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호세아 강해

[스크랩] 제 32강/ 서른 두 번 째 구원드라마(호 1:1-14:9)

에반젤(복음) 2019. 9. 25. 21:54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


I. 배경


  호세아는 아모스와 이사야와 거의 동시대에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예언자이다. 그는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주전 786-746) 말기부터 이스라엘이 멸망하기 수년 전까지 즉 750년경부터 725년 전후까지 활동하였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 왕조의 최대의 혼란기이다. 여로보암 2세 시대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번영과 풍요의 시대였으나 그의 통치 말기부터는 앗수르의 위협 하에 처하게 되었다. 그가 죽은 후 므나헴 시대에는 앗수르 디글랏 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고, 시로-에브라임 전쟁에서는 앗수르와 유다에게 패하여 시리아의 왕 르신이 처형됨과 함께 이스라엘의 베가 왕도 살해되었다.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약 20여년 사이에 6명의 왕이 바뀌는 정치적 혼란과 불안정을 겪어야 했다. 여로보암 2세가 죽은 후 왕이 된 스가랴는 약 6개월 만에 살룸에 의해 암살되고 살룸은 약 1개월만에 므나헴에게 살해된다. 므나헴의 뒤를 이은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는 베가에 의해 암살되고 베가는 호세아에 의해 암살된다.
  호세아 왕은 디글랏 빌레셀이 죽고 살만에셀이 새 왕으로 등극하자 앗수르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살만에셀에게 살해되고 약 3년 간의 포위 끝에 함락되어 북왕국 이스라엘은 멸망하게 된다. 이런 혼란기가 바로 예언자 호세아가 활동했던 시기이다.


II. 본문과 해석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탄핵하며 회개를 촉구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임을 선포했다. 그러나 호세아는 이 징벌이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임을 선포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의 크심을 강조하였다.
   호세아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부분은 1-3장으로 고멜의 배신과 호세아에 관한 내용이고, 두 번째 부분은 4-10장으로 이스라엘의 죄와 벌에 관한 내용이고, 그리고 세 번째 부분은 11-14장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 관한 부분이다.


1. 첫 번째 예언: 고멜의 배신과 호세아(1-3)
  1) 호세아의 결혼과 교훈(1:1-2:1)
  호세아서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호세아의 결혼이다. 하나님께서 호세아로 하여금 음란한 여자와 결혼할 것을 명하신다.(1:2) 그런데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죄악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자식을 낳고 살면서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남자 품으로 가버렸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이런 고멜을 다시 사랑하라고 명하신 것이다.(3:1) 이것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를 나타낸다.
  호세아는 고멜과의 결혼으로 세 자녀를 얻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호세아 자신의 신앙적 내용을 보여주는 상징적 이름을 지어주었다.
  우선 장남의 이름은 ‘이스르엘’이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뿔뿔이 흩어버리신다’라는 뜻이다. 예후는 많은 사람들을 학살함으로 정권을 탈취했다. 하나님께서는 피를 흘리며 탈취한 정권을 부정하시며 이에 대한 징벌을 내리실 것을 선포하신다. 이와 같은 이스라엘의 폭력의 죄에 대한 고발을 바로 이 이름이 상징하는 것이며 이것은 예언서 전체를 통하여 크게 부각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장녀의 이름은 ‘로루하마’인데 이 이름은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차남의 이름을 ‘로암미’라고 하였는데 이 이름은 ‘나의 백성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이 이름들은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나 이방신을 섬기며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지도 않았고 예언의 말씀을 따라 회개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용서와 긍휼을 받지 못하고(로루하마),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받는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된 결별의 상태(로암미)를 가리킨다. 이 이름에서 나타나는 의미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과 거역과 이에 대한 징벌, 그리고 이 뒤에 전제되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호세아 예언의 핵심적 내용이라 할 수 있다.
  2) 배신한 이스라엘의 고난과 회복(2:2-23)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고도 다른 남자에게로 갔다. 그러나 고멜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인내를 가지고 그녀를 용서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부정과 배신에 대하여 하나님의 인내와 용서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3) 배신한 아내를 찾아옴(3:1-5)
  배신하고 떠난 고멜을 호세아가 찾아 나선다. 그리고 은 열 다섯개, 보리 한 호멜 반을 주고 배신한 아내를 다시 사면서 다시는 행음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상징이 된다.


