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제목사/후회 없는 인생 (눅 16:9-3)
사람은 마지막에 도달하면 지나갈 날들을 돌이켜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하루의 마지막, 한 주일의 마지막, 한 달의 마지막, 일 년의 마지막,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그 시간 그 때에 우리는 자신을 돌이켜 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만족스러워하며, 어떤 이는 아쉬워하며, 어떤 이는 후회합니다.
당신은 주로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특히 우리 인생이 끝나는 그 시간
아무 후회 없이 평안함 속에 만족스럽게 죽는 것도 큰 복입니다.
그러나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또한 하루하루를 알차고 보람있게 하여
그 하루가 후회 없는 삶으로 살아야 합니다. 당신의 하루하루는 과연 어떤 삶입니까?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에는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와 이름 모를 한 부자의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재물과 친구들이 많아 좋은 집에서 호화로이 연락(宴樂)하면서 인생의 풍요를 맘껏 즐기며 누리며 살았습니다. 정말 후회할 것 없는 삶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고 하는 거지는 부자의 대문간 처마 밑에서 자면서 헐벗고 굶주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정말로 누가 보아도 후회로 가득한 인생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의 생각에는 인생의 말년에 진정으로 누가 후회하였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은혜 받으시고 정말로 후회 없는 인생을 엮어 가시기 바랍니다.
1. 세상에는 두 가지 인생이 함께 섞여 살고 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는 한 집에 살았습니다. 부자는 안채에서 살았고,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 밖 그 집 처마 밑에서 살았습니다.
잠언 22:2에도 세상에는 빈부가 섞여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은 부자와 권력가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만 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지구촌에는 남녀노소, 빈부, 비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빛과 어두움, 의와 불의, 진리와 비 진리, 정의와 불의가 섞여 살고 있습니다.
강자와 약자, 선과 악, 사랑과 미움, 웃는 자와 우는자, 분노와 용서, 주는 자와 받는 자,
자기만 아는 자와 이웃을 바라보는 자, 천국으로 갈 자와 지옥으로 갈 자가
함께 섞여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그 중의 한 사람입니다.
2. 섞여 살고 있는 인생은 각각 다른 목표를 가지고 다른 형태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부자는 재물과 쾌락에 목표를 두고, 철두철미하게 현실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현실보다는 내세를 위여 목표를 두고, 인내하며 살았습니다.
부자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인생관,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이 모두 자기중심 현실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남이야 어찌되든 고운 비단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며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시간과 재물을 육체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는 내세를 생각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비웃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재물과 권력이 바로 도덕이요.
윤리요. 철학이요. 구세주요. 하나님이었습니다.
돈 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하나님은 신령한 것이 아닌 곧 재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그 재물이 없었음에도 웃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처마 밑에서 잠을 잘지라도 그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그의 몸에는 창질이 있어 헐어서 떨어진 옷 사이로 창질이 드러나니
개들이 와서 핥고 있어도 그의 입에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의 귀에는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사랑의 약속이 있었고,
그의 마음에는 평화가 있었고, 그의 눈에는 천국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자에게 내침을 당해도 그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얻은 것이 적다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떨어진 옷을 바라보며 한 숨 짖지 아니하고,
개가 핥는 창질을 바라보며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3. 모든 인생의 삶에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문이 있습니다.
거지가 죽었습니다. 부자도 죽었습니다(본문 22절). 죽음은 만인 앞에 공평합니다. 아무도 죽음을 막을 수도, 이길 수도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필연의 법입니다.
(히9:27). 죽음 앞에는 빈부의 차이도 권세의 차이도 없습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시간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의 차이란 것도 영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10) 라고 말하며,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임이니이다.”(시90:3) 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도 이 죽음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 뒤에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육체의 삶은 흔적도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말합니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시103:15,16) 잊지 마십시오.
이 말씀이 당신에게 응할 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항상 그 날을 예비하여야 합니다.
4. 죽음 뒤에 영원히 후회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고 만다면 누가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그렇습니다.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지 아니합니다.
죽음은 우리의 영혼이 육의 세계를 벗어나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일 뿐입니다.
육신을 떠난 영혼은 언젠가는 하나님이 정해놓은 영의 세계로 이끌림 받아 가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거지가 죽자 거지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아브라함의 품)으로 들어갔습니다.(눅16:22).
그리고 부자는 죽어 지옥으로 갔습니다.(눅16:24)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들이 행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20:12)
오늘 말씀의 부자는 죽음 뒤에 후회를 하면서 애걸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16:24)
그러나 후회를 해도 애걸을 해도 이미 심판이 끝난 뒤에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 25-25절을 다시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부자가 간 그 곳(지옥)은 어둠의 곳이요. 고통의 곳입니다.
꺼지지 않는 유황 불 못입니다.(계20:10,15).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곳이요.(계9:6).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계20:15)
부자는 죽음 후에야 심판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영원히 겪어야 할 고통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후회를 하며 고민합니다.
그러나 이미 늦고 만 것입니다. 당신은 후회하지 아니할 자신이 있습니까?
지금도 많은 사람이 본문의 부자와 같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한 후회와 고민이 있음을 모릅니다.
당신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5. 참된 지혜를 찾아 그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부자는 뒤 늦게 후회하며 간청합니다.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 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 하리이다.”
(눅16:27,28,30)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눅16:29,31)
지혜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참된 지혜를 찾으십시오.
솔로몬 왕은 자기의 아들에게 간청합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 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잠3:1,13-18)
그런데 사람이 어디 가서 참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여기에 성경은 말합니다.
“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그렇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께서 얻을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시며, 천지 만물을 친히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지혜의 근본이십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2:3)
그러므로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지혜 중에서 첫 번째 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솔로몬 왕은 전도서에서 그의 아들에게 인생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고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12:13-14)
후회 없는 사람은 참다운 지혜를 가지고 확신 있는 인생을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썩어질 것을 믿고 따르며 산 사람은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썩지 아니할 것을 위해 산 사람이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사람이 지혜를 구합니다. 영생을 구합니다.
그런데 기적을 체험했다고 반드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서 외친다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가 영생을 얻으며,
후회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롬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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