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윤 박사/선교의 창

[스크랩] 선교적 교회론에 대한 고찰

에반젤(복음) 2021. 8. 18. 20:20

선교적 교회론에 대한 고찰

 

I. 시작하면서  

 

교회가 치중해야할 우선적인 사역이 선교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보다는 다른 여러 여건들이 갖추어질 때 수행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다. 교회의 이러한 모습을 지적한 한 바에 의하면, 교회는 예배, 교육, 봉사, 친교, 선교의 사명이 있는데 일차적으로 모여서 예배가 이루어지면 그 모임을 중심으로 교육, 친교, 봉사에 힘을 기울이고, 그 다음의 차원에서 선교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이러한 입장에는 선교의 중요성이 낮은 영역으로 제한되며, 그리고 교회가 해야 할 사명 가운데 주변을 차지하게 되고 만다. 교회가 해야 할 사명 가운데 선교를 낮은 영역으로 제한하는 경향 때문에 어떤 교회가 선교에 치중하는 모습을 띠게 될 때 그것은 그 교회만의 특징으로 평가하거나 아니면 그 교회가 다른 교회보다 뛰어난 프로그램을 가진 교회로 보려고 한다.  

 

이러한 이해는 결국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토대에서 나온 것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과 역할을 수행하는데 적절하지 못한 교회의 모습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가 땅 끝까지 이르는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기독교 선교의 목적인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일을 역동적으로 수행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본고를 통하여 선교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재확인 하는데 목적이 있다. 특별히 선교가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 혹은 사명이라고 할 때 가지는 의미문제를 먼저 고찰하고, 계속하여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성경적인 배경을 밝히며, 교회가 가진 선교적 본질에 대한 내용들을 제시하며, 이어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더욱 잘 실천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적인 방안을 제안한다.  

 

이상과 같은 고찰을 통하여 교회는 피할 수 없이 선교적이란 사실을 이해하며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교회다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려 한다. 교회가 가진 선교적 본질에 대한 이러한 이해가 제자리를 찾을 때 교회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란 사실도 동시에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가 주체이며 선교는 교회의 프로그램이란 차원이 아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세워진 도구라는 이해 위에서 선교의 목적인 하나님 나라 확장에 부합하는 교회의 모습과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을 기대해 본다.  

 

II.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개념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고찰에 들어가기 전에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란 표현이 가지는 개념 혹은 의미 자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란 교회와 선교의 관계에서 선교가 교회의 중심적 요소이고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본질적 사역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하나님 자신의 선교를 수행하기 위하여 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의 하나님이 세상에 선교를 위하여 선교하는 교회를 가지고 계신다는 관계에서 교회와 선교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교회의 선교적인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팀 디어본(Tim Dearborn)은 이러한 교회와 선교의 본질적인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자세하고도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할 임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 보다는 ‘선교의 하나님이 세상에 교회를 가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타당하다.  

 

교회가 선교에 관여하는 것은 삼위하나님의 행동에 참여하는 특권이다. 

 

선교는 교회 생활의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해서는 안 된다(선교가 교회 사역의 순위에 우위를 차지하는 정도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 의미로 봄, 필자의 주).  

 

하나님의 교회가 이 세상에서 어떤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선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선교의 하나님이 이 세상에 교회를 가지고 계신다고 외쳐야 한다.  

 

이상과 같은 설명들에 의하면 교회의 선교적인 본질이란 교회가 주체가 아니라 선교의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로서 자신의 선교를 수행하는 수단으로서 교회를 가지고 계시기에 교회란 선교를 떠나서는 교회다울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III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성경적 근거  

 

