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절기론 -들어가는 말-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기독교의 특성에 대하여 여러 가지 설명을 할 수 있지만 특히 기독교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啓示)가 ‘시간’이라는 역사 현장 속에서 구체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종교이다. 따라서 시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여 기념하는 것이 기독교의 종교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특성이 종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간단한 예를 든다면 기독교에서 매주에 한 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는 것만 보아도 기독교에서는 이 ‘시간 주기 속에 기념성’이라는 것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알수 있다 본 절기 연구편에서는 이러한 기독교의 절기들을 언급할 것이고 또한 우리나라의 민속적의 절기나 세계의 민속절기, 아울러 세례적 종교에서 지키는 절기들도 다룰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독교의 절기의 독특성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른 종교나 민속절기와 비교할 때 명백한 정체성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Ⅰ. 절기의 의미 Ⅱ. 절기의 형성 Ⅲ. 절기 생활 Ⅰ. 절기의 의미 1. 단어의 고찰 절기의 의미를 고찰하기 위해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절기’라는 단어들을 고찰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는 교회력(Church year)도 그 근원을 찾아가면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민족적, 종교적인 주기 행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서 절기란 일반적으로 축제적인 의미가 강한 잔치(feast)의 성격을 띤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벌이던 축제에도 절기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출32:5,6,17-19). 이것은 순례절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제의 상태가 열광하는 잔치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넓은 의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모이기로 약속한 모든 시기와 때를 뜻하기도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의 3대 중요 절기인 무교절, 칠칠절, 초막절을 의미하는 단어는 נת(하그)로서 이것은 ‘순례를 하다’라는 동사형에서 나온 것으로, 이 절기들의 중요한 특징을 잘 드러내는 단어이다. 즉 이는 이스라엘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기 위해 원근 각지에서 모여 순례하며 절기 의식을 행함을 암시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인들이 출애굽할 즈음에 “사흘 길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출5:3)라고 한 말을 생각게 해준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한 후 시내산으로 순례하며 정기적인 희생 제사를 드리려 했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인들이 일 년에 세 차례씩 예루살렘에 모여 순례하며 3대 절기를 지켜야 했던 것도 이 의미를 돋보이게 한다(출23:14-17) 이상에서 ‘절기’라는 단어를 고찰하여 그 특성을 정리하면 순례적 특성을 통해 발견되는 주기성과 축제적인 특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단어를 고찰함을 통해 나타나는 절기의 특성은 단순히 절기의 표면적인 측면만을 반영하는 것이다. 절기의 진정한 의미는 그것이 내포하는 면을 고찰함으로 분명해지는데 단어적 고찰만으로는 그것이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2. 하나님의 구원 약속 하나님은 역사 안에 개입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 자신을 직접 나타내셨으며 그 역사 안에서 당신의 영원한 구원의 계획을 실현하시기 위해 끊임없이 활동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 역사에 개입하신 이 역사는 한마디로 ‘구언 역사’라고 말 할 수 있다. 이 구원 역사는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드러나는 역사인데 구원이 실현되는 시기(時期)는 3단계로 구분 된다로 말 할 수 있다. 먼저는 구원의 실현이 준비되는 약속의 시기이고, 다음 단계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실현되는 시기이다. 마지막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구원을 교회가 선포하고 적용하는 교회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교회가 절기예배를 드리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삶에 적용키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교회의 시기를 논하기 위해서는 앞의 두 단계를 고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며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철학자나 지식인 등 특정한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들의 혈통적 조상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출3:6)이셨던 것이다. 따라서 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울부짖을 때에도 역사 속에서 직접 개입하셨다. 430년간의 애굽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개입을 통해서 가능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며, 하나님이 자신들의 ‘구원의 하나님’(시79:9)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구원은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그들은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구원을 선포한다는 것은 자신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과 구원 역사를 알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겠다는 헌신(출24:3)을 통해 드러나게 되었다. 이 헌신은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 안에서 그분과 맺은 계약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한편 이런 이스라엘 역사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 사건은 기억할 가치가 있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미래에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보다 더 위대한 역사를 예시(豫示)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들이 선지서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것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루신 위대한 업적을 상기시키면서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루실 새로운 업적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다. 예언의 중요한 특징은 단순히 앞날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실현, 즉 하나님의 결정적 구원 행위에 대한 선포인 새로운 창조와 해방, 즉 메시아에 대한 선포인 것이다. 위와 같이 약속의 시기는 구원 역사의 첫 시기로서 두 가지 특성을 가진다. 그것은 기억의 특성과 예언하는 특성이다. 그러므로 과거에 대한 기억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다, 구원 역사에 드러난 하나님의 위대함을 기억하여 절기를 준수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업적보다 훨씬 더 크고 무한한 하나님의 종말적 원 역사를 예언하는 것에 대한 믿음과 기대이다. 과거의 구원에 대한 기억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더하고 미래에 대한 예언을 통하여 장차 이루어질 위대한 구원 역사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3. 약속의 성취 구약 시대에 약속되었고 예언자들에 의해 선포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실현되었다. 예수께서 오심으로 구약 시대에 선지자들이 말한 ‘야훼의 날’이 도래하게 된 것이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 승천은 구약을 성취하는 결정적 사건이다(도전15:3-7). 이 사건을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계승하는 선택된 새 이스라엘이 된 것이다(갈6:16).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이 되었다(롬9:25-29) 하나님이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으므로(고후1:20) 이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선포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기대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 계시된 미래를 향하여 나가며 믿음과 희망 속에서 그분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은 절기의 준수로도 나타난다. 한편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성취되었는데 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가? 이것은 오랫동안 논란이 되던 중요한 문제로 그것은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사탄의 세력은 이미 결정적으로 손상을 입었고 결박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제거된 상태는 아니라는 종말론적 해석이다. 결정적인 그리스도의 승리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이 결박된 때부터 예수가 재림하실 때까지의 기간이 바로 종말의 때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으로 말미암아 구원 하나의 희망이 아니라 분명한 현실이 된다는 점이다. 그의 삶은 성육신, 죽음,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경이로운 구원의 신비에 대한 표징이다. 