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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일설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6장 16-40절)

에반젤(복음) 2021. 12. 29. 05:07

주일설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16장 16-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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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라는 말씀은 단순하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이 한구절이면, 어떤 장소에가서, 누구에게라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 말씀이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누가 누구에게 했던 말인지 물어보면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머뭇거릴 때가 있으셨을 겁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적어도 이 한말씀 정도는, 꼭 기억하며 다니겠다는 마음으로 머리와 가슴에 잘 새기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이 3번에 걸쳐 전도 여행을 한 것은 아실 겁니다. 그 때마다 동행자들이 다릅니다. 1차 전도여행(행 13:1-14:28) 때는 바나바와 마가(바나바의 생질-조카)가 동행자였고, 2차 전도여행(행 15:22-18:22) 때는 실라와 디모데, 누가가 동행자였고, 3차 전도여행(행 18:23-21:16) 때는 디모데와 누가가 동행자였습니다. 이 외에도, 수 많은 조력자들과, 바울을 따르는 제자들이 부분적으로 동행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하는 시기에 일어난 일이며, 이때 동역자는 실라와 디모데 였습니다. 16장에서 종종 “우리”라는 표현이 여러번(16:10;13;15;16...) 나오는 것을 보면,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도 동행자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라’라는 인물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안디옥 교회로 파송(임무는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결정된 내용의 편지를 안디옥 교회에 전하고 설명하는 것)된 두 인물(바사바라고 하는 유다와 실라)중 한 사람이며, 인도자(행, 15:22, 통치자, 치리자) 혹은 선지자(행 15:32, 예언자)라고 불린 사람이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공적 임무를 수행할 만큼 중요한 인물이 실라였습니다.

 

(참고) #. 최초 예루살렘 공의회 결정사항 – 이방인 신자들도 은혜로 구원 받는 것이니 할례를 하지 않아도 되나, ① 우상의 더러운 것, ② 음행, ③ 목매어 죽인 것, ④ 피를 멀리하라, 이 네 가지는 반드시 지킬 것)

 

‘디모데’라는 인물은 루스드라(현재의 터키 남부)출신으로,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할 때 복음을 듣고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할 때 디모데를 동행자로 선택하였습니다. 이때 디모데의 나이는 10대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어린 아이에 불과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실라라는 인물, 그리고 아들 같은 디모데와 함께 2차 전도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2차 전도 여행은 유럽지역인, 마게도냐(마케도니아-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역과 아가야(아덴, 고린도, 겐그레아)지역에 복음을 전한 이야기입니다.

 

자, 이제 정리를 해 드립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일까요? 언제- 바울과 실라가 2차 전도여행 중에, 어디서 - 유럽지역인 마게도냐의 첫 성인 ‘빌립보’ 성에서 전도를 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누구 누구에게 – 바울이 감옥을 지키는 간수에게 한 말입니다.

 

이제 잘 아셨으니, 전도를 하실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성경의 전문가가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사도행전 16장을 좍 펴시고 자신있게 복음을 전하시면 됩니다. 감옥에서의 극적인 탈출 상황을 추가로 전하시면 반응효과가 분명이 있을 겁니다.

 

12절을 보시면,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라고 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드디어 유럽지역인 마게도냐의 수도인 ‘빌립보’성에 도착했습니다. 이 곳에서 자색 옷감 장사인 ‘루디아’라는 여자가 복음을 듣게되고, 그녀와 그녀의 온 집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일행이 자신의 집에 머물러 지내도록 강권하였는데, 이로써 ‘루디아’의 가정에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는 유럽지역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기도 합니다.

