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파노라마/- 구약의 파노라마

[스크랩] 스크랩 구약의 성경총론[4]

에반젤(복음) 2021. 8. 17. 22:13
1-11장은 원역사로서 하나님이 인류 전체를 데리고 인도하지만 실패햇다는 것이다.
이제 12장부터 개인인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것을 보는데
아브라함을 부르신 배경을 11:31절에 보여주고 있다.


 
[창 11:31-32]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으며[32]데라는 이백오 세를 향수하고 하란에서 죽었더라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자식 없는 상태에서 시아버지 데라가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에 갈려고 햇다 그러면 저들은 하나님이 가라고 할 가나안 땅을 미리 알고 목적지를 가나안을 정하고 떠나는 것인가?
히브리서는 갈바를 모른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목적지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이라는 목적지는 알고 있다.


하나님은 저들에게 가나안에 가라고 한 적이 없는데 왜 가나안을 갈려고 하는가?
이것은 성경에 이미 암시 되어 있는데 우리가 찾지를 못하는 것이다.
문서화된 예언은 아니지만 암시적으로 되어 잇는 곳이 많다.
확실한 것은 모두 알지만 암시된 것은 찾고 관찰하는 자에게만 보인다.


저들은 왜 가나안으로 갈려고 하는 것일까?


노아 때 가나안이 저주 받는데 가나안은 셈족의 종이 되라고 한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지금 함의 자손들이 모두 살고 있으니 셈족의 종이 되라고 하는 것에 암시되었기에 함 족이 살고 있는 가나안에 가서 저들을 종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축복과 저주를 내릴 때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암시적으로 말한다.
그것을 조상들에게 들은 데라가 아브라함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다.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창 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것이 첫 번째 명령인가? 두 번째로 본다.
두 번째 이라면 창11:31절에 가나안으로 가려고 했던 것은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기에 가게 된 것으로 보며 목적지인 가나안을 과거의 일을 유전으로 알고 있기에 그곳에 목적을 두고 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목적지를 분명 말하지 않았는데 목적지를 정하는 것은 유전으로 내려온 말씀 속에서 암시적으로 알고 있기에 가는 것이다.




[행 7:2-4]
2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3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4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스데반 집사의 설교를 통해서 아브람이 창12장 이전에 한번 부름 받은 것을 알게 된다.
데라가 죽으니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는데 그것이 창12장이 된다.




아브라함은 혼자 떠나지 못할 만큼 아주 연약하고 결단력이 없는 자이다.
이런 자를 불러다가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한 자로 만들어 자신의 가장 귀한 보배를 하나님에게 드릴수 있는 자가 된다.
자식을 바친 것은 나의 가장 귀한 목숨을 드린 것이 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 자의 모습이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약한 자를 부르사 강하게 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서 약한 자를 불러서 만들어가는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우리 삶에 샘플이다.


아브라함을 불럿는데 온 식구가 모두 떠나게 되는 것은 그가 아버지 데라 에게 말하고
아버지 데라는 비록 우상 만드는 장사를 하지만 과거에 부모로부터 들은 것이 있기에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 같이 길을 떠났을 것으로 추론한다.


아브라함 태어날 때 까지 노아가 살아 있었다[연대를 계산해보면]
그들이 사는 곳이 아라랏 산 그 부근이 되는데 이것은 노아가 살아서 과거의 삶을 전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데라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필요로 하기에 데라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신다.
상업지역인 하란에서 장사가 잘되니 아버지는 그곳에서 살다가 죽는다
그 후에 다시 나타나서 복의 근원되는 언약이 추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되어 지게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잇다.
믿음으로 부름 받은 자가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되어 가는가를 보아야 한다.
데라를 떼어 놓고 이제 롯을 떼어 놓게 된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 불필요 한 것을 죽음으로 떠나게 하든지 분쟁으로 떠나게 하든지 해서 아브라함 혼자 갈 수 있게 만들어 간다.
혈육이 아닌 하나님의 씨를 주려고 하는데 아브람은 계속 세상 적인 혈육을 바라보므로 그것을 깨뜨리기 위해 기다린다.[오늘도 나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목적
창12:2-3절에 아브람의 언약이 주어지는데 이것은 중요하다.
그는 복덩어리가 되어 가는 곳마다 복을 받고 그의 씨를 통해서 만민이 복을 받는 것이다 너를 중심으로 해서 온 세상에 복이 퍼지도록 하겠다고 한다.
너를 통해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하시겟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택 목적이다
그래서 오래 참고 보호하고 그를 통해서 일을 이루어 가고 있다.
복덩어리가 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아브라함의 훈련
그를 만들기 위해 주위의 모든 것을 떨어버리고 이제 애굽으로 내려가게 한다.
그곳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이 철저히 드러나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확실히 드러난다.
 
