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창/- 좋은글 감동글

[스크랩] 임마누엘(עִמָּנוּאֵל)(17)*

에반젤(복음) 2023. 5. 2. 19:46

임마누엘(עִמָּנוּאֵל)(17)*

마태복음 1장21-23절 / 이상봉 목사

 

➤“21.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ישוע 예슈아}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 22. 이제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에 관하여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עִמָּנוּאֵל)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마1:21-23 KJV)

 

 주님에게 붙여진 임마누엘(עִמָּנוּאֵל)이라는 이름은 이사야 7장14절에 나오는 예언의 말씀에 따라 붙여진 것이다. 그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이름이 붙여졌으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 이름이 처음 나타난 이사야 7장과 8장을 살펴보아야 한다.

 

 ➤“1. 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 왕 아하스 시대에 시리아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와 그것과 전쟁을 하였으나 능히 그것을 이기지 못하니라. 2. 어떤 이가 다윗의 집에 고하여 이르되, 시리아가 에브라임과 동맹을 맺었다, 하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의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이 흔들리니라. 3. 그때에 {주}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이제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세탁공의 밭의 큰길에 있는 위 연못의 수로 끝으로 나아가서 아하스를 만나 4. 그에게 이르기를, 조심하고 조용히 하라. 시리아와 함께한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의 맹렬한 진노로 인하여 또 이같이 연기를 내며 불타는 이 두 개의 나뭇조각 꽁지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5. 시리아와 에브라임과 르말랴의 아들이 악한 꾀를 써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6.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괴롭히고 우리를 위하여 그 안을 무너뜨리며 그것의 한가운데 왕을 세우되 다브엘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자, 하였도다. 7.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8. 시리아의 머리는 다마스쿠스요, 다마스쿠스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 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한 백성이 되지 못하리라. 9. 또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랴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믿으려 하지 아니하면 분명히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라.”(사7:1-9 KJV)

 

 유다가 북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군에 의해 침략의 위협을 받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유다 왕 아하스에게 보내어 격려하셨다. 위의 말씀이 바로 그 내용이다. 이 말씀을 요약 정리하면 '다윗의 집에 주신 내 약속으로 인해 내가 반드시 원수들의 손에서 너와 유다를 지켜 보호할 것이니 너는 나를 믿고 안심하라'는 것이다.

 

 르신(시리아)-베가(북이스라엘) 동맹군이 목표하는 바는 다윗 왕조를 폐하고 거기에 자기들의 괴뢰 정권을 세우는 데 있었다. 이사야가 유다를 다윗 집이라고 표현한 것은 페르시아와 북이스라엘의 공격이 언약을 지키지 않은 유다를 징계하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의 막대기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지금 유다가 맞고 있는 이 위기는 다윗 왕조가 창조주와 맺은 언약에 충실하지 않은 데서 온 결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사야를 보내어 아하스가 직면한 위협은 하나님의 징계이니 믿음을 회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문제는 외부에 적이 있다는 사실이나 그 적들이 나를 공격해 온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문제는 언제나 자신의 불신앙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 집에 주신 약속으로 인해 다시 유다 왕과 그 백성들의 신앙을 일깨워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

 

창조주를 거절한 유다의 심판

 

 유다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만 있으면 그 어떤 외부적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무 문제없이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는 나라이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보장하기 위해 하나님은 유다 왕 아하스에게 한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징조는 무엇이라고 좋다고 하셨다. 그가 이것이라면 하나님을 확실히 믿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만드는 징조라면 무엇이든지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의 이런 은혜롭고 친절한 배려와 권면에 대해 불신앙적인 거절로 답했다.

