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지기 교육/- 청지기

[스크랩]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장로직

에반젤(복음) 2021. 8. 17. 10:48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치는 장로직
최낙재 (강변교회 목사)


이 강설은 디도서 1:1-16을 본문으로 하여 2006년 2월 12일에 독립개신교회 강변교회가 받은 주일 오전 예배 강설입니다. 설교자의 허락을 얻어 이 소식지에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오늘은 장로직에 관하여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지도하는 장로들은 구약 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주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실 때 “너는 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모으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너희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실로 너희를 권고(眷顧)하여 너희가 애굽에서 당한 일을 보았노라’ 하셨다 하고 말하고, ‘그들을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하면 그들이 네 말을 들을 것이라” 하셨습니다(출 3:16).


그리고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렀을 때 백성이 물이 없어서 원망을 하자 모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가라. 호렙 산 반석 위에 내가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하셨습니다. 이때 모세가 장로들의 목전에서 반석을 쳤습니다(출 17:5). 그리고 시내 산에 이르러서 언약을 새롭게 하실 때 70인 장로들이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함께 하나님께 가까이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 발아래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24:1 이하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결국 70인 장로들이 백성을 대표하여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그 언약에 참여한 것입니다.


그 후 백성들이 ‘고기를 주어 먹게 하라’고 울며불며 요구하자 모세가 백성의 짐을 혼자 지기가 어렵다고 아뢰었을 때 주께서 장로 70인을 택하여 함께 짐을 지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민 11:16). 또 모세가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어떻게 하라’고 명령을 내릴 때 이스라엘 장로들도 모세와 함께 서서 백성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신 27:1). 모세가 백성을 인도하는 자기의 사역을 마칠 무렵에 율법서를 써서 그것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원칙을 삼게 하려 할 때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들에게 그것을 주었습니다(신 31:9). 그래서 언약의 땅에 들어가서는 장로들이 자기들을 부르신 그 부르심에 따라서 각 성에서 다스리는 자기들의 직책을 수행하였습니다(수 20:4, 삿 8:16).


신약 시대가 되어서 하나님의 교회가 보편성을 띠게 되었을 때에 선한 목자 되신 주 예수께서는 주의 양 떼를 사랑하시고 돌아보시사 사도들을 세워서 교회의 기초를 삼으셨고, 사도들은 각 교회의 회중과 협력하여서 각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하였습니다(행 14:23). 사도와 장로들은 또 함께 모여서 교회들이 지켜야 할 규례를 정하였습니다(행 15:23).


바울 사도는 장로들에게 당부하기를, ‘성신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큰 값을 주고 사신 교회의 목자로 또 감독자로 삼으셨으므로 자신과 온 양 떼를 주의 깊게 보살피라’ 하였습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뜻을 꺼리지 않고 다 전하여서 지키고 살게 하여야 할 것이며, 또 한편으로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양 떼를 아끼지 않고 노략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도 할 것이므로, 자신과 온 양 떼를 주의하여 지켜보고 또 보호하라 하였습니다(행 20:28). 베드로 사도도 장로들에게 그들이 맡은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라고 훈계하였습니다(벧전 5:2).