교회의 선교적 본질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계시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 12장에서 발견되는 아브라함의 소명은 구약성경에 표현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두 부분으로서 장차 큰 민족의 조상으로 복의 근원이 될 것과 지상의 모든 백성들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어지는 민족은 일차적으로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공동체로서 구약적인 의미의 교회이다. 이러한 구약의 교회는 신약시대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형성되는 신령한 이스라엘로서의 교회로 전환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구약적인 교회 공동체로 형성되는 이스라엘이 인류를 향하여 복을 나누는 하나님의 기간으로서의 의미는 이미 구약성경에 표현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가 어렵지 않는 것은 아브라함으로 형성되는 이스라엘 민족은 “제사장의 나라”로서 하나님과 온 인류를 섬기는 책임이 있는 것으로 그들은 선택의 특권을 누리기 위하여 존재하기보다는 하나님과 인류를 위해 “섬기는 책임과 의무”를 감당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아브라함을 통한 이스라엘의 선택은 하나님의 능동적인 구원의 역사에 수동적으로 순종해야만 했다는 사실에는 “그들의 신앙생활과 선교의 모습은 이방인 중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으로 사는 것이었다(model of presence).”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능동적인 구원 역사에서 수동적인 순종에 의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으로 나타나기 위해서 존재해야 했다는 사실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구약에서 교회를 이루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의 이스라엘이 가지는 기본 임무가 그들의 존재를 통하여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를 알리는데 있었다면 선교적 본질은 강력하게 계시된 것이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교회의 선교적인 본질은 더욱 분명한 것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교사의 원형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교에 의하여 교회가 설립되었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파송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파송 받은 형태를 사도들로 통하여 계승하도록 했다(요 20:21). 이것은 교회란 선교에 의하여 설립되고, 선교를 위해서 존재하며, 선교를 통해서 지상에서 선교를 수행하는 교회가 지속될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만으로도 교회란 선교적인 본질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렇게 성경은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교회의 선교적인 본질을 계시했다면 교회의 선교적 본질은 처음부터 고유하게 주어진 것임을 동시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은 후대에 이르러서였다. 20세기 초반에 들어와서 논의가 활발해진 것으로, 특별히 요하네스 구스타브 바르넥(Johannes Gustav Warneck)의 저서들에서 시작되었고 1937년 인도의 마드라스에서 개최되었던 국제선교사 협의회(The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대회를 통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여기 구스타브 바르넥과 여러 학자들이 논의를 시작했을 때에 “교회의 본질은 선교를 떠나서 정의될 수 없고 선교는 교회가 세상과의 선교적 관계를 떠나서는 정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되면서 활발한 논의가 일어난 것이다.  

 

IV 교회의 선교적 본질의 내용  

 

1. 교회의 태생(胎生)과 관련된 선교  

 

교회는 존재의 기원에서 선교적 태생과 관련이 있다. 그 이유는 선교란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경륜(救贖經綸)에서 발원했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범죄한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신 복음 전도의 창시자이시다. 카이퍼(R. B. Kuiper)는 복음전도의 창시자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쨌든 세계가 있기도 전, 성부․성자․성령 하나님께서 죄인들의 구원을 독자적으로 계획하셨다는 사실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그런 구원의 계획 속에서 세상을 구속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야 했으며, ‘성자 하나님’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세상에 오셔야 했으며, ‘성령 하나님’께서는 죄인들 속에 중생의 은혜를 베푸심으로 구원을 죄인들에게 적용시켜야 했다.  

 

복음전도의 창시자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란 사실은 곧 선교의 창시자 역시 하나님이시란 의미를 포함한다. 그 이유는 복음전도란 곧 선교의 중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선교를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하여, 교회가 복음전도를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다양한 섬김과 봉사를 수행하는 것을 선교로 이해한다. 더욱 쉽게 설명한다면 복음전도를 중심으로 의료 혹은 교육 등의 다양한 섬김과 봉사의 사역을 포함한 포괄적인 사역을 선교로 이해한다. 학자들 중에도 이러한 이해를 견지하는 사람으로 케인(J. Herbert Kane)은 “복음의 구속적 선포”의 활동을 전도로, 전도 활동뿐만 아니라 교회개척, 의료봉사, 교육사업, 농업사업 등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선교로 정의했다.  

