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여호수아 강해

여호수아서 개관

에반젤(복음) 2019. 7. 30. 09:01



여호수아 개관?

 

1. 저자에 관한 문제와 결론

 

1) 저작 연대의 문제와 결론

여호수아서는 저작 연대와 그 저자에 대해 많은 이견을 낳았다. 대체로 진보적인 비평학자들은 여호수아서가 유대 역사의 훨씬 후기에 여러 시대의 많은 문서로부터 편집되어 구성된 책이라고 추정했다. 대표적으로 벨하우젠(Welhausen) 같은 학자는 여호수아서를 바벨론 포로 후에 이스라엘을 재건키 위해 누군가가 민족 신앙과 부흥의 지침서로 상상하여 지어낸 책이라고까지 단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여호수아서는 주전 12세기 이전에 기록된 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첫째, 고대 히브리어 정경 자체가 여호수아서를 모세오경 바로 뒤에 놓았다는 점이다. 이는 의심 없이 본 서가 모세의 죽음 직후와 사사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둘?, 고고학의 증명이다. 알브라이트(Aibright) 박사의 「팔레스틴 고고학」이라는 책에 '여호수아에 등장하는 고대 지명은 고고학을 통해 거의 사실임이 증명되었다'고 말한다. 그 성읍의 이름, 특히 여호수아 21장에 등장하는 레위족의 성읍들은 그 명칭이 주전 12세기 이전의 것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셋째, 여호수아서 자체가 그 당시 기록된 책임을 인증하는 내적 증거를 지니고 있는데, 돌무더기로 기념비를 삼는 풍습이라든지, 또는 '큰시돈' 등을 언급하면서 두로보다 시돈을 더 큰 성읍으로 말했는데(수11:8 수19:28,29), 이는 주전 12세기경 시돈이 페니키아 지방에서 두로보다도 더 번성했다는 사실과 부합되는 것이다. 또한 부족간의 영토 분할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증언은 그 당시 사람이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몇몇의 예만 들더라도 본 서는 주전12세기 이전에 기록된 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 저자 문제와 결론

본 서가 여호수아가 기록하지 않고 후대의 편집인의 상상물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한 가지가 바로 여호수아의 사후(死後)에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갈렙의 헤브론 지경의 정복은 수15:13,14, 삿1:10,20에 일어난 일이요 그외에 옷니엘의 드빌 정복이나 단지파의 레센 성 정복 기사도 마찬가지이다(수15:15-19 삿1:11-15). 그러나 모세오경의 마지막 부분인 신명기 34장처럼 여호수아의 죽음이나 그 이후의 사건들은 그 후계자들이 추가로 기록하여 삽입한 것임을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즉 제사장 엘르아살과 그 아들 비느하스가 추가 기록자로 지목되고 있다(수24:33).

 

2. 본서의 도덕적인 내용에 대한 문제와 대답


1) 타민족에 대한 침공과 멸절의 부당성

우리가 일반적인 윤리 기준의 시각으로 볼 때 여호수아의 내용 중에는 섬뜩한 면이 있다. 자비의 하나님께서 평화롭게 거하던 팔레스틴(가나안 지역) 지역의 이스라엘 민족을 침공시키사 전쟁의 참화를 겪게 하고 또 그 부족들을 멸절하도록 명하셨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인해 예전부터 여호수아서의 정경성에 대해 혼란과 의구심을 야기시키는 난점이 되기도 했다. 사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민족의 분쟁 중 가장 난해한 문제가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틴 해방기구)간의 갈등으로 대두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시거나 무자비한 살육을 당연히 여기시는 분이신가? 하는 물음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2) 타협적인 의견들

이와 같은 의문과 물음에 대해 여호수아의 도덕성과 정경성을 수호하기 위해 타협적인 의견이 제시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인데, 첫째는 그 내용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는 견해이다. 즉 후대에 상상으로 꾸민 얘기이지 진정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어 왔다. 이 견해는 앞에서 저작 연대 문제와 관련하여 실효성이 없는 견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계시의 상대성을 언급하는 학자들도 있다. 즉 하나님의 명령과 뜻은 그 당시 사람들의 윤리와 도덕 수준에 걸맞게 상대적으로 계시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부족간의 침공과 약탈과 멸절이 당연시되었던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 명하신 것을 도덕, 윤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3) 신앙적인 결론

