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역대상,하 강해

[스크랩] 인구조사가 큰 죄인가? (대상 21:1-27)

에반젤(복음) 2019. 9. 17. 00:39



인구조사가 큰 죄인가? (대상 21:1-27)

 

   다윗은 40년간 왕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왕이 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스라엘이 부강하게 되어 강력한 군사력을 갖게 되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다윗은 겸손한 사람이었는데 나라가 견고해지니 은근히 교만한 마음이 들어갔습니다. 사단은 그것을 알고 다윗을 충동질하여 인구 조사를 하게했습니다.
   인구 조사를 한 것은 죄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후 모세는 2번이나 인구 조사를 했습니다. 성경에는 사람의 숫자가 많이 나옵니다. 인구조사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고 했던 동기가 문제였습니다. 내가 얼마나 강한가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지만 교만한 자는 대적하십니다. 겸손하여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던 다윗도 교만해지니 하나님께서 대적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한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비결입니다. 교만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의 죄를 범한 다윗에게 죄에 대한 값을 지불하게 하시는데 세 가지 벌을 제시하시고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는 삼년 기근입니다. 또 하나는 다윗이 석 달 동안 적에게 패해서 적에게 쫓기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삼 일간 전염병이 유행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중에서 세 번째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리셨습니다. 그 결과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7만 명이었습니다.
   천사가 예루살렘을 멸하려 할 때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여호와의 천사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 곁에 섰습니다. 이것을 본 다윗이 하나님께 엎드려 긍휼을 구합니다. “하나님 인구 조사를 명한 사람은 제가 아닙니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사람은 저 다윗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십시오.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다윗이 드린 참회의 기도를 받으신 하나님은 다윗에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오르난에게 금 육백 세겔을 주고 타작마당을 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회개와 제사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천사에게 명하시매 천사가 칼을 칼집에 꽂았습니다.
   오늘 설교는 이 사건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1. 지도자가 중요하다.
   그동안 이스라엘이 부강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니 백성들이 다윗을 본 받아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다윗의 마음에 교만이 들어오고 그가 하나님보다 군대의 숫자를 의지하기 시작하니 그 죄의 결과로 이스라엘에 큰 벌이 임했습니다.
   열왕기는 통일 왕국 그리고 남 왕국 유다와 북 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역대기는 통일 왕국과 남 왕국 유다의 왕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열왕기와 역대기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습니다. 지도자가 바로서면 나라가 복을 받았고 지도자가 하나님을 떠나면 나라가 도탄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우리 교회는 나라를 위한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국가를 위한 기도를 시대적 사명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할 때 반드시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대통령이 중요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국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중요합니다. 국회는 입법기관입니다. 국회에서 법을 세우면 그 법은 국민의 생활뿐만 아니라 영적인 면에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되어있습니다. 시장, 구청장, 시의원, 구의원, 교육감도 중요합니다.
   얼마 전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제가 원하던 사람이 지도자로 세워지기도 했고 원하지 않던 사람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가 원하는 사람을 여러분이 동일하게 원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도자를 뽑을 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지도자를 기뻐하실까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악한 자가 지도자가 되는 것을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잠 16:4에 보면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지도자로 나선 사람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살펴야 합니다. 지도자로 나선 사람이 국민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 악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를 보고 표를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출마자의 인격과 지난날의 행적 그리고 그가 제시하고 있는 공약들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최소한 출마자가 반성경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은 아닌가를 살펴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가 사는 도시와 국가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도록 죄악을 조장하는 지도자가 세워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세워진 지도자들 가운데는 그런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이미 세워진 사람들을 우리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는 없습니다만 우리는 그들이 생각을 고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고 하나님이 가증하게 생각하시는 일들을 멀리하는 지도자들이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와 도시의 흥망성쇠는 그 나라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특히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이번에 세워진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들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2. 하나님만 의지하라.
   지금까지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왔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힘이 생기니 군사력을 의지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하게 만드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전염병으로 치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 일로 인하여 다시금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은 강한 것 같아도 지극히 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사 2:22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도 코를 막고 5분만 숨을 쉬지 못하게 하면 살아남을 사람이 없습니다.
   행 12:23에 보면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 하고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지방 사람들이 헤롯의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먹는 까닭에 왕과 화목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단한 헤롯이 어떻게 죽었습니까? 사람들이 환호하고 신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대단한 헤롯이 아주 작은 벌레에 의해서 죽은 것입니다.
   제가 농담으로 I,Q가 170인 천재라도 망치로 머리 한 대 맞으면 맹구된다고 말을 했는데 그게 사실입니다. 복싱 선수로 세계 챔피언을 지낸 무하마드 알리를 아시잖아요. 그는 주먹으로 엄청난 부를 얻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파킨슨씨병에 걸려서 전혀 주먹을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었잖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택한 받은 특별한 은혜를 입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주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를 의지했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렘 2:13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지했던 것은 물을 저축할 수 없는 터진 웅덩이와 같았습니다. 물을 저축한다고 물을 붓는데 물이 하나도 남지 않고 다 세어 나가는 터진 웅덩이처럼 허망한 것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고 돈을 의지하고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둘째,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시 127:1에 보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도 하나님이 ‘NO’ 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YES’ 하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사에 보면 군사력이 강하다고 전쟁에 승리하고 군사력이 약하다고 전쟁에 패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군사력이 약햐도 이겼고, 하나님이 등을 돌리시면 군사력이 강해도 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군사훈련도 받은 적이 없는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애굽은 그 당시 세계 최 강대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출애굽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와 해방을 맞았고 애굽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열심히 노력하며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삼하 22:30에 보면 다윗이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다윗의 군대가 블레셋의 거인들을 죽인 후에 한 고백입니다. 아마 다윗은 그때의 전쟁만 생각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가 소년이었을 때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쓰러드렸던 일까지 회상하며 이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소년이었을 때 이스라엘과 블레셋이 전쟁을 했습니다. 다윗이 아버지의 심부름 때문에 전쟁터에 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조롱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약 3m나 되는 거인인데 큰 소리를 치며 하나님을 조롱하지만 이스라엘의 군대 중에는 아무고 그와 싸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의분을 품은 다윗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골리앗에게 나아갔습니다. 다윗은 외쳤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물맷돌을 던졌습니다. 그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고 골리앗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습니다. 다윗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렸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시길 바랍니다.