2. 두 번째 예언: 이스라엘의 죄와 벌(4-10)
  1) 이스라엘의 범죄(4:1-19)
  여기서 호세아의 가정 이야기는 끝난다. 그러나 진실이 사라지고 인애가 없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 마저 잃어버린 당시 사회는 오직 살인과 음란으로 타락하고 있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율법을 저버렸다. 오직 멸망만이 남는다.
  2절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지식은 부부지간의 삶 전체를 나누며 서로를 관계 속에서 알아가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에 관하여 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스라엘의 문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다는 것이며 이는 곧 죽음을 뜻한다.
  2) 멸망에 대한 경고(5:1-8:14)
  북왕국 지도자들, 특히 에브라임의 교만은 정조를 잃고 사생아를 낳은 여인과 같았다. 성전에서는 제사장이 살인하고 왕들은 여호와보다 이방나라를 더 믿는 불신앙 앞에서 호세아는 여호와께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 제사나 번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5:7을 보면 “사생자를 낳았으니”라고 했다. 사생자라는 비유는 가나안의 바알 신들과의 사이에서 나온 자식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저들이 여호와 하나님 보다 가나안의 신들을 더 가까이 섬겼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5:13을 보면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라고 했다. 저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앗수르라는 강대국을 의지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6:11을 보면 “추수할 일”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저들에 대한 심판을 가리킨다.(욜 3:13)
  3) 포로의 때가 가까이 옴(9:1-10:15)
  저들이 지금 가장 풍요로운 때를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는 백성들에 대한 심판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3. 세 번째 예언: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11:1-14:9)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한다. 애굽에서 불러내신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 것을 촉구한다. 이스라엘은 주변 강대국들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을 촉구한다. 참 사랑과 위로와 긍휼은 오직 하나님의 마음 안에만 있음을 보여준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14:1) 여기서 여호와께 돌아온다는 것은 14:2에서 보듯이 입술의 열매를 말한다. 이것은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보다 입술의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입술의 제사는 입으로만 드리는 제사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계약 규정들에 순종하는 선한 삶을 살겠다는 약속의 제사를 뜻한다. 14:3을 보면 이 입술의 제사는 크게 세 가지 차원이 결합된 것이다. 즉 아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않는 것(정치적 차원), 더 이상 말을 타지 않을 것(군사적 차원), 그리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향해 우리의 신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종교적 차원)에서 철저하게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식물의 생장을 돕는 이슬과 같으시고 회복될 이스라엘은 백합화, 백향목, 감람나무, 곡식, 포도나무 등으로 비유된다. 이슬은 수분 공급을 통한 원기 회복과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상징한다.(창 27:18, 잠 19:12) 심지어 부활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사 26:19)


III. 신학적 의미


1) 에로스
  고멜이 찾아나선 사랑은 에로스이다. 이 에로스는 감성적이고도 관능적인 자기 중심적인 사랑의 대명사이다. 구체적으로 에로스적인 고멜은 당시 이스라엘 속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온 가나안 종교의 종교적 성행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여기서 음행하는 고멜은 하나님 신앙을 버리고 바알신앙에 빠져버린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음행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스라엘의 문제는 하나님 중심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고 자기 중심적인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긴 것에서 찾을 수 있다.


2) 배신
  고멜은 결혼 후 다른 남자를 찾아 떠났다. 즉 배신한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고 하나님을 배신한 것을 상징적으로 대변한 것이다. 그리고 고멜의 몸에서 낳은 아이들이 사생아로 전락하게 되었다. 사생아가 아니었지만 이제 사생아가 되어 저주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스라엘은 본래 사생아가 아니었지만 배신으로 인해 사생아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저주를 피할 길이 없게 된 것이다.


3) 아가페
  하나님께서 버려야 할 고멜을 호세아로 하여금 찾아 나서게 하셨다. 버려야 할 이스라엘을 여호와께서 찾아 나서신 것이다. 바로 아가페 사랑의 전형이다. 이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다. 희생을 동반하는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욕망을 중심으로 하는 에로스로부터 구분된다. 아니 에로스를 완성하는 차원이다. 하나님께서 배신한 이스라엘을 찾아 나섰다는 이 아가페적 증언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요 복음의 핵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