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강/ 마흔 번째 구원드라마(말 1-4) 구약과 신약의 중간시대
I. 배경
주전 538년 바사의 고레스 왕은 ‘회복의 칙령’을 내려 그가 점령한 바벨론과 모든 이방인에게 해방과 평화를 선포했다. 이 때 유배되었던 유다 민족 중의 열심있는 일부가 바벨론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1차 귀환한다. 당시 지도자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이었다. 해방의 환희와 함께 스룹바벨을 정치적 메시야로 기대했으나 그가 사라지면서 다시 실망과 좌절로 빠져들었다. 이 때 학개와 스가랴가 성전을 다시 건축함으로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를 마련할 것을 호소하고 사람들은 마음을 새롭게 가다듬고 성전 개축을 시작한다. 주후 515년 다리오 왕 때 유다 민족은 성전을 완성하고 봉헌한다. 그러나 성전을 건축하면 평화가 올 줄 알았으나 평화는 오지 않고 오히려 영적인 공허와 정치적인 불안정이 계속되었다. 이 때 페르시아에서는 에스더 사건이 일어나고 팔레스틴에서는 선지자 말라기가 일어나 성전 봉헌 이후의 타락을 경고한다. 이제 에스더와 말라기 시대가 끝나고 주전 445년 느헤미야가 유대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50일 만에 완성하고 봉헌한다. 그러나 성전을 다시 건축하고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는 성벽을 쌓았는데도 그곳에는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다시 깊은 좌절을 맛보게 된다. 주전 428년 에스라가 페르시아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 문 앞에서 온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읽자 민족적인 대회심의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주전 428년 이후 이스라엘은 마카비 시대를 제외하고는 전적인 공백기에 빠진다. 이후 주전 333년 그리스가 등장한다. 그리스에 페르시아가 멸망하고, 알렉산더 이후 팔레스틴은 셀레커스 왕가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이 때 치욕적인 박해가 있었다. 예루살렘 성전을 제우스 신전으로 바꾸어 놓았고 유대인 4만 명을 학살했다. 이 때 끝까지 신앙을 지키는 핫시딤 운동이 일어나 지도자 마카비를 중심으로 저항하게 된다. 이 때 기적같은 승리를 쟁취하게 되었다. 주전 164년 소위 ‘하누카’에 팔레스틴 자치권을 얻게 되었고, 예루살렘 성전 정화 운동에 나서게 된다. 이 때로부터 약 100년간 저들에게는 독립의 시기가 주어진다. 이 후 유다는 왕조 내분에다 그리스를 무너뜨리고 패권을 장악한 로마의 등장으로 독립 시기를 마감하게 된다. 이런 상태로 신약시대가 동터오게 되는 것이다.
II. 본문과 해석
말라기는 절망과 회의의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성전이 건축되고 나면 이스라엘이 번창의 시대를 맞으리라 기대했던 유대인들은 그런 시절이 오지 않자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지자들의 말씀에 대해 실망하고 낙담하여 냉소주의와 불신앙에 빠지게 되었다. 말라기는 이런 시대를 향한 외침이었다.
1. 첫 번째 예언- 제사장들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1:1-2:9) 말라기는 그 당시의 제사장들 곧 종교 지도자들의 죄를 고발하고 그들의 책임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여기에서 말라기는 제사장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공경하거나 경외하지 않고 있음을 탄핵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의를 소홀히 하는 신앙적 나태에 빠져 있는 것에서 나타나는 불경이었던 것이다. 말라기는 이렇듯 불성실한 종교 지도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재앙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한다. 그리고 말라기는 백성들로 하여금 옳은 신앙을 가지고 바른 종교생활을 하도록 인도하기 위하여는 우선 종교 지도자들의 신앙과 지혜가 성실하여 삶의 모범이 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2. 두 번째 예언 - 잡혼을 경고함(2:10-16) 말라기는 이방 신을 섬기는 여자와 결혼하여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히는 일을 경계하는데 이것도 하나님에 대한 충실한 신앙을 지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말 2:11) 에스라 느헤미야의 종교개혁 때에는 이 잡혼 금지가 법적 강제력을 가지고 시행되었다. 말라기의 결혼관 중 후대 일부일처주의와 바른 부부관계 상의 정립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공헌을 한 가르침은 ‘이혼 금지’ 법이라고 할 수 있다. 말라기 2:16의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는 폭력의 옷을 입은 자 곧 부인을 학대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와 같이 부부 간의 화합과 사랑을 강조하여 이혼을 금하는 말라기의 선포는 이에 역행하는 오늘의 세태 곧 이혼 행위가 난무하여 가정과 사회에 많은 윤리적 사회적 교육적 문제를 야기시키는 우리의 세태를 위해 매우 소중한 말씀이라 하겠다.