이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미래를 향하여, 즉 결정적인 그리스도의 구원 성취를 향하여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가는 역사이다. 성도들은 이러한 역사 속에 살아가면서 구원의 미래를 향해 주도면밀하게 진행되어지는 하나님의 인도의 손길을 느낄 수 있으며 구원 역사의 결정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에 약속되고, 선포된 하나님의 결정적인 구원이 성취된다. 그러므로 구원의 역사는 당연히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이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선행했거나 뒤따르는 모든 구원 사건들은 그리스도라는 프리즘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한다. 결국 절기도 그러한 기반 위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4. 교회에서의 적용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으나 교회의 탄생은 성령강림 사건과 더불어 이루어졌다고 보는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즉 교회는 그 탄생이 구원 사건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교회는 이미 성취된 그리스도의 유일한 구원 사건에 기초하고 있으며 구원 사건을 적용하는 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절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의미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원 사건의 교회적 적용과 밀접히 연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원이 교회에서 적용된다는 것은 결정적인 구원 사건의 최종적 시기임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 부활, 승천으로 말미암은 세상의 영원한 구원을 현실화시키는 영단번적(永單番的 once hor all), 구원 사건이 적용되는 시기인 것이다. 이 시기는 실체화한 시기이다. 특히 하나님의 영감인 성경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제시하여 주며 역사 안에서 계속되는 구원의 신비를 성도들이 받아들이도록 촉구하고 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역사 안에 하나님의 지속적인 구원 개입을 확인하고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오늘도 교회 가운데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구원이 교회에서 적용되는 것은 구원의 완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최종적으로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역사 안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구원 현장에 접근할 수 있다. 그 믿음으로 인한 구원은 확실한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 누리는 구원이 장차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후 누리게 될 천국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적용된 구원은 종말론적이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의 상태는 과거에 역사하신 구원 사건의 적용, 즉 구원의 사실을 간직하는 것이며 한편 미래적으로 완성될 구원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적 구원에 참여함으로 얻어진 구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완성될 종말론적 구원 현실에 우리를 불완전하게나마 참여시켜 주는 것이다. 이렇게 종말론적 구원을 바라보며 임시적으로 참여하는 수단 중 하나가 바로 절기이다. 이 절기는 폭넓은 개념으로서 예배와 성찬, 기도 등 은혜의 수단들도 포함한다. 이 절기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은 종말론적으로 완성될 구원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며 영광 중에 오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는 것이다. 5. 종말론적 구속 사건의 사이클 이상에서 절기의 의미와 관련하여 약속과 성취, 그것이 적용되는 교회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절기의 원리는 구속사적 사건들이 종말론적으로 적용하는 사이클이라고 할 수 있다. 절기의 의미 내지 원리는 인류사 가운데 역사하신 하나님의 구속 메시지의 핵심에 접근하고 있다. 보통 1년을 주기로 한 교회의 절기는 지금까지 수천 년간 역사하신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축소하여 보여 주는 구속 사건의 축소판이며, 그것이 매년 반복됨으로써 성도들의 종말론적 신앙을 더욱 풍성케 하는 것이다. 역사적 구속 사건에 대하여 실생활적 측면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절기(교회력)의 의미이다. 그리스도인은 절기를 통하여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는 하나님이 죄와 죽음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신 구원 역사를 선포하는 것이고, 둘째는 새로운 각 세대에 있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참여하여 풍성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데 있다. 이것을 간단히 요약하면 전자는 선교이고, 후자는 교회 생활을 통한 성도들의 믿음의 성숙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일날 행하는 예배와 마찬가지로 교회력은 우리의 구원에 대한 전체 드라마를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Ⅱ. 절기의 형성 1. 기독교와 시간 교회력의 형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간관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가 요구된다, 기독교의 시간관은 헬라의 시간관과 히브리적 시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헬라적 시간관의 특징은 시간을 영원과 구별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시간이란 영원한 의미나 존재론적 의의를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헬라인들은 시간을 원(圓)적인 것이라는 관념 아래에 시간은 목적성을 가지지 않으며 순환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 히브리적 시간관에서의 시간은 역사적 사건들에 의해 정의된다. 즉 히브리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자신의 뜻과 목적을 성취시키려고 일하시는 배경이 바로 역사의 시간이요 사건이라 강조점을 두고 있으며 시간을 역사의 과거 사건뿐 아니라 미래적 사건들과도 연관시켰다. 2. 기독교 시간관의 중심-그리스도 이러한 히브리적 시간관은 기독교의 시간관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즉 히브리적 시간관은 기독교적 시간관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해되도록 하였다. 그리스도는 모든 역사의 중심이며(시간적중심). 주주의 중심(공간적 중심)이다. 아울러 그리스도 이전의 모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며 미래 사건도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것을 예견시킨다(인과 관적 중심) 이렇게 그리스도를 중심할 때 기독교에서는 세 종류의 시간이 존재한다. 첫째는 성취된 시간이요, 둘째는 그리스도의 강림(Advent)으로 말미암은 현재적 구원의 시간이다. 그리고 셋째는 장차 종말을 알릴 미래의 시간이다. 이같은 시간 이해는 그리스도 사건이 모든 시간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전제에 충실할 때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반복 불가능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기독교는 그 사건을 현재와 미래에 의미를 부여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애를 중심으로 하여 1년을 주기로 교회력을 작성하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 3. 구약 절기와의 연관 기독교의 절기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형성되지만 구약시대의 히브리적 절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신약교회가 처음부터 절기를 가졌을 리가 없고 신약의 초대교회를 이루던 구성원들은 유대인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자연히 구약의 절기를 습관적으로 지켰을 것이다. 따라서 신약의 절기가 구약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구약절기의 핵심은 유월절과 무교절이다. 어원에 있어 전자는 ‘통과하다. 면제하다’라는 뜻의 חספ(페사흐, fp23:5; 민28:16)이고 후자는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תוצםהגח(하그 하마초트, 출12:17)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절기의 기원에 대하여 유월절이 유목민들의 의식이었던 반면 무교절이 가나안의 농업 축제였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절기가 초기에는 개별적이다가 후에 합쳐져 추수기 시작의 이중절기가 되었다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이 절기의 기원은 이스라엘이 애굽의 지배하에 있다가 독립한 출애굽 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출12:14-28: 신16:4) 유월절은 애굽에 장자의 죽음이라는 전대미문의 재앙이 내릴 때 히브리인들이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재앙을 피한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 절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도망하여 나올 때 급히 만들 수 있었던 무교병과 애굽에서의 고난을 기억할 수 있는 쓴 나물을 먹는다. 이 절기의 배경이 된 출애굽 사건은 구약성경에서 수시로 언급되는 것으로 이스라엘 구원 역사의 핵심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 출애굽 사건의 모티브(mdtive)는 신약에 나타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으므로 이 사건이야 말로 성경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신약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 다음 항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한편 구약시대의 중요한 절기로는 오순절(칠칠절)이 있다. 