 

➤“10. ¶ 또 {창조주}께서 다시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를 위해 {창조주} 네 [하나님]의 한 표적을 구하되 깊은 곳에서든지 위로 높은 곳에서든지 그것을 구하라, 하셨으나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도 아니하겠으며 {창조주}를 시험하지도 아니하겠나이다. 하매”(사7:10-12)

 

 그러자 이사야는 그동안 끊임없이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대적해온 유다 왕과 그에게 속한 거역적인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게 된다. 즉 그들에게 구원의 징조를 구하라고 했을 때 그들이 거절했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이 그가 준비하신 심판의 징조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13. 그가 이르되, 오 다윗의 집이여, 이제 너희는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이 작은 일이기에 나의 [하나님]도 지치게 하려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버터와 꿀을 먹겠고 이로써 악을 거절하며 선을 택할 줄 알리니 16. 이 아이가 악을 거절하고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몹시 싫어하는 그 땅이 자기의 두 왕에게 버림을 받으리라.”(사7:13-16)

 

➤“17. ¶ {창조주}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난 그 날로부터 임하지 않은 날들을 가져와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아시리아 왕이 임하는 날이니라. 18. 그 날에 {창조주}께서 쉿 소리를 내사 이집트의 강들의 맨 끝 지역에 있는 파리들과 아시리아 땅에 있는 벌들을 부르시리니 19. 그것들이 와서 다 같이 황폐한 골짜기와 바위굴과 모든 가시나무와 모든 수풀 위에서 쉬리라. 20. 또 바로 그 날에 [주]께서 세내어 온 삭도 곧 강 건너 사람들과 아시리아 왕을 써서 머리와 발의 털을 밀고 수염도 깎으시리라. 21. 그 날에는 한 사람이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를 기를 것이요, 22. 그것들이 내는 젖이 풍성하므로 그가 버터를 먹으리라. 그 땅에 남은 모든 자가 버터와 꿀을 먹으리라. 23. 그 날에는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천 그루의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자라는 곳이 되리라. 24. 사람들이 화살과 활을 가지고 거기로 가리니 이는 온 땅이 찔레와 가시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 25. 또 괭이로 갈아야 할 모든 작은 산에는 찔레와 가시들을 두려워하는 일이 거기에 임하지 아니할 것이요, 오히려 그곳은 소들을 풀어 놓는 곳, 작은 가축들이 밟는 곳이 되리라, 하니라.”(사7:17-23)

 

 임마누엘이라는 아이가 뻐터와 꿀을 먹는 것은 좋은 일이 있을 징조가 아니라 유다에 저주와 멸망의 상황이 닥칠 것의 징조이다. 왜 뻐터와 꿀을 먹느냐? 하면 유다 땅이 침략으로 인해 불타고 황폐해져서 밀과 극상품 포도나무 등을 심던 곳에 가시와 엉겅퀴만 무성하게 되고 고작 한 집에 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 정도의 가축밖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기서 나오는 젖과 들 꿀 정도가 양식의 전부이어서 뻐터와 꿀을 먹는 것이다. 즉 이 말은 이스라엘 땅이 온통 황폐해져서 비참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는 말이다.

 

 아하스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제안을 "나는 {창조주}를 시험치 않겠나이다." 라는 교활한 말로 거절한 것은 그가 하나님 대신 다른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아시리아였다. 그는 아시리아에 많은 예물을 바치며 그 힘을 의지하려 했다.

 

➤“5. ¶ 그때에 시리아 왕 르신과 이스라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싸우려고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아하스를 에워쌌으나 그를 이기지 못하니라. 6. 그때에 시리아 왕 르신이 엘랏을 시리아에 회복시키고 유대인들을 엘랏에서 쫓아내었으므로 시리아 사람들이 엘랏에 이르러 거기에 거하며 이 날까지 이르렀더라. 7. 이에 아하스가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되, 나는 왕의 신하요, 왕의 아들이니이다. 시리아 왕과 이스라엘 왕이 나를 치려고 일어나니 올라와서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고 8. {창조주}의 집과 왕의 집의 보고에서 찾은 은과 금을 취하여 아시리아 왕에게 예물로 보내매 9. 아시리아 왕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 아시리아 왕이 올라와 다마스쿠스를 쳐서 점령하고 그곳의 백성을 포로로 사로잡아 기르로 데려가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왕하16:5-9).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 소수의 남은 자들과만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이제 유다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고 대적하는 나라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하나님은 유다에 대해 심판의 선언을 하게 되었다. 임마누엘이란 말의 뜻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창조주는 이제 누구와 함께 하시는가?