 

이러한 이해에 의하면 기독교 선교의 중심요소인 복음전도를 창시하신 삼위 하나님은 곧 선교의 창시자이시다. 따라서 “선교의 요체(要諦)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목적”으로서 그것을 실천하는 최초의 선교 활동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뜻 가운데서 생겨난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스피어(Robert E. Speer)는 “하나님의 존재와 인격에서 선교 사업의 가장 깊은 근거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 할뿐만 아니라 “선교 개념에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전재에서 하나님은 예외일 수 없다”고 밝힌다. 선교란 분명히 인간이나 교회에 의하여 발원된 것이 아니라는 하나님에 의한 창시임을 명확하게 표명하고 있다.  

 

선교가 하나님에 의하여 발원(發源)되었다면 최초로 구원된 사람과 그리고 구원된 사람의 연합으로서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적 실천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한다면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의 선교에 의하여 존재하게 된 선교적 태생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와 관련하여 영(John M. L. Young)은 교회의 선교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서 발원된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은 다음의 진리들을 수정과 같이 밝혀주고 있다. 교회가 세계적으로 선교하는 일의 기초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에 세워져 있다. 그 목적은 곧 모든 족속이 그의 아들을 믿는 자들은 용서하신다는 진리를 듣게 될 것이니 그것을 천사들이 알게 할 것이 아니라 그의 교회가 할 것이요, 그의 사랑에 감동을 받고 그의 영광을 끝까지 들어내므로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계 5:9) 사람들은 그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앤더슨(Wilhelm Anderson) 역시 “선교신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결정적인 인식은 선교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그 원동력을 얻는다는 인식”에 근거해야 하는 것으로 말한다. 코스타스(Costas Orlando E.)는 “복음의 만국 전파”의 실행을 위한 지상의 기구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설명한다. 제이콥스(Donald R. Jacobs)에 의하면 “교회는 구속계획에 있어서 중심이다(The Church is central in the redemptive plan)”고 표현한다.  

 

구덜(Darrell L. Guder)은 교회를 하나님의 활동의 결과로서 인간의 역사 속에 자신의 은혜로운 뜻을 우리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도록 스스로 계시하는 수단으로 기술하고 있다. 파워(John Power)에 의하면 교회가 본질적으로 선교적인 이유는 성경에 분명하게 표현된 하나님의 열망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이었고, 모든 나라에 복음을 전하도록 그리스도의 명확한 명령이 있었으며, 그리고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로 이끌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교회의 책임에서 나타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들은 교회란 기원에서 선교적 태생을 가지고 존재하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기원에서 선교적인 태생을 가진다는 것은 현재 교회의 선교적인 활동과 관련시키기 전에 이미 선교적이란 사실이다. 블라우(Johannes Blauw)는 특별히 이점을 강조하여 “교회는 선교운동의 실태와 상관없이 선교적 교회”라고 표현했다. 그는 계속하여 “선교활동은 독특한 방식으로, 특히 공간적, 인종적 경계들을 초월하면서 교회는 하나라는 교회의 본질을 반영하게 된다. 그것은 교회로 하여금 교회의 존재 기원으로 되돌아가게 하며, 교회의 선교사명에 비추어 교회의 존재와 명분을 재검토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이해는 비록 교회가 지역과 인종에 따라 형태에 차이를 보일 수 있을 지라도 그러한 차이를 초월하여 교회가 하나인 이유는 교회가 존재하게 된 기원에서 선교적인 태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보쉬(David J. Bosch)는 바울에게 있어서 에클레시아(ekklesia)란 용어 자체가 선교적인 특징을 지닌 공동체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계속하여 “부상하는 교회론에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교회의 본질이 선교적임을 고찰했던 학자들과 그들의 입장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선교는 교회의 특별활동이 아니며, 선교활동은 교회의 사역이기보다는 사역하는 교회로 이해하는 입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교회와 선교는 처음부터 결합된 것이기 때문에 교회 없는 선교나 선교 없는 교회는 둘 다 모순인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피터스(G.W.Peters) 역시 에클레시아의 개념이 가진 특성은 단순한 부름의 사람들이 아니라 ̴ 로부터, 그리고 ̴를 향하여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부름을 받은 특별한 류의 사람들로서 서로가 평등과 형제애라는 원리 위에 자신들의 과업을 수행하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 속에 있는 사람들로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에 의하면 교회란 죄와 그 결과로부터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었으며 계속하여 그러한 사역을 과업으로 하나님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란 선교로 시작된 선교를 위한 공동체란 의미이다.  