이 절기는 다른 이름으로 맥추절이라고도 불린다(출34:22; 민28:26; 신16:10). 이 절기는 유월절에 하루 동안의 축제로 보릿단을 요제로 드린 때로부터 시작하여 50일째 되는 날 곡식의 수확이 시작되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하는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는 이 절기 무렵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절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칠칠절은 유대인들이 중시하는 율법의 중요성을 고취하기 위해 점차 율법 수여를 기념하는 절기로 변형되어 갔다. 또 수장절 혹은 초막절이라고 불리는 절기가 있는데(출23:16; 34:23), 이는 무화과와 포도 등 과일의 추수를 끝내고 그것을 저장한 후에 드리는 감사의 절기이다. 이절기는 티쉬리(Tishri)월 15일(태양력 9, 10월)부터 1주일간 계속 되었으며 나뭇가지로 초막을 짓고 그곳에 거처하는 관습으로 인해 초막절(ףסא, 아시프)이라고도 불린다(출23:16; 34:32). 이것도 역시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이 초막에서 불편한 생활을 했던 것은 광야에서의 유랑을 기념하며 그곳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어떻게 인도했던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약의 중요 절기는 각각 유월절부터 오순절을 거처 수장절에 이르는 것이 기본 구조가 되어 신약의 절기(교회력)에도 반영되어 나타난다. 4. 신약 절기의 형성과정 1) 유월절→부활절 신약의 교회에 있어 그 핵심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이다. 이 부활의 때가 주 중 첫날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요일들은 주의 날(Lord's day)이 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주일(主日)마다 모여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모임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성경 전체의 핵심인 구원 사건에 가장 밀접히 연관된 사건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이어 나타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초기에 고난의 절기와 부활의 절기가 구분되지 않고 함께 기념된 것이 이것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 신약 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파스카(Pascha)절이라고 하여 고난과 부활을 기념하였다. 파스카의 어원은 분명치 않지만 유월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חספ(페사흐)를 당시의 아람어로 음역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가장 타당하다, 구약 시대의 유월절의 의미, 즉 애굽인들이 죽어가던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재앙의 사자들이 업어가 구원을 얻었던 사건을 신약 시대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 사건과 결부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미지에 있었어도 비슷한 것은 대속(代贖)의 개념이 구약의 유월절과 유사하다는 점을 통해 입증된다. 죄인은 자기의 죄로 인해 죽어야만 하는 운명인데도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으로 인해 신자들은 형벌을 면하게 되었다는 점이 그러하다. 특히 유월절과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절기가 연결되는 점은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고 부활한 시기가 유대인들의 유월절과 연관된다는 측면에서 시기적으로도 부합되고 있다. 2) 오순절→성령강림절 다음으로 중요한 절기는 오순절이다. 예수님의 승천 후 그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모여 전심으로 기도하였다. 그러자 얼마 안 되어 성령이 강림하셨고 그로 말미암아 교회가 시작되었다. 구약시대의 오순절은 추수가 시작되는 절기이기도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중요하게 부여된 의미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것을 기념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유월절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순절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다. 그 때문에 이 절기가 교회의 생일날로 간주되어진다. 오순절을 통하여 신약교회는 교회의 형태를 가지게 됨은 물론 성령의 충만을 받은 성도들이 강격한 힘을 발산하며 복음을 전파하고 기독교의 영역을 확장해 갔다. 이러한 선교를 통해 교회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오순절은 교회의 절기에서 매우 중요한 절기로 자리 잡게 되었다. 또한 오순절은 소집단에 불과했던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무장한 자들이 되게 하였으며 기독교를 세계적인 종교가 되게 하는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도록 했다. 요17:18에서처럼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는 사역이 바로 이때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날은 교회에 있어서 성령강림절로 정착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은사를 충만히 받고 세상으로 나가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하였다. 이러한 성령강림절의 의미는 이 절기가 단순히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 올라가신 그리스도의 승천도 연결하여 기념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리스도는 부활 후 40일에 승천하셨는데 그로 말미암아 성육신-고난-죽음-부활에 이어 구속 사건의 완성적 의미가 분명해지게 되었다. 따라서 부활절이 부활뿐 아니라 고난의 구속사적 사건도 포함하듯이, 성령강림절은 성령강림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천도 포함하여 보다 완전한 구속 사건의 틀을 제공해 준다. 3) 기독교 교회력의 두 축-부활절과 성령강림절 기독교의 절기에 있어서 사실상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은 기본적인 두 축을 형성한다. 부활절과 오순절이 서로 연결되어(오순절은 부활의 날 이후 제 50일째임) 있지 않았더라면 기독교 교회력이라는 것이 제대로 발전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 두 사건은 긴밀한 것이었다(A.O. Miller) 구약의 유월절과 오순절까지의 기간을 일관되게 연결하여, 예표된 구속 사건의 의미를 분명히 하듯이 신약의 부활절과 성령강림절 또한 그러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기독교 교회력의 발달은 사실상 이 두개의 초점을 기준으로 하여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십자가 처형과 부활이 신학적으로 볼 때 전혀 별개의 사건이 아니듯이 승천과 성령강림도 서로 연관되는 구속 사건이다. 이 사건들은 각각 독립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구속사건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해준다. 4) 부과되는 절기들 교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축이 되는 중요한 두 절기와 연관하여 많은 부가적 절기를 추가하였다. 부활절과 연관된 성금요일이라든가. 사순절, 사순절의 시작인 성회 수요일 등은 부가적 절기가 형성된 것의 좋은 예이다. 더 확실하게 추가된 절기로는 주님의 죽음과 연관해 그의 탄생을 기념하는 새로운 절기인 성탄절이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지상에서의 전 생애를 고려할 때 빠진 부분이었던 그의 탄생한 관한 절기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에 앞서 동방박사들에게 보인 현현절(주현절)이 있는데 그 절기는 부활절이라는 중심절기의 앞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이 현현절을 크리스마스와 관련하여 살펴볼 때, 초기에는 그리스도의 신적 현현의 서막을 경축하는 절기로서 크리스마스보다 먼저 지켜졌던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마스가 12월 25일로 지켜진 것은 서방교회의 전통으로 적어도 4세기 이후였던 것이 분명하다. 주님의 탄생일인 크리스마스도 부활절과 마찬가지로 관련된 절기를 발전시켰는데 그것은 대강절로 처음에는 사순절과 같이 여섯 번의 일요일을 지켰으나 차차 네 번의 일요일로 지키게 되었다. 이 대강절은 바로 교회력이 시작되는 절기이다. 교회력이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나타나는 구원 역사를 종말론적으로 기념하여 신앙생활을 돕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강절이야말로 교회력의 시작인 것이다. 보통 교회가 12월에서 다음해 11월까지를 회계연도로 삼고 12월에 1년을 시작하고 있는 점도 바로 이러한 대강절의 전통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Ⅲ. 절기 생활 1. 부가되는 절기들 신약교회는 유월절과 오순절을 각각 부활절과 성령강림절로 수정 보완한 형태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 탄생의 절기를 새로운 보조축으로 제정하면서 해마다. 반년 동안 그리스도의 생애를 회상하는 주기를 따르게 되었다. 대강절에서 시작하여 성령강림절로 끝나는 절기는 1년 중 절반에 해당하는데, 이 시기를 유제기(有祭期)라고 하며 나머지 6개월의 기간은 무제기(無祭期)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무제기를 활용한 교회력이 형성되었는데 그 중 하나가 삼위일체절(Trinity Sunday)이다. 이 절기는 삼위일체 교리가 제정된 이후인 1334년 이후에 교회력으로 채택되었다. 물론 이 교리는 성경에 명시된 것이 아니지만 교회의 신앙의 한 부분으로써 논쟁을 통하여 형성된 신조에 기초한다. 이것이 절기화하여 교회력에 반영된 것은 주님의 생애에 있어서 탄생, 고난, 죽음, 부활, 승천과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로 삼위의 세 위격 안에서 하나님의 전ㄴ체 계시를 조망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는 의미있는 것이다. 즉 이 절기를 통해 교회력의 완벽을 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복음이 각국으로 전파되면서 그 나라나 지역의 특성에 따라 새로운 절기들이 부가되었다. 신년 감사주일이라든가 어린이주일, 어버이주일, 교사주일, 종교개혁주일,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주일, 성서주일, 선교주일, 교회설립 기념주일 등이 그것이며 이 절기들이 성경적인 절기는 아니더라도 그 나름대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한국교회의 실정에 맞게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있다. 