 

유럽 지역에서의 전도의 첫 시작은 이렇게 큰 성과를 거두고 기분 좋게 출발했지만, 오늘 본문으로 이어지면서 곧 바로 시련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이야기의 전개를 보면, 빌립보 성에는 귀신들린 여종이 점을 잘 치기로 소문이 나서, 사람들은 돈을 주고 점을 봤고, 여종의 주인은 그것으로 큰 돈벌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 일행을 며칠 동안 따라 다니면서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16:17)라고 계속 외쳐댔습니다. 바울은 전도하는데 방해가 되자 참다 못해서 그 귀신에게 명령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16:18)라고 외치자, 즉시 그 귀신이 여종에게서 나왔습니다.

 

이처럼, 바울 일행이 유럽 지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들이 상대해야 했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라고 했습니다. 바울 일행에게 귀신들이 1차 싸움의 대상이었던 것처럼, 우리가 싸워야 할 평생의 주적은 오로지 사탄, 마귀, 귀신의 무리들입니다.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 일행을 대번에 알아 본 것을 보면, 마치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의 존재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이 귀신들이었던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귀신도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일하는 사람을 가장 먼저 알아 봅니다. 우리의 주적이 귀신들이듯이, 귀신의 입장에서는 성령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상대해야할 1차 주적들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질수록, 귀신들의 공격은 점점 강해지고 교묘해 집니다. 그러나, 성령을 소멸하고 성령을 근심 시키며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귀신들도 상대를 안합니다. 왜요? 그냥 내버려 둬도 알아서 스스로 타락하고, 알아서 스스로 거룩과 경건을 멀리하고 몸과 마음을 더럽히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만약 바울 일행이 성령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귀신들린 여종은 그들을 비웃고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귀신들의 세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 주연, 퇴마 영화)’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 갑자기 길거리의 전등이 다 나가고 으스스한 바람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립니다. 주인공이 횃불을 켜자 사악한 마귀들이 새까맣게 하늘을 뒤덮고 주인공을 금방이라도 잡아 먹을 듯이 흉칙한 혓 바다들 내밀고 달려 듭니다. 지금 세상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우리 눈에는 안 보일지라도 귀신들이 굶주린 사자처럼 인간들의 영혼을 갉아 먹으려고 울부짖으며 거리 거리 마다 득시글 득시글 거립니다.

 

기도가 사라진 교회 담벼락에는 귀신들이 썩은 고기에 앉은 새까만 파리떼처럼 이빨을 드러내며 다닥다닥 붙어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우리는 악하고 더러운 영들과의 살벌한 전쟁터에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육의 눈으로는 영적 존재인 귀신들을 볼 수 없고, 오직 성령이 주시는 영안으로만 귀신들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더러운 영들은 오직 예수님의 권세있는 이름을 선포할 때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귀신을 향해 외쳤던 사도 바울의 외침이, 우리가 지녀야 할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물리치기 위해서는 먼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귀신들은 자기의 정체가 드러나면 패배하기 때문에, 우리는 귀신들의 계략과, 부추김을 영적인 능력으로 분별해 내야 합니다. 영적 전쟁을 이기게 하기 위해서 성령 하나님이 우리 몸에 계시고, 항상 우리 편이 되어 주십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바울 일행을 쫒아다녔던 귀신들린 여종의 모습을 상기 시키시고, 나와 내 주변에,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의 주변에 어슬렁 거리는 더럽고 추악한 귀신들이 일절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령으로 분별하고, 성령으로 뚜렷하게 목도 하시고, 예수님의 권세있는 이름으로 모든 귀신들을 일거에 쫓아내셔서, 우리 주님의 보호와 인도함에 거하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귀신을 쫓아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울 일행에게는 평강보다는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귀신이 여종에게서 나오자 그 여종은 더 이상 신묘한 점을 볼 수 없게 되었고, 돈 벌이가 끊기게 된 주인은, 화가나서 바울 일행을 로마 관리에게 고발합니다. 로마 관리의 명령으로 바울과 실라는 옷을 벗기우고, 채찍질을 당한 후에 차꼬를 채우고 깊은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유럽 지역에 첫 교회가 세워지는 기쁨도 잠시, 전도의 사역이 중단되는 중대한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25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라고 했습니다. 채찍질을 당하여 몸이 많이 상한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도했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라는 말씀대로, 바울과 실라는 복음 때문에 오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면서, 큰 소리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 했습니다. 믿음은 고난의 순간에 증명된다는 것을 이 두 사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하자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감옥을 지키던 간수는 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다 도망친 것으로 생각하여,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큰 소리로 말리자, 간수가 엎드려서 말합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바울이 대답합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서 이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16장,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바울이 간수에게 한 말씀이라는 것을 꼭 기억해 두십시오.