3. 세 번째 예언 - 공의의 하나님(2:17-3:5) 이와 같은 회의와 퇴폐의 절망적 상황 속에서 일어난 말라기의 사명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다시 살리는 일이었다. 말라기서의 내용 전개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묻고 대답하는 대화의 형식이며, 그는 이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구체적 문제에 대하여 예언자적 답변을 해 준다. 말라기가 대답하고자 하는 문제들 가운데 가장 근원적인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관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공의는 어디에 있느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르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하며,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였다. 이것은 보상 문제에 관한 전통적 사상과 관련된 것이다. 전통적 보상 사상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선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악한 적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며 이스라엘을 사랑하신다면 왜 실제 생활에서 그것을 보여주지 않으시냐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말라기의 첫 번째 대답은 사람들이 고난 당하는 이유가 하나님께 불충하여 하나님을 괴롭혔기 때문이며 그를 섬기기에 소홀히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말라기의 두 번째 대답은 여호와께서는 국경 밖에서도 이름을 떨치시는 역사의 주이시며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역사의 주 여호와께서 결국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시고 이스라엘의 적들에게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는 것이다. 말라기의 세 번째 대답은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멀지 않았으며 그날에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들에게 은혜를 배리시고 악한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려 모두 검불처럼 타버려 뿌리도 남지 않게 하리라는 것이다.
4. 네 번째 예언 - 십일조의 규정(3:6-4:6) 이와 관련하여 말라기는 신앙이 해이해짐으로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소홀히 하고 있음을 질책한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8-10) 이 가르침 또한 해이해 진 신앙생활은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하나님을 향한 정성과 성실과 뜨거운 신앙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져야 할 바른 삶의 자세임을 가르치고 있다.
III. 신학적 의미
1. 유신론적 허무주의에 대한 말라기의 예언 말라기 시대에 유신론적 허무주의가 팽배했다. 이것은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공허한 신앙과 생활을 일삼는 허무주의를 말한다. 당시 유대인들 속에 이 유신론적 허무주의가 만연되었다. 가진 자는 나그네와 가난한 자를 압제하고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 있느냐를 질문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악을 행하고 잡혼을 하며 속으로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겉으로는 경건하나 행동과 생활은 하나님 없는 것같이 살아가는 것이다. 이 때 말라기는 하나님의 의와 최후의 승리를 선포한다. 여기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악과 거짓, 허위와 위선을 버리고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이었으며 언약의 회복이었다. 그 때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는 약속이 주어진다. 이것이 말라기 예언의 중심이다.
2. 구약에 나타난 구원 드라마(구약을 마치며) 구원 드라마는 아브라함과의 처음 약속 주제로부터 시작되었다. 땅을 약속하시고 큰 민족을 약속하셨으며 이로써 복의 근원의 축복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것이 구원 드라마의 출발점이었다. 구원 드라마의 대단원은 출애굽 사건이었다. 애굽 탈출과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 곧 ‘민족’으로 만들고 인치는 원초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광야 40년을 거쳐 얻은 가나안 땅은 또 다른 약속인 ‘땅’의 하나님의 성취였다. 저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하면서 세겜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음으로써 구원 드라마는 절정을 이루게 된다. 구원 드라마는 역설을 보인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화려했었던 통일왕국 시대가 바로 타락의 역사였다는 점이다. 영적 타락이 시작되면서 땅은 크게 확장되었으나 그 땅은 군사적 힘에 의해 정복되었고 왕실소유가 되었다. 그리고 민족은 크게 확장되었으나 하나님의 백성이기 보다는 왕의 백성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자신들이 진정한 복을 누리지도 못하고 또 복의 근원 역할도 하지 못했다. 구원의 드라마는 바벨론 포로 사건으로 이어진다. 잘못된 땅 잘못된 민족에 대한 징계였다. 복이 징계로 바뀌고 말았다. 그 징계 속에 구원드라마는 회복에 대한 약속으로 소망의 주제로 이어진다. 이 소망의 주제 속에 구약의 구원 역사는 미완으로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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