그러나 그와 같은 회피적인 결론만으로 여호수아서의 도덕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성경과 마찬가지로 여호수아서도 신앙적인 안목, 즉 하나님의 구속사적인 섭리 안에서 관조해야 한다. 하나님은 일찍이 극에 달한 타락상을 보인 부족들을 천재지변을 통해 멸절하셨다.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절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거민들도 그 부도덕하고 야수적인 생활로 인해 그 땅에서 살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하신 것이다.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레18:25) 낼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천재지변 대신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심판하신 것뿐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후에 타락했을 때 열강을 통해 심판하신 것과 같은 섭리이다. 그 다음 멸절의 의미는 선민의 성장과 성결의 예방책이었다. 그들 가나안 거민들의 우상 숭배 풍습, 야수와 같은 도덕적 문란 풍습이 잔재하는 한 하나님 나라의 못자리와 같은 선민 왕국의 건설은 불가능하다. 결국 선민 이스라엘의 타락은 가나안 거민과의 혼합 생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사사기는 증거한다. 이와 같이 구속사적인 섭리 안에서 회개치 않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심판 섭리의 일환으로, 또 하나님 백성의 보전을 위해 침공과 멸절의 방식을 명하신 것이다.

 

3. 여호수아서의 특징

 

많은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는 영웅들의 역사라고 말한다. 물론 역사 전체의 개념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웅, 위인들이 역사의 기수 역할을 한 것을 인정하는 말이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볼 때 구약성경의 여호수아서는 그야말로 여호수아의 전기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의 소명과 활동 그리고 죽음은 선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가나안 땅에 대한 언약 성취와 선민들의 승리적인 삶과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서는 하나님의 구속 섭리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위대한 첫 예언서인 동시에 선민 이스라엘의 신앙적인 역사의 기원을 다루는 역사서로서 양면적인 가치를 지닌 책이다. 여호수아서의 가장 큰 특징을 이스라엘 역사상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전쟁의 역사' 라는 점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 속에서도 아이 성 싸움에서 패한 단 한 번의 패전 외에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의 전술이나 무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때문이었다.

 

?[연구1] 가나안 입성(1장-5장)

 

출애굽 후 약 40년이 흐른 주전 1407, 1406년쯤 약 200만 명의 선민들은 여호수아를 필두로 요단을 건너 약 속의 땅 가나안에 진입하게 된다. 여호수아를 필두로 요단을 건너 약속의 땅 가나안에 진입하게 된다. 본 서 1-5장은 가나안 땅 입성과 관련된 내용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와 같은 내용을 입성 전, 입성 과정, 입성 후의 일들로 나누어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1. 입성 전의 준비(수1,2장)

 

1장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드디어 가나안 땅으로 진군할 것을 명하심과 신앙적인 위로의 내용이 그 중심이다. 선민의 가나안 땅 진격은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호수아란 인물은 누구인가? 왜 하나님께서 그를 가나안 정복 역사의 기수로 삼으셨는가? 그리고 2장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가 진격 준비 명령과 함께 정탐꾼을 보내게 되는데, 그 정탐꾼을 환대한 기생 라합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1) 여호수아에 대한 명령과 위로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였다. 말하자면 모세의 사상과 신앙으로 성화된 자이다. 그래서 수1:1에 여호수아를 가리켜 '모세의 시종' 이라고 부른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큰일을 맡기신다는 진리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담대하고 용맹한 지도자의 기질을 지녔다. 물론 인간적으로도 용장의 저력을 드러내기도 했으며(신25:18), 가나안 땅 첫 정탐 때 다른 정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더불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한 그 신앙의 담대함이 뛰어난 인물인 것이다. 이와 같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의 기수로 선택받은 것은 당연하다.

 

2) 정탐꾼과 라합의 가족

정탐꾼들은 자신들을 환대한 라합과 그 가족들에게 살려 주겠다는 약속을 했으며, 후에 그 악속을 지켰다. 여기서 우리는 여호수아서의 윤리성을 문제삼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근거를 얻는다. 즉 가나안 사람들일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맹목적으로 '멸절'을 명하시지 않으신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어느 민족이든 생명의 반열에 참여하게 해주신다는 복음 진리를 여호수아서 초두에서 읽을 수 있다.

