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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작은 신자를 넘어지게 하지 말라 (마태복음 18장 1~14절)

에반젤(복음) 2025. 8. 28. 20:07





마태복음 18장 1절에 “그러면 하늘의 왕국 안에 누가 더 큽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왕국 안에 누가 더 큰지 말씀하셨는데(마 5:19), 행하고 가르친 자가 크니 많이 행하고 많이 가르친 자가 더 큰 자입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왕국 안에 “누가 더 큽니까?”라고 묻는데(마 18:1), 저는 이것을 “똑같은 단어 다른 뜻”이라는 말로써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에게 말이 통하지 아니하는 경우가 외국인을 만날 때만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똑같은 단어를 쓰나 출신이 다르기에 소통이 어렵습니다.
한쪽은 화성에서 한쪽은 금성에서 와서 “똑같은 단어 다른 뜻”입니다. 가치관이 틀리면 똑같은 단어라도 의미하는 것이 틀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가치로 생각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어린아이를 부르신 그가 그를 그들의 중간 안에 세우십니다(마 18:2).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마 18:3).




1. 사람이 아이들처럼 되어야 천국 안으로 들어갑니다.


마태복음 18장 3~6절에 “만일 너희가 아이들처럼 되지 아니하였다면 결코 하늘의 왕국(kingdom of heaven) 안으로 들어가지 아니하였노라. 이 아이처럼 자신을 천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천국 안에 더 큰 자고. 만일 이러한 아이 하나를 나의 이름으로 받아들였으면 나를 받아들이나. 만일 그가 내 안으로(into) 믿는 이 작은 자들의 하나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귀의 맷돌이 목에 매달려 바다 깊음에 가라앉은 것이 유익하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들의 왕국”(the kingdom of heaven)은 독특한 표현입니다.1)
구원영생 안에 들어가려면, 우리의 올바름이 넘쳐야 합니다(마 5:20). 그 하늘들 안에 예수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야 들어갑니다(마 7:21). 아이들처럼 되어야 하늘들의 왕국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입니다(마 18:3).
아이들처럼 되어야 천국에 들어가는데 아이의 특성은 어떤 것입니까? 자기 지위를 주장하면서 교만하다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 안에서는 큰 자입니다(마 18:4). 이 세상은 자기를 광고하고 자기를 높이면 대단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세상의 가치관하고 천국의 가치관은 정반대라는 것입니다.
저는 섬기는 자예요. 저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사는 자예요.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면 천국에서는 더 큰 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이를 받아들였으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니 천하고 낮은 자를 예수님을 대하듯이 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마 18:5).
세상은 높은 사람 오면 ‘어서 오세요’. 애들 오면 ‘저리 가라’ 말하여도 천국은 작은 아이, 아무것도 아닌 힘없는 사람을 잘 대접하는 것입니다. 작은 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접해 주면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비싼 옷 입고 비싼 신발 신고 명품 가방 들고 오면 ‘어서 오세요’ 하고 싸구려 옷 입고 촌놈 신발 신은 자를 깔보고 무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지금 하늘나라에 계시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대접할 것입니까? 우리가 작고 천하고 약한 자. 그런 자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접하면, 그것은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자, 낮은 자를 대접하고 작은 자 하나를 귀하게 생각하면 예수님을 그렇게 대접한 것과 같으니까 하늘나라에서 상이 클 것입니다. 작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때 예수님을 받아들인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보면 낮에는 해가 뜨잖습니까? 밤에는 달이 뜨잖습니까? 달도 빛나지만 해와 달을 비교한다면 빛남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둘 다 하늘에 있지만 해의 영광이 더 크고 달의 영광은 작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해의 영광을 받는 사람도 있고 달의 영광을 받는 사람도 있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천국에서 각자가 받을 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내가 작은 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일은 예수님께 친절을 베푸는 것이며 그렇게 작은 자 한 사람을 귀하게 생각할 때 하늘에서 상이 큰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낮추고 겸손하게 살아야 천국에서는 상이 큰 것입니다. 힘없는 사람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대접하면 하늘에서 상이 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작고 연약한 자를 실족시키지 않아야 합니다(마 18:6). 실족(失足)하게 했다는 말은 발을 잃게 하고 넘어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걷는 사람 앞에 방해되는 물건을 놓을 때 그 사람이 걸려 넘어집니다. 그게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6절은 4~6절의 결론, 또는 6~9절의 서론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2)
사람이 예수님 안으로 믿는 이 작은 자들의 하나를 실족하게 만든다면 나귀의 맷돌이 목에 매달려서 바다의 깊음에 가라앉은 것이 유익합니다.
“연자매”는 “마소로 끌어 돌리게 하여 곡식을 찧는 큰 매”를 뜻합니다. “매”는 ‘맷돌’의 준말입니다.
“맷돌”은 곡식을 가는 데 쓰는 기구로 둥근 돌 두 개를 포갠 것입니다. 위에 있는 아가리에 갈 곡식을 넣어 위짝을 돌려서 갈게 됩니다.
그런데 연자매는 큰 맷돌이라 사람이 돌리지 못하고 짐승이 돌립니다. 큰 맷돌이 목에 매달려서 바다의 깊음에 가라앉으면 익사하는 것입니다. 작은 자들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느니 깊음에 익사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마태복음 18장 7절에 “방해물에서부터 그 세상에는 화가 있을 것이니 이는 비틀거리는 방해물(stumbling block)들이 왔기에 강제가 있음이라 그렇지만 방해물이 오는 바를 통하여 그 사람에 화가 있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넘어뜨리는 장애물에서부터 그 세상에 화가 있을 것입니다(마 18:7).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원인이 되는 그 세상에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 세상에 화(禍)가 있다는 말씀은 재화와 재난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작고 연약한 자가 나 때문에 넘어지지 아니하도록 주의하여야만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8~9절에 “너의 손 혹은 너의 발이 죄를 범하게 한다면 그것을 자르고 너에서부터 던져라, 절름발이로 생명 안으로 들어간 것이 두 손 혹은 두 발을 가지고 그 영원한 불로 던짐을 받았기보다 좋은지라. 만일 너의 눈이 죄를 범하게 한다면 그것을 뽑아내고 너에서부터 던지라 두 눈을 가지고 그 불의 지옥 안으로 던짐을 받았기보다 좋은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죄를 범하게 하다”라고 번역한 단어(스칸달리조)는 6절에 “이 작은 자들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다”와 관련해 나온 것입니다. 우리의 손 혹은 우리의 발이 작은 자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안 됩니다. 물론 일반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보편적인 모든 죄를 범하여서는 안 되나 특히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하는 죄를 범하여서는 안 됩니다. 문맥은 실족시키는 죄를 염두에 두고서 일반 죄로 확대합니다(마 18:8).
우리는 자신의 죄의 성향들을 철저하게 다루어야 합니다.3)
손 혹은 발이 죄를 범하게 만든다면 자르고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손으로 천국에 가는 쪽이 두 손으로 지옥에 가는 쪽보다 더 좋습니다.
지옥에 가는 것보다 손이 없어 나쁜 짓을 할 수 없는 쪽이 더 좋으며 지옥에 가는 쪽보다 발이 없어 나쁜 곳에 가지 못하는 쪽이 더 좋습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추다 남자 만나 호텔 방에 가 섹스하며 사는 쪽보다 차라리 다리 자르면 춤추러 가지 못하고 죄를 범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만일 눈이 죄를 범하게 하면 뽑아내 던지라고 말씀하셨는데(마 18:9), 두 눈을 가지고 그 불의 지옥 안에 던짐을 받기보다 더 좋기 때문입니다.