특히 이중에서 맥추감사사절이나 추수감사절은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곡식을 추수하게 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절기이며, 그 본질적 성격이 구약의 맥추절이나 초막절과 유사하다. 맥추절은 이스라엘이 보리나 밀 등을 추수하는 때에 감사의 의미로 지키며 초막절은 이스라엘에 9, 10월경 가을 추수를 마치는 시점에서 드린다. 이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비슷하다. 2. 절기 생활의 가치 1년을 주기로 하는 교회의 절기들을 고려한 교회력에 따라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어떤 유익이 있는가? 그것을 몇 가지로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찌, 절기를 지키면 전체 복음을 골고루 강조할 수 있다. 신앙 생활을 하다보면 교회나 교단 또는 지역 혹은 교회 구성원의 경향에 따라 신앙 생활이 어떤 한 측면으로 폊중되어 나타나기 쉽다. 하지만 1년을 주기로 하는 교회력은 예수의 생애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그에 따라 복음이 선포된다면 말씀에 균형을 유지할 수 있으며 복음을 포괄적으로 이해할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절기 생활은 기독교 기본 교리의 내용을 충실히 제공할 수 있다. 거의 모든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하는 사도신경을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이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로 시작되어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언급을 삼위일체절, ’이는 성령으로 잋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는 성탄절,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는 고난일,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는 부활절, ’하늘에 오르사‘는 승천절,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시리라‘는 대강절, ’성령을 믿사오며‘는 성령강림절과 연관될 수 있는 것이다(G. M. Gidson). 둘째, 절기 생활은 효과적인 신앙 생활이나 교회 생활의 과정에서 자동적으로 질서와 연속성을 가지게 하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을 쉬게 배울 수 있도록 한다. 우선 절기 생활, 즉 짜여진 교회력에 의한 교회 생활을 하면 잘 조직된 셩경 일과(Lectionary)에 의해 셩경을 읽을 수 있게 하므로 1년을 주기로 성경 전체를 골로구 공부하게 된다. 셋째, 교회력을 사용하는 절기 생활은 교회의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교회의 정체를 발견하게 하므로 교회에 대한 역사적 시각을 가지게 해준다. 한편 1주일을 주요 단위로 하는 교회 중심의 절기 생활뿐만 아니라 일주일간의 매일에 대한 전례(典禮)적 의미를 고찰하면서 지키는 개인적인 절기 생활도 유용하다. 그것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일요일(주일)-천지창조에서 빛의 창조일이며 주님의 부활일 이므로 빛된 성도의 삶과 부활에 상응하는 일을 하는날 월요일-세상의 일터로 나가는 파송의 날 화요일-시험의 날, 영적 투쟁의 의미가 있는 날 화요일-주간의 중심일로 삶의 주변과 이웃을 특별히 생각 하는 날 목요일-하나님의 백성들을 생각하며 성만찬에 관심을 가지는 날 금요일-예수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하며 고난을 기억하는 날 토요일-그리스도가 장사되셨음을 생각하고 심판과 구원과 세상의 마지막에 되어질 일을 기억하는 날 3. 절기 생활의 단점 절기를 중심한 교회 생활은 많은 유익이 있는 반면 단점도 가지고 있음을 부인 할 수 없다. 첫째, 기계적이고 생동감이 없는 교회 생활이 되기 쉽다. 즉 같은 내용의 교회력과 성경 일과를 매년 반복하다 보면 신앙생활의 생동감이 없어지기 쉬우며, 교회의 강단이나 행사도 1년을 주기로 늘상 같은 설교나 행사가 반복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둘째, 교회력의 갱신에 관한 문제이다. 기본적인 교회절기 외에 각국의 교회에서는 그 나라의 상황에 맞는 교회 절기를 추가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각국의 교회가 추수감사절과 어머니주일을 추가한 것이나 천주교회가 각 성인의 축일과 순교일을 교회의 절기에 반영한 것은 좋은 예이다. 물론 교회력을 갱신하고 현대적인 감각을 가지고 보완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 일에는 위험성도 따른다. 교회력은 성경의 중요한 사실들을 반영함으로 신앙의 위대한 주제들이 선언되며 삶의 주제가 인간 본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이 되게 하는 특성이 있다. 사회나 세상의 세속적 절기나(영국의 고대 수호신 성패트릭의 기념일이 영국교회 교회력에 추가됨) 교회의 목회 프로그램이 포함되는 것은 참된 기독교이 절거에서 떠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J. Westerhof) --------차 례--------- 제 1강 안식일 연구1 안식일의 기원 연구2 안식일의 준수 방법 연구3 안식일의 의미 제 2강 월삭 연구1 월삭의 기원과 준수 방법 연구2 월삭의 의미 제 3강 안식년 연구1 안식년의 어원과 기원 연구2 안식년의 준수 방법과 의미 제 4강 희년 연구1 희년의 어원과 기원 연구2 희년의 준수 방법과 의미 제 5강 유월절 연구1 유월절의 기원 연구2 유월절의 준수 방법 제 6강 무교절 연구1 무교절의 기원과 준수 방법 연구2 무교절의 영적의미 제 7강 칠칠절 연구1 칠칠절의 기원 연구2 칠칠절의 준수방법과 의미 제 8강 초막절 연구1 초막절의 어원과 기원 연구2 초막절의 준수 방법과 의미 제 9강 나팔절 연구1 나팔절의 어원과 기원 연구2 나팔절의 준수 방법과 의미 제10강 속죄일 연구1 속죄일의 어원과 기원 연구2 속죄일의 준수 방법과 의미 제11강 수절절 연구1 수전절의 어원과 기원 연구2 수전절의 준수 방법과 의미 제 12강 부림절 연구1 부림절의 어원과 기원 연구2 부림절의 준수 방법과 의미 제 1장 성경의 절기 1 안식일 · 안식일의 기원 · 안식일의 준수 방법 · 안식일의 의미 2. 월삭 · 월삭의 기원과 준수 방법 · 월삭의 의미 3. 안식년 · 안식년의 어원과 기원 · 안식년의 준수 방법과 의미 성경의 절기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적 상황등과 관련된 절기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절기들은 하나님의 구속사와 관련하여 많은 영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본 장에서는 그 절기들에 대하여 하나씩 살펴보고 그 절기들의 일반적 사항과 내적 의미들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그 절기들을 살펴봄에 있어 우선적으로 다뤄 볼 만한 것으로서 안식일과 월삭이 있다 이것은 절기에 속한 것은 아니지만 절기 행사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생활 주기의 리듬을 제공해 주므로 꼭 다뤄져야만 할 내용일 것이다. 안식일의 개념에서 발전된 안식년이 있는데 이 것은 또한 희년과도 연관성을 가진다. 안식년은 7년 주기로 있으며 희년은 안식년이 7번 지난 다음해 즉 50년째로 해로 지켜진다. 이 절기들은 하나님의 차도물인 자연을 보호하고 또한 가난한 이웃이나 형제들을 돌아본다는 차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 안식년과 희년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 이전에는 제대로 준수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진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것을 책망하셨는데 그 결과 땅은 70년간의 안식을 누릴 수 있었다.(대하36:21). 그것은 단지 안식년이나 희년을 준수하지 않은 것 때문이었다기보다는 다른 죄악들과 관련된 결과였지만 토지의 안식에 비유하여 그러한 징계가 임하였다는 것은 안식년과 희년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있어 그 만큼 중요한 부분이었음을 알려 준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유월절과 무교절이라는 절기를 탄생시켰고 그 절기들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절기로 지켜져 오고 있다. 유월절이라 함은 애굽의 장자를 죽이고 재앙이 임할 때 어린양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이 그 화를 면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이 절기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원을 상징해 주는 매우 중요한 절기이다. 무고절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으 큰 은총으로 해방을 맞은 백성들이 애굽을 급히 떠나오는 과정에서 먹었던 무교병을 다시 먹음으로써 그날의 고난과 환희를 기억하는데 의미가 있다. 칠칠절과 초막절도 이스라엘에 있어 중요한 절기이다. 칠칠절은 유월절에 이어 이스라엘 3대 절기 중 두 번째 절기이며 초막절은 세 번째 절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칠칠절은 오순절로도 불리는데 7주간에 걸친 절기로서 50일간 지속된다. 신약시대의 이스라엘에 있어 칠칠절은 가장 인기있는 절기였다고 한다. 초막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것이다. 나팔절과 속죄일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나팔절은 나팔을 불어 기념하는 날로서 모든 일손을 놓고 안식하며 성회로 모인다. 속죄일은 큰 안식일이라고도 불리며 아사셀의 의식을 행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대속을 예시함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율법에 명령되어지지 않은 절기인데도 이스라엘 백성이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가 있는데 그것은 수전절과 부림절이다. 수전절은 시리아의 압제에 항거하여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탈환한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며 부림절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활약으로 이스라엘을 해하려던 하만과 그 일당을 무찌른 일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본 장을 통해서 얻을수 있는 것은 성경상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절기들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그 절기에 맞는 바람직한 적용이다. 제 1강 안식일 본문 : “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삭과 매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 하리라” (사66:23) 1. 안식일의 기원 · 성서 외적 기원론 · 성서에서의 안식일의 기원 2. 