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강.
겔47:1-12절, 234.235.399장.&
에스겔은 생명의 강에 대한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망에 넘치는 환상입니다. 에스겔은 그의 백성들과 함께 그발 강가에 있는 한 포로 수용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강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강물은 바닷물을 소성(燒成)케 하고,
생물들을 살아나게 하며, 강 좌우에 있는 나무들이 달마다 새 실과를 맺게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리라는 소망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것입니다. 에스겔의 환상은 신비하고 영적이어서 해석을 필요로 하기도 하고 큰 뜻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힘을 주신다"는 이름의 뜻을 가진 에스겔 선지자는 참혹한 비극의 시대를 살아갔던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여호야긴 왕과 함께 망국의 슬픔을 안고 베벨론으로 포로로 가고(B.C. 597) 그의 사랑하는 아내는 예루살렘이 적국에 포위되던 날에 죽었습니다(B.C. 588; 겔 24:1, 15-18).
그는 포로지 바벨론 그발 강가에 있는 텔아비브(TELABIB)라 불리우는 나푸르(NIPPUR) 근처에서 슬픔의 포로인 동족 중에 섞여 살던 5년째 되던 해 선지자의 소명을 받았습니다(B.C. 593). 그때 그의 나이는 대략 30세 가량으로 생각됩니다.(겔 1:1).그는 고난 당하는 백성과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 애족자였습니다.
1.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물입니다. 겔42:1-2절에 에스겔이 체험하는 강물의 근원 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그물은 성전에서 흘러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성전 문지방 밑에서 솟아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물은 성전 전면이 향하고 있는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곧 제단의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가 성전 북문을 통해서 바깥으로 나갔을 때 그 남쪽 문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겔 47:12)에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물을 사실상 성전 사방에서 솟아 넘쳐 성전 뜰로 흘러 내리는데 그 수량이 갑자기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환상이었습니다. 사막 가운데 세워진 성전 문지방에서 맑은 물이 한없이 솟아나와 성전 뜰을 물들로 충만히 덮고 말았던 환상이었습니다. 여기 "성전"은 바로 참 성전의 본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피로 값주고 세우신 "교회"를 예표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요2:21). 예수는 말하기를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고 하였습니다. 요7:37-38절에는 "그 배에서 생수의 흘러 나리라"고 했습니다.
계22:1-2절에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성전으로부터 솟아 흘러나오는 이 물은(겔47:1-1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타날 구원의 복음 운동, 곧 사죄와 구원 운동을 예표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 강물의 특색은? (1)그 수원이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요, (2)솟는 물 곧 생수입니다.(겔47:2절).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움직이는 물이었습니다. (3)점점 불어나는 물이었습니다. 겔47:3절에 "발목에 오르는 물이요", 겔47:4절에는 "무릎에 오르는 물이요",
또한 "허리에 오르는 물"이요, 마침내 창일하여 "헤엄칠 물"로 사람이 널리 건너지 못할 강을 이룬 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점점 불어나는 물, 넘치는 물, 그 수위가 오르고 오르는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4)여러 갈래로 흘러가는 물이었습니다. 겔47:8절에 동방으로 향하여 아라바로도 가고 바다로도 가고 사막으로도 가고 동북편에 자리잡은 디베랴 바다로도 가고
북동편에 자리잡은 사해로도 흘러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흘린 보혈로 말미암아 전 인류에게 임하는 복음 운동의 충만성, 은혜와 축복의 충만성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복음이 강물 흐르듯이 사방으로 뻗어가는데 이 생수의 강물 줄기는 막을 자가 없음을 보여 줍니다.