 

이상의 인용들에 의하면 교회가 존재하고 나서 선교란 과업이 부과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기원이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계획과 실천에 의하여 발원된 선교적인 태생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교회가 존재의 기원에서 선교적이란 의미는 교회와 선교가 불가분리의 관계성 속에 있는 것이다.  

 

2. 교회의 존재 목적과 관련된 선교  

 

 

 

교회가 선교적 본질을 가진 것을 밝힐 수 있는 다는 한 요소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 선교에 있다는 사실이다. 한 유기체가 존재하는 목적은 그 유기체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교회가 선교하기 위한 목적에서 존재 한다면 교회는 선교적인 본질을 가지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란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선교를 바르게 수행할 때 교회가 존재하는 의미와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는 이해 위에서 교회는 선교적인 본질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주님의 사역인 선교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로 선교를 위해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았다”는 표현은 정확한 것이다. 에릭슨(Millard J. Erickson)은 주님이 교회를 존재케 한 것은 교회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의도를 성취하기 위하여 존재하게 한 것으로, 세상에 주님의 사역을 수행하기 위하여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는 계속하여 주님의 지상 사역을 수행하는 교회의 기능에 복음전도, 교육, 예배, 사회관심 등을 열거하여 설명하고 있다. 교회의 이러한 기능은 곧 선교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의 기능으로서 복음전도, 교육, 예배, 사회관심 등의 수행에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선교에 있는 것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선교에 있다는 사실은 곧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존재 목적과 관련한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표현은 “왜 아직도 선교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은 “왜 아직도 교회가 존재하는가”라는 더 중요한 질문을 유발하는 관계를 가지며, 더 이상 교회와 선교라는 표현으로 말하지 말고 단지 교회의 선교라고만 강조해야 한다는 설명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채은수 역시 교회의 선교적 존재 목적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새 언약의 맥락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된 백성이 모인 교회는 세상에 대하여 선교적 목적을 가진다. 베드로가 디아스포라(diaspora)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말이 그것이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하심이라’(벧전 2:9).  

 

바빙크(J. H. Bavinck)는 교회의 존재 목적을 선교와 관련시켜서, “선교란 교회의 활동으로 본질상 교회를 통하여 수행되어지는 그리스도의 활동 이상 아무 것도 아니라”고 표현했다. 벤 엔겐 역시 “교회는 세상 안에서 선교함으로 그의 소명을 실천하게 되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함으로 교회의 본질적인 목적을 발견하게”되는 것으로 설명한다.  

 

블라우에 의하면 교회가 “‘인류를 위한 증거의 사명’을 의식할 때에만 교회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이것은 곧 “‘선교하는 교회’만이 그 자체를 ‘교회’로 부를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교회가 하나님의 일이 아닌 다른 것을 선포하는 그 순간부터 교회는 불충분한 존재가 되며, 세계에 대한 축복과 봉사의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진술한다. 그는 계속하여 “하나의 ‘하나님 백성’이라고 하는 면에서 볼 때, 우리가 어떤 나라에 속해 있든지 그런 것은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없다. 어느 민족, 어떤 나라에 속하여 있든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의 시민 된 의무를 성실하게 감당할 때에만 그는 그 가운데서 복의 기관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란 민족과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서 설립될 수 있으나 그 어떤 교회라도 복의 기관으로서 선교의 목적을 수행하는 것에 의해서 교회가 교회 되게 한다는 의미이다.  