빌립보서에서 바울 사도는 ‘성도들과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한다’고 하였습니다(빌 1:1). 여기에서 한 교회에 편지하면서 ‘감독들’이라 했는데 아마 목사와 장로를 총칭하여서 감독들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의 목회 서신에서는 사도가 감독과 집사의 직위가 교회 내에 항상 있어야 할 것으로 알아서 형제 중에서 감독과 집사를 택할 것을 동역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자세히 지시하였습니다(딤전 3:1-13, 딛 1:5-9). 이 직위의 명칭을 ‘장로’라고도 하고 ‘감독’이라고도 하고 또 ‘목자’라고도 하고 서로 엇바꿔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장로의 직위는 그리스도께서 주신 권위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장로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규례를 명시하고, 양들을 보호하며 돌보고, 양들을 위협하는 모든 위험에서 지키며, 불순종하는 자를 권징(勸懲)하여서 단속하는 그런 의무를 짊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장로의 직위와 직무가 어떤 것인가’ 하고 이만큼 우리가 살펴보니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 또는 ‘감독’이나 ‘목자’가 우리 독립개신교회의 헌장에서 말하는 ‘목사’와 ‘장로’를 둘 다 포함해서 말하는 것이겠구나 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16세기 종교개혁 때부터 이렇게 명확히 구분하여서 봉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이고 장로는 ‘다스리는 장로’이며,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목사는 ‘가르치며 다스리는 장로’이고 장로는 ‘다스리는 장로’라 할 것입니다. 장로는 모든 면에서 목사와 같으나 강단에서 가르치지만 않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헌장에는 제3장 ‘교회 운영’ 제7조 ‘조직’ 4항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로는 한 교회의 치리와 목회에 있어서 목사의 지휘를 받아 봉사하는 직이다.” 그러므로 장로는 치리와 목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뜻의 장로가 받은 명령 곧 장로의 직무는 무엇인가? 장로가 맡은 치리와 목회가 무엇인가 살펴보십니다. 첫째로, 장로의 직무는 말씀의 사역자와 함께 모든 교인 하나하나가 복음에 따라 교리와 생활에서 바르게 행하는가 살피며 그리스도의 교회를 감독하는 일입니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징계하노니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데살로니가전서 2:11-12에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를 위해서 장로는 성실하게 교중(敎衆)의 성원(成員)들을 집으로 방문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가르치며 훈계하며, 단정치 않게 행하는 자는 책망해야 할 것입니다(딛 1:9). 믿지 않고 순종치 않으면서 회개하지도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명(命)에 따라서 권징(勸懲)을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례가 더럽혀지지 않도록 살필 것입니다(마 18:17-18).


둘째로, 장로는 하나님의 집의 청지기로서 교회 생활에서 모든 일이 적당하고 질서 있게 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장로들은 말씀의 사역자와 함께 치리회를 구성할 것입니다. 말씀의 사역자와 함께 맡겨진 하나님의 양 떼를 돌봐야 하며, 따라서 누구든지 적법하게 부르심을 받지 않고서 가르친다든지 하는 일을 막아야 할 것입니다(딤후 4:1-4).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로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利)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主掌)하는 자세(藉勢)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1-4). 장로들을 ‘목자’로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장’이라, 여러 목자를 거느리는 목자장이라고 표시하였습니다.

셋째로, 장로는 말씀의 사역자와 의논도 하고 조언도 하여서 치리와 목회를 도와야 하며, 동시에 같이 하나님의 종이 된 목사의 교리와 행위를 감독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상한 가르침을 허용해서 안 될 것이며 교중이 순결한 복음의 도리로 세움을 받도록 할 것이고, 선한 목자의 양 우리에 아무 이리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부지런히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르게 깊이 있게 풍부하게 전파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 두려워서 유보되는 일이 없이 거리낌이 없이 기탄없이 다 전파되는 일은 지극히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장로의 일만이 아니고 모든 교우들이 주일 예배를 앞두고 전날에 준비할 때에 또는 주일 예배에 참석하면서 말씀을 전할 자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고 생명의 말씀으로 전하도록 기도드리고, 교회 회중은 그 말씀을 믿음과 사랑으로 받으며, 마음에 간직하고, 생활에서 실천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이 살았을 때 아볼로는 웅변가였던가 봅니다. 바울 사도 자신은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고후 11:6)고 했습니다. 그리고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스럽게 전한다면 이 배도(背道)의 시대에 감사하고 감사할 일입니다. 말을 좀 유창하게 했든지 좀 더듬더듬했든지 강설을 좀 더 길게 했든지 짧게 했든지 그런 것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충성스럽게 진실되게 전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하였으면 그것으로 크게 만족하고 주께 감사하며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씨를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7) 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에서 구원의 은혜를 받고 자라나가면 그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장로는 이런 일에 항상 앞장서야 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양 떼의 목자로서 - 그러니까 장로도 목자입니다 - 장로가 자기의 직무를 잘하려면 감독들 자신이 경건하기를 힘쓰고, 성경을 부지런히 상고(嘗考)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선을 행하기에 온전케 할 것입니다(딤후 3:16-17).

