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말라기 강해

말라기서의 기본 이해

에반젤(복음) 2019. 10. 2. 01:55




말라기서의 기본 이해




포로 귀환 신세대의 신앙 갱신을 위한 메시야 왕국의 도래와 종말론적 심판 실현 예언 
말라기서는 소선지서의 마지막 12번째 책인 동시에 구약 성경 전체의 마지막 책이다. 말라기서에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에 너무나 느리고 심지어는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아 보이던 영광스러운 메시야 왕국의 분명한 도래와 종말론적 심판의 확실한 실현에 대한 강조가 단연 그 기저(基低)를 이루고 있다. 특히 말라기서는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엘리야가 먼저 도래 할 것을 예고하면서 끝맺고 있다. 그리하여 말라기서는 근 400여년의 침묵기 뒤에 마침내 구약 성경이 거듭 예언한 메시야의 실체로서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과 그의 선구자 세례 요한의 탄생으로 시작되는 신약과 구약을 잇는 가교(架橋)의 역할을 명시적으로 담당하고 었다. 

말라기서는 B.C. 470년 무렵 기록된 스가랴서와도 거의 한 세대(generation)를 격한 B.C. 432년경에 기록되었다. 이는 느헤미야가 주도한 포로 귀환 세대의 종교 개혁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느헤미야는 B.C. 444년 유대 총독의 신분으로 귀국하여(느 13:6)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B.C. 433년 일단 바사로 돌아갔다가 이듬해인 B.C. 432년 다시 귀국하여 종교 개혁을 일으켰다(느 13:7-31). 말라기는 이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운동을 후원하기 위하여 여호와의 선지자로 부름받아 일련의 예언 활동을 하다가 그 핵심 메시지를 본서에 기록으로남겼다. 

말라기가 일어나 여호와 하나님의 예언을 외쳐야 하였던 B.C.5세기 중엽의 팔레스틴의 이스라엘 포로 귀환 공동체의 삶은 매우 암담한 것이었다. 그들은 B.C. 537년부터 가나안 본토에서 선민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건할 소수 정예라는 긍지를 가지고 대략 전3차에 걸쳐 돌아온 포로 귀환 제1세대의 후손들이었다. 이제 제1차 포로 귀환 이후 20여년이 지나 B.C. 516 스룹바벨 제2성전이 준공되고 예루살렘 성곽도 재건되는 등 일련의 국가 재건 사업이 끝나 국가로서의 외형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사마리아인들을 필두로 한 팔레스틴 토착 세력의 견제를 받아가면서도 어느 정도 예루살렘과 그 인근지방을 중심으로 경제, 사회적 기반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포로 귀환 세대가 열렬히 희구하였고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하였던 이스라엘 민족의 영광스러운 메시야 왕국은 도래할 기미조차 전혀 보이지 않은채 포로 귀환 공동체는 곧 거의 전방위적으로 한계와 좌절에 부딪치고 말았다. 정치적으로는 극히 부분적 자치권만 보장되었을 뿐 바사 제국의 식민지로서 여러 의무와 제약을 감내해야 하였으면서도 바사 제국 중앙 정부의 통제력 부족으로 주변 이방 민족들로부터 늘 공격과 약탈을 위협당하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특히, 대부분의 농경지의 황폐와 사회 경제 기반 시설의 미비로 경제적 부흥과 번영은 희망조차 가지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계속되는 가뭄과 빈발하는 병충해의 폐혜로 상당수 포로 귀환민들이 비참한 삶을 살아야만 하였다. 