2. 그 작은 자들의 하나도 경멸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 “이 작은 자 중의 하나의 경멸하지 않도록 보라 이는 너희에게 말함이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 안에서 모든 것을 통하여 하늘에 나의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에 6절에서 “만일 믿는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를 실족하게 하였다면 나귀 맷돌이 목에 매달렸고 바다의 깊음에 가라앉은 것이 유익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작은 자들의 하나를 경멸함으로써 실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작은 자들의 하나를 경멸하지 않도록 우리는 주의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를 가볍게 업신여기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작은 자들에서 하나를 낮추어 보거나 하찮게 여기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작다고 낮추어 보는 교만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작은 자들을 가볍게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무겁게 존중하여야 합니다. 작은 자들을 높이고 중요하게 생각하여 무게를 두고서 대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작은 자들을 이렇게 대한다면 실족하게 만들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는 겸손한 작은 자들을 업신여기는 눈으로 바라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 작은 자들의 천사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복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4)
11절이 없다는 것은 성경 절을 나눌 때 잘못 나눈 것입니다(마 18:11). 원래 마태복음에 없는 구절을 마카복음이나 루카복음에서 가져온 후 절을 나누었는데, 사본학의 발달로 마태복음에는 원래 그 구절이 없는 것이 맞기에 삭제한 후 (없음)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원래 있던 것을 삭제한 것이 아니라, 원래 없던 구절을 첨가하였다가 첨가한 것을 다시 삭제하고 공백으로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킹 제임스 성경 옹호론자들은 기성교회가 성경을 변경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교회를 허무는 작은 여우와 같은 사탄의 졸개들 역할을 하는 자들입니다(아 2:15).
마태복음 18장 12~14절에 “너희에게 어떤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으냐, 어떤 사람에게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하나가 길을 잃게 함을 받았다면 그가 그 아흔아홉을 그 산들 위에 버려두고 그것을 찾지 아니할 것이냐? 만일 그가 그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그가 길을 잃게 함을 받지 않은 그 아흔아홉보다 그것에 더 기뻐하노라. 이 작은 자 가운데 하나가 멸망한 것은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작은 자들에서 하나를 실족하게 한 문제에서(마 18:6), 길을 잃게 된 양 이야기로 이어집니다(마 18:12~14).
예수님께서는 잃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마 18:11).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실 만큼 잃은 자들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5)
어떤 사람에게 양 100마리가 있는데 그 하나가 길을 잃게 함을 받으면 그 아흔아홉을 그 산들 위에 버려둔 후 그것을 찾을 것입니다(마 18:12).
예수님의 우리(fold)에 있는 우리도 한때 잃어진 자들이었습니다.6) 올해는 크리스트교 141주년으로 전에는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141년 전에는 우리 민족도 잃어진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발견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잃은 양도 찾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하는 이들을 찾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마리의 잃은 양도 소홀히 여기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으시기 위해 노력하십니다.7)
목자는 산을 넘고 넘어 위험한 곳들로 잃은 양을 찾아다녔습니다. 목자는 잃은 양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 두리번거립니다.8)
예수님께서는 잃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결심하신 목적을 성취하시는데 잃어진 양은 목자에게 이끌려 안전한 처소로 오게 됩니다.9)
부모가 다른 자녀보다 치료된 아이에 더 기뻐하는 것과 같습니다. 병들어 죽음에 직면한 아이가 회복되었으니 더 기뻐하는 것입니다.10)
우리도 예수님의 본에 따라 잃은 한 영혼을 찾기 위해 나서야 하며,11) 우리도 작은 자 중의 하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위험을 무릅쓰고 잃은 영혼을 발견하기 위해 찾아 나서야 합니다. 잃은 양을 발견할 때, 아흔아홉의 양들보다 기쁨이 더 클 것입니다.12)
만일 우리가 헤매는 우리의 원수의 수소나 그의 나귀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원수에게 돌아가게 하여야 합니다(출 23:4).
