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해결의 충고1
고린도전서 3장1-23절 / 이동원 목사
우린 계속해서 고린도교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문제가운데 그 첫째 분쟁의 문제를 함께 같이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여러 가지 파벌로 분열되고 또 나누어진 그 분쟁의 원인을 몇 가지 원인으로 분석 될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 지도자를 따라서 내가 어떤 사람, 어떤 지도자에 속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그룹들이 나뉘어졌습니다. 두 번째는 고린도 교인들이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의 지혜를 높이고자 하는 그런 생각, 그래서 누가 더 똑똑한가, 누가 더 지혜로운가? 이러한 사람의 지혜를 높이고자 하는 그런 사고방식 때문에 고린도교회 안에 분열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 번째 원인이 분쟁을 초래한 세 번째 원인은 그 사람들, 특별히 지도자들의 역할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도자에 따라서 하는 역활이 다르다, 그 역할이 꼭 우열이 아니라, 누가 낫고 누가 나쁜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우열한 사람이고, 누가 더 열등한 그런 차이가 아니라 역할이 다를 뿐이다, 역할이 다를 뿐이다. 역할의 차이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 그것이고 고린도 교회가 분쟁에 휘말려 들어간 중요한 또 하나의 원인이라고 우리는 지적 할 수가 있습니다.
이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3장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그 바울의 충고는, 제안은 단순히 그 다양한 사람들의 역할의 차이만을 이해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문제들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이 모든 사역자들이 우리가 지도자이든 지도를 받는 사람이든 우리가 함께 일하고 있는 장, 이 교회 우리가 봉사하고 있는 교회가 정말 어떤 곳 이어야 하는가? 라는 교회에 대한 이해, 교회에 대한 큰 그림을 바울은 그려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교회가 정말 무엇인가를 이해할 때, 교회가 어떤 일을 하는 곳 이어야 하는 것인가를 제대로 이해할 때 이런 사람들의 불필요한 분파나 또 그룹핑, 이런 것들의 문제는 극복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3장에서 교회에 대한 한 4가지 그림을 바울이 그리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마치 우리가 교회 안에서 생활 할 때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교회에 대한 어떤 이미지, 그림을 가질 것을 요구합니다.
3장에는 4 가지의 그림이 나옵니다.
첫째 그림으로 바울은 교회를 집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가정, 집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집. 둘째는 밭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필드, 우리가 농부들이 일하고 있는 밭과 같다, 밭. 그리고 셋째는 교회는 빌딩과 같다, 건물, 건축하고 있는 건물의 건축과 같다. 빌딩에 비유하고 넷째는 성전, 템플과 같다. 네, 이것을 통해서 이 네 가지의 각기 다른 그림을 통해서 바울은 몇 가지의 중요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집의 그림, 교회는 집과 같다. 이 집의 그림을 그리면서 문제 발생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바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 가운데 분쟁과 분열이 초래되고 발생한 그 원인이 어디 있느냐 문제 발생의 원인을 다루고 있고요, 이게 1절에서 3절까지 입니다. 그 다음에 교회는 밭과 같다. 4절에서 9절까지 이 밭의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가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어떤 시야를 가져야 되느냐 문제 치유의 시각을 바울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게 4절부터 9절까지 그 다음에 10절에서 15절까지는 문제 해결의 초점을 그 포카스를 어디다 맞추어야 하느냐 문제 해결의 초점을 바울이 제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10절에서 15절까지, 건축의 비유, 빌딩의 비유를 바울이 들면서 문제 해결의 초점을 어디에 맞추어야 하는가를 바울이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성전과 같다, 템플과 같다, 성전에 비유하면서 16절 이하인데 이 성전을 통해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문제 해결의 경고를 던지고 있습니다. 워닝을 경고를 그게 16절 이하의 말씀 입니다.
첫째로 교회 공동체는 집의 비유.