 

2. 입성의 과정(수3장)

 

3장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따에 발을 들여놓은 과정을 다뤘다. 약 200여 만 명의 선민들이 레바논 산의 눈 녹은 물과 봄비로 인해 창일하는 요단을 건너기는 불가능했다. 그와 같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신 하나님이 권능이 여호수아 3장에는 어떻게 나타나 있나?

 

1) 법궤가 앞장섬

'법궤'는 하나님의 주권과 뜻과 언약이 담긴 성물이다. 그 안에는 율법을 새긴 돌판과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 있다. 광야 행군 중에도 그 법궤가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요단강을 건널 때에도 제사장들이 멘 법궤가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이는 매우 상징적이다. 즉 가나안 땅이나 천국은 인간의 노력과 힘으로는 '입성 불가'라는 것을 교훈해 준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과 언약과 뜻 안에서만 가능하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권능과 언약만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세계와 우리 인간을 이어 주는 영생의 가교가 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절대 신뢰와 순종이 요구됨

언덕까지 넘치던 요단 강물이 끊어진 것은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그 강물에 발을 들여놓은 후부터였다. 출애굽 때에는 홍해가 갈라진 후에 건넜으나 가나안 입성에서는 흐르는 강물에 발을 들여놓아야 했던 것이다. 즉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여 강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건넜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믿음과 순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에게도 그 상황은 동일하다. '나의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1:17)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구원 언약을 절대 확신하고 전진하는 성도만이 저 영원한 요단강을 건너 영생 천국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이다.

 

3. 입성 후에 행한 일들(수4,5장)

 

4,5장은 가나안 입성 후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취한 조치에 대한 기록이다. 먼저 선민의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기억하게 하려는 목적으로(수4:6,7) 돌을 모아 기념비를 세우라고 한다. 계2:17에는 그리스도께서 버가모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는 '흰 돌'을 주시겠다고 약속한다. 즉 주님의 은혜와 권능으로 늘 승리하도록 해 주신다는 뜻임을 요단 도하의 기념비에서 찾을 수 있다. 기념비를 세우고 난 후 그들이 행한 중요한 규례와 절기는 무엇인가?

 

1) 첫 할례를 행함

하나님께서는 길갈에서 지친 선민들에게 할례를 명하셨는데(수5:1,2), 할례는 더러운 육신을 벗고 새롭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이제 가나안 땅에 진입한 선민들은 애굽과 광야에서 지녔던 옛 세계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명실상부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신 것이다.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영혼을 할례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5:17)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더 나아가 길갈에서의 할례는 궁극적으로 천국에 가서 신령한 존재로 변화될 성도들의 미래상에 대한 모형이기도 하다.

 

2) 첫 유월절을 지킴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처음으로 거둔 곡식들로 무교병을 만들어 먹는 유월절을 지켰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동안 40여 년간 내리던 만나가 그쳤다(수5:11,12). 유월절은 그 옛날 출애굽의 시효가 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념하는 절기이다. 새로운 땅에 진입한 첫 축제로 유월절을 지켰던 것이다. 이는 천국에 가서라도 그리스도 예수의 유월절 어린양의 속죄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임을 상징해 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기간 동안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도자 모세를 비방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들을 신실하게 지키기 위해 그 백성들을 가나안에 입성시키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며,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은 경외하며 신뢰하여야 할 것이다.

 

?[연구2] 가나안 정복(6장-12장)

본문은 여호수아의 영도 아래 가나안 여러 족속과의 치열한 전투를 기록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기간은 약 7년간이며 전쟁이 끝날 즈음 여호수아의 나이는 85세였다(수14:10). 전쟁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 승리를 얻기까지 이스라엘 선민들은 귀중한 교훈을 피와 눈물을 통해 얻게 되었으니, 곧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이 선민들의 삶의 무기라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교훈을 여호수아서는 반복하여 강조한다.

 

1. 여리고와 아이 성 점령사(수6-8장)

 

본문은 유명한 여리고와 아이 성 점령에 대한 기사이다. 이 두 성에서의 전투는 선민과 가나안 족속과의 첫 전투로서, 전투의 성패를 가늠 짓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이 두 전투에서 선민들은 기적적인 승리의 기쁨과 뼈저린 패배의 경험을 동시에 얻었다.