어떤 선장은 짐을 바다에 던지고 조난한 사람들을 태웠습니다.13) 한국 전쟁 당시 철수 작전에서 북한 주민들이 군함으로 탈출한 사건에서 흥남에서 14,000명 이상의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도로 이동한 것입니다.
우리도 영혼을 건지기 위해 우리의 화물을 던질 수 있어야 하며,14) 한 영혼을 건지기 위해 우리의 귀중한 보물을 던질 수 있어야만 합니다.
미련한 군주들이 이집트를 미혹시켜 길을 잃게 하였습니다(사 19:13). 지도자들이 길을 잃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지혜로운 지도자들이 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지도자들만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사 19:14).
지혜로운 자들이 사라지니 경험 없는 소년이 나라의 지도자가 됩니다. 어리석은 자가 지도자가 될 때 그 나라 백성이 다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이재명이 지도자가 되니까 한국 국민이 힘들게 된 것입니다. 친중 반미 이재명이 지도자가 되니까 미국과의 외교가 틀어진 것입니다.
중국은 자국의 해군력 강화를 위해 군함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대형 구축함과 항공모함 건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15)
중국은 55만 톤의 군함 건조로 영국 해군 전체 규모를 넘었습니다. 중국의 해군의 군함은 351척으로 미국의 294척을 추월하였습니다.16) 그래서 미국은 군함 수를 늘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재명 나쁜 놈 때문에 1500조 美 군함 수리를 일본에 뺏겼습니다,17) 미련하고 어리석은 이재명 도둑놈이 지금 저 자리에 올라가 있게 되니 대한민국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재명이 나쁜 놈이라서 그렇지만 더 먼저 국민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국민이 저주받을 행동을 한다면 어리석은 자가 나라의 지도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를 나라의 지도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지도자가 되면, 결국 그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재명도 나쁘나 그보다 먼저 우리 국민이 회개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지도자를 세워 주실 것입니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같은 지도자를 세워질 때 한국이 잘될 것이니, 먼저 국민이 회개하고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에 조인된 대한민국과 미국의 조약으로서 1954년 발효한 대한민국과 미국 사이의 군사동맹에 관한 조약입니다. 이 조약은 한미동맹의 법적 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6월 17일 당시 미국 브릭스 대사와 회동에서 휴전 후에도 상호방위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제2의 필리핀이 되리라며 상호방위조약을 거의 피하고 있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반공포로 석방 사건을 독단으로 일으킨 초강수를 두고, 당시 미국은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면서 휘둘리던 상황이었습니다.18)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대하여 약속하지 않는다면 전작권을 환수하고 남한 단독으로라도 북진을 할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한반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의 교두보 임무를 수행한다고 주장하면서 상호방위조약에 비관적이었던 미국 정가를 설득하였습니다.19)
미국은 조약을 맺는 조건으로 휴전을 제시하고 협상이 체결됩니다. 이승만은 정치회담이 결렬되면 무력통일을 추진하겠다고 압박하였고, 1954년 11월에 정식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었습니다.20)
하나님께서 나라에 복을 주실 때 훌륭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시지만, 심판하실 때는 이재명 같은 사악한 사람을 지도자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이재명은 그저께 15일에는 ‘국민 임명식’을 한다면서 꼴값을 떨었는데 광화문에서 열린 셀프 임명식에 3500여 명이 참석하였다고 합니다.21)
어제 16일에는 광화문에 우파 국민이 100만 명이 넘게 모였습니다.22) 과장이겠지만 “드론 집계 결과 1300만 명이 모였다”라고도 합니다.23) 그렇지는 않은데 국민 4명당 1명이 모이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민심은 ‘이재명 퇴진, 윤석열 대통령 석방하라’라는 것에 있는 것이며, 많은 국민이 내려오라고 요구하니, 도둑질한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어쨌든 국민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좋은 지도자를 세우실 것입니다. 악을 사랑하고 이재명을 사랑하면 나라가 망하고 자기 자신도 망합니다.
이스라엘이 타락한 때 그 나라 국민은 목자 없는 양 같았다고 합니다. 왕들이 있었으나 그 왕들이 선한 목자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마치 목자를 가지지 아니하는 양들 같이 내던져진 것입니다(마 9:36).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나는 좋은 목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으러 다니시는 좋은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작은 자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그를 업신여기지 않고 예수님을 대하듯이 대하며 사는 성도들이 됩시다!