 

브룬너(Emil Brunner)는 교회가 교회됨은 교회의 목적인 선교를 수행함에 있다는 사실을 더욱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불이 타오름에 의해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강조이다. 그 외에도 크라스(Alfred C. Krass)가 교회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선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말하며, 밀러(Donald G. Miller)는 선교를 전 세계에 그리스도의 관심을 표현해 가는 그리스도의 몸 자체로 설명한다. 이러한 이해와 강조들은 교회의 존재 목적이 선교에 있음을 나타낼 뿐 아니라 교회의 존재 목적이 선교라는 사실은 또한 교회가 선교를 수행함으로 교회의 참된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는 것을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선교이고 선교를 통해서 교회가 참된 가치를 표명하게 된다는 사실은 곧 교회의 선교적인 본질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이다.  

 

3.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와 관련된 선교  

 

교회는 그 기원에 있어서 선교적 태생의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 속에 이미 선교가 교회의 주변 과제일 수 없고 핵심적인 과제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선교란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과 관련된다는 의미 속에도 역시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서 따로 선교를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로 강조하는 것은 선교란 교회가 선택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 필수적인 과제라는 사실을 더욱 집중적으로 고찰하려는 의도에서이다.  

 

시맨드(John T. Seamands)는 선교를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로 설명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선교를 선택의 과제로서 이해 할 수 없고 오직 본래적이며 근본적인 과제라는 의미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교회는 단지 선교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선교이다. 교회는 그저 선교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그러므로, 선교는 부차적이 아니라 본래적이며, 선택적이 아니라, 근본적인 것이다. 선교는 교회의 일차적인 사역을 구성하는 바, 우리 주님께로부터 위임받은 바로 그 사역이다....교회는 하나의 선교, 곧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며 주님께서 직접 성취하려 오셨던 그 선교를 성취하는 하나의 선교를 가지고 있다.....교회는 그리스도의 선교라는 목적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교회의 생동성은 교회의 선교성에 의존하고 있다.  

 

시맨드가 교회를 곧 선교로 이해하면서 교회의 생동성을 곧 선교성에 있는 것으로 설명하는 내용 속에는 선교가 교회의 필수적인 과제임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교회가 모든 관심과 힘을 선교에 쏟아야 한다는 사실 역시 선교가 교회의 핵심적인 과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때로 어떤 교회들을 선교란 교회가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여력(餘力)이 있을 때 해야 하는 과제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의 회중 숫자나 재정적으로 상당한 수준에 임해야 선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선교적인 본질을 가졌다는 사실은 교회가 힘이 남을 때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교회의 모든 힘을 선교를 위해 쏟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윤식은 선교를 사도적 선교의 공동체로서 교회가 힘이 남을 때에 해야 하는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교회는 선교를 필수적으로 행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교회의 선교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예배, 교육, 봉사, 친교 등의 교회의 사명들 가운데 그 중심축에 선교가 자리를 잡아 서로를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동력화 시켜 사도적 선교 공동체의 이상을 실천시켜야 한다. 21세기는 교회의 사명 전체가 사도적 선교와 연결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성서도 선교야말로 힘이 남으면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류 구원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인간의 사명이요 임무(missions)라고 말하며, 교회는 사도적 선교 공동체임을 증언하고 있다(딤전 2:4-5, 마 28:19-20, 행 2:41-47).  

 

콜만(Robert E. Coleman)에 의하면 선교의 명령으로서 예수님의 명령은 전체 교회에 주어진 의무이며 삶의 방법이어서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도 없고 대체할 수도 없어서 학교의 과목들 가운데 반드시 선택해야 필수과목과 같다고 말한다. 교회가 선교를 필수 사역으로 수용한다는 사실은 자연히 교회의 구도(構圖) 역시 선교 중심체제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전환에 필수적인 사실은 교회가 모임을 강조한다고 해도 모임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잘 흩어져 능력 있고 효과적인 사역을 수행하는 의도 속에서의 모임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요약하여 정리해 본다면, 선교를 교회의 필수사역으로 이해하여 교회와 선교를 하나로 보는 이해와 교회는 힘이 남을 때 선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힘을 기본적으로 선교 수행에 쏟아야 한다는 이해 속에는 교회의 선교적 본질이 담겨있는 것이다.  