2.이 생수가 흐르므로 모든 인간들이 살 수 있습니다. 계22:2절에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했습니다.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는 말은
마시기 편하고 풍성하여 누구든지 쉽게 마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물이 귀한 중동 지방 사람이 이 말씀을 읽을 때에는 기적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에덴에 있는 강물은 온 지면에 둘렀는데 이것은 그 땅의 소산물을 윤택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길 가운데 흐르는 물은,
범람하며 수재를 가져오는 무서운 물이기도 하나, 여기 물은 생명수이기 때문에 풍성하고 위엄이 있는 생명을 주는 물입니다. 생명수는 길가에 흘러 생명을 윤택케 합니다.(렘2: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수의 근원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팠는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한 터진 웅덩이라고 하였습니다.(잠10:11). "의인이 입은 생명의 샘이라"(잠 13:14) "지혜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잠16:22) "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참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바로 우리 자신 속에 흐르게 하면
어떠한 비극도 기쁨으로 변경시킬 수 있으며 더러운 곳에서도 장미를 피게 할 수 있습니다. "강 좌우편에 있는 열두 가지의 생명 나무는 열매를 맺되 달마다 맺고 잎사귀는 만국을 소생하기 위하여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에스겔은 겔47:12절에 "그 실과는 먹을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잎사귀는 만유의 상한 심령을 치료케 합니다. 열두 가지의 열매가 다달이 맺히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매달의 양식을 상징하며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곧 생명나무의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입니다.
본문은 생명 나무요 에덴에 있던 생명 나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 나무는 생명을 주는 나무요 에덴에 생명 나무가 있었던 것처럼 세상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 나무는 구원된 무리에게 주어 영생하게 할 나무를 의미하며 그리고 나는
생명의 양식이라고 하신 예수님을 상징한 것이기도 합니다. 무한한 생명수 강가에 사시(四時)로 맺는 풍성한 열매는 무한한 양식을 제공하며 사시로 푸른 잎은 무한한 세계를 항상 신선하게 해 주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 섭리에 순응하여 많은 양식을 얻어 영육간에 우리 모든 성도는 살 것입니다.
3.생수의 척량과 은혜의 계단입니다. 천사가 줄을 가지고 일천 척을 네 번 척량하였습니 다. 1)일 척을 재니 발목에 이르렀다 했습니다. 성전 문턱만 밟고 다니는 얕은 은혜를 받은 신자를 말합니다. 열매 없는 신자입니다. 2)무릎에 물이 오른 신자입니다. 기도하는 신자입니다.
이제 은혜의 맛을 깨달은 신자입니다. 신자가 기도가 막혔다면 큰 일입니다. 솔로몬, 다니엘, 엘리야, 한나, 바울, 야고보 등 신·구약에 나타난 큰 용사나, 기독교 역사에 두각을 나타낸 분들은 모두가 기도의 용사들입니다. 3)물이 허리에 오릅니다. "허리에 물이 덮혔다"는 것은 "능력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진리의 띠(엡6:4), 겸손의 띠(벧전5:5), 권능의 띠(시65:6)입니다. 권능의 띠를 띠면 능력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능력자가 되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승리만 있을 것입니다. 4)물이 창일하여 헤엄칠 물이더라고 했습니다.
비행기가 낮게 뜰 때는 산들과 고층 건물들로 거치는 것이 많지만 높이 뜰 때 거침없이 비행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은혜가 얕은 단계에 있을 땐 부딪치는 것이 많아 상처투성이지만, 물이 창일한 은혜의 단계에 오르면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5)물이 어깨에까지 덮히었습니다. 물이 어깨를 덮은 때는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승리의 부활을 체험하게 됩니다. 십자가 지는 정신은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주님을 따를 때 승리의 아침, 기쁨의 아침을 맞게 됩니다. 6)물이 머리까지 덮이었습니다.
머리는 인간 자체의 모든 상태를 주관하는 곳입니다.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모두 머리 속의 지시대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은혜의 물이 머리를 덮이면 성령에 사로잡혀 성령 공장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해서 누가 뭐래도 기쁘고,
누가 뭐래도 감사하고, 어떤 슬픈 가운데서도 찬송하게 됩니다. 내 주장대로 살았던 것 다 포기하고 이제는 성령의 주장에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은혜의 바다에서 아무 거치는 것이 없이 마음껏 기도하고, 마음껏 전도하고, 마음껏 충성·봉사·헌금하는 축복의 생활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나는 어느 은혜의 단계에 있는가 자신의 신앙 상태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에 왔다갔다하는 신자입니까? 기도의 용사입니까? 뜨거운 충성 봉사자입니까? 성령에 사로잡혀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은혜의 바다에서 주님의 빛과 향기를 드러내며 사는 신자인가 진실된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4.희망과 소망이 되는 생수입니다. 2절에 "또…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생수는 지성소로부터 솟아 나와 성전 밖에 황폐한 세계로 강이 되어 흐르며 온 땅을 소성케 했다(8절)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는 인생들의 모든 희망과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고자 주신 이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요4:14절에 "온 인류의 생수"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사람의 생수인 것입니다.