가정의 비유 3장2절에 보시면 어린아이들 얘기가 나와요. 1-2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 대함과 같이 한다. 집에는 아이들이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죽 보시면 9절 말씀 ➤“9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일꾼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농사요, [하나님]의 건물이니라.” 너희는 하나님의 밭일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뭐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집이다.
바울이 첫째로 그리고 교회에 대한 그림은 집입니다. 혹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어요. 패밀리, 가족이다. 우리 집안에 들어서면 집이 좀 집다우려면 아이들이 있어야지요. 아이들, 아이들에게는 좋은 면이 있어요, 좋지 않은 면도 있고, 그런데 바울은 한 마디로 여기서 그 교회 성도들에게 교회를 집으로 비유 하면서 집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어디에 있냐면 이것을 통해서 고린도 교회가 발생하고 있는, 직면하고 있는 문제, 분파의 문제가 어디에 그 원인이 있었는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한 마디로 말하면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 말이요. 그 교회 안에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그렇다. 뭐 아이들의 좋은 면도 있지만 아이들의 나쁜 면도 있을 수 있어요. 아이들의 나쁜 면이 뭘까요? 네, 한 마디로 말하면 아이들은 관심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밖에 없어요. 나만 위해 달라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관심, 자기관심, 관심을 끌려고 소위 말하면 어텐션씨킹 을 하려고 관심을 끌기 위해서, 그냥 아이들이 떠들고 소리치고 하는 것도 다 날 봐줘! 이 말 이예요, 날 봐줘! 내가 여기 있다. 나에게 시선을 돌려 달라. 응? 나를 좀 봐 달라! 이 자기 관심을 요구 하는 거 이게 아이들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자기관심, 또 하나 아이들의 특성 가운데 하나, 자기 말만 합니다. 남의 얘기를 안 들어요. 자기 말만 계속 아이들이 합니다.
바울이 아주 쉽게 얘기합니다.
고린도 교회당 안에 왜 그런 분파 문제와 분쟁 문제가 왜 생기느냐? 그 대답을 바울은 단순하게 하고 있는 거예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 특히 영적으로 얘기하면 영적으로 아이들과 같은 존재가 많이 있다. 3장 읽겠어요, 3장1-2절 ➤“1.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능히 못하기 때문이라.”
1절에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라 바울이 이들이 꼭 구원 받지 못한다고 말하진 않았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들은 자라면 그리고 복음에 진지하게 응답한 사실이 있다면 그리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거듭난 사람들 이예요. 그건 틀림이 없습니다. 거듭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새 생명을 받은 사람이 되었어요. 그러나 어린 아이입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는 어린 아이다워야지! 어린아이가 안녕 하셨어요? 그러면 얼마나 징그러워요?
자, 청년의 연령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애들 같다는 거예요, 애들 같아요. 그러면 걱정하기 시작해요. 부모들이 야! 이건 큰일 났다, 이거 문제다 이 말 이예요. 그런데 고린도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많다, 이 말 이예요. 사실 이거는 바울 사도가 오래 전에 성경 안에서 사용한 이런 표현인데 오늘날 19세기,20세기에 와서 소위 심리학자들 가운데도 성인 아동이란 말을 많이 쓴다. 내 속에 있는 아이, 내가 어린아이 시절에 어떤 충격을 받아서, 고통을 받아서 그래서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죠. 그건 그 어른아이 어른 속에 어린 시절에 배신당하고 충격 받은 아이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 말이죠. 이걸 심리학자들은 내적인 아이, 혹은 어른아이, 성인아이, 어덜드췰드런, 이런 말을 씁니다. 근데 바울은 영적으로 말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다. 다른 표현으로 육신에 속한자다.