 

4. 교회의 존속과 관련된 선교   

 

교회의 존속(存續)은 선교와 관련이 있기에 교회는 선교적인 본질이 있다는 의미이다. 이 사실의 이해를 위해서는 먼저 교회의 형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지역교회(local)와 우주적교회(univesal), 가견교회(visible)와 불가견교회(invisible), 제도로서의 교회(institution)와 유기체로서의 교회(oganism), 전투교회(militant)와 승리교회(triumphant), 그리고 정적교회(static)와 동적교회(dynamic) 등으로 나눈다. 이러한 교회의 형태들 가운데 승리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천상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형태의 교회이다.  

 

여기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교회존속 사역에서 설명하는 입장에서의 교회는 지역적이고, 가견적이며, 지상에서의 사역을 위해 투쟁해야하는 전투교회의 형태에 더욱 관계를 가진다. 다시 말하면 지역의 교회가 선교사역을 통해서 또 다른 교회가 설립되게 하는 형태를 계속함으로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그리고 땅 끝까지 존속해 가게 한다는 의미이다. 선교하는 교회가 또 다른 선교하는 교회를 존재케 함으로 선교하는 공동체로서 교회가 지속하고 아울러 선교가 지속되게 한다는 입장에서 교회는 선교적인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선교란 교회가 하나님의 구속경륜(救贖經綸)을 수행하도록 위임된 사역이라면 교회가 지상에서도 세상 끝까지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교회란 세상 끝 날까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언급한 천상(天上)의 승리교회는 영원히 영생을 누리는 공동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상에서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수행하는 형태의 교회는 세상 끝 날까지 존재해야 하는데 이러한 의미에서의 교회가 지속적으로 설립되게 하는 방식이 곧 교회의 선교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선교의 결과로 설립되며 그리고 선교를 통하여 존속해 간다는 개념은 “교회는 사도직의 결과이다”라는 표현 안에 함의(含意)되어 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선교 사역을 통해 생겨났으며, 또한 “사도들은 교회를 세우는 특권과 의무를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다른 모든 일의 근거가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러한 이해는 교회가 사도성(使徒性)을 계승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를 존속케 하는 수단이 곧 선교라는 의미로 받아드릴 수 있는 것이다.  

 

영(John M. L. Young)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받은 직분들을 통하여 고백에 의한 교훈을 전파하기 위하여 교회는 그것(교회의 사도성을 위한 신앙고백, 마 16-16-19)을 받았는데 그것에 의하여 또 그것 위에 교회의 확장이 되어 질 것이다. 그 교훈을 모든 족속에게 가르침으로 그렇게 할 것이다. 교회가 교회를 선전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사도행전에서 이러한 사실을 파악한 임영효는 “선교의 결과는 교회로서의 공동체의 형성이었으며, 교회는 스스로 세상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의 전달자로 여겼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여 준다”고 말한다.  

 

여기 교회가 선교의 결과라는 의미는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조에 의하면, 성경에 나타나는 빛, 소금, 누룩, 진리를 떠받치는 기둥, 하나님의 사자, 씨앗을 뿌리는 농부, 예배의 전, 십자가 등이 모두 교회의 본질과 선교를 나타내는 비유들인데 이러한 모습들이나 명령들은 결국 “교회가 하나님 선교의 결과요 참여자라는 사실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교회는 선교적인 본질을 이루는 선교 사역을 통하여 지상에서 교회가 확장되고 계속되게 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케네디(John Kennedy)는 “교회의 교제는 하나님의 백성의 세움과 세상에서 그들의 증거를 위한 기초라”고 함으로 선교를 통한 교회의 존속을 표현한다. 즉, 선교에 의해서 교회의 설립이 이루어지고, 세워진 교회는 또한 세상에 증거를 위한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신내리 역시 탈교회 중심의 선교를 경계하여 조직 교회의 선교적인 책임을 강조하면서, “사도행전은 가르치기를, 선교는 조직 교회에 의하여 그를 통하여 수행되었고 또한 올바로 수행된 선교의 결과가 바로 조직 교회였다”고 강조한다. 블라우는 “복음전파란 세상이 아닌 바로 교회 자신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고 강조했는데 선교에 의해서 교회가 존재를 계속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이것이(선교) 있음으로써 과거의 교회가 하나님의 의지 세계에 있었던 것이며, 지금 세계 안에 세계를 위해 존재하며, 또한 그로 인해 역사 완성의 때까지 교회는 존재”하는 것으로 밝힌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의 결과인 교회는 선교에 의하여 존속되며 확장된다”는 진술 역시 동일한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스나이더(Howard Snyder)에 의하면 교회가 선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복음전도의 대행자(代行者)이면서 아울러 결과라는 표현을 통해,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있고, 선교를 위해서 있는 교회의 선교에 의하여 또다시 선교할 수 있는 교회를 세워나가게 된다는 것을 피력했다. 