1) David L. Turner, 『BECNT 마태복음』, BECNT 성경주석, 배용덕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61.
2) Turner, 『BECNT 마태복음』, 569.
3) Turner, 『BECNT 마태복음』, 571.
4) Matthew Henry, 『마태복음』, 매튜헨리주석전집 16권, 원광연 옮김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6), 671.
5) C. H.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서문강 옮김 (서울: 도서출판 로고스, 2001), 305-306.
6)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308.
7)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310-313.
8)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315-316.
9)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318.
10)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319-320.
11)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322.
12)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324-325.
13)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328.
14) Spurgeon, 『예수님의 이적·비유 강해 10』, 329.
15) https://www.google.com/search?q=%EC%A4%91%EA%B5%AD+%EB%8C%80%ED%98%95+%EA%B5%AC%EC%B6%95%ED%95%A8%EA%B3%BC+%ED%95%AD%EA%B3%B5%EB%AA%A8%ED%95%A8+%EA%B1%B4%EC%A1%B0
16) https://www.g-enews.com/article/Global-Biz/2025/03/202503230647189551fbbec65dfb_1
17) https://www.lullu.net/58575
18) https://namu.wiki/w/%ED%95%9C%EB%AF%B8%EC%83%81%ED%98%B8%EB%B0%A9%EC%9C%84%EC%A1%B0%EC%95%BD
19) 위 사이트.
20) 위 사이트.
21) https://www.chosun.com/politics/blue_house/2025/08/16/NQKY2ISYMNC4XCJZLPDCF5TNAM/
22)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370081
23) https://www.youtube.com/watch?v=-z-7xSZ7ETg

 

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