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4 주일설교
본문: 요일 2:15-17
제목: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1.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세상을 사랑하게 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요일2:15-16)
자연과 피조물들을 좋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들은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죄가 없다.
단지, 그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정욕과 자랑의 대상으로 사랑할 때 문제이다.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정욕의 대상, 자랑의 대상으로 삼고 사랑할 때,
그 사람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하나님이 주신 사랑도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이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니라”(약4:4)
세상과 벗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행복하도록 인간을 만드셨는데, 인간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고, 간음한 여인들이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잡신들을 사랑했다.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 —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렙3:8, 14)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를 탐하여 사랑하는 간음 행위이다.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엡5:5)라 하였고, ‘탐심은 우상 숭배’(골3:5) 라고 하였다.
탐심은 지나친 욕심이다. 무언가를 누군가를 탐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면 우상 숭배하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탐심이요 우상숭배이다.
하나님도 탐심으로 사랑하면 우상 숭배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만을 탐하고 사랑하고 쫓아가는 것은 간음행위이고 우상숭배이기에
하나님 사랑을 버린 것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그런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목숨을 다해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한다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범한 것이고 저주와 재앙이 내려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인이 일시적으로 그렇게 했다면 징계의 채찍이 내려오지 않을 수 없다.
당장 재앙과 징계가 내려오지 않으니까, 담대하게 그 죄를 지속하는 데,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으로 회개할 기회를 주시지만 벌은 결코 면할 수가 없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죄를 용서하시지만, 벌은 면제하지 않는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출34:7)
죽을 때 쯤 회개하고 천국 가겠다는 사람들,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못할 짓으로 죽였을 때,
그 죄를 회개하니 용서하여 죽이지 아니하였으나,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그가 행한 대로, 암논은 다말을 범하고,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압살롬은, 백주에 아비 다윗의 여인들을 범했고, 반역하던 중 칼로 죽임을 당한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면 하나님 사랑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웃도 사랑할 수 없고,
자기 자신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자기를 탐할 정도로 사랑하는 자기 사랑도 탐심이요 우상 숭배일 뿐이다.
육신의 정욕은 자기 마음이 원하는 대로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사는 정욕이다.
자기 감정과 정서가 이끄는 대로, 자기 육체와 자아가 이끄는 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것,
다 육신의 정욕대로 사는 것이다.
또한 육신의 정욕은 떡으로만 살고 말씀으로는 살지 않는 정욕이다.
예수님이 40일간 금식하고 주렸을 때 마귀가 처음 시험하는 것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이었다. 육신의 정욕 시험.
주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심으로 이 시험을 이기셨다.
마귀는 처음에는 단순한 육신의 정욕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우치지 못하면
육신의 정욕에 다 지게 되어 있다.
육신의 정욕을 이기는 방법도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사는 것이다.
안목의 정욕은 눈이 이끄는 정욕이다.
사람들은 육체의 정욕이 차면 이제 안목의 정욕에 이끌림을 받는다.
유행에 민감하고, 명품들에 끌리고, 겉으로 꾸미는 외식에 사로잡히고,
외모 지상주의로 모든 것을 외모로 판단하는 것이 안목의 정욕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인 줄 알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볼 줄 모르고,
본다고 하나 보지 못하는 맹인들도 안목의 정욕의 노예들이다.
예수님에게 두 번째로 시험한 것이 ‘거룩한 성으로 데뎌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 내리라 ---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라 하였다’ 였다.
주님이 이 시험을 이긴 방법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였다. 안목의 정욕 시험.
안목의 정욕을 이기는 방법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이생의 자랑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많이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학력 경력, 명예, 소유와 재산을 남들보다 더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이 이생의 자랑이다.
평수 넓은 아파트, 좋은 차 가졌다고 자랑하고 못 가진 자들을 무시하는 것이 이생의 자랑이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세 번째 시험으로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고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였다. 이생의 자랑 시험.
주님은 ‘사탄이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말씀하심으로
이 시험을 이기셨다.
천하 만국도, 그 영광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길 때 주시는 축복과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고
그것들은 없어질 영광 썩어질 영광에 지나지 않다.
2.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는 것이다.
“이는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요일2:16-17)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다 지나가고 마는 것들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것이라 하셨다.
잠깐 있다가 없어질 것들에 대한 정욕으로 자랑으로 살다가,
영원한 것을 놓치고, 보지 못하고,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비참한 종말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영원한 멸망으로 이어지게 된다.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불못, 곧 불과 유황 못에 던져져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고, 고통과 회한 가운데 영원한 벌에 처해지고 만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아담과 하와가 그 좋은 환경 에덴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간 것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먹음직’한 것은 육신의 정욕이다. ‘보암직’한 것은 안목의 정욕이다.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것은 이생의 자랑이다.
우리 주님은 아담과 하와가 지고만 세 가지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심으로
우리에게 말씀으로 사는 길, 시험을 이기는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도 그 안에서 이기게 하셨다.
육신의 정욕도 안목의 정욕도 이생의 자랑도 다 지나가고 마는 일시적인 것들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도 다 불에 타 없어지고 마는 것들이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주신 것이니라 ---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7,10,12-13)
우리가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사랑할 것은 있다가도 잠시 후에는 없어질 것들이 아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은 우리가 사는 동안 필요한 것들이지만 사랑할 대상은 못되는 것이다.
우리의 일생과 영생을,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씀을 통해,
다시 깨닫고, 심령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3)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하신다.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
3.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2:17)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사는 자는 지옥 불못에서 영원히 거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행할려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할려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이 세대 이 세상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에 물들어 있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버려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는가?
오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은 어디에 있는가?
‘진리의 보고요 성령의 서재’인 성경, 곧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에 있다.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뜻도, 알 수 없다.
세상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오직 사람의 지혜만, 철학과 헛된 속임수만을 알 뿐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야, 성령의 가르치신 것을 알 수 있고, 영적인 것을 분별할 수 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을 받고, 진리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진리, 곧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알고 또한 행할 수 있다.
이 길은 협착한 길이고 문도 좁아서 찾는 이도 적지만, 유일한 생명의 길이요, 영원한 문이다.
이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는 다 절도요 강도들이라 하셨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다.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하는 물음에, 주님은 대답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3-24).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사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좁은 문, 좁은 길과는 인연도 없고, 거리도 먼 사람들이다.
떡으로만 사는 사람들, 내 왕국과 내 의를 따라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영원히 거할려면, 순전한 말씀으로 돌아와야 한다!
순전한 해석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럴려면, 개혁자들의 경건서적, 청교도들의 경건서적을 읽어야 한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유일한 책들이다.
19세기 말에 쓰나미가 몰려와서 이 고귀한 유산들을 다 떠나보내 버렸다.
20세기 중반에서야 이 책들이 다시 출판되기 시작하였고 극히 일부만이 우리나라에 번역되었다.
유명 교단 유명 신학교 유명 교회들 유명 목사들은 이 유산을 멀리하고
시대사상과 지혜로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고 있다. 순전한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갈의 시대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개혁자들의 책으로, 청교도들의 책으로, 다시 공부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을 뜻을 알고 행하는 자만이 하나님과 천국에서 영원히 거할 수 있다.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려야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다.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반석 위에 집은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게 하는 아버지 스승들이 바로 개혁자들이고 청교도들이다.
출처: 청교도 아카데미 원문보기 글쓴이: 강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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