 

이상에서 4가지의 개념을 중심으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파악한 바에 의하면 교회는 선교적 태생에 의하여 존재하게 되었으며, 선교를 통해 존재하며, 그리고 선교함으로 교회다움을 나타내는 관계성 속에 있음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제이콥스(Donald R. Jacobs)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의 임재 안에서 만나며 그의 주되심에 개인적이며 협동적인 삶을 복종하는 곳에 존재하는 단체로서의 교회는 세계선교를 위한 하나의 센터라는 것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연합하고 성경의 권위 아래 자신을 놓는 어떤 단체든지 선교적 위임에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말한다. 벨코프(Hendrikus Berkhof) 역시 세상을 구원하는 성령의 역사 가운데 교회는 임시 대합실과 같이 그리스도와 세상 사이에 있어야하고 동시에 서로 연결시키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피력하고 있다. 선교란 교회에 위임된 본질적이며 핵심적인 사역이라면 교회는 선교를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선교를 피하는 교회는 교회됨을 포기하는 행위이며 교회를 존속케 하여 세상 끝 날까지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는 일을 중단시키는 행위에 포함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V 교회의 선교적 본질의 수행을 위한 원리적인 방안 

 

(“선교의 지속적인 실천”을 교회의 표지(標識)에 상응하는 이해의 검토)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의하면 교회와 성도가 선교적인 사명을 결코 피할 수 없으며, 교회가 교회되게 하고, 성도가 성도답게 하는 본질적인 사명이라는 사실이 확증되었다. 이러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의 수행을 위한 원리적인 방안으로서 “선교의 지속적인 실천”의 개념이 교회의 표지에 상응하는 이해를 얻을 필요가 있다.  

 

개신교의 종교개혁 운동은 교회의 표지를 정립함으로 교회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특별히 벨직 신앙고백(The Belgic Confession)은 교회의 표지를 “말씀의 순수한 선포”, “성례의 올바른 시행”, “권징의 신실한 시행”이란 3가지 요소로 표현했다. 여기 말씀의 순수한 선포에는 복음전도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의 순수한 선포라는 표현은 설교하는 내용이 본문에 담긴 정확한 의미가 담겨지는 선포를 해야 한다는 것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진 표현이다. 말씀의 순수한 선포라는 표현에 교회가 선교를 반드시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내기에는 거리가 있다. 따라서 선교의 지속적인 실천의 의미가 교회의 표지에 상응하는 이해와 중요성을 가지게 된다면 교회와 선교는 더욱 불가분리의 관계성 속에서 선교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원리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특별히 선교의 지속적인 실천을 교회의 표지에 상응하는 요소로 포함시켜도 지나친 주장이라고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서 고찰한 교회의 선교적인 본질의 내용에서 드러난다. 선교가 교회의 태생과 관계있으며, 교회의 존재목적과 관계가 있고, 교회의 핵심사역들과의 관계된 요소라면 교회가 교회다움을 위한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선교가 교회의 존속과도 관련되는 요소라면 더욱 더 교회의 생사가 걸린 관계이기에 선교의 지속적인 실천은 교회의 표지에 상응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벤 엔겐은 직접 교회의 지속적인 선교의 실천을 교회의 표지에 포함시키는 것을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몰트만(J. Moltmann)이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교회 밖의 세계와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교회 밖의 세상은 전쟁과 불의, 비인간적으로 나뉘어진 곳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속성을 말씀과 성례로만 보는 내적 성찰을 반드시 바른 태도라고 할 수 없고, 내적 성찰과 동일하게 세상을 향하여 밖을 보는 외적 성찰도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교회 내의 활동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증거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밴 엔겐이 말씀선포와 성례의 시행만을 교회의 참된 모습으로 보기에는 온전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는 몰트만의 입장을 동의하면서, 자신은 선교하는 교회가 참교회로서 자라가는 것을 강조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가 되게 하고 성결하게 하고 화목케 하며 선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이다. 선교는 교회의 분질에서 분리된 것이나 첨가된 것이 아니다. 지역 교회의 핵심적 본질은 선교이며 그렇지 않은 교회는 실제로 교회가 아니다...그러나 지역교회가 선교하는 교회의 본질을 이해하고, 선교활동들을 하며, 선교하는 공동체로서의 삶을 의식적으로 살아나가면 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로서 자라가게 될 것이다.  