따라서 생명 얻기 원하는 자는 모든 인간의 공로와 노력을 버리고 주께 나와야 합니다. 주께 나아와 그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의지해야 합니다. 1)생수의 강 안으로 발을 옮겨야 희망이 있습니다. 3절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라고 했습니다.
강은 생명과 번영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공포와 죽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강에 발을 넣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고 믿음으로만 첫발을 강으로 옮길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우선 발목부터 하나님의 명령따라 그 강에 집어넣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같이 생명을 건 결단과 순종이 있으므로 새로운 소망과 희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2)끝없는 전진을 해야 희망이 있습니다. 4절에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허리에 오르고"라고 했습니다. 일천 척의 거리는 매우 긴 여정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로 하여금 쉬지 않고 계속 그 생수의 강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신앙에는 정상이 없습니다. 끝없는 전진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을 향해가는 순례의 길은 수많은 환난과 시련과 장애물이 있을 것입니다.
뒤로 물러서면 침륜이 있을 뿐입니다. 히10:39절에 "우리는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성도들에게는 하늘나라 이를 때까지 전진만이 있을 뿐입니다. 3)생수의 강에 온전히 자신을 맡길 때 희망이 있습니다.
에스겔은 더 나가다 보니 인간의 힘으로는 건널 수 없는 깊이까지 도달했다(5절)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체험을 보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은 헤엄의 기술보다도 그 바닷물,
자체가 사람을 뜨게 하는 원리와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가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임을 날이 갈수록 절감하게 됩니다. 오직 생명의 성령의 법에 나의 영혼과 삶을 맡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능히 헤엄쳐 갈 수 있을 것입니다.
5.생수의 강물의 영적인 의미입니다. 1)강물은 복음을 의미합니다. 물은 생물이 존재하기 위하여 없어지는 안 될 생명의 근원이요 생명유지의 귀중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람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공존해 왔습니다. 물 없는 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음이 이를 증명합니다.
또 물이 있는 곳에서는 놀라운 인간의 문명이 발생했습니다. 애굽의 나일강 중국의 황하강과 양자강, 인도의 갠지스강,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강과 유브라데스강 등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리고 현대에도 도시의 발달은 강을 중심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한강, 파리의세느강, 런던의 테임즈강 등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정작 물이 있어야 할 예루살렘 도성에는 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2절에서 보면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고 했습니다. 곧 인간을 살리는 것은 물질적인 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요4:13). 그리고 이것은 신약에 와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밝히 드러났는데 예수께서는 복음만이 모든 인생에게 생명수를 제공함을 말씀하셨습니다(요4:14). 그리고 생명수가 되는 이 복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십니다(고전 10:4). 따라서 예루살렘은 운명의 젖줄인 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바로 생명의 젖줄인 복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소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2)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 은혜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강물의 근원이 성소"(12절)라고 하였습니다. 1절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시온으로부터 즉 율법과,
주님의 말씀이 먼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됨을 의미합니다.(사2:3). 거기서 성령이 사도들 임하셨고 그들이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이물 곧 은혜의 복음을 모든 나라에 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은혜의 역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으로 퍼져 나갔습니다.(행1:8절).
6.생수의 강물로부터 새로 소생합니다. 7-12절에 이 강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부활 생명 의 축복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7절에 "강물로 말미암아 강 좌 우편에 각종 나무들이 소성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 "각종 나무"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받은 모든 구원받은 신자들"을 의미합니다.