예수님 믿고 구원 받았어요. 이제 그들의 삶을 누가 인도 하십니까? 성령이 인도하십니다. 그러면 성령을 따라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았지만 성령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 육신을 좇아 사는 사람,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의 모습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것을 로마서 8장에서부터 다룹니다. 로마서 8장을 여러분이 집에 가서 자세히 읽어보시면 육신을 좇아 행하는 사람,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분명히 그리스도인인데도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성도인데도 두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을 좇아 살고, 어떤 사람은 성령을 좇아 산다. 육신을 좇아 살면 죽는다, 성령을 좇아 살아야 열매를 맺을 수가 있다.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입니다. 자, 이런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들, 어린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거기서 뭐가 생기겠어요? 싸움이 일어나고, 시기가 일어나고, 다툼이 일어나고, 분파가 일어나고 서로 자기 잘났다는 자랑하고 자라나면 되요. 어린아이를 벗어버리고 빨리 자라나면 되요. 내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벗었다. 이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거 아니요. 나중에 고린도전서 13장에 가서 뭐, 뭐하면서 무슨 애기 하면서 사랑 얘기를 하면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 진짜 사랑 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 이예요.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어서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벗는다, 벗어 버린다. 어른스러워야 된다. 이제는 장성한 사람답게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라는 것은 뭐냐?
교회 이미지, 그러니까 정상적인 교회 아이들이 있는 것이 당연해요. 근데 교회가 평안 하려면 어떻게 되요? 어른들이 많아야 되요, 어른들이 많고 아이들이 적어야 되요. 그런데 애들이 많고 어른들이 조금이면, 시끄러운 소리들이 끊임없다 말이요. 계속 시끄러워요. 교회라는 것이 무엇이냐 어린아이가 자라나는 성숙하는 집이어야 된다. 교회에서 말씀 받고,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고, 깨닫고 이러면서 뭐에요? 어른이 되어 가는 거예요. 우리가 성숙한 어른이 되 가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세월이 오래 지나가는데도 변하지 않아요. 어린아이의 자리에서 그대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문제예요.
우리 교회에도 아이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영적으로 말 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있어요. 뭐 있는 거야 어느 교회나 좀 많은 거 같지요. 여기저기서 소리가 좀 들려오면 그건 많이 있는 거예요. 적지 않게 있는 거예요. 사실 우리 교회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역사가 아주 짧은 교회 입니다. 역사가 짤막해요. 그러니까 여러, 다른, 다양한 교회의 배경을 가진 분들이 빠른 시일 안에 몰려 왔습니다. 급성장을 했습니다. 그러나 복과 동시에 저는 우리 교회가 안고 있는 독특한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그것을 알아요. 사실, 더 이런 모습으로 발전 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건 뭐냐면, 내가 유명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차근차근 우리 교회가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서서히 차근차근 교인들이 영적 성숙의 길을 걸어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불행히도 그건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니요. 빨리 모여 왔어요. 그러다 보니까 특별히 어린아이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왔다. 앞으로 변하지 않으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한국 교회의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짤막한 시간에 많은 다양한 교회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이 한국 교회의 짤막한 축도라고 생각해요. 작은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자, 우리 교회당 와서 은혜 받고, 성령 충만 하고, 말씀 공부하고, 변하고, 성숙한다. 우리 교회의 사명이 거기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게 이루어 지지 않으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 하면서도 변하지 않아요. 아이의 모습, 늘 기도가 뭐냐면? 하나님! 우리 교인들 좀 변하게 하옵소서. 제가 여태까지 한 번도 발표하지 않은 저만의 기도인데 저는 이런 기도도 해요, 변하지 않으면 나가게 하소서. 그래요. 솔직히 말해서 변하지 않으면 나가게 하소서! 변하지 않고 계속 있으면 이게 고통이요. 이런 사람들이 계속 고통이요. 그건 우리 교회의 영적 분위기,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굉장히 커다란 장애물이 될 수가 있어요.
그게 나가란 소리는 아니요. 그러니까 나가기 싫으면 여러분, 이 한 가지 밖에 없어요. 나가지 않는 방법,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살아남는 방법, 변화되고 자라나야 되요. 바뀌고 자라나야 되요. 그래서 저는 바뀌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고 계속 영적인 어린아이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러면 제가 계속 그 사람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 할 거예요, 앞으로 집중적으로 하나님 나가게 하소서, 나가는 일이 생기게 하옵소서. 기도합니다. 물론 이건 나가시란 얘기는 아니요. 변화 되야 해요. 빨리 성장을 해야 되고 성장하고 정말 변해야 되요. 그래야 교회는, 교회는 성숙을 경험하는 가정이 될 수가 있어요.
