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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회의 순결이 힘입니다(행5: 1- 11)

에반젤(복음) 2021. 8. 17. 17:24


교회의 순결이 힘입니다(행5장1- 1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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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순결이 힘입니다(51- 11)
성경본문: 사도행전5:1-11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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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이후 첫번째 주일입니다.
봄이 무르익는 계절에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십니까?”.
금방 아멘하시는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잘 안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잘 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 여학생과 이야기하다 들은 말이 기억납니다.
그 여학생은 집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이 설거지랍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좋아하는 남자 친구네 집만 가면 자기도 모르게 설거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그렇게 싫은 데 남자 친구 집에만 가면 설거지가 왜 좋은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그 이유를 말해 드리겠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한 것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하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 이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간단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그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싫어 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원칙인데 그것이 언제나 100% 잘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은 데 잘안된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죄를 지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 사람입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실까요?
행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초대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참 아름다운 부부입니다.
우선 이름이 아름답습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이고, 삽비라는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사파이어란 말이 삽비라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유대인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은혜로 양육되고 사파이어같은 귀한 존재로 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에 성령이 임하자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자기 재산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이미 4장 37절에서 바나바도 자기 재산을 팔아 사도들앞에 내놓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것을 보면서 우리도 해보자 해서 자기 소유를 팔았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붙잡는 마지막 끈이 물질욕입니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물질욕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부는 소유를 팔았습니다.
대단합니다.
믿음이 아니면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소유를 판 뒤에 일어났습니다.
믿음대로 소유를 팔기는 팔았는 데 그것을 하나님께 내놓는 과정에서 그만 실수하고 말았습니다.
2절입니다. 행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앞에 두니”.
그들은 땅을 판 값의 얼마를 감추었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구약에도 나옵니다.
아간입니다.
아간이 여리고를 정복한 뒤 노략한 물건 중에 얼마를 탐내어 감추었습니다.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 벌, 은 이백 세겔,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입니다.
둘 다 공통점은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아간도 감추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감추었습니다.
이 “감추다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이 말을 원어로 보면 “자기 몫을 떼어 놓았다”, “자기 몫을 따로 챙겼다”는 뜻입니다.
바치고자 했으면 다 바쳤어야 했는데 자기몫부터 떼어 놓았습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남들이 안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중에 일부를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잘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두 사람 다 죽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4절을 보겠습니다. 행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이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여기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문제가 나타납니다.
그들의 문제는 소유를 팔아 그중 일부만 드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땅을 팔기 전이나 판 후나 소유권은 여전히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신 것은 하나님께 일부만 드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부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적게 드린 것은 있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거짓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분명 아까왔을 것입니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다 드립니까?
다 드리면 우리는 어떻게 삽니까?
하나님은 거기까지 아셨습니다.
이들이 처음의 생각대로 다 못 드리고 아까운 마음으로 적게 드린 것도 아셨습니다.
그들은 분명 인색했고 처음 생각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까지도 좋습니다.
문제는 거짓말입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거짓말이 문제였습니다.
인색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거짓말 한 것은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합니다.
어쩌면 이들은 처음부터 믿음도 없이 다른 사람 하니까 우리도 해보자 하고 무리하게 땅을 팔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바나바도 했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못하냐? 우리가 바나바보다 못하냐? 하고 바나바와의 교회내 경쟁심때문에 땅을 팔았는지 모릅니다.


다 좋습니다.
하나님이 문제삼은 것은 딱 하나입니다.
거짓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가끔 이런 실수를 합니까?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우리의 중심이라는 것을 아십니까?
아무도 몰랐는 데 하나님은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실수가 화를 불러 왔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한꺼번에 죽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어떤 교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의 교회생활에서 우리는 어떻게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1.사탄은 교회를 파괴합니다.
먼저 이 사건의 진정한 배후를 보아야 합니다.
3절입니다. 행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베드로가 아나니아를 책망한 말 속에 이 사건의 진정한 배후가 나타납니다.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베드로의 말은 아나니아의 실수는 단순한 인간적 실수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의 배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탄입니다.
사탄이 아나니아를 조종하여 그런 죄를 짓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존재를 믿습니까?