안식일의 의미 ·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 · 사람의 안식을 위한 날 - 해 설 - 안식일은 매 7일 마다 지켜지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절기이다. 이 안식일은 바벨로니아의 달 축제의 잔존이라는 견해와 달이 매 7일마다 위치와 상태가 다른 데서 생겨난 풍습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분명히 이 안식일이 하나님의 처지창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창조 후 7일째에 안식을 취하신 것을 기념함과 동시에 애굽에서 노예 상태에 있던 과거를 추념하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실은 주님의 말씀처럼 안식일은 사람의 쉼을 위하여 있다는 뜻이다. 제 1 강 안식일 요절 :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사과 매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사66:33) 일반적으로 안식일은 매주 제7일에 지켜진 히브리인의 정기적인 절기중의 하나이며, 고대 근동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달(月)의 위상이 중요했던 유대 사회를 반영해 볼 때 안식일과 월삭의 준수는 이러한 주변 국가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대의 절기들은 이방의 종교적 행사와는 그 성격이나 내용이 독특하다. 성경에서는 종종 안식일과 함께 월삭이 언급되곤 하는데 그 만큼 그 둘의 관계는 밀접하고 유사한 점이 있었다. 본 강에서는 이러한 유대 민족의 규칙적인 절기로 인정된 안식일과 월삭의 기원과 준수 방법, 그 의미 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그 본질적 이해에 접근하고자 한다. * 안식일 : 그 시기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지기까지로 다른 종족으로부터 이스라엘을 성별하여 주신 표와 노예로부터의 해방의 의미를 기리기 위함이었으며 상번제보다 2배의 예물을 번제로 바쳤다. 1. 안식일의 기원 1) 성서 외적 기원론 (1) 바벨로니아 기원설 이 이론은 이스라엘인들의 안식일 제도의 기원이 바벨로니아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19세기 중엽에 발견된 고고학적 발굴물들은 유대의 안식일과 바벨로니아의 그것 사이에 많은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시사했으나 실제로는 유사점보다는 차이점이 휠씬 많다. 이중 가장 큰 차이점은 바벨로니아에서는 그날에 상업적인 거래나 생계유지를 위한 활동을 금하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그러한 활동을 하기에 더 바람직한 기간으로 간주하였지만 유대의 안식일에는 어떤 종류의 노동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2) 달(月) 축제 기원설 이 이론은 고대의 달(月) 축제의 형태가 이스라엘인들의 절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견해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느 정도 성서적 뒷받침을 받는 것이기도 하다. 성서는 안식일과 월삭을 자주 연관지으며, 그럴 때마다. 월삭을 먼저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왕하4:23; 사1:13; 암8:8). 유대 전승에 의하면 안식일은 매주의 안식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음력 보름날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안식일은 달의 위상(位相)과는 상관 없이 준행되었고 7일 주기가 끝나는 날에 해당되었는데 이것은 월삭이나 달 축제와는 무관한 것이었음이 성경의 명확한 규정들에 나타나고 있다. 2) 성서에서의 안식일 기원 안식일의 신적 기원에 대해서는 창세기의 서두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안식일이란 말이 사용되지 않았지만 창세기 저자는 하나님이 제 7일을 안식일로 정해 복되게 하고 거룩하게 했음을 알려 주고 있다. 출애굽기에 기록된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은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로 하나님이 그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난 후 안식하고 그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든다(출20:11)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안식일의 본래 목적과 의도를 지적하셨다.(막2:27). 예수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안식일의 신적 기원과 제도화는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그때 하나님은 제7일을 안식하는 날로 정하고 지키는 신적 모범을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제7일을 인간의 용도와 이익을 위해 축복하고 구별하신 것이다. 2. 안식일의 의미 1)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 하나님께서는 그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자신을 위한 직접적인 봉사를 위해 하루를 성별해 놓으셨는데 그것이 안식일이다. 이를 통해 인간들에게 예배를 명하시고 또 그 예배를 받으실 시간을 정해 주신 주권자로 인정받고자 하신 것이다. 또한 이 날은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으로 애굽의 종된 상태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신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2) 사람의 안식을 위한 날 안식일은 사람을 우해 하나님이 정하신 날이기도 하다. 웇20:11에 있는 십계명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제7일에는 수셨기 때문에 인간도 그날 쉬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날에는 일을 하지 않고 쉬면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그의 구속을 기념하는 날로 지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다소 다른 이유가 신5:15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같은 십계명이 언급되지만 안식일 엄수와 출애굽 사건을 연관시켜 사회윤리적인 면에서 안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으로 지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이룩한 공동체에서는 자신들보다 불행한 사람들을 돌봐 주어야 할 인도주의적인 측면을 신명기가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도 상통한다(막2:27) 연구 1 안식일의 기원 본문 :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2:3) 1. 안식일의 기원 · 바벨론에서의 안식일의 기원 · 성경에서의 안식일의 기원 2. 안식일의 발단 · 천지창조에서 시작되었다는 견해 · 종말론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 · 안식일 제정의 기원 3. 안식일인가? 주일인가? · 문제의 제기 · 안식일과 주일의 비교 해설 : 창조질서의 일부분으로 제정되어진 안식일은 그 기원을 바벨론에서 유입된 가나안 원 주민들의 습관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바벨론에서는 만월(滿月)이 되면 축제일과 안식일로 지켰는데 그것은 성경의 안식일 기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한편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안식일이란 하나님의 창조 사역 중 제정된 것으로 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다 마치시고 7일째 되는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으며 안식하셨다. 그 밖에도 안식일은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미래의 안식을 예표하는 것으로 장차 하늘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안식일이 주일과 동일한가에 대해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7일째인 토요일을 주장하는 반면 개신교에서는 ‘주의 부활’을 기억하며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안식일의 기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연구 1 안식일의 기원 요절 :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2:3) 하나님은 창조 사역 후에 스스로 안식을 취하시고, 창조 세계에도 안식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취하신 안식의 기원에 대하여 살피는 것은 창조 세계의 이해를 위하여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행위는 그대로 창조의 질서가 되기 때문이다. 본 연구에서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인간에게 주신 안식일의 시작과 주일과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안식일의 기원 1) 바벨론에서의 안식일의 기원 가나안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일주일의 7번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관습이 있었다. 이런 습관은 자생한 것이 아니고 바벨론으로부터 유입된 것이었다. 바벨론에서는 만월(滿月)이 되면 그날을 축제일과 안식일로 지켰다. 안식(Sabbath)이라는 용어 자체가 만월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전통이 가나안에 유입되고,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이 자연스럽게 이런 관습을 받아들여 야훼 신앙과 결합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축제의 사회 역사적인 측면만을 고려한 이 견해는 성경의 안식일 기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2) 성경에서의 안식일의 기원 성경은 하나님이 그가 창조한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제정한 것으로 그 기원을 설명한다. 이스라엘이 지닌 어떤 문명의 결과로 안식일이라는 절기 혹은 축제가 생겨난 것이 아니고 바벨론 같은 이웃 나라에서 도입된 관습에서 유래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천지창조 후 7일째 되는 날, 모든 창조 행위가 끝난 후 그날을 ‘복 주고 거룩하게 하셔서’(창2:3)안식하심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사실 하나님은 안식이 필요 없는 분이시지만 제7일에 안식하신 것은 피조물인 인간들에게 안식의 근거를 마련하여 주기 위한 것이다. 즉 인간들의 안식의 모델로서 하나님이 직접 스스로 본을 보이신 것이다. 2. 