어린아이들이 참 부모의 보람이 뭐예요? 아이들이 시간이, 세월이 흘러가니까 의젓해 졌어요. 그걸 바라보는 부모의 미소가 생각해 보세요. 이제 자라날만한 나이가 되도 계속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대학생이 되어도 속 썩이는 자식을 둔 부모의 아픔을 아시지요. 그게 영적 지도자의 아픔이요. 그래서 교회는 뭐냐 첫째 교회는 집과 같다. 어떤 집이냐? 어린아이가 자라나는 집 이어야 한다. 성장하는 어린 아이들이 성숙할 수 있는, 성숙해야 우리는 그런 어린 아이적인 요소, 유아적 요소들을 극복하고 우리는 행복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가 있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이 성숙한 공동체가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둘째 그림은 밭이요.
여기서 바울은 밭의 이미지를 가지고 문제를 치유하는 시각을 강조 합니다. 자, 고린도교회 안의 이런 분쟁을 우리가 잘 해결하고 치유하려면 어떤 시각을 가져야 되느냐? 제가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볼 때 우리가, 우리는 모두가 함께 일하는 동역자다. 교회는 뭐냐? 함께 어우러져 일하는 밭 이다. 한 마디로 그게 대답이요. 우리 다양한 은사를 가진, 다양한 재능을 가진 우리 모든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일하는 뭐예요? 밭과 같다. 그것이 바로 교회모임이다. 이것이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두 번째 이미지의 밭 이예요. 자,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 바울은 여기서 뭐라고 부르고 있느냐? 독특한 단어를 씁니다. 동역 자들이다.
그 9절 우리는 다 뭐라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동역자 들이다. 우린 하나님의 동역자 들이다. 특별히 바울은 여기서 두 명의 지도자를 특별히 예를 들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자기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 5-7절 ➤“5. 그런즉 바울은 누구며 아볼로는 누구냐? 그들은 단지 [주]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니라.”
예를 들어서 바울은 자기 자신과 아볼로의 얘기를 해요. 바울의 역할을 뭡니까? 바울은 사도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선교사예요. 사도의 기능이나 역할이 뭐냐면 기는 곳마다 복음을 전해서 소위 처치 플랜팅, 교회를 개척했어요. 그래서 교회를 설립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워져요. 바울이 그 역할을 했어요. 바울은 강력한 리더쉽을 가지고 많은 곳에 교회를 세웠어요.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면서 영향을 행사하고 있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또 누구냐 하면 아볼로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아볼로는 뭘 잘 했어요? 성경에 능통한 자다. 그랬어요. 성경 교사였어요. 아주 성경을 잘 가르치는 분 이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아볼로에게서 은혜를 아주 많이 받았어요.
은혜를 많이 받다 보면 어떤 사람은 아볼로가 최고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우리 교회는 바울이 세웠지, 바울이 최고야! 이렇게 자꾸 갈라지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이나 여기서는 고린도교회의 문제는 지도자들의 문제가 아니요. 지도자들은 갈라지지 않았어요. 바울이 자기의 어떤 뭐 갈라진 편에 섰었다면 바울이 뭐냐 바울이 스스로 얘기를 할 수가 있겠어요? 바울은 안 그래요, 바울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파를 만든단 말이요. 그래서 사람들은 바울이 최고다, 어떤 사람은 아볼로가 최고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거예요, 그래 나는 어떤 역할을 했느냐? 나는 심었지 않느냐, 고린도 교회를 심었어요. 아볼로는 어떤 역활을 했어요? 와서 성경을 잘 가르쳐 가지고 물을 주었어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구입니까? 6절에서 중요한 분은 6절에서 중요한 분은 정말 중요한 분은 바울도 아니고 아볼로도 아니고 누구라는 것 이예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셨다.