 

1) 여리고 성의 승리와 아이 성 첫 전투

첫 변방 요새인 여리고 성에서의 전투는 의외로 쉽게 끝을 맺었다. 즉 7일간 법궤를 앞세우고 그 성을 돈 후 함성을 지르니 성이 지진으로 인해 무너짐으로써 손쉽게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 사기 충천한 선민들은 벧엘 근처의 아이 성을 공격했다. 그 성의 이름은 '황폐한 작은 성'이라는 뜻이다. 여리고 성을 정복했으니 그 작은 성은 더 손쉽게 얻을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외로 패배를 당한다. 그 원인은 아간이라는 자가 전리품을 몰래 감추었기 때문이었다. 마땅히 전리품을 먼저 하나님 앞에 바쳐야 했건만 그것에 사사롭게 욕심을 낸 것이 이스라엘 군대의 패인이 된 것이다.

 

2) 절대 믿음과 성결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큰 교훈을 얻는다. 선민들의 승리의 근거는 그들의 힘과 전술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말씀 안에서의 의와 성결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교훈이다. 여리고 성을 점령한 요인은 '믿음'이었다. 히11:30은 "저희가 믿음으로 칠일 동안 여리고를 두루 다니매 성이 무너졌으며"라고 증언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온전히 믿고 성을 돌았기에 승리를 얻은 것이다. 즉 성도들의 힘과 무기는 믿음임을 교훈 해 준다. 다음으로는 '거룩함'이 성도의 삶의 무기이다. 아간처럼 불의와 죄와 타협할 때 성도들은 사단 마귀에게 패배 당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이처럼 여리고와 아이 성 전투를 통해 선민들은 그들의 승리와 패배의 요인을 똑똑하게 인식하게 된 것이다.

 

2. 남방족속과의 전쟁사(수9,10장)

 

여호수아 9,10장은 남방 지역 족속과의 전쟁사이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중심이 된 남방 아모리 다섯 족속 연합군과의 전투는 가나안 전쟁의 압권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를 함으로써 선민들은 가나안 정복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우리는 이 전쟁사를 통해서 인간들의 과오와 또 그 과오를 초월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볼 수 있다.

 

1) 기브온과의 화친과 하나님의 권능

선민들은 남방 족속과의 전투에서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했는데 바로 기브온 족속에게 속아서 화친 협정을 맺은 일이다(수9:14,15). 기브온 족속은 자신들이 가나안 족속임을 숨기고 여호수아와 화친을 성사시켰다. 선민들은 그들로부터 '공물'을 받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속아서 화친했는데, 이는 가나안 거민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위배하는 불찰이었다. 이로써 후에 가나안 잔존인과 혼합됨으로써 이스라엘의 타락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남방 연합군에 대해 승리하게 하셨다. 10장에서는 유사이래 태양을 멈추게 하는 기적을 베푸심으로 전투에서 승리케 하신 기사가 있다(수10:12-14). 이스라엘의 승리는 결국 하나님의 신실하신 인도로 얻어진 것이다.

 

2) 교회의 불완전과 하나님의 은혜

선민들은 기브온 족속에 속아서 화친한 일은 교회의 불완전성을 교훈해 준다. 지상에 있는 교회는 비록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 안에 거할지라도 완전할 수는 없음을 말해 준다. 때로는 사단의 불의와 유혹에 오염되기도 한다. 고린도 교회는 분쟁과 교만과 음란한 요소가 있었으나 그래도 사울 바울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고전1:2)라고 불렀다. 이는 교회의 불완전함을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긍휼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 때문이다. 기브온 족속에게 속은 선민들을 큰 기적으로 승리하게 해주신 하나님은 오늘도 흠 많은 우리 성도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사 영생 언약을 성취 받도록 해주실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하나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신실하시다. 그것이 우리 교회의 소망이다(히6:13-18).

 

3. 전쟁의 종결과 그 결과(수11,12장)

 

이스라엘은 7년간의 가나안 족속들에게 전쟁으로 가나안 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전쟁의 종결과 함께 새로운 문제가 대두하게 된다.

