 번이나 투옥되었다가 하나님의 방법으로 풀려났다. 앞으로 또 체포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주님 때문에 고난 받기를 기뻐하며 자초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담대함과 기쁨으로 저들은 복음 전파에 매진했다.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그러니까 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전했다는 것이다.

 

 

III. 말씀과 함께

 

1.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믿고 또 기억하자.

 

2. 주를 위한 고난을 기뻐하자.

 

3.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