 

이광순 역시 “예배하러 모인 성도공동체(communio sanctorum)는 그리스도의 마지막 분부를 수행하기 위하여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교회는 선교를 통해서만 참교회일 수 있고,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이미 참교회라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펼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입장들에 의하면 비록 선교의 지속적인 실천을 교회의 표지에 포함시키는 것을 직접적으로 제안하고 있지는 않으나 선교의 실천이 참된 교회로서 자라가는 표현임에 틀림없는 것으로 밝히고 있는 입장임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스코그런드(J. E. Skoglund)는 기독교 선교의 중심으로서 복음전도를 교회의 주된 임무로 해야 할 것과 이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위임할 수 없는 필수적인 일임을 강조하면서, 선교가 교회의 필수적인 사역이기에 교회의 표지 그 자체가 되게 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교회의 주된 임무는 세상의 길모퉁이에 서서 “복된 소식이 임했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무시함으로써 이 의무를 피할 수 없다. 또한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위임할 수도 없다. 교회와 선교는 하나이며 어떤 식으로든 따로 분리될 수 없다....선교는 결코 교회를 나타내는 표지들 중에 하나쯤으로 여길 것이 아니다. 선교는 교회의 표지 그 자체이다. 소위 다른 모든 표지들이 합법적이라면, 선교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그리스도가 성령을 통하여 교회에 약속한 그 권능은 증거 하라는 권능이다. 교회의 모든 다른 활동들은 선교라는 본질적인 과제로부터 파생되어 그것에 의해 판단되어져야 한다.  

 

 

 

VI 결론  

 

지금까지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대한 의미를 고찰해 왔는데, 그것의 의미 속에는 교회의 존재의 원인도, 존재하는 목적도, 존재의 방식도, 존재의 결과도 선교와 관련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교회란 선교와 하나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 수용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의하면 교회는 선교에 의해 세워진 토대 위에서 선교를 위한 관심과 힘을 쏟는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가 교회성장이나 교회 자체에 목적이 있는 모습들로 나타나거나 교회가 친교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선교를 지상명령(the Great Commision)으로 위임받은 교회의 사도성을 약화시키는 모습을 띄고 나타나는 것은 모두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교회는 선교를 교회의 본질로 하는 삶을 지속하기 위한 제도 안에서 선교적인 삶을 지속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교회의 선교적 본질은 교회에 주어진 하나님의 특권이며 의무이기에 만일에 “교회가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께서 위임하신 사역에 실패한다면 하나님의 책망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선교적인 본질을 수행하는 교회가 되게 하는 원리적인 방안으로서 “선교의 지속적인 실천”의 개념이 교회의 표지에 상응하는 중요성을 가지도록 이해시켜 나가는 방안과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 그러한 방안들을 위해서는 더욱 신학적인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교회의 표지에 상응하는 내용으로서 선교의 중요성을 이해해 나간다면 교회가 더욱 선교적인 본질을 수행하는 교회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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