이번에도 보십시오.
수원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당하고 죽었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찌 사람의 할 일이겠습니까?
살인만이 아닙니다.
경찰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자신들은 “몰랐다. 형사 35명을 초기에 투입했다. 112신고를 1 20초밖에 못들었다”.


계속 사실을 은폐했습니다.
사실은 경찰이 피해자가 떨어뜨린 휴대폰에서 6분16초 동안이나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하는 비명소리가 들었습니다.
사람을 폭행하는 영, 사람을 죽이는 영, 우리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는 영, 거짓말 하는 영, 사탄이 없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스탈린이 1300만의 러시아인을 시베리아에서 피로 물들였습니다.
히틀러가 600만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죽였습니다.
캄보디아 폴포트가 200만의 동족을 무참하게 죽였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가 핵을 만들어 한반도와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역사하지 않고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사탄은 마귀입니다.


현대에 이르러 많은 사람이 사탄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시대에 사탄이 웬말이냐고 말합니다.
간첩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 동네에 간첩이 없다고 소리치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사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사탄은 죽이고 멸망시키는 영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무장한 자요 남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늑탈하는 자입니다.
베드로의 말대로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자입니다.


사탄이 교회에 대하여 하는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밖에서 핍박하고 안에서 부패하게 합니다.
사도행전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성령이 임하고 교회가 시작되자마자 핍박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전도하고 다니자 그들을 붙잡아 감옥에 집어 넣습니다.
행4:2-3, “예수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튼날까지 가두었으나”.
사탄은 예수믿는 것을 싫어합니다.
전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부활을 싫어합니다.
전도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요 부활은 예수님 생명으로 다시 사는 것인데 사탄은 죽이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을 사주해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와 요한을 더 크게 핍박했습니다.


사탄은 오늘날도 교회 지도자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합니다.
지도자 한 사람만 무너뜨리면 교회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교회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행4:29, “주여, 이제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 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핍박을 이기는 비결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눈으로 볼 때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헤롯이 핍박하고 유대 지도자들이 핍박하고 세상의 군왕들이 핍박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그 배후에 사탄이 있습니다.
말로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따지고 설득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기도로 악한 자를 묶어야 합니다.
기도로 무장을 해제시키고 쫓아내야 합니다.
사탄은 불법침입자입니다.
가끔 잔디밭에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주인이 써 붙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까 사람들이 캠핑을 와서 잔디에 텐트를 치고 춤을 추고 난리입니다.


이때 주인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나가십시오. 들어오지 말라는 표지판을 못 보았습니까? 나가십시오.”
그래서 안 나가면 경찰 부르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법침입자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 삶에 불법 침입한 사탄의 세력을 주인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쫓는 하나님의 백성의 당연한 요구입니다.
사탄에게는 타협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하고 사탄은 대적해야 합니다.
약4:7-8,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그렇게 기도했을 때 교회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4장 31절,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결국 교회는 핍박에서 승리했습니다.