그리하여 포로 귀환 공동체 안에서 메시야 왕국의 지체에 대한 의구심은 서서히 실망과 불신으로 굳어져 갔다. 그리고 이제는 경건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선민으로서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그저 당장의 세속적 쾌락과 안일을 얻기 위하여 온갖 불의를 일삼는 자들만 늘어났다. 더욱 기막힌 사실은 포로 귀환 공동체의 구심체로서 백성들의 신앙과 삶을 지도해야 할 제사장들이 앞장서서 여호와께 바쳐진 제물을 빼돌리거나 좋은 제물로 자신들의 배를 먼저 채우고 여호와께는 병든 제물을 바침으로써 여호와의 제단을 더럽히는 등 앞장서서 영적 타락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거의 우상 숭배에 가까운 혹세무민과 기복신앙적 행태를 조장하여 여호와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여서라도 먼저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에만 골몰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 백성들이 신앙 생활을 소홀히 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망각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선민 사회의 기반인 가정의 순결마저 파괴되어 여호와 경배와 율법에의 순종 서약 등의 개종(改宗)을 전제하지 않은 이방인들과의 무분별한 통혼은 물론 가정 폭력과 부당한 이혼 등이 거리낌없이 자행되었다. 한마디로 당시 포로 귀환 공동체는 여호와의 백성인 선민들의 사회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말라기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고 등장하였다. 그리고 영광스러운 메시야 왕국은 당장은 느린 것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여러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언약의 사자의 등장을 필두로 필히 도래할 것이며 그 때에 의인과 악인에 대한 종말론적 구분과 심판이 완전히 실현될 것을 외쳤다. 그리고 이 메시야 왕국의 도래와 종말론적 심판의 실현의 보장 내지 확실성의 말씀을 예언을 기저로 하여 제사장과 일반 백성 모두에게 자신들의 현재의 무분별하고도 오 염된 정처없는 삶을 각성하고 일신하도록 촉구하였던 것이다. 

말라기는 전편에 걸쳐서 메시야 왕국 도래의 지체에 실망한 당시 세대의 시니컬한 회의와 불신은 물론 책임 회피성 내지 무지에서 나온 신성 모독적 발언들을 그대로 거듭 인용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여호와의 반론을 제시하는 방식을 통하여 포로 귀환 세대의 각성과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다(1:2,6 ; 2:14,17 ; 3:7,13). 

또한 여호와 모독에 앞장선 제사장들의 가증한 행태와 그에 대한 여호와의 혐오감도 여과없이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가정 파괴의 양상을 지적함에 있어서나 선민의 만성적 규례 위반의 대표적 사례로서 십일조 규례 위반을 지적하거나 그 준수를 촉구할 때에도 추상적, 관념적 이론이 아니라 현실적 사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그리하여 말라기서는 생생하면서도 역동적인 현장감이 넘치고 있다. 

특히 여호와께서 십일조 규례의 준수를 촉구하시면서 그에 따른 즉각적, 현실적 축복을 도전적으로 보장하신 구절은 매우 유명하다. 십일조 규례는 각 개인의 신앙고백과 순종의 가장 현실적이고도 결정적인 증표이자 예루살렘 새 성전을 중심한 포로 귀환 세대의 공동체 전반의 신앙 생활의 지속을 위한 기본적 조건이었다. 이같은 여호와께서는 십일조 규례에 대하여 말라기서를 통하여 매우 이례적으로 그에 따른 즉각적이고도 가시적인 축복까지 명시적이고도 도전적으로 보장하시며 모든 여호와의 백성들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도 준수하도록 촉구하셨던 것이다. 

이는 먼저 시대와 사회 전체의 풍조, 심지어는 당장 성전 제사를 빌미로 자신들의 영화만 추구하고 있는 제사장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의 악행마저도 불구하고 성도 각자는 자기의 신앙적 의무를 여호와 앞에서 단독자로서 수행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또한 이는 여호와께서는 저 메시야 왕국 즉 천국에서의 영원한 종말론적 복락과 우리의 영적 축복을 우선 하면서도 분명 지상적, 육적 축복도 우리에게 베풀기 원하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저 나날의 일상 생활에 함몰되어 온 천하의 절대유일의 메시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와 그의 영원한 축복의 왕국인 천국(天國)의 도래에 대한 멸망이 식어지고 따라서 성도로서의 정체성마저 희미해지는 위험에 처하여 있는 영적 상황은 우리 각자도 거듭 직면하는 현실이다. 

따라서 영광스러운 권능의 메시야의 나라의 도래와 선인과 악인의 운명이 갈리는 종말론적 심판의 확실성에 바탕하여 당시 포로 귀환 신세대의 신앙 갱신을 외쳤던 말라기서의 말씀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재발견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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