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원을 시작할 때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원칙과 소신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가 그토록 강조했던 ‘정직’이었다.
‘학부모에게 거짓말하지 말자. 학생이 공부를 못하는데 잘한다고 하지 말자. 최선을 다해 가르쳐도 안 될 것 같으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고 내보내자.’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정직이었다. 그래서 만든 게 ‘제적(除籍) 제도’였다. “어머님, 죄송합니다. 학생이 경고를 받았는데도 학습 태도가 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학원을 알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있어도 되지만 이대로는 성적이 오르기 힘들 겁니다.”
아이의 상태를 사실 그대로 학부모에게 전하면 결과는 두 가지였다. 내보내거나 새로운 다짐을 받아내거나. 물론 학생 수가 수익에 직결되기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돈 몇 푼 때문에 학부모를 속이고 학생의 정체된 상태를 묵인한 채 계속 잡아두는 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학생을 위한 대책을 정직하게 권면하고 공부할 의지가 없으면 내보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제적 제도는 학원의 자부심이자 신념이었기에 개원 후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고 꾸준히 실행했다. 그러나 동생이 떠나고 학원 안팎에 문제가 발생하자 매출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를 욕하면서 퇴사하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회사 성장률마저 떨어지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지도 몰라.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려면 매출이 올라야 해. 그런데 이 제도를 계속 시행했다간 성장률이 더 떨어질 거야.’
이런 얄팍한 염려가 머릿속을 가득 메운 2015년 어느 날, 개원 이래 처음으로 제적 제도가 무너졌다. 내보낼 요건이 충분한 학생도 남겨두었고, 형편없는 성적을 받아오거나 수업 태도가 불량해도 내버려 두었다. 심지어 그만둔다는 학생까지 붙잡았다. 정말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학생들은 학원이 간섭하지 않고 나가려는 친구마저 붙잡는 걸 보자 태도가 돌변했다. 선생님이 조금만 옳은 소리를 해도 “저 나갈 거예요”라며 위협 아닌 위협을 해왔다. 당연히 아이들의 영어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그렇게 초심을 잃고 매출에 연연하는 정책을 펼친 결과, 수강생은 4천 명에서 1만 명으로 늘었지만 한낱 실속 없는 거품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직원과 선생님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큰소리쳤다.
겉으로는 자신감이 넘쳤지만 내 눈에 학원은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게 보였다. 그래도 더 기세 좋게 보이려고 분원을 30개에서 45개로 늘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해 수능 성적은 완전히 바닥을 쳤다. 그쯤이면 정신을 차릴 만도 한데 나는 직원들에게 또다시 호언장담했다.
“여러분, 2016년에는 수강생이 1만5천 명까지 늘어날 겁니다!”
마침내 2016년, 개혁의 허점과 실상이 슬슬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존 고3 학생이 졸업하자 수강생 약 1만 명 중 6천 명 정도가 남았고, 신규 수강생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이전처럼 마케팅 시스템을 전부 가동했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기존 학생들조차 학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가득했다.
나는 조바심이 났다. 그제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돌아보았다.
‘대체 뭘 잘못한 걸까? 일개 동네 학원을 일류 교육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내가 총대를 멨을 뿐인데…. 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이 중간에 나갔을 뿐인데 어쩌다 이런 결과를 맞게 된 걸까?’
문득 지난날 내 잘못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개혁을 단행하는 과정에서 학생과 선생님, 학부모에게 잘못한 일과 본질을 망각한 어리석은 행동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문제는 나였구나. 내가 많은 걸 놓치고 있었구나….’.
– 네 마음이 어디 있느냐, 현승원
출처: 주일학교사역자의모임(주.사.모) 글쓴이: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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