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자료/고난주일 설교

[스크랩]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과 가상칠언

에반젤(복음) 2021. 3. 15. 06:35

고난주간

부활주일 전 한 주간을 고난주간 또는 수난주간이라 하며, 이 주간은 수난절의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고난 받으신 주간임을 말합니다. 고난주간은 종려주일로부터 시작됩니다.

● 종려주일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축하하는 주일(마21:1-11,막11:1-10, 눅19:28-40, 요12:12-19)이며, 고난 주간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 주간에는 더욱 뜻 있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도록 합니다.

종려주일은 사순절의 여섯 번째 주일이 됩니다. 한때 이 주일은 "호산나 주일"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이 주일이 종려주일과 관련되기 이전에 고대 교회에서는 "세례 지원자 주일" 이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은 부활절에 세례를 받기 위하여 행하는 지원자들의 준비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세례 지원자들은 이 주일에 처음으로 기독교 신조와 주님의 기도를 배웠고 그것을 비밀로서 간직하였습니다. 이날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하며 또한 예수님의 고난 시작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정결하게 일주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 고난주간 예수님의 행적 

*주일(개선의 날)

-사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심, 예루살렘 성을 보고 우심

-성경본문: 21:1-11, 19:28-40, 19:41-44

 

*월요일(권위의 날)

-사건: 성전을 청결하게 하심,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심

-성경본문: 21:18-19, 21:12-17, 11:12-14, 19:45-48

 

*화요일(변론의 날)

-사건: 자신의 권위에 대해 질문을 받으심, 종말에 대해 예언하심, 유다의 반역

-성경본문: 21:23-27, 24-25, 14:10-11, 20:1-8

 

*수요일(음모의 날)

-사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 한 여자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음

-성경본문: 26:3-5, 26:6-13, 14:1-2, 22:1-2

 

*목요일(준비의 날)

-사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최후의 성만찬, 예수님의 고별설교와 중보기도

-성경본문: 26:26-30, 14:22-25, 22:3-6, 13-17,

 

*금요일(고난의 날)

-사건: 배반당하고 잡히신 예수님, 공회 앞에 서신 예수님, 빌라도의 심문을 받으심, 십자가의 죽으심, 무덤에 장사지내심

-성경본문: 26~27, 14~15, 23, 18~19

 

*토요일(예비의 날)

-사건: 무덤 속에 계심

-성경본문: 27:62-66

 

*주일(부활의 날)

-사건: 영광의 부활하심

-성경본문: 28:1-16, 16:1~8, 24:1~12, 20:1~20



● 가상칠언이란?
A.D. 33년 4월 초순 금요일 일기 화창한 어떤 봄날 예루살렘성 밖으로 세 사람의 십자가의 죽음 행렬이 엄숙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 목적지는 히브리말로 골고다요, 아람어로 된 말을 해석하면 해골이란 동산인데 여기까지 와서 각자가 메고 온 십자가에 이 세 사람을 달았습니다. 그 중에 중앙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고 합니다.


제 1언의 말씀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23:34)


원어 주요단어 스트롱코드 설명
[*863] ajfivhmi
발음 : 압히에미 aphiemi {af-ee'-ay-mee}
어근 : *575 히에미(보내다) 에서 유래
어의 : 울부짖다, 용서하다, 버리다, 곁에 두다, 떠나다, 생략하다, 따로 내놓다, 면제하다, 고생하다,포기하다.
문법 : 동사


예수님은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 분입니다. 구약에는 아버지란 말이 없으나 예수님은 아버지라 부르시면서 우리에게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주기도문을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도는 아버지가 두 분이십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영혼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놀라운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은 사랑의 인격적 참여를 말하는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시게 될 때 내 모든 문제는 해결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① 죄 많은 여인의 죄를 속죄하여 주실 때

그는 구원을 받고 평안히 돌아갔습니다. ---------------- (눅7:36-50)

② 중풍병자의 죄를 사죄하여 주실 때 곧

건강하여 졌습니다. ----------------------------------- (마9:1-8, 요5:14)

③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만 속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마26:28)

2. 예수님은 원수들의 죄까지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모든 인간들을 위한 죽음 이셨습니다.

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이들의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 (눅23:34)

② 빌라도와 종교 지도자들의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 (요19:6-23)

③ 베드로와 가룟유다의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 (마26:15-69)

3. 우리에게도 용서하라고 친히 말씀 하셨습니다.

①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 (골3:13)

② 주기도문에서 명령 하셨습니다. ------------------------ (마6:12)

③ 일흔 번씩 일곱 번 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 (마18:21-22)


제 2언의 말씀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원어 주요단어 스트롱코드 설명
[*3857] paravdeiso
발음 : 파라데이소스 paradeisos {par-ad'-i-sos}
어근 : 기원은 외래어
어의 : 공원, 낙원
문법 : 남성형 명사

 

우리는 양쪽에 달린 두 강도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양쪽에 십자가에 달리고서도 그 죄를 깨닫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림이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강도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39절)고 하였습니다. 이 고백이 진심이면 얼마나 다행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보면 비방하였다고 했습니다. 객관적이요, 비판적이요, 야욕적인 말이었으니 얼마나 불행합니까? 현재도 십자가를 신앙적으로, 주관적으로, 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강도처럼 비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했습니다.

지금도 강도처럼 죽어가면서도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비방하는 자가 많습니다. 고난과 십자가에서는 선한 말이 나오기 힘든 모양입니다만 중앙에 계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줄 알고 구세주임을 알았다면 구원을 호소하였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강도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1. 예수님은 낙원의 주인이심을 의미합니다.

① 낙원을 예비하러 가셨습니다. ------------------------------- (요14:1-6)

② 영원한 천국의 주인이십니다. ------------------------------- (계22:1-6)

③ 하나님이 지으신 집은 세상의 집과는