(2)8-9절에 "바다를 살린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바다"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 바다의 소성으로 말미암아 그 가운데 각종 물고기와 바다의 모든 생물들이 소성함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역시 죽음의 세상 중에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신자들의 부활 생명을 뜻합니다.
(3)10절에 "그 강가에 여부들이 그물을 치고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를 많이 잡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비유적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신약 시대에 일어날 수많은 전도자와 복음의 일꾼이 생길 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4)11절에는 "진펄과 개펄은 소성 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구원의 복음을 받지 못한 불신자는 멸망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5)12절에 "강 좌우 강 언덕에는 각종 먹을 것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계22:1-2절에서 묘사된 영생의 왕국 곧 천국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은 부활의 새 생명을 예언한 것입니다. 물은 생명의 상징입니다. 성전에서 솟아 흘러내린 물은 바로 우리의 부활 생명을 가져 온 것입니다.
6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나"고 묻고 있습니다. "성전에서 솟아 흘러 내려 깊은 강물을 이루고 사망에서 부활의 생명을 낳고 있는 신비의 환상을 깨닫고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에스겔의 강물 체험! 그것은 오늘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체험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과 말씀, 말씀과 성령의 체험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예수를 가리키고, 그 예수께서 행하신 큰 일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믿음과 회개를 일으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고, 성화를 이룩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이 이렇게 역사하시는 결정적인 방편은 그 성령께서 기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하시는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엡6:17; 요5:39절). 성령과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강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솟아나는 보혈입니다. 점점 불어나는 충만의 보혈입니다. 여러 갈래로 흐르고 흘러 만국을 관통하는 보혈입니다. 우리는 이 보혈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야 합니다. 척량을 곧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그에게 나아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온 몸을 적셔야 합니다.
무릎까지 적셔 주장할 수 없는 지경에는 잠겨야 합니다. 강물(보혈)이 나를 주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 체험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강가에 각종 수목처럼 바다의 물고기처럼 또 어부들처럼 부활 생명을 만끽합니다. 그것은 마침내 영생 곧 천국의 열매로 결실하게 됩니다.
7.이 신령한 은혜의 강물은 점점 깊어 갑니다. 문지방 밑에서 발원한 물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처음에는 발목에, 다음에는 무릎에 오르고, 그 다음에는 허리에 오르고, 그 다음에는 사람이 능히 건너기 족한 큰 강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성도들의 은혜의 단계를 전하고 있습니다.
발목→무릎→허리→헤엄치는 물은 은혜의 단계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에 어느 단계의 은혜에 속하고 있는가를 자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옛날 "에녹"은 하나님과 함께 3백년간 동행하였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라고 하셨고, "다윗"은 "주님밖에 나에게 축복이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가 헤엄치는 은혜의 강물 속에서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천국으로 앞서가신 분들입니다.
좀 더 깊은 은혜의 강물로, 좀 더 깊은 진리의 세계로, 좀 더 깊은 사랑의 세계로, 좀 더 깊은 축복의 세계로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생명강이 흐르기 시작한 원천에서 일천 척을 척량해 보니 물이 겨우 발목에 잠기다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한 곳에 이르러 보니 허리에까지 잠기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수심을 조사해 보니 벌써 큰 강을 이루어 헤엄칠 수 있는 흐름이 되었고 건너지 못할 깊은 강이 되었습니다. 지극히 적은 물이 넓고 깊은 건너지 못할 강이 된 것처럼 팔레스틴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 줄기가 오늘은 온 세계에 덮이게 되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이 생명강이 흐르는 곳에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흐름을 가로막는 장애만 없으면 이 흐름에 적대하는 암초만 없으면 복음은 의와 진리로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교회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수의 호흡이기 때문에 오늘 말씀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현상 유지에 자족한다면 위대한 주님의 생명의 역사에 반항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전진의 물결이 정체되었다면 이 흐름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반성해야 합니다. 예수 새 생명을 품에 안았으면 밖으로 뛰오나가 내가 소유하고 있는 새 생명을 전하여 하나님의 집을 가득 채워서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의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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