아무리 바울이 심었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어도 하나님이 도우심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이 없었다면 바울의 설교가 아볼로의 가르침이 열매를 맺을 수가 있겠느냐? 여러분! 아무리 설교를 잘하는 사람이 설교를 해도 여러분이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성령의 역사 때문 이예요. 성령의 기름 부으심, 성령의 함께하심, 믿습니까? 여러분? 그것이 세속적인 웅변과 설교에 차이가 있어요. 성경 가르침과 세속적인 가르침에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말 잘하는 사람은 야! 말 잘한다. 참! 좋은 소리다.
우리 영혼이 어떤 감동을 받고, 우리가 변화를 체험하고 우리가 달라지고 이건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안돼요. 궁극적으로 우리 은혜를 주시는 분, 우리의 영혼을 바꾸시는 분, 우리의 영혼을 자라게 하시고 성숙시켜 주시는 분, 그 분이 여러분 하나님 이라고 믿으십니까? 제일 중요한 분이 누구예요? 하나님이시지요. 사람은 동역자에 불과해요. 함께 일하는 동역자.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다 일반이다.
8절 읽겠습니다. ➤“8. 이제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며 저마다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으리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다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동역자 사이에 함께 일하는 사람끼리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윤리는 뭐냐면 이거예요. 자기 일에 성실하면 되요, 자기 일에, 그리고 상 받을 수 있도록 자기 일에 열심히 일하면 되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 일만 하고 남의 일, 남의 부서 일 돌아다니면서 다 참견하고 가십하고 돌아다니는 사람 있어요. 그러면 안돼요. 자기 일에 성실해요. 자기 일에 상 받도록 하면 되요. 아 여기서도 주의할 것이 있어요.
두 가지 극단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뭐냐 하면 지기 일은 열심히 해요. 그 밖에는 아무것도 몰라요. 또 자기 일을 열심히 하기 위해서 자기 교회 안에서도 자기 부서 일을 잘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욕하고 다른 부서를 깍아 내리고 그런 사람 있단 말이지. 부처 이기주의가 존재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일은 하나도 안하고 남의 일만 계속 돌아다니면서 참견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건 이기주의가 아니고 무서운 사람입니다. 자기 일은 안하고 남의 일만 참견하고 돌아다니는 사람, 뭐라고 그럴까요? 계속 뭐 자기 것도 없고 남의 것을 계속 거 다른 사람들을 참견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바울은 여기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이것은 비단 고린도교회 뿐만 아니라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교회 생활의 마땅한 태도를 가르칠 때 빌립보서 2잘 4절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빌립보서 2장4절 8 이제 심는 자와 물 주는 자는 하나이며 저마다 자기의 수고에 따라 자기의 보상을 받으리라. ➤“4. 각 사람이 자기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각 사람이 남의 일들도 돌아보라.” 그러나 내가 시간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일을 어떻게 해요. 도와줘야 되요 참견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줘야 되요. 그런데 요청에 따라서 도와 줘야 되요. 도울 수 있는 한 도와줘야 되요. 왜냐하면 우리는 공동체이니까. 결국은 네 일과 내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우리교회의 일이기 때문에 우리 공동체의 사역이기 때문에 그것이 마땅한 자세예요.
그래서 함께 일하는 자가 돼야 된다. 그게 동역자요. 그게 동역자예요. 함께 일하는 것. 그래서 우리 밭이 풍성한 수확이 있고 우리의 밭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포도원이 되고 우리의 밭이 주님 보시기에 풍성한 열매가 있고 그래서 교회란? 교회는 함께 더불어 일하는 함께 더불어 평화롭게 같이 일할 수 있는 뭐예요? 밭이어야 한다. 밭이어야 한다. 그것이 두 번째 이미지요. 여러분, 우리 한평생 교회를 섬길 때 오늘 바울이 묘사해준 교회의 이 귀한 4가지 그림을 가슴에 품고, 아름다운 교회, 거룩한 교회, 그리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만드는 일에 참으로 기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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