안식일의 발달 1) 이 견해는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차조하시고 7일째 된는 날에는 쉬신 사실이 하나님이 정하신 차조 질서의 우주론적인 질서(cosmo-logical cosmos) 창조의 질서(rule of creation)가 되기 때문에 바로 이 천지창조에서 안식일의 발단을 찾으려는 것이다. 2) 종말론적 관점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 이 견해는 안식일의 발단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계명의 측면에서 이해한다. 안식일의 궁극적인 목표가 장차 하늘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는 종말론적이며 현재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에 안식일을 준수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즉 안식일은 천지창조시에 ‘제정된’ 것이 아니고 미래의 안식을 예표하는 뜻으로 기념되는 것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런 견해는 특별히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은 사건과 연관되어 주장되는 것이다. 3) 안식일 제정의 기원 안식일은 창세기 2장에 의하면 분명히 창조 질서의 일부분으로 제정된 것이다. 하나님의 하나하나의 행위 그 자체는 우주적 질서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 질서에 속한 세계는 모두 안식일을 지켜야 함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안식일은 단지 하루를 쉰다는 의미만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을 예표하는 종말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즉 안식일은 특별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위한 질서이며, 하나님이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신 안식의 때인 것이다. 3. 안식일인가? 주일인가? 1) 문제의 제기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안식일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파’는 문자적인 안식일을 사수하여 일주일의 제7일을 안식일로 지켜야함을 생명처럼 여기는가 하면, 신약 시대에 와서는 안식일이 주일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는 주일이 안식일이라 하여 ‘기독교 안식일’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극단적인 양자의 견해 중 어느 것을 수용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2) 안식일과 주일 비교 유대인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오로지 신체적 휴식을 위한 날이었지 예배의 날은 아니었다. 구약에서 규정하는 안식일 준수법은 신체적 쉼(Sabbath)을 초점으로 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제사는 항상 정해진 성소에서 일주일 내내 계속되었다. 신구약 중간기 동안에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모이는 습관이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신적 명령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의 주일 성수는 안식일의 의미를 능가하는 측면을 지닌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는 신약의 기록은 제자들이 주일에 성찬에 참여하기 위하여 정기적인 모임을 가졌음을 암시한다(행20:7). 즉 주일은 휴식의 개념보다는 예배의 측면이 더욱 강함을 알 수 있다. 물론 주일에 육체적인 안식을 포함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래의 주일은 주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의 날’로서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게 된 것이다. 안식일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규정하는 유대인의 구전법적인 규율들은 예수의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목적이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제정된 것임을 확인시켰다. 따라서 예수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거나 사역함을 주저하지 않으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 안식일과 관련하여 예수의 메시아적 사역이 소개되고 실천되었다는 점이다. 즉 예수는 그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새 질서를 이 세상에 가져오고, 안식일의 요구와 동기를 성취하신 분으로 이해된 것이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대신하여 주의 날에 함께 모여 예배한 것은 바로 이 성취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담고 있는 행위였다. 이런 ‘주의 날’ 개념은 2세기 교부들의 문헌뿐만 아니라 3세기에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자료해설 : 1. 일요일과 안식일 11세기까지 유대교의 안식일은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기독교회의 주일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날이었다. 일요일과 안식일은 서로의 독특성과 내적 의미 때문에 처음에는 두 날이 함께 기념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이방인의 집단들로 확대되었을 때 안식일 준수는 곧 중지되었다. 그것이 결코 이방인 기독교인들을 하나로 묶는 끈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골2:16에서 바울은 개종자들에 관련해서 안식일을 신중하게 비판하고 있다. 사실상 안식일 준수는 곧 유대인 기독교 집단들을 그렇지 않은 이방교회와 구별시켰으며, 안식일을 기념하는 것은 유대교에 교화하는 특징으로 간주되었다. 이그나티우TM 역시 기독교인은 더 이상 안식일을 준수하지 않고 구일에 맞추어 생활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외경인 디다케 14장에 나타나는 특수한 변화, 즉 ‘주일에 맞추어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함께 모인다’라는 표현은 안식일과 구별되는 주의 특별한 날인 주일에 예배를 드리려고 모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토요일이 전례의 날이 된 것은 4세기 이후의 일이었다. 한편 ‘제4계명(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에 대한 추기 기독교의 태도는 후기 로마 가톨릭과 청교도의 안식일 엄수주의와는 전적으로 반대되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안식일 엄수주의는 그 구속들을 일요일을 상징하는 것도 아니었고 죄로부터의 영원한 방향 전환 또는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인 왕국에서의 안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2. 제칠일을 한 주간으로 정함 이방 기독교인들이 유대인 기독교회로부터 주일의 준수를 인계받았다는 것은 또한 그들이 유대교로부터 7일로 이루어진 ‘쥬건’의 개념을 가져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시간 구분 법은 본래 바벨로니아인들에게 유래된 것으로서 점성학에 기본을 두고 있다. 그것은 가나안인들을 통해 이스라엘에 정착하게된 개념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벨로니아인들의 제 7일로부터 그들의 독특한 안식일 엄수 주의를 발전시켰다. 바벨로니아인들에게 있어서 제7일은 중대한 일을 하기에는 불길하다고 여기는 금기의 날이었다. 로마력은 그와는 전적으로 달라서 한달의 calends(초하룻날), nones(7일 및 5일), ides(15일 및 13일)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초기 로마제국에 있어서 한 주간을 산정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생겨나게 된 이유는 그 당시 동방 및 유대의 관습들이 특별히 혼합주의적인 제의들을 통하여 세계에 널리 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로마식 계산법이 복잡하고 부적당하다고 간주했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큰스탄티누스가 A.D. 321년에 최종적으로 ‘태양숭배의 날’을 공휴일로 정한 동기는 비롯 기본적으로 그의 기독교 개종에 의하여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분명히 미드라교의 제의와 유사한 제의들의 영향 및 로마제국에 있어서 태양신이 차지했던 일반적인 중요성에 근거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로마력을 정리하고자 하는 그의 소망에서부터 기인했을 것이다. 사실상 태양신은 콘스탄틴누스 가족의 수호신이었으며 4세기부터는 증대하는 태양신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동화, 즉 크리스토스 헬리오스(Christos Helios)가 존재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요일에 부여된 상징적인 의미는 그리스도와 태양신을 연결시킨 상징이 아니라 주간의 첫날에 일어났던 원창조와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창조 사역간의 시간적인 일치를 암시하는 상징인 것이다. 3. 주일을 준수하게 된 과정 원시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주일을 지켰는가를 정확하게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원시 기독교인들이 그날에 그들 특유의 예배 의식을 가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주일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떻게 주일 이전의 안식일과 연결되는지, 주일은 어느 때였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기독교회의 활동이 공인되었던 2세기에는 매주 일요일 아침 새벽에 성경 봉독, 기도, 설교 및 성만찬을 포함하는 전례 의식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비록 일부 독실한 서방의 기독교인들이 때로 그들의 금오일 금식을 토요일까지 연장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이방교회에서는 결코 안식일 준수가 행해지는 않았다. 그들의 그와 같은 행동은 제4계명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연구 2 안식일의 준수 방법 본문 :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요7:23) 안식일의 준수 방법 1. 성경이 규정하는 안식일에 지켜야 할 특별한 규정 · 금지 규례들 · 안식일에 지켜야 할 것 · 안식일 규례의 의미 2. 언약의 표징으로서의 안식일 3. 예수님의 안식일에 대한 태도 - 해 설- 십계명은 안식일의 준수를 철저하게 강조하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금요일 저녁 해질 무렵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인데 보통은 토요일 하루를 의미한다. 