 

1) 멸절과 약탈의 윤리적인 문제

본문은 남은 북방 족속을 진멸시킨 사실과 가나안 전쟁으로 얻은 가나안 거민의 성읍에 대한 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며 용서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는데, 가나안 거민들을 진멸하도록 명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그 땅 거민들의 재산을 선민들이 약탈했다는 사실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2) 거룩한 전쟁의 당위성

첫째, 그 전쟁은 민족간의 이해 다툼으로 인한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섭리가 그 배경이 되는 거룩한 성전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명령에 정면으로 배치된 가나안 족속의 타락성은 근친 상간, 온갖 우상 숭배, 동물적인 방탕함, 인신 제사, 소돔과 고모라의 타락상 등 고고학을 통해서도 증명된 바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심판하시고 그 땅에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부합되는 선민들을 번성케 하시려는 의지 속에 전쟁의 의미가 있다. 그 전쟁은 신약교회 성도의 영적 전쟁의 모형이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인들은 언젠가는 멸망된다는 사실 그리고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는 가르침에 위배되지 않는 역사가 가나안 전쟁의 멸절과 약탈의 역사이다. 가나안 전쟁은 하나님의 언약대로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그 승리는 하나님의 의와 사랑의 가치를 크게 신봉하고 순종하는 선민들만이 맛볼 수 있었다. 성도들의 삶의 방향도 그 믿음과 순종함에 따라 결정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연구3] 가나안의 땅 분배(13장-22장)

본문은 정복한 땅에 대한 분배에 관한 내용이다. 그래서 어떤 신학자는 '여호수아서의 후편은 성지의 지리 편성, 팔레스틴 정복의 토지 대장'이라고 별명을 붙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단순한 토지 분배 현황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옛날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언약이 성취되었음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종국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천국 언약을 성취 받을 것을 가리키고 있다.

 

1. 분배의 원칙들(수13,14장)

 

본문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분배 원칙과 방법 그리고 교훈이 제시되어 있다. 분배의 방법은 "기업을 제비뽑아"(수14:2) 나누도록 했다. 또 분배의 원칙 중 중요한 점은 레위 지파 사람들은 제외시키라는 것이고(수43:14,33), 특이한 점은 아직도 온전히 점령치 못한 땅도 미리 분배를 하도록 명령하셨다는 점이다.

 

1) 믿음과 사랑이 요구되는 분배원칙

이와 같은 내용은 땅의 정복뿐만 아니라 땅의 분배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의와 언약을 따라 믿음과 사랑 안에서 행할 것을 교훈 하는 것이다. 제비뽑기는 여호수아와 제사장과 각 지파의 족장들이 회막문 앞에서 행했다. 각자 하나님 앞에서 뽑은 땅을 불평 없이 순종함으로 받을 것을 요구하는 방법이다. 그 다음 레위 지파들은 온전히 성직을 수행해야 하므로 하나님 자신의 그들이 기업(수13:33)이 되신 것이다. 그들은 각 지파가 드리는 봉헌물과 십일조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민18:21). 그리고 미처 정벌치 못한 땅을 미리 분배함은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고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처럼 분배의 원칙은 믿음과 사랑의 원리를 따라 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2)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할 성도들

이와 같은 분배에 대한 일련의 원칙들은 성도들의 삶의 속성을 제시해 준다, 성도들은 자신의 지혜나 욕심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위탁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아"(롬1:17) 살아야 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삶의 분깃을 얻는 방법도 하나님께서 결정해 주시는 방법으로 해야 한다.

 

2. 분배의 완결과 그에 따른 문제들(수15-19장)

 

여호수아 15-19장은 11지파가 분배받은 땅의 명칭들에 대한 기록이다 "실로에서 회막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뽑아 나눈 기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이리 마쳤더라"(수19:51)고 성경은 강조한다. 실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모세를 통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언약이 성취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이루실 새로운 구속 섭리의 지평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각 지파가 얻은 땅에 가나안 족속들이 잔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유다 지파의 땅에는 '여부스 족속'(수15:63)이, 에브라임 지파의 경내에는 '게셀 족속'(수16:10)이 그리고 므낫세 족속의 경내에는 다수의 가나안인들이 함께 거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향후 이스라엘의 불행의 원인이 된다.