3. 죄는 값을 요구한다.
   제가 “거룩이 능력이다”라는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합니까? 이 말은 제가 기도하다가 깨달아서 한 말이었는데 최근에 게리 토마스라는 분이 [거룩이 능력이다]라는 책을 냈더군요.
   여러분! 왜 거룩이 능력입니까? 거룩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죄가 저주입니다. 롬 6:23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합니다. 따라합시다. “죄가 저주다” 죄가 저주 자체는 아닙니다만 죄가 저주를 불러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몰랐을 때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능력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선악과를 먹으므로 죄를 범하게 되니 저주를 받아서 에덴에서 쫓겨났고, 땅이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여자는 임신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남자는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가 저주를 부른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죄가 저주를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의 교만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군사력을 의지한 죄의 결과로 전염병이 돌아서 7만 명이 죽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죄가 저주를 부르기 때문에 우리는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경건하게 살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힘이 있어야 운동도 하고 힘이 있어야 일도 하는 것이잖아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힘이 있어야 말씀대로 살고 영적인 힘이 있어야 거룩하게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게 하는 힘은 어디서 옵니까? 그 힘은 성령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롬 8:2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되는 것이 경건이고 거룩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면 거룩하고 경건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겔 36:27입니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주님의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는 삶이 경건하고 거룩한 삶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서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 성령을 두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령의 능력으로 사십시오. 그것이 축복된 삶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지금 죄악 가운데 있다면 철저히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서 기도에 힘을 쓰십시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서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을 하기를 축원합니다.


4.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끝난다.
   26,27을 보십시오. 다윗의 죄로 인하여 찾아온 저주가 언제 끝났습니까?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난 후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명령하셔서 천사가 칼을 칼집에 꽂으면서 끝났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진리가 나옵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무엇으로 드리는가입니다. 보통 비둘기나 양이나 소로 드립니다. 그런데 번제나 화목제를 드릴 때 사용했던 비둘기와 양과 소는 누구를 보여주는 것입니까? 영원한 제물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줍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제자들에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고 했고, 히 9:12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역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소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 소가 흘린 피와 소의 죽음을 보시고 천사의 칼을 칼집에 꽂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의 저주에 대해서도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의 피를 보시고 속량의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갈 3:13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무엇 때문에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십자가는 교환의 장소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나의 죄가 주님에게로 가고 주님의 의가 내게로 오는 것입니다. 나의 저주는 주님에게로 가고 주님의 복은 나에게로 오는 것입니다. 나의 연약함은 주님에게로 가고 주님의 강함은 내게로 오는 것입니다. 나의 가난은 주님에게로 가고 주님의 부유함은 내게로 오는 것입니다.
   롬 6:23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 때문에 저주가 왔고 사망이 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예수님 때문에 영생이 오고, 건강이 오고, 평안이 오고,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저주는 끝나고 축복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5. 예배가 우리를 지킨다.
   지난 주에 간증을 했던 김정민 형제가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지키지만 결국 예배가 우리를 지킨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옳은 말입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이 드린 제사를 받으시고 저주를 멈추게 하셨습니다. 이 제사가 보여주는 것이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예배입니다. 예배가 회복 될 때 저주는 물러가고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제 선배 목사님 중에 권영재 목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노량진 쪽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은퇴를 하신분입니다. 제가 그 교회에 부흥회를 간적이 있습니다. 그 때 그분이 저에게 “마목사님, 나는 예배 때문에 살고 있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젊을 때 간경화로 죽게 되었답니다. 간은 무통이라 간에 통증을 느낄 때면 이미 끝난 거라고 하더군요. 목사님이 간의 통증도 느끼고 황달도 오고 잇몸에서 피가 나는 상태까지 갔습니다. 목사님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하루에 3번씩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루에 3번씩 예배를 드리다가 하루 4번으로 5번으로 7번까지 늘려갔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를 드리고 자리에 누워서 몸을 돌리는데 저쪽에서 빛이 쫘악 비치더니 몸이 치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목사님은 그 때 예배의 힘을 발견하고 예배가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입니다. 예배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배 받으시기 위해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성공하기를 축원합니다.
   성공적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십시오.
   22절을 봅시다. 중간에 보면 다윗이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제단을 쌓고”라고 말합니다. 26절을 봅시다.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자기를 위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고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창 13:18에 보면 아브라함이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서 제단을 쌓았는데 역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고 말씀합니다.
   저는 설교자로 예배 설교를 준비할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가 무엇인지를 묻는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를 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하기 좋은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도를 합니다. 제가 가진 이 자세를 모든 성도들이 가져야 합니다. 찬양인도자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찬양으로 찬양인도를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찬양이 무엇인가를 기도하며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회중은 내가 원하고 내가 편한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좀 원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자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를 위해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깊이 알게 되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초기에는 자기가 좋은 것, 자기가 편한 것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은혜의 깊이가 더해지면 자기가 불편해도, 자기에게 손해가 되어도 하나님이 원하시고 교회에 유익이 된다면 불편도 손해도 감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자기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