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개書 :The Book of Haggai
[영] The Book of Haggai 구약성서의 1서, 특히 12소선지서의 하나로 말해진다.
1. 본서의 저작 연대.
본서는 그 내용을 이루고 있는 메시지의 전부에 명확한 날짜가 기록되어 있어서, 저작 연대의 문제에는 별로 곤란이 없다. 즉 바사왕 다리오(다레이오스)의 치세 제2년인 전 520년의후반의3개월의기간이다. 그러나 학개의 일을 3인칭으로 기록하고 있는 부분을 다른 편찬자의 글로 돌려, 이것을 1,2세기 후로 연대를 잡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학개 자신의 3인칭의 부분을 포함하여, 전기 연대에서 얼마 후에 본서를 정리한 것으로 생각하는 일을 부정할 만한 근거는 없다.
2. 본서의 저자.
학개에 대해서는, 다른 선지서에는 있는 것과 같지 않게, 아버지의 이름이나 출신지 등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다. 본서의 1:1과 스 5:1,6:14-에 [선지자 학개]로 말해지고, 또한 본서의 1:13에 [여호와의 사자 학개]로 기록되어 있는 것 외에는, 성서 중의 언급은 없다. 성서 이외의 전승에서는 거론할만한 가치의 것이 없다. 이 선지자의 인물상에 대해서는, 본서 자체로서 추측할 뿐이데, 대담 솔직하고, 열정적인 성격, 섬세한 감정에는 부족한 것 등, 다소의 스케치는 시도될 수 있지만, 이러한 인물 예측도 주관적으로 될 위험이 있다. 그의 이름이 [하-그 gj;;(chag)](절일, 축제)에 관계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학개]는 [나의 절일(축제)], [여호와의 절일]등의 의미로 추정된다. 70인역에서는 시편의 138, 146-8편에 [학개와 스가랴]의 이름을 붙이고 있다. 학개의 교설의 거의가 절일에 주어져 있는데서, 이 예언서가 본래 무명이었던 것을, 후대에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이름을 본서에 붙였다고 하는 비평설도 있다. 그러나 그 근거는 불확실하다. 실재한 인물의 실재의 이름으로 있어 온 것을 부인할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2:3등에서, 학개는 포로 전의 성전을 본 일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는데, 확실치 않다. 그 경우, 학개가 이 예언을 말한때의 연령은 80세 정도가 된다. 학개의 예언 활동이(동시기의 스가랴에 비하여) 극히 단기간이었던 것은, 혹은 그가 노령이었던데 의하는 것으로도 생각되고있다.
3. 본서의 시대적 배경과 메시지 내용
전538년,바사왕고레스의칙령에 의해 포로의 땅 바벨론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곧 성전 재건에 착수했다. 그러나 토착민 및 주변의 여러 국민의 방해(특히 사마리아 사람의), 유대인 자신의 무력함(인원수의 부족과 경제적 궁핍)으로 인해,공사는 곧 좌절되어 버렸다. 이렇게 황폐된 채로 성전은 방치되어 16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고레스는 죽고, 그 장자 캄뷰세스=(Kambyses II 전 530-522)가뒤를이었다(전530년).그는애굽을정복하여 바사제국의 판도에 넣었는데 그 원정에서의 귀로에 부하 가우마타(Gaumata) 의 반역의 소식을 받고, 자살했다. 이에 왕가의 일원인 다리오(다레이오스)가 왕위를 수습하고, 가우마타를 멸했는데(전 520년),그러나왕위가안정되기까지에는 약 2년간다리오는각지에서 거듭되는 반란의 진압에 분주하여야만 했다. 이 바사제국에 있어서의 동란의 시대는 정복되어 있던 제민족에게 [독립 회복의 때가 왔다]는 기대를 갖게 했을 것이 틀림 없다. 이런 시대상황이었지만 유다의 경우, 백성의 수효가 너무 적었던 관계로 인해 자신의 무력에 호소하는 일 등은 시도할 수 없었고, 역사를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이적적 개입을 기대하는 소망이 싹텄다. 그러한 시기에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이 개시되었다.
학개의 메시지는, 성전 공사의 완성이라는 일점에 집중했다. 그 때문에 그는, 극히 좁은 시야와 관심밖에는 못가진 자로 보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학개가 오로지 물질적인 일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는 것은 편견이다. 학개는 성전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속에, 포로전과는 반대의 극단적인 것이 있는 것을 보았다. 포로전에는 [성전만 있으면 된다]는 맹신이 있었고, 이제는 [성전만 있으면 된다]는 맹신이 있었고, 이제는 [성전이 문제가 아니라]라는 무관심이 지배하고 있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와 봉사와 헌신의 중심점을 잃고 있는 모습이고, 그 결과로서 축복도 잃고 있는 모습이고, 그 결과로서 축복도 잃고 있는 현실을, 학개는 간과할 수가 없었다. 그의 질책과 권고에 대하여, 좋은 반응이 보여져, 공사는 재개되었다. 그러나, 그 건물의 빈약함과 환경의 곤란이, 사람들의 마음을 좌절시킨 듯하여, 그 때마다 학개는 적절한 격려와 경고를 주었다. 이같이 하여 일이 궤도에 오르는 것이 보여진 때, 끝으로 학개는 종말적 희망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별일 뿐, 그 충분한 전개는 스가랴에 맡겨져 있다. 내용은 2장에 지나지 않으나, 당시의 사람들의 신앙 확립을 위해서는, 아주 실제적인 힘으로 된 성전건설을 권하고, 희망을 크게 가지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학개의 예언은 전 520년제6월에서다음519년 제 9월까지의 2년 사이에 학개에 의해 4회 예언되어 있다.