 

1) 무사안일한 몇몇 지파들

각 지파의 경내에는 가나안 잔류 족속들이 다 있었다. 그러나 85세나 된 갈렙은 스스로 청원하여 미정복한 헤브론 땅을 분깃으로 요구한 후 즉시 공격하여 아낙 족속의 후손들을 진멸시키고 그 땅을 차지하기도 했다(수14:8-12 수15:13,14). 그처럼 유다와 베냐민 지파 등 다른 지파들도 땅을 분배받은 후 남은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해야만 했는데, 무사 안일한 자세로 방치한 결과 결국 온전히 쫓아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2) 죄는 모양이라도 버려야 할 성도들

이와 같은 결과로 가나안 남은 족속들은 번성하여 시시때때로 선민들을 공격하고 괴롭히는 가시와 올무 역할을 하게 되었다(삿1:21 삿2:3). 사사기는 그 남은 가나안 족속으로 인한 고난과 타락상을 기록한 책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2)는 말씀을 유념해야 한다. 이스라엘 지파들처럼 무사 안일하게 경계심 없이 가나안 족속을 방치하여 나중에 큰 불행과 화를 당하는 어리석음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불의와 악을 허용하는 삶은 패배만을 가져옴을 기억해야 한다.

 

3. 분배 후의 결정들(수20-22장)

 

여호수아 20-22장은 도피성의 지정, 레위 족속들의 거주지 마련, 그리고 므낫세 반 지파와 르우벤, 갓 지파가 내전을 벌일 뻔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여러 군데의 도피 지역을 여호수아에게 지정할 것을 명하셨다(수20:1,2). 실수로 사람을 죽이거나 다치게 한 자들을 상대 가족의 복수로부터 지켜 주기 위함이다.

 

1) 모세 때부터 명령된 도피성 제도

도피성 제도는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명하신 내용이다(신4:41-43). 그 규례에 대한 구체적 내용까지 이미 제정해 주셨다(민35:6-15). 그와 같은 규례에 특별히 이방인까지도 도피성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추가로 지시하여 여호수아에게 실행토록 하신 것이다(수20:9). 도피성의 설정 목적은 과실로 인해 선민 공동체의 끝없는 복수의 악순환을 막는 데 있었다. 화해와 화합이 선민 공동체의 근간이 되어야함을 교훈 하신 것이다.

 

2) 성도의 번영요건

이와 같은 도피성 제도가 토지 분할이 끝난 직후 제일 먼저 시행되었다. 선민 공동체의 가나안 정착과 그 번영의 요건은 화합과 용서였다. 땅을 정복하는 일도 어렵지만 정복한 땅을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은 더욱 큰 숙제다. 공동체 이웃간에 싸우고 다투는 일이 없이 화합을 이루어야 번영할 수 있음을 간접적으로 교훈 하신 것이다. "만인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고 성경은 교훈 한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의 삶의 내용이기도 하다.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며 화목을 이루는 삶이 성도의 번영의 요건임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분깃을 공유하여, 거룩함으로 지키며, 화목함을 도모하는 곳에 사용해야 함을 본문은 교훈 해 주고 있다.

 

?[연구4] 여호수아의 고별 설교(23장-24장)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의 획득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얻은 언약과 축복을 유지하는 일을 항구적인 과제이자 삶의 행복한 결과를 얻는 열쇠이기도 하다. 여호수아서의 말미는 정복한 가나안 땅에서 어떻게 해야 만이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지 선민의 번영의 길을 여호수아의 고별 강화로 장식하고 있다. 이 예언적인 고별 강화의 내용은 향후 이스라엘 선민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질 일들의 전조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1. 첫 번째 유언적인 강화(수23장)

 

이제 20년에 걸친 전쟁과 땅 분배의 사역들은 끝났다. 여호수아의 나이도 110세에 이른 것이다. 그는 자신의 수한이 다 되가는 것을 느끼고 영지 딤낫세라(수19:50)로 유사들을 불러다가 고별 강화를 한다. 그 내용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수23:5)이라는 것과 그 조건은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수23:8)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해서 싸우신 자"(수23:3)며 앞으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수23:10)이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선민을 위해, 선민의 앞에서 선민의 대적들과 싸워 물리쳐 주시는 전쟁의 수뇌라는 것이 여호수아의 신앙고백이다.