 

 이전까지는 온 이스라엘 또는 유다 전체와 함께 하셨지만 이제부터는 '우리' 곧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믿는 자들, 마지막까지 언약을 붙잡고 있는 소수의 남은 자들과만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아이가 누군지 그리고 이 아이를 낳은 처녀(עלמה 알마)가 누군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아이의 어머니는 이사야 선지자와 같은 시대 사람으로서 다윗 가문에 속한 한 처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아이가 선악을 분별할 나이가 되면 먼저 아시리아와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다음으로 그 페르시아에 의해 유다도 크게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의 말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임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임하심은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은 결과를 나타내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님이 임하시면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실제로 이사야의 예언에 따라 아하스가 그렇게 겁내던 북이스라엘과 아시리아에 의해 멸망을 당했다. 그래서 유다의 위협은 사라지는 듯 했다. 하지만 아시리아는 그 칼을 유다로 돌려 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큰 어려움을 그들에게 안겨주게 되었다.

 

 ➤“2. 이에 내가 나를 위해 신실한 증인들인 제사장 우리야와 여베레기야의 아들 스가랴를 취하여 기록하게 하고 3. 여대언자에게로 들어가니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그때에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4. 그 아이가, 내 아버지여, 내 어머니여, 하고 부르짖을 줄 알기 전에 다마스쿠스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아시리아 왕 앞으로 옮겨지리라, 하시니라.”(사8:3-4)

 

 이사야도 임마누엘처럼 아이를 하나 낳게 되는데 그 이름은 마헬살랄하스바스였다. 마헬살랄하스바스의 뜻을 그대로 옮기면 "약탈이 신속하게, 노략이 급하게" 이다. 이것은 아시리아와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이 페르시아에 의해 곧 침략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한 이름이다.

 

 ➤“5. ¶ 또 {창조주}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 이 백성이 부드럽게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7. 그러므로 이제, 보라, [주]가 강하고 많은 강물 곧 아시리아 왕과 그의 모든 영광을 가져다가 그들 위에 임하게 하리라. 그가 자기의 모든 수로를 지나고 자기의 모든 강둑을 넘어서 8. 유다를 지나가며 범람하여 흐르고 목에까지 이르리니, 오 임마누엘이여, 그가 날개를 펴서 네 땅을 넓게 채우리라, 하시니라.”(사8:5-8)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이란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의 손길을 거절하고 인간 왕, 강력한 세상 세력을 의지하기로 선택한 것을 두고 하나님은 유다가 개울물을 버리고 급류를 선택했다고 말씀하셨다.

 

 ➤“11. ¶ {창조주}께서 강한 손으로 내게 이같이 말씀하시고 또 내가 이 백성의 길로 걷지 말 것을 내게 가르치시며 이르시되, 12. 이 백성이 어떤 사람들에게, 동맹을 맺자, 할지라도 너희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동맹을 맺자, 하지 말고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무서워하지도 말고 13. 만군의 {창조주} 그를 거룩히 구별하며 그를 너희의 두려움으로 삼고 너희의 무서움으로 삼으라. 14. 그가 성소가 될 것이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게는 걸림돌과 실족하게 하는 반석이 되며 예루살렘 거주민들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리니 15.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걸려 넘어지고 쓰러지며 부서지고 올무에 걸려 붙잡히리라, 하시니라. 16. 증언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서 봉하라. 17. 나는 자신의 얼굴을 야곱의 집에게 숨기시는 {창조주}를 바라며 그분을 기다리리라. 18. 보라, 나와 및 {창조주}께서 내게 주신 아이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표적들과 이적들이 되었나니 그것들은 시온 산에 거하시는 만군의 {창조주}로부터 나온 것이니라.”(사8:11-18)

 

 여기서 이사야는 장차 이스라엘에게 닥칠 일로 인해서 몇 가지 경계의 말을 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이 말을 듣고 미래를 대비할 대상이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아니라 몇몇 남은 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사야는 여기서 "나의 제자", "나와 {창조주}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라는 용어를 씀으로써 이스라엘과 구별되는 소수의 언약 백성들을 별도로 지칭하고 있다. 구원은 오직 그들만의 것이다.

 

 임마누엘(하나님)이 강림하심으로써 구원을 얻을 사람들은 오직 언약 안에 견고히 서 있는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임마누엘이라는 용어는 이처럼 하나님이 세상에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수행하기 위해 오셨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것은 장차 있을 주 예수님의 재림 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