부름 받은 자가 언약 받고 처음 받는 훈련이 환경이 된다.


1.환경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환경적으로 변화가 생겨 어려움이 오는 자가 있다.
어떤 자는 환경적으로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잇는데 좋아지는 것은 미혹이며 나빠지는 것은 고난의 시련이다. 이것에서 지면 안된다.
미혹도 고난도 모두 이기기 힘든 싸움이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약하니 환경을 피해서 애굽으로 가게 된다.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잘못인가 잘한 것인가? 무조건 잘못은 아니다.
신앙이 되어진 수준에서는 잘못한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준이 다르니 그렇구나 하며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책망이 없다 너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 에서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하나님이 그의 행동에 책망하지 않는다.
그의 수준을 하나님이 알기 때문에 책망이아니라 보호해주신다.
그리고 은금보화를 가지고 나오게 된다.
아브라함이 한 것은 환경 피해 가고 거짓말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부자를 되게 하여서 나오게 한다. 이것이 처음으로 주는 시험인데 실패한다.


 
2.사람관계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창12:15바로 왕 에게 아내를 내어준 아브라함
사람의 관계에서 하나님이 바로 책망하고 아브라함에게 부자가 되게 한다.
그 후에 창13장에 아브람과 롯의 관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아브람이 아주 큰마음을 가지고 롯을 대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브라함이 처음 시험의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이 있기에
두 번 째 인간관계의 시험에서 배운 것이 적용된다.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부자 되어서 나올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안다.
그는 바로가 무서워서 거짓말 하므로 바로 왕에게 망신만 당하여야 하는데 하나님이 바로에게 겁을 주어 아브라함을 두려워하게 만든다.


이것을 보고 하나님이 함께 하니 원하지 않는 부도 생기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롯과의 인간관계에서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하는 여유가 생긴다.




아브람과 롯의 식솔이 늘어나서 한 곳에 있기 힘드니 아브라함이 그를 내어 보낸다.
조카가 욕심 부리는 것 알지만 먼저 배운 것을 적용시킨다.
우리는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실패가 약이 된다.
그런데 실패를 통해서 배운 것이 없으면 고생보따리이다.
두 번 째 시험인 인간관계에서 아브라함은 성공한다.






나이가 많은 아브라함이 먼저 선택할 수 있었지만 그는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준다.
아브라함이 먼저 좋은 곳을 택해 갔으면 롯이 아브라함을 인정하지 않앗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여유를 부리니 그를 인정한다.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심을 알면 사람 관계 속에서 절대 욕심 부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이다.]
그리고 그는 전쟁하고 물품을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처음 실패에서 배운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본 것이다.
동서남북을 바라보면 그것을 모두 준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이다.
하나님을 아니 그것을 가지고 부자 되엇다고 자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었다는 것을 알면 자랑하지 않는다.
내 실력으로 하지 않은 것을 알기에 자랑하지 않는다.


나는 못하는데 하나님이 모두 주니 여유가 생긴다.
 
하나님을 알아 나가는 과정이 아브라함의 생애이다.
너를 불러내어서 이렇게 너와 네 후손에게 주는 자를 알라고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말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이삭을 바치게 된다
이러므로 가는 인정받고 믿음 생활이 끝난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믿지 못한다.
하나님이 말하면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인정받고 기록이 없다.
가장 귀한 것 내어 놓으니 가르칠 것이 없다.
보잘 것 없는 것도 내어놓지 못하는 자들이기에 우리는 아직 멀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모델이다.


그의 모습을 잘 보라
환경을 이기지 못하고 혼자 떠나지도 못하는 모습이지만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가 마지막에 이삭을 바친다.
우리는 나의 약함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에게 붙들리기만 하면 환경시험, 인간관계가 나도 되는구나 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최경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