 

1)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싸움에 앞장서시는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 이라는 내용은 성경 전체에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별호로 약 282회나 언급되어 있는 신학 사상으로 원어로는 (여호와 체바오트)이다. 사실 출애굽부터 가나안 정복의 여정은 엄밀하게 보면 전쟁사이다. 그와 같은 전쟁 속에서 이스라엘 선민들은 변변한 무기도 없이 무서운 가나안 동편의 아모리 족속 그리고 별처럼 많은 가나안 본토 거민들과 싸워 오늘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이끌어 냈다. 소수의 유랑 민족이 단시간에 거대한 팔레스틴의 도시 국가들을 깨뜨리고 정복한 일은 역사상 상식 밖의 일이다. 이와 같은 승리의 원인은 선민의 힘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싸워 주심으로 가능했음을 여호수아는 강조하는 것이요, 향후 선민 국가의 번영의 '키'는 바로 그와 같은 전쟁의 총수이신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과 친근한 교제를 나누는 것임을 교훈한 것이다.

 

2) 오직 그리스도로 무장해야 할 교회

이와 같은 여호수아의 만군의 여호와 사상은 신약성경의 교회의 영적 전투의 슬로건이 된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충만으로 무장한 삶, 즉 그리스도 예수로 무장해야만 교회는 승리한다. 그 옛날 가나안에 정착한 선민들이 여호수아의 경고와 교훈을 망각하고 가나안 문화로 무장한 결과 타락과 패망을 한 것처럼, 오늘의 교회도 그리스도와 그 진리로 무장치 않고 세상의 사상과 문화를 의지하면 사단에게 패배당하게 될 것임을 교훈 받아야 한다.

 

2. 세겜에서의 고별유언(수24:1-28)

 

지신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 것을 안 여호수아는 자신의 장지가 될 세겜으로 가서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백성들을 불러모았다(수24:1). 그는 하나님의 의롭고 신실하심을 강조한다. 즉 그 옛날 조상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신 대로 모세와 자신을 통해 가나안 땅의 정복으로 온전히 이루어 주셨음을 회고식으로 술회했다. 하나님은 그 언약을 신실하게 의로우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선민들은 그에 걸맞는 응답적인 삶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1) 하나님 은총의 윤리적인 속성

우리는 여기서 간과하기 쉬운 하나님 축복과 은총의 속성을 교훈 받아야 한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수24:20)고 했기 때문이다.

 

2)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아야 할 교화의 본분

사실 가나안 거민들과 선민들의 차이는 거룩함과 화평함에 있었다. 가나안인들은 야수적이며 동물적인 삶을 살았고, 선민들은 율법 안에서 연단 받아 거룩했었다. 그 결과 가나안 본토인들은 그 땅에서 멸절과 추방을 당했고 선민들은 새 주인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가나안 전쟁의 승패와 그 패망과 영광은 다른 요인보다도 그 윤리적 문제에서 기인됐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는 무조건적이 아니다. 의와 거룩함과 화평함의 춘국 윤리를 기반으로 시행된다. 그 윤리성을 상실하면 축복도 자연 상실된다.

 

3. 여호수아의 죽음과 장사(수24:29-33)

 

본분에서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여호수아의 일생이 얼마나 빛나고 위대한 삶이었는가를 볼 수 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만 섬기도록 고별 설교를 하면서 만족스럽게 죽은 것이다.

 

1) 약속의 땅에서의 삶의 결단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수24:21). 이는 여호수아의 유언에 대한 선민들의 응답이요, 맹세이다. 그들의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매일 매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재결단이다. 가나안의 불신과 우상 풍조에 물들지 않고 율법과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교제를 재결단해야만이 복된 번영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결단과 맹세를 여호수아는 그 삶의 마지막 사역으로 세겜 상수리나무 아래서 이끌어 낸 것이다.

 

2) 신앙 모범의 중요성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수24:31)에서 알 수 있듯이 모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데 앞장섰던 여호수아는 충성된 신앙적 삶을 살았다. 교회의 직분자들과 지도자 위치에 있는 성도들도 자신의 행동과 삶이 하나님 나라에 막중한 영향을 끼침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의 소명으로 시작하고 그의 장사됨으로 끝맺게 된다. 여호수아는 신약의 예수그리스도의 가장 구체적인 모형적 삶을 보낸 것이다. 그 충성됨, 그 용기, 그 예언적인 통찰력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참 그림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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