우리 교회는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고 배우는 데 힘써 왔고,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신학’을 이어받고 또 이어주는 데 힘쓰면서 지금까지 장로 없이 지내 왔습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아무라도 장로로 세우는 것이 아니고, 모든 교우들의 신앙 수준이 향상되는 가운데 장로의 재목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로의 자격을 성경에서 무엇이라 하였는지 보면 이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장로 혹은 감독의 자격을 디모데전서에서도 말하고 디도서에서도 말하였는데, 내용상 크게 다른 것이 없으므로 디도서에서 보겠습니다. 디도서 1:5을 보면,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했습니다. 이 서신 디도서를 바울 사도의 1차 로마 옥중 감금 생활 후에 쓴 것이라 한다면 바울 사도가 디도와 함께 그레데 섬에 갔다가 바울 사도는 여러 교회를 돌아볼 필요가 있어서 곧 떠나야 되었던 것 같고, 떠나면서 디도를 새로 서게 된 여러 교회를 바로잡고 장로를 세우도록 그곳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장로는 첫째, 가정생활에 모범스러워야 할 것입니다. 6절을 보면,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했습니다. 아내를 여럿 두지 않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자녀들은 방탕하지 않고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믿지 않거나 믿지 않는 행실을 하는 자녀가 있으면 그 사람은 장로의 위(位)에 나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7절에는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했습니다. 나이나 권위의 측면에서 볼 때는 장로인데 직무의 면에서 보면 감독입니다. 그래서 5절에서는 “장로를 세우게 하려 한다” 하고서 7절에서 와서는 “감독은”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로 이렇게 엇바꿔서 쓸 수가 있는 직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나 권위의 측면에서 보면 장로(長老), 즉 그 교회의 어른이고, 직무의 면에서 보면 감독(監督)이올시다. 하나님의 집의 대소사를 돌아보는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모범스러워야 하는데,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를 배워서 확신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들을 이해하는 이해심을 겸해야 좋습니다. 도무지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 사람은 감독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 다음은 “급히 분 내지 아니하며” 했습니다. 잠언 16:32을 보면,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城)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했는데,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는 데는 이러한 용사가 필요합니다. 다투기를 좋아하거나 그러다가 그냥 손이 먼저 나가는 그런 사람은 만일 청문회를 연다면 걸릴 것입니다. 그 다음을 보면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했습니다. 감독은 건전한 판단을 수시로 해야 하니까 정신을 흐릿하게 하는 술을 즐기면 안 될 것입니다. 다음에 “구타하지 아니하며”, 이건 급히 분 내지 않는 것과 긴밀히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구타하지 아니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더러운 이(利)를 탐하지 아니하며”, 디모데전서에서는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8절을 보면,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라고 했는데, 나그네를 대접하는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의 이름을 듣고서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도 있고 그냥 오다가다 들른 나그네도 있고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이 여러 층이겠는데, 그 경우마다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경우에 합당하게 대하는 사랑과 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선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남에게 유익할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근신하며”, 이것은 정신이 말짱한 것을 가리킵니다.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로우며”, 대인 관계에서 남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의무를 다하는 사람입니다. “거룩하며”, 이것은 특별히 하나님께 의무를 다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의로우며 거룩하며”라고 두 덕목을 그렇게 나란히 썼습니다. “절제하며”, 절제한다는 것은 무슨 욕망이나 복수심 같은 것을 잘 다스려서 선(線)을 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9절에서는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 즉 진실된 말씀인 성경에 기초한 교훈을 잘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그 교훈을 잘 지켜야 교인들을 바른 교훈으로 권하기도 하고 거슬러서 말하는 자들을 책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자격 규정의 말씀을 죽 보면, 이 덕목들이 하필 왈(何必曰) 장로 혹은 감독만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니고 모든 신자가 다 갖춰야 할 것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우들의 신앙 수준이 향상되면 자연스럽게 그중에서 모범스러운 사람이 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디모데전서 3:1 말씀의 뜻이 더욱 분명하여집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감독의 직분은 ‘선한 일’이요 ‘사모할 만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을 가르치려고 하고 남보다 높이 되려는 마음에서 감독이 되려 하면 그것은 신자로서 바람직하지 않지만,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지체(肢體) 된 신자마다 힘써 갖추려고 하는 덕목들을 갖추어 나가면서 모범스러운 신자가 배출되면, 자연스럽게 교회가 서 가는 데 귀히 쓰일 그릇으로서 자연스럽게 장로의 직위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회가 장로 없이 지내 온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고 교회가 전체적으로 신앙 수준이 향상되고 자격을 갖춘 신자가 배출되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헌장에도 우리의 취할 자세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 교우들이 전체적으로 취할 자세가 무엇인가? “우리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의 역사하심을 의지하여 성도의 교제의 본의를 구현하기를 노력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거룩함과 그리스도와의 일체성과 교회의 보편성을 체득하고 체현하기에 주력하며,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열복(悅服)하고, 항상 신령하게 자유스럽게 자연스럽게 장성하여 가기를 기(期)함으로써 교회의 나타내야 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교회의 바른 자세를 항상 견지하기로 한다”고 했습니다.