제 1예언(제 1 장). 전 520년제6월(태양력8-9월) 24일의 일.
제 2예언(제 2 장 1-9절). 다음 7월(태양력 9-10월) 21일의 일.
제 3예언(제 2 장 10-19절). 그해 제 9월(태양력 11-12월) 24일의 일.
제 4예언(제 2 장 20-23) 전과 같은 날의 일.
-내용 분해-
1. 제 1의 메시지(예언)와 그 결과 1:1-15
(1) 백성의 태만과 그 결과의 지적(1:1-6).
(2) 건축재개의 명령(1:7-11).
(3) 예언에 대한 응답과 하나님의 격려(1:12-15).
2. 제 2의 메시지(예언), 새 성전과 미래의 영광ㆍㆍㆍㆍㆍㆍ2:1-9
(1) 공사에의 격려(2:1-5).
(2) 성전의 미래의 영광(2:6-9).
3. 제 3의 메시지(예언)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2:10-19
(1) 성과 부정(속)에 대하여(2:10-14)
(2) 오늘부터 후(2:15-19)
4. 제 4의 메시지, 스롭바벨의 택정과 여호와의 날 ㆍㆍㆍㆍㆍ2:20-23
[文獻]
Matthew Henry:Commentary on the Whole Bible, Zondervan Pub. House, 1970;
T.V. Moore:A Commentary on Haggai & Malachi, The Banner of Trust, 1968;
J.G. Baldwin:Haggai, Zechariah, Malachi (Tyndale O.T. Commentaries), Tyndale Press,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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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개:Haggai(인명)
(yG'j', Haggai) 「경절(慶節)」
스가랴와 동시대의 예언자로서 스가랴보다 두 달 먼저사역을 시작하였다. 그의 사역 목적은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격려하여 성전 건축을 계속 시키려는 것이었다. 학개에 대해서는 에스라 5:1, 6:14에 두번 언급되었을 뿐 구약 성경 어디든지 기록된 곳이 없다. 그의 이름이 제사장적 의미를 지니고, 또 예언이 제사장적 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부터 제사장가정의 출신이라고 생각하는 견해가 있다.
그는 바벨론에서 태어나 바사 왕 고레스가유대인의 고국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허락했을 때 스룹바벨과 같이 귀국한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또 제 2성전의 정초식이 행해졌을 때 솔로몬의 성전을 알고 있던 노인들은 그 빈약한 성전을 보고 대성통곡하였다(스 3:12). 그런데 학개가 이것에대해 언급하고 있는(학 2:3-9) 것으로부터 그 자신이 솔로몬의 성전을 알고 있던 노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상상하는 사람도 있다.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 후 곧 시작된 성전 재건은 다리오 휴스다스베스의 제 2년(BC520)까지 15년 동안 중단되었다. 그 원인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방해 공작 때문이었다(왕하 17:24-41,스 4:4,5). 그러나 바벨론에서 귀환한 백성들 자체에도 그 원인이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집을 짓는데 혈안이 되어 성전 건축에는 태만하였던사실이다(스 1:4). 학개는 이렇게 낙심한 백성 중에 나타나서 그들의 과거에 잘못한것과 그 결과를 보여 주며, 그들의 회개를 촉구했다. 학개는 성전 재건을 완공하기 전에는 축복이 없다고 격려적인 예언을 했다. 네 번에 걸친 예언의 초록(抄錄)이 열 번째의 예언서를 구성하고 있다. 첫번째 예언(학 1:1-15)은 다리오 왕의 제 2년 6월 1일에, 두번째 예언(학 2:1-9)은 동년 7월 21일에, 세번째 예언(학 2:10-19)과 네번째 예언(학 2:20-23)은 동년 9월 24일에 행해진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학개는 청년으로 바벨론에서 돌아왔고 재건되는 성전이 완성된 후에도 생존하였던 선지자라고 했다. 그러나 이런 전설의 신빙성을 우리로서는 알기 어렵다. 그가 바벨론에서 돌아온사람인 것만은 확실하나 그 예언 사역 이후의 역사는 알 길이 없다.
<출처: 호학의 지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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