안식일에는 노동을 금하였으며(출20:10) 가정에서 불을 피우는 것까지 금하였고(출35:3) 만약 이를 어길시에는 반드시 죽이도록 규정하고 있다(출31:15) 그러나 안식일에도 합법적으로 허용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결혼 잔치(삿14:12-18), 헌당식(왕상8:65), 진설병 준비(대상9:32), 번제를 드림(대상23:31)등이었다. 일반적으로 안식일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징표이고 영속적이므로, 구약의 율법은 현재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데, 바로 예수께서 모범을 보여 주셨다. 그는 안식일을 복음 선포와 그에 필요한 일에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예수의 권위를 보여 주며 안식일에 대한 건전하고 올바른 이해를 가르쳐 주고 있다. 연구 2 안식일의 준수 방법 요절 :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한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요7:23) 모세오경을 통하여 안식일의 준수는 철저하게 강조되었다. 안식일의 개념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십계명을 받기 이전부터 때때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역시 공식적인 규정은 십계명 안에 나타난다(출20). 시간적으로 볼 때 안식일을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가 질 때까지를 가리키나, 보통은 토요일 하루를 가리키기도 한다. 종종 구약성경에서도 양자를 혼동하여 말하기 때문에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시간적인 규정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음을 상기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이 아니라고 본다. 본 연구에서는 안식일의 준수 방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1. 성경이 규정하는 안식일에 지켜야 할 특별한 규정 1) 금지 규례들 모세오경을 통하여 안식일에 대한 특별 규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누구든지 온종일 일을 금한다(출20:10) 종이나 상전, 이방인을 포함한 모두가 이 규정의 대상이다. 또한 특별한 시간적인 예외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둘째, 안식일의 계명을 어기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출31:14). 셋째, 밭을 갈 때나 곡식을 거둘 때와 같이 바쁜 시절에도 이 규정은 동일하게 적용된다(출34:21). 넷째, 가정에서 어떤 불이라도 피워서는 안 된다(출35:3). 2)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형식적인 규정의 준수 이상의 것을 말함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되새기며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으로 이날을 준수하는 태도가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국가적인 행사로 공식화된 안식일 계명을 지키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마음이 죄악과 욕심과 우상과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가득 찼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한 백성으로 정죄 받았다. 특이한 사실은 안식일이라 하더라도 합법적인 행사는 허락되었는데 그것은 결혼 잔치(삿14:12-18), 헌당식(왕상8:65; 대하7:8), 하나님의 사람을 방문(왕하4:23), 호위병 교대(왕하11:5-9), 진설병 준비(대상9:32), 번제를 드림(대상23:31; 대하7:8). 제사장과 레위인의 의무 수행등이었다. 3) 안식일 규례의 의미 모세오경에 나타난 안식일 계명을 과야 생활에서 처음 주어진 때부터 가나안 정복 전까지의 기록을 통하여 살펴볼 때 안식일에 금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었다. 그것은 생계 유지를 위한 직업적인 일 또는 일상적으로 매일하는 생업을 말한다. 안식일을 구별된 날로 지킨다는 것은 평소에 하는 생계를 중지하는 것으로 현실화된다는 생각을 기본적으로 담고 있다. 안식일을 구별된 날로 보지 않고 다른 날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 자체가 바로 안식일을 어기는 것으로 이해되는 점이 특이하다. 일손이 바쁜 파송기나 추수기에도 동일하게 안식일 규정이 적용된 것이나, 일상적인 가사 노동까지도 금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안식일을 평일과는 달리 구별하여 지켰다는 것을 아수 있다. 2. 언약의 표징으로서의 안식일 출31:13-17에 의하면 안식일은 하나님과 택한 백성 이스라엘과의 언약의 표징으로서 주어졌다. 따라서 안식일은 영속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다. 즉 영속적으로 안식일을 지킴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으며, 그 언약을 지킬 책임을 기억나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는 것과 같기 때문에 사망의 형벌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안식일은 그 의미가 더욱 확대되어 적용되었다. 즉 칠 년을 주기로 돌아오는 안식년(Sabbatical Year, 레25:1-7), 49년 후에 오는 희년(Jubilee)이 바로 안식일의 확대 적용이다. 특히 희년에는 구속자, 해방자,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의 언약이 강조되었다. 희년에는 땅이 원래의 기업으로 복귀될 뿐만 아니라 노예의 해방이 규정되었다. 이와 같이 매희년마다 구원자로서의 하나님을 기념하므로 언약의 표징으로서 안식일의 의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3. 예수님의 안식일에 대한 태도 예수와 당시 유대 율법학자들과의 논쟁을 보면, 마치 예수가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는 안식일에 대한 토라(Torah, 성문화된 율법)의 규정을 전혀 어기지 않았다. 예수는 단지 유대인의 구두 전승에서 규정되는 지나친 안식일 세부 규정에 따르지 않고 안식일 본래의 정신에 따라 행동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위험하다. 예수가 안식일을 지켰으니 오늘날 우리도 당연히 성문화된 안식일 규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규약 시대로의 문자적 복귀를 의미하기 때문에 타당하지 않다. 안식일에 대한 예수의 중요한 태도는 예수가 안식일을 통하여 메시아적 선언과 행동이 발판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실질적으로 안식일 논쟁에서 초점으로 등장하는 것은 안식일 준수의 여부보다는 예수의 권위이다. 단순히 안식일의 법률적인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그리스도 논쟁으로 결론이 맺어지는 것이다. 예수의 안식일에 대한 분명한 태도는 긍정적인(Positive)입장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태도에 가깝다(막2:27, 28). 그러나 안식일의 안식은 영원한 안식과 연관되어 사용되기도 한다(요5,7장). 하나님이 안식일의 계명을 주신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필 수 있다. 먼저 수평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사회 생활에 있어서 노동자, 종, 집에 잠시 유하는 사람들과 심지어 동물에 이르기까지도 모두 이 안식일 규정이 적요된다. 이는 사회적 평등이 균등하게 실현되는 대표적인 경우이다. 실제로 안식일 규정을 근거로 하여 근대적인 평등의 관념이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다. 안식일의 수직적인 측면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설정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거룩하심과 권위가 끊임없이 존속되고 있다는 일상적인 증거로 안식일이 지켜지고 있다는 측면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과 예수의 가르침과의 관련성의 중요성을 이해한 이후 이 안식일을 과거의 그림자로 취급하였다. 그러나 안식일이 담고 있는 ‘안식’의 개념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자료해설- 1. 안식일의 내력(來靂) 1) 하나님이 최초로 안식일을 지키심(창2:2) 2) 천지창조 이후 2500년경부터 제7일에 안식함(출16:23) 3) 제6일에 이틀 양식을 주심(출16:29, 30) 4) 안식일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짐(출31:13,17) 5) 이스라엘 백성이나 안식일이 함께 버림받음(마21:4) 6) 교외에는 구약의 안식일이 그대로 주어진 것이 아님(갈4:9-11; 골2:16) 7) 안식일은 왕국 시대에 다시 지켜질 것임(사66:23) 2. 안식일에 맞이하는 절기들 1) 일하는 엿새 후의 휴식과 휴지(休止)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안식일(출20:8-11) 2) 나팔절: 일곱째 달의 첫날에 안식함(fp23:24, 25) 3) 속죄절: 일곱째 달의 열째날에 안식함(fp16:29. 30) 4) 초막절: 일곱째 달의 열 다섯째 날에 안식함(fp23:34) 5)안식년: 6년 동안 경작 후 한 해를 완전히 쉼(fp25:1-4) 6) 희 년: 안식년이 7번 지난 다음 해 곧 50년마다의 안식년(fp25:8) 3. 안식일의 참된 의미 1)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님(막2:27) 2) 안식일의 주인은 그리스도(눅6:5) 3) 창조주를 기억하며 안식(창2:23; 출20:8-11). 4) 해방의 주, 구원의 주를 기억(신5:12-15; f;a17:21, 22) 5)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함이 안식일의 완성(히4:10, 11) 6) 그리스도안에서 내세에 온전한 안식을 누릴 것임(계21:6) 4. 안식일의 거짓 준수 1) 표리부동하게 행동함(눅13:15) 2) 남을 참소하고자 엿봄(막3:2) 3) 남이 하는 일에 간섭함(요9:10,12) 4) 안식일에 관하여 쟁론함(요9:16) 5) 성구 암송 못하는 자를 정죄함(행13:27) 6)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함(요5:18) 7) 단순한 반복 행위(대하8:13 ; 애2:16) 5. 안식일에 자신을 위한 일을 금지함 1) 직업적인 일(출16:27; 34:21; fp23:3; 신5:14) 2) 취사 행위(출35:3; 민15:32) 3) 매매 행위(느10:32; 13:15, 16; 렘17:17-27; 행1:12) 4) 가구 운반이나 여행(출16:29: 렘17:21-23: 행1:12) 5) 오락 행위(사58:13,14) 6. 안식일 준수 방법 1) 엿새 동안 힘써 일해야 함(출21:9; 31:15; 신5:13) 2) 모든 가족이 함께 지켜야함(출20:10) 3) 부모 공경(fp19:3) 4) 교회 중심(fp19:30, 31:26:2) 5) 미리 준비하는 정성으로(대상9:32; 고전16:2) 6) 존귀한 날(사58:13) 7) 분변함으로 성별함(겔22:26) 7.