장로가 없이 지내 온 또 하나의 이유는, 교회가 처음 출발할 때는 목사가 수시로 각 가정과 교우들을 방문하여 상담하고 불러서 상담도 하여서 특별히 장로의 필요가 없었습니다. 직업의 문제라든지 진로의 문제나 혼인에 관한 일들, 주일 지키는 일들, 여러 문제로 수시로 만났는데, 얼마쯤 지나니까 다 스스로 해결할 만큼 장성하여서 차차로 심방이나 상담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또 수가 많아져서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가 어렵게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항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어린아이’도 있고, 또 장성하였다지만 ‘서로 가르치라’는 말씀과 같이 장성한 사람도 자신을 살피고 자신을 교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강단에서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이라면, 이 말씀이 신자들 각 사람과 각 가정에 생명의 양식으로 은혜를 끼치고 있는지 살피고 도울 수 있도록 장로의 직분이 필요합니다.


우리 헌장에서는 장로의 자격 규정을 제3장 ‘교회의 운영’ 제8조 ‘교직자의 자격’ 3항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성경에서 규정한”, 즉 디도서 1:5-9과 같은 성경에서 규정한 “감독(혹은 장로)의 자격이 있는 신자로서, 본 교회의 장로 시취(試取)에 통과한 후, 그 소속 교회의 주임 목사가 감독의 허가를 받아서 장로로 임명한 신자로서, 그 초임 기간은 3년이다. 장로는 중임될 수 있으며 재임부터는 임기 2년으로 시취 없이 중임된다. 단 무임기가 계속 6년이면 재시취를 요한다.”

장로는 교회를 대표하며 교회 전체를 감독하는 직위이므로 목사 청빙(請聘) 때에 교회 전체의 신임을 물어서 위임한 것같이 장로 임직 시에도 교회 전체의 신임을 물어서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집사의 봉사 활동으로 힘을 얻고 든든히 서서 나가듯이, 장로 임직으로 더욱 거룩하고 능력 있는 교회로 서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기 도>
거룩하신 아버지시여, 저희는 어둠과 무지와 어리석음 가운데 있어서 도무지 하나님께 아무 소용이 없는 무익한 존재들인데, 측량할 수 없는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희를 부르시고 하나님 말씀으로 저희를 양육하여 주셔서, 저희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은혜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으며,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서 그 교훈 가운데서 살며 자라며 이제까지 오게 하여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참으로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이요 하나님의 지극히 풍성한 은혜이옵나이다. 하나님의 교회 내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하여서 생명의 말씀으로 전파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없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이 교회 안에 풍부하게 있게 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고 따르며 섬기는 하나님을 분명히 알고 사랑하며 순종하고, 그리하여서 이 세대 가운데에서도 자기의 사명을 다해서 세상의 빛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음 세대에도 전파하여 나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으로 연약하고 부족한 저희들을 주께서 오직 주님의 은혜로써 붙들어 주셔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도록 하시고, 그 위에서 저희가 믿음의 생활을 하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사오니, 이를 위하여서 이제 또한 장로의 직분을 세워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말씀으로 전파되며 능력 있게 가르쳐지고 지켜지는지 그것을 살필 수 있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잠시만 전파되고 말지 않고 계속해서 대를 이어서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신학’이 이 한 대로 끊기지 아니하고 계속하여 나갈 수 있도록 그것을 감독하며 그것을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그러한 장로의 재목들을 세워 주시기를 기도하옵나이다. 주님께서 크신 은혜로 이 교회를 보존하시고 집사를 세워 주셔서 교회가 활발하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하신 것과 같이, 이제 또한 장로를 세워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 있게 전파되고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더욱 풍부하게 나타낼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저희 가운데 주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라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