 

사도 바울은 여러모로 보아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위대한 인물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엄청난 전도의 역사, 교회의 역사를 이룬 것은, 그가 인텔리(intelligent, 지식, 총명)계층에 속해서가 아닙니다. 또한 불굴의 의지를 지닌 강철같은 인간이어서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에 사로잡힌,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있기전 내용인 16장 6~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서 전도를 하려고 했는데 “성령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였다”(16:6) 고 합니다. 그리고, 비두니아 라는 곳으로 가려고 했는데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셨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밤에 환상이 보이기를 어떤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마게도냐로 건너와서(배타고 아시아에서 유럽지역인 마게도냐로) 우리를 도우라(복음을 전해달라)는 요청하였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역사 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일과 같습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의 의지를 꺾고 성령의 의지를 덧 입혀 주십니다. 우리의 행동을 멈추게 하고 성령의 일하심을 따라가게 하십니다. 우리의 계획을 무산시키고 성령의 계획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의 입과 몸을 제어하시고, 성령을 따라 말하게 하시고, 성령이 주는 능력으로 행동하게 하십니다.

 

몸은 내 몸이지만, 나의 말과 행동과 계획과 목표를 오직 성령의 의지대로 이끌어 가게 되는 것이, 곧 성령의 사람,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울은 전적으로 성령이 하시는데로 몸과 마음을 맡겼기 때문에, 그가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교회 역사의 최초 순교자는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의 순교를 시작으로, 수 많은 교회 지도자와 성도들의 순교 역사, 피의 역사가 계속 되었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유명인은 물론이고, 이름도 없는 무명인들을 가릴 것 없이, 주저 없이 순교의 길을 걸어갔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성령에 붙들린 사람들,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 중에,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중의 하나인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의 순교 이야기는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폴리캅은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져 는데, 폴리캅은 순교 직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86년 동안 그 분의 종이었소. 그는 한 번도 나를 저버린 적이 없소. 그런데, 어떻게 내가 하나님이자 나의 구원자를 모독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신은 일순간 나를 태울 불로 나를 위협하고 있다. 나는 곧 타 없어지겠지. 하지만 당신은 악인들을 위해 영원히 타는 지옥불에 대해 모르는구나. 당신이 진정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처럼 가장한다면, 간단하게 말하겠으니 들으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이오.”

 

폴리캅이 마지막 순간에 남긴 말은 헬라어로 “크리스티아노스 에이미(χριστιανός, ειμι)”라고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말이 제 가슴에 아주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크리스티아노스 에이미”, 영어로는 “l am christian”, 이 단어를 생각할 때 항상 겹쳐서 떠오르는 영화의 장면이 있습니다. 영화 ‘패션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에서 예수님이 채찍을 맞기 전에 하늘을 향하여 고개를 드시고, “아버지, 준비되었나이다” 라는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도 저에게는 깊이 각인이 되었습니다.

 

조금 극단전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목표)은 잘 죽기 위한 준비를 해 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열심히 살다가, 예수님을 닮은 자녀 답게 죽음을 당당히 맞이하는 것입니다. 잘 준비하다가, 잘 죽으면, 하늘의 상급을 받고,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는 복의 주인공이 되는 겁니다.