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길 1)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히4:11) 2) 부르심에 따라 맡은 바를 완수하는 것(4:10) 3)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히4:11) 4) 안식일을 대대로 준수할 것(출31:16) 5) 영원한 언약임을 알 것(fp24:8) 8. 예수님이 지키신 안식일 1) 이삭을 잘라 비비어 잡수심(마12:1, 눅13:10) 2)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심(막1:21, 눅13:10) 3)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심(눅6:6-10; 13:14, 요10:9,14) 4) 기도하심(행16:13) 9. 안식일에 남을 도울 것 1) 말씀을 가르치심(막1:21; 6:2, 눅4:16, 행13:44) 2) 전도 행위(행17:2, 3) 3) 당번직무(왕하11:5-9, 대하23:4, 8) 4) 권면함과 상담역(왕하4:23, 마12:5, 행18:4) 5) 무보수로 병마를 쫓음(마12:10; 눅13:16) 6) 자비와 선행(12:12; 막3:4, 눅13:15; 14:5) 7) 빚을 탕감해 줌(느10:13) 10. 안식일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 1)교회출석(눅4:16) 2) 하나님께 경배(겔46:1-3) 3) 아침 저녁기도와 예배로(민28:9, 10, 마24:20) 4) 성례집행(요7:22, 23, 행16:15) 5)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눅4:16, 행13:14-15; 15:21) 6) 선악을 판별함(겔44:24) 7) 교회건축(왕하16:18) 연구 3 안식일의 의미 본문 :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2) 안식일의미 1 안식일의 정의 · 어원적 고찰 · 적용 범위 2 안식일의 의미 ·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 · 사람의 안식을 위한 날 · 선민된 표시 - 해 설- 유대인들을 다른 민족과 확연하게 구분되도록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사실이다. ‘안식’이라는 말의 히브리어 חונ(누아흐)와 תבשׁ(샤 바트)는 각각 ‘쉬다’ 안식하다. 노동을 그만 두다‘의 개념인데 안식일을 맞이한 백성들은 일손을 정리하고 하루를 쉬면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기억하였다. 그러나 이 단어는 고정된 한 절기에만 쓰이는 단어가 아니라 월삭, 칠칠절, 대속죄일, 초막절 등에도 모두 해당되는 말이다. 이날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기념하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종된 상태에서 구속하신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안식일이 제도화되자 사람들은 그날의 진정한 의미를 잃어버린 채 형식적 의식을 치루어 내기에만 급급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본래적인 안식일의 정신을 가르치려 하셨으며(막2:28), 유대인의 편견과 자주 충돌하였다. 연구 3 안식일의 의미 요절 :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2:2) 1. 안식일의 정의 1) 어원적 고찰 안식이나 휴식을 나타내는 말은 히브리어로 각각 חונ(누아흐)와 תבשׁ(샤바트)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누아흐 동사는 셈어에서 일반적으로 ‘쉬다’ 안식하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많은 경우에 신체적인 휴식과 정신적인 안식 모두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 능동태로 ’휴식, 안식하다’ 혹은 ‘정착하다, 주저앉다’ 등의 의미로 번역된다. 이렇듯 누아흐 동사가 말하는 안식이란 공간적 개념으로는 어딘가에 정착하는 것이고 물리적 신체적 개념으로는 활동을 중지하는 것이며 정신적으로는 마음의 안정, 고요함을 갖는 것이다. 동시에 어떤 쫓기는 상황으로부터의 자유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샤바트 동사는 본래 ‘그치다(수5:12, 사14:4, 호7:4), 노동을 그만두다(창2:2, 3, 출16:30, 23:12, 31:17, 34:21), 땅이 안식하다(fp25:2, 26:34, 35, 대하36:21)’ 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특히 fp25:2이하와 대하 36:21이하에서는 7년마다 땅이 휴지기를 맞이하는 안식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안식과 관계된 헬라어로는 세 단어가 있다. 첫째, 자유라는 의미의 ἄνεσις(아네시스)이다. 아네시스(행24:23, 고후2:13; 7:5; 8:13)는 오직 살후1:7에서만 안식의 의미로 번역되었다. 또한 둘째로 κατάπαυσις(카타파우시스)가 있다. 카타파우시스는 행7:49, 히3:11, 18, 4:1-11에서 안식의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의 안식은 구약의 가나안 정착과 그 정착에서 오는 안식에 비유화된 하나님나라, 즉 천국 생활을 가리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식과 관계된 용어에 히브리어를 음역한 σάββατα(사바타), 혹은 σάββατου(사바토, 안식일, 안식함)이 있다. 이 용어들은 모두 다 안식을 의미한다(막16:2, 9, 눅24:1, 요20:19). 2) 적용범위 위의 예에서도 살펴본 대로 안식일은 그 의미상 고정된 어떤 한 절기에만 쓰이는 단어가 아니었다. 즉 토요일만이 안식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예로는 새 달, 곧 월삭(New Moon)도 안식일이었다는 것과 칠칠절이나(fp23:24, 25), 대속죄일(fp16:29-31), 초막절(23:39), 안식년 등도 안식일(fp25:2)이었다는 성경의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 성경에서 명사로서의 안식일 תבשׁ(샤바트)를 인용하는 회수는 구약에서만 75회인데, 그중에서 35회는 규례적인 안식일을 말하는 것이었고 40회는 주기적인 절기의 안식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2. 안식일의 의미 1)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 안식일이 어떤 날인지는 최초의 안식일 기사(창2:1-3)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명령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이날이 창조주이며 전능자이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저어해졌다는 데에서 그 의의를 발견할 수 있다. 즉 자신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자신을 위한 직접적인 봉사를 위해 하루를 성별해 놓으신 것이다. 이를 통해 인간들에게 예배를 명하시고 또 그 예배를 받으실 시간을 정해 주심으로 주권자로 인정받고자 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 편의 일반적인 의도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을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자신과 교제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 그 교제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셨고 인간으로 하여금 안식일의 준수를 통해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기념케 하셨던 것이다(창2:3, 출20:8-11). 또한 이날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권능과 사랑으로 애굽에서 구속된 사건과 허락하신 약속의 땅에 거하게 된 그 백성에게 안식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인 거서이다. 칼빈은 이날의 의미를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 부활을 기념하고 공적 예배를 드리면서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게 하며, 성별된 생활을 하는 데서 찾고 있다. 2) 사람의 안식을 위한 날 안식일은 바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정하신 날이기도 하다.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바로 그날에는 일을 하지 말고 쉬라는 것이다. 십계명의 표현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제7일에는 쉬셨기 때문에 인간은 그날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출20:11) 이날에는 일을 하지 않고 쉬면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그의 구속을 기념하는 날로 지키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이유가 또 하나 있는데 여기에서는 안식일 엄수와 출애굽 사건을 연관시켜 사회 윤리적인 면에서 안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신5:15).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으로 지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면서,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거룩한 공동체 속에서 자신들보다 불행한 사람들을 돌봐주어야 할 인도주의적인 측면을 신명기가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고아와 과부, 나그네, 레위인을 돌봐주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신16:14) 그러나 이러한 안식일이 제도화되고 율법화되자 유대인은 진정한 안식의 의미를 잊어버렸고 의무적으로 일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식적인 종교 의식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천명하기에 이른다(암5:21-24) 이러한 율법의 엄수주의는 신약 시대에도 계속되었으며, 예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본래적인 안식일의 정신을 가르치려 하셨다(막2:28) 3) 선민된 표시 안식일이 주는 의미는 문자 그대로 일을 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그날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그 구원의 역사를 대대로 기억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의 기원이 하나님 자신에게 있음을 확인하게 되고, 따라서 안식일 엄수는 그들을 다른 민족들과 구분 짓는 표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전 없이도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한 날로 지킴으로써 바벨론 이교 문화권 속에서도 그들이 신앙 전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댓글0추천해요0 스크랩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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