자, 그런데 5장으로 오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제는 이들이 스스로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3절을 보겠습니다.
행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5장의 문맥에서 이 구절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탄이 전략을 바꾼 것입니다.
밖에서 가하던 핍박의 전략으로부터 내부를 부패시키는 전략으로 바꾼 것입니다.
3-4장의 적은 헤롯이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5장으로 오면 적은 아나니나와 삽비라입니다.
교회가 교회의 적이 되고 신자가 신자의 적이 됩니다.
엊그제 우리 교회에서 <복음주의 협의회 조찬기도회>가 있었습니다.
한 분이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과거 한국교회의 적은 일본이었습니다. 공산당이었습니다. 가난이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적은 한국교회입니다”.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가 자기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했다면 아나니아는 믿음있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초대교회의 중진이요 중심인물입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소유를 팔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교회 중심에 있지 않았다면 교회가 하는 캠페인이 참여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때 교회의 자랑이었던 사람이 그렇게 좋은 동기로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사람이 이제는 교회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며 교회를 어지럽힌 사람들이라고 영광스러운 교회에 흠집을 낸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며 낄낄거리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사탄입니다.
사탄의 전략은 제대로 먹혀 든 것입니다.
헤롯이 죽인다고 할 때는 꿈쩍하지 않고 대제사장이 감옥에 가뒀을 때는 모두 한 목소리로 기도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뿔뿔히 나뉘어 어떤 사람은 아나니아를 정죄하고 어떤 사람들은 아나니아를 두둔하는 분열된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누가 원했는지 아십니까?
사탄입니다.
우리가 교회안에 어떤 문제가 나면 사람부터 안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목회자나 신자나 책임이 있지만 그 사람들의 배후에 있는 악한 세력을 교회가 더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당연히 회개하고 자숙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사람을 보지 말고 사탄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를 악하게 만들고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적이 되게 만든 사탄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 일심으로 소리를 높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를 살려 주옵소서”.
그리고 사탄을 향하여 소리쳐야 합니다.
사탄아, 물러 가라. 너는 교회를 시험에 파괴하는 자다”.
그리고 회개한 당사자들을 감싸 안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이 놀라 도망갑니다.
이것이 교회문제를 푸는 성경적 원칙입니다.


교회는 순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어야 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순결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임한 뒤 2장에서 4장까지의 관심은 교회성장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했습니다.
기도한 대로 사도행전 교회는 2:41절에 3천명, 4:4절에 남자만 5천명으로 놀랍게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5장을 계기로 교회의 관심이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순결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한 개인의 정직과 위선의 문제를 제기할 뿐 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도덕성과 순결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합니다.
저는 세계교회를 다녀보면서 그리고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두 가지 안타까운 현상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 성장의 둔화요 또 하나의 도덕성의 저하입니다.


지금 세계 교회는 급격히 침체하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에 영국을 갔는 데 영국교회는 지난 30년 동안 9천개가 문을 닫았고 매년 220개가 폐쇄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달에 한 번 예배에 참석하는 수는 전 국민의 인구의 5%, 매주 출석하는 사람은 2% 미만입니다.


영국의 일간지 <디 인디펜던트>에는 “앞으로 40년내에 영국 교회가 사라진다고 쓰고 있습니다. 문닫는 교회들은 팔려서 술집, 디스코 장, 식당, 주택, 공장, 사무실, 창고 심지어 모스크로 변했습니다.
프랑스도 60년 전에는 전체 인구의 96%가 천주교 미사에 참석했지만 지금은 6%미만이 미사에 참여합니다.
독일의 경우 개신교든 천주교든 3만 5000개 교회중 3분의 1이 곧 문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하고 스위스에는 신부가 없는 성당이 절반에 달한다고 합니다.


