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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님을 영접하라 (눅 3:3-6)

에반젤(복음) 2021. 10. 11. 11:24

주님을 영접하라 (눅 3:3-6)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은 815 광복절입니다. 제 75주년 광복절을 맞아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의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에서는 벗어났지만 우리는 아직도 중국 북한 등 이 땅을 공산화하려는 심각한 안보의 위기 속에 살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서 외세의 위협이나 지배가 없도록 애국심을 가지고 항상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감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주님을 영접하라”는 제목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까? 어떻게 예수님을 영접할까요? 요1:12을 보면 예수를 나의 주로 믿는 것이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롬1:21에 죄인의 가장 악한 마음은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했다면 주님 기쁘시게 섬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온갖 아름다운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계3:20-21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하셨습니다. 더불어 먹는다는 것은 천국잔치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메시야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을 통해서 주님을 잘 모시는 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주님을 잘 모실까요?

 

1. 내가 누구인지 깨닫는 것입니다.

 

3절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요한이 전파한 세례는 신약의 세례와 다른 세례입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요한에게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닌데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요1:25) 한 것을 보면 그가 유대교의 제도권 안에 있지도 않았고 세례 역시 유대교와도 아무 상관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된 대로 요한의 세례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죄를 책망하고 죄인임을 인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래야 예수 앞에 나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철저히 자신이 누군지 깨닫는 자만이 하나님을 찾고 구세주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 있습니다. 죄에 대하여 전적 부패, 전적무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 없이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그걸 모르기 때문에 구원자를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양이나 도덕이나 윤리나 선행으로서 스스로 의에 이르고 자기를 완성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스스로 의로울 수 없음을 1450년간이나 교훈하셨습니다. 그 결과가 롬3:20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이 주님을 잘 모시는 준비입니다.

 

2. 오직 예수의 구원관을 갖는 것입니다.

 

4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여기 “곧게 하라”(Make his paths straight)는 것은 구불구불한 길이 아니라 곧은 직행길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어떤 번역에는 “No detours”, “돌아 갈 길이 없는 한 개의 길”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 땅에는 영혼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구불구불한 길들이 많습니다. 이교의 길, 이단의 길입니다. 예수 외에도 다른 길이 있다는 다원주의로도 안 됩니다. 다원주의는 정확히 구속의 진리를 몰라서 온 것으로 거기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정통기독교라 해도 좀 더 알기 쉽게 명료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가장 바른 길은 오직 예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천국 길은 곧은 직선입니다. 한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 길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요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고, 행4:12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안 됩니다.

 

세상의 구도자라는 사람들이 최소한 정직해야 하는데 정직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정직해도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텐데 우주는 왜 있으며 그 안의 수많은 천지만물들의 정교함과 신비함, 그리고 인간인 내가 왜 존재하는지부터 살피지 않은 체, 아무 근거도 없는 무신론에 기반을 두고 자기의 마음을 모든 것의 기원으로 삼는 비약도 그런 비약이 없습니다. 결국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이1:9에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예수+알파도 안 됩니다. 예수 믿어도 우리 교회에 와야, 예수 믿어도 안식일을 지켜야,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의 믿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바로 모시는 길입니다.

 

3. 진실로 회개함이 있어야 합니다.

 

5절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옛날에 임금이 행차할 때는 앞서 길 닦는 사람들이 출발했습니다. 주님이 임하시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애물이 없어야 합니다.

 

죄의 장애물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 였습니다.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책망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고 외쳤습니다. 요한은 세리들에게 물질의 욕심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군인들에게도 급료에 만족하고 약한 백성에게 횡포를 부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죄를 품으면 주님을 바로 모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돋아질 것은 돋아져야 합니다. 더 힘쓰라는 말입니다. 더 강하고 더 담대하고 더 열심하시기 바랍니다. 낮아질 것은 낮아져야 합니다.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십니다. 이처럼 세례요한은 율법을 외쳤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사랑하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롬13:8-10에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했습니다.

 

세상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6:4-5에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다 목숨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믿음, 오직 사랑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열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를 배척한 유대인들도 마15:7-8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없고 자신들의 잘못된 삶만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성경의 교훈을 변조했습니다.

 

4. 주를 위해 더 마음을 쓰시기 바랍니다.

 

마3: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요한의 복장은 엘리야적인 복장이기도 하지만 검소한 옷차림입니다. 약대 털옷은 질겨서 떨어지지 않는 옷입니다. 옷 걱정할 것 없습니다. 금식과 기도로 살던 에세네파들은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눅7:25에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눅7:25)한 것을 보면 요한의 옷은 분명 사치가 아닙니다.

 

음식도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메뚜기가 많고 더운 나라라 메뚜기를 잡아서 바위 위에 올려놓으면 노릇노릇 구워집니다. 배고프면 나가서 메뚜기 잡아 먹으며 그렇게 살았습니다. 화려한 식단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석청은 간혹 발견되기 때문에 있으면 먹고 없으면 먹지 않았습니다.

 

사는데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살기는 옛날보다 더 잘사는데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무엇이 그리 바쁜지 주를 위해서 간소화시켜 가시기 바랍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기본만 갖추어지면 건강지키는데 문제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음식 준비에 분주한 마르다에게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눅10:41-42) 하셨습니다.

 

잠30:7-9에는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 했습니다.

 

바울 역시 딤전6:8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6:6) 했습니다. 고전9:29-31에도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했습니다. 육신의 삶에 집중하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삶의 수준을 낮게 잡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어떻게 모시고 계십니까? 그리고 재림하실 예수님 맞이할 준비는 되셨습니까? 우리 모두 광야에서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던 세례요한의 뜨거운 심장 가지고 예수 없이는 살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오직 예수, 오직 사랑의 갈급한 믿음 가지고, 우리의 삶을 더 많이 하나님께 드려서 주님이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