 

얼마전 집에서 가족들과 ‘자산어보’라는 영화의 일부분을 잠깐 봤는데,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의 순교장면을 보았습니다. 이 때는 1801년 신유년(순조 1년)에 일어났다고 해서 ‘신유 박해’라고 부릅니다. 정약종은 목이 베이기 직전에 이렇게 말합니다. 영화대사의 워딩 그대로의 말입니다.

 

“우리를 비웃지 마시오. 심판의 날이 오면 우리의 고통은 즐거움으로 변할 것이고, 당신들의 웃음은 고통이 될 것이니, 비웃지 마시오. 땅을 내려다보고 죽느니 하늘을 우러러 보며 죽겠다.”라고 하면서, 망나니가 휘두르는 칼을 똑바로 보고 죽습니다. 마지막으로 외치는 말이 “주여!” 이 한마디 였습니다.

 

이 장면을 보던 제 아내가 “당신도 저렇게 죽을 수 있나요?”라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1, 2초 정도 멈칫 하다 “할 수 있지, 할 수 있을 겉 같아, 죽는 건 한 순간이잖아” 라고 대답했습니다. 저의 대답은 그냥 의식의 흐름속에서 나오는 대답이었습니다.

 

막상 이렇게 대답해 놓고,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시간에 다시 그 순교 장면과 저의 대답이 떠 올랐습니다. 저는 기도하기를 “주님, 제가 죽을 때까지 저를 떠나지 말아 주시고, 제가 제 입으로 한 말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대답이 될 수 있도록, 이 땅에서 저를 마음껏 사용하시고, 제 목숨도 온전히 주님의 손에 맡깁니다. 아버지, 준비되었나이다, 크리스티아노스 에이미!, 주여!” 라고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다 주님의 것입니다. 오늘 본문 중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말씀이 있습니다. 나도 믿고 구원 받고, 내 가족도 구원 받게하여서, 내 온 집이 구원 받은 집이 된다면, 우리는 그야말로 죽을 준비를 다 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나, “너와 내 집이 구원받을 믿음이 아직 없구나”라는 판단과 평가를 받고 있다면, 반드시 더 살아야 합니다. 악착같이 살아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어떻게 하든지 얻어내고, 간직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반드시, 내 집에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을 보시고 나와 내 온 집에 믿음의 은혜, 구원의 은혜로 인도하여 주실 겁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내가 숨을 쉬는 한은 우리 주님을 증거하고, 전하는데 온 마음과 힘과 노력을 다하시는, 성령에 붙잡힌 사람, 성령과 동행하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을 들었던 간수의 후기 내용이 32~33절에 나옵니다.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아멘.

 

간수는 자결로 인생을 끝마치려는 순간에서, 그와 그의 모든 가족이 구원 영생을 얻는 일생일대의 복을 받았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한마디의 선포가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저주와 사망에서 복과 영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간수가 운이 좋았을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이에게 그러한 운의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한마디를 들고, 사나 죽으나 오직 예수님만 전하겠다는 사명의 의지를 내세운 다면, 내가 만나는 가족과 이웃과 친구와 동료들, 어느 누구라도 간수와 같은 복된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회를 제공하는 키는 바로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 내가 복의 전달자, 복의 통로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성령충만으로 귀신들을 물리치고 고난 속에서도 기도와 찬송을 부르며 복음의 길을 가기를 원하신다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을 가슴에 각인 시키십시오. 바울과 실라의 이야기를 읽고 또 읽고 믿음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의 자리에서, 강력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고 헌신 하십시오. 반드시 지진이 나고 옥문이 열리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 말씀을 입에 달고 다니시면서, 모든 이들에게 우리 주님의 구원의 기쁜소식을 전하는 이 시대의 바울과 실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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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영생의 말씀이 내 마음의 믿음의 말씀이 되고, 우리 가족의 말씀, 내가 만나는 모든이들의 마음에 심겨지는 복된 말씀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구원과 영생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