교회 성장이 둔화된 것뿐아니라 신자의 도덕 생활이 세상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입니다만, 갤럽 조사의 결과가 무섭습니다.
비슷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을 상대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간의 행동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몸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결근하는 사람들, 이력서의 내용을 과장하는 사람들, 세금 포탈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과 다니지 않는 사람 사이에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정폭력, 이혼율, 낙태에 있어서도 불신자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연방정부에서 뇌물수수죄로 기소되거나 살인, 총기사건등 사회적인 범죄건수도 믿는 사람이 조금 낮긴 하지만 월등히 낮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구제하고 자선하는 습관도 교회 다닌다고 더 많이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신자의 경우 얼마나 사회에 자선하느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수입의 1.5퍼센트를 자선기관에 기부한다고 했는 데 이 비율은 안 믿는 사람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나는 교회성장이 급히 침체되고 또 하나는 교인의 사회적, 도덕적 생활이 불신자보다 낫지 않고, 이 두 통계는 유럽과 미국의 경우입니다만,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옵니까?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한국교회는 지금 사도행전 5장의 상황에 직면한 것입니다.
2장에서 성령받고 3장, 4장에서 감옥에 가도 끄떡없었던 교회는 이제 물질주의의 거대한 공격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복음은 교회는 성장해야 한다”가 아니라 “교회는 순결해야 한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순결해야 하고 어떻게 아름다운 교회를 회복해야 합니까?
우리가 목숨걸고 사탄의 세 가지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1) 물질주의의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물질주의의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아나니아가 자기 땅을 팔았다는 것은 아나니아가 그래도 괜찮게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모두 가난하게 살던 시절, 아나니아에게 팔 땅이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는 아마 믿음으로 살고 부지런히 일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입니다.
축복을 받아도 물질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말았어야 합니다.
기도해서 축복을 받았다고 주일날 골프치러 가지 말았어야 합니다.
피땀 흘려 성공했다고 매달 차를 바꾸지 말았어야 합니다.
잘 나간다고 흥청망청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물질축복은 우리에게 은혜이면서 동시에 저주일 수 있습니다.
모든 기도가 다 응답되는 것이 모든 기도가 하나도 응답되지 못한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연못이 물이 소에게는 젖이 되고 뱀에게는 독이 됩니다.


물자체는 같지만 누가 마셨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성경은 하나님 잘 믿으면 축복받는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욥도 다윗도 모두 거부였습니다.
문제는 부자가 된 다음입니다.
물질은 필요의 대상이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물질을 사랑하면 반드시 물질에게 배신을 당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6.25 전쟁과 60년대 보릿고개를 지난 가난하던 교회는 하나님, 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게 해서 교회를 살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교회가 하는 일이 옛날 교회 헐고 새 교회 짓고, 새 교회 지은 후에 기도원 짓고 기도원 지은 후 공원묘지까 짓습니다.


선교하는 것은 좋은 데 선교를 돈으로만 하려고 합니다.
몽골 선교사가 이야기해서 알았습니다.
한국선교사는 몽골에 오면 시골은 안가고 반드시 서울에만 머물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교사가 많아도 시골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단기선교팀이 와서 선교 조금 하고 하는 말이 이 지역에서 가장 좋은 식당이 어디냐고 묻는 답니다.
제대로 선교해야 합니다.
분명 옛날보다 살기는 좋아졌는 데 신자들이 더 헌금하는 것도 아닙니다.


핍박받던 시절, 중국에서 한 사람이 어느 지역으로 선교를 떠나면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주머니를 털었다고 합니다.
자기도 50리, 100리를 걸어서 왔는 데 돈이 없으니 며칠씩 굶으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물질주의를 극복하는 길입니다.


(2) 개인주의의 유혹과 싸워야 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싸워야 할 사탄의 유혹은 개인주의의 유혹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께 소유를 바치기 전에 사탄의 이런 유혹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아나니아야, 너 한 사람 돈 다 안냈다고 하나님이 알겠니? 베드로가 알겠니? 너 한 사람 다 안내도 교회 망하지 않아. 너도 살아야 할 것 아니냐? 다 바치면 넌 어떻게 살래?”
아마도 아나니아가 마지막에 실패한 것은 자기중심주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을 끝까지 붙잡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 내 것, 내 집, 내 자식, 내 돈, 내 사업, 내 생각”,
이것이 우리 속에 가득차 있습니다.


사회학자 로버트 벨라는 이것을 급진적 개인주의라고 불렀습니다.
오직 나만 생각하는 소 나만이즘이 현대 교회의 무서운 질병입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빅맥처치 심리라고 불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를 찾을 때 소비자 심정으로 찾습니다.
마치 오늘은 빅맥 버거를 먹고, 내일은 맛있는 치킨집에서 치킨을 먹는 심정입니다.


교회는 소비자의 취향에 맞추는 소매점이 되었고, 목회자는 세일즈맨, 신앙은 상품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러다가 상품이 마음에 안들고 맛이 없고 재미없으면 과감하게 떠납니다. 인사도 없이 떠납니다.


어떤 잡지에서 신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교회에 나갑니까?”
45퍼센트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고, 26퍼센트가 마음의 평화와 정신적인 안정 때문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똑똑한 소비자가 되어 신상품만 쫓아다니는 쇼핑족 교인이 늘고 있습니다.
도무지 자기 교회라는 정체성이 없습니다.
모두가 행복, 행복 하다가 교회마저도 행복을 찾아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믿음의 선물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영국의 C.S 루이스가 말했습니다.
나는 행복해지려고 종교를 찾은 것이 아니다. 그런 행복은 포트와인 한 병으로도 얻을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이 참으로 안락함을 느끼기 위해 종교를 원한다면, 나는 결코 기독교를 권하지 않겠다“.


(3) 성령의 능력을 회복해야 합니다.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와 싸울 뿐 아니라 한 가지 회복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입니다.
다시 3절을 보십시오. 행5: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여기에 “사탄과 “성령을 대조적인 명단으로 쓰고 있습니다.


사탄의 속임에 빠지면 성령을 대적하고 성령의 능력안에 있으면 사탄을 대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둘 중의 하나지 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핍박을 이기게 했던 하나님의 능력이 물질주의, 세속주의, 개인주의도 이기게 합니다.
하나의 능력입니다.


성령의 능력, 사도행전이 교회의 주제를 성장하는 교회”에서 순결한 교회로 가져가도 공통적인 능력의 비결은 성령님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입니다.


성령의 능력은 하나님 바라볼 때 옵니다.
밖에서 오는 핍박은 이긴 한국교회, 대원군의 핍박, 일제 36년의 고난, 6.25의 전쟁, 60년대 보릿고개의 고난, 70년대 인권탄압의 고난을 이겨온 한국교회가 이제 사도행전 5장 시대를 맞아 물질주의의 유혹도 개인주의의 함정도, 세속주의의 공격도 성령의 능력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미국의 한 교회가 주일날 야외예배를 계획했답니다.
전 교인이 야외예배를 가는 데 그날따라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이하 전 교인이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비가 오지 않게 해주세요.”
그런데 비는 그치지 않고 구름은 잔뜩 끼었는 데 예정대로 출발했답니다.
가면서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현장에 도착했는 데 비가 더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다른 기도도 아니고 하나님을 예배를 위해서 기도드리는 것인데 왜 기도를 들어주시기 않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목회자에게 천둥같이 물었답니다.
종아, 너는 내 종이 맞냐?”
, 하나님, 제가 이 교회 목사아닙니까?”
하나님이 말씀했답니다.
너는 계속 비가 오지 않게 해달라고만 기도했지 않니? 너는 왜 예배 가운데 내가 너희속에 임재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니? 비와 네 임재중에 무엇이 중요하니?”
그때 목사님이 회개했답니다.
하나님, 알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비가 오고 안 오고가 아니라 오늘 예배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임을 몰랐습니다. 하나님, 회개합니다”.
그리고 전 교인과 함께 회개했답니다.
그 날 그 교회는 억수로 내리는 비를 맞으며 동시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도 충만히 받았답니다.


순결한 교회를 위해 우리가 먼저 회개할 것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하나님보다 나를 더 우선시한 개인주의 신앙입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하나님 믿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축복이나 주는 은행장정도로 여기는 타산적 믿음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임재를 선포하지 않고 하나님 믿으면 복받는는 이기심에 호소하는 설교나 목회하는 목회자들입니다.
교회에 주신 부를 나누지 않고 계속 자기 성만 지어가는 우리의 타락한 인간적 욕심입니다.
기도를 바꿔야 합니다.
주여, 오늘 비가 와도 좋습니다. 조금 내가 덜 행복하고 덜 성공하고 물질적으로 어려워도 좋습니다. 장대비같은 성령의 은혜를 주옵소서. 예배중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소서. 내 생에 내 성취, 내 영광, 내 불편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최고의 성취, 영광이 되게 하옵소서. 주여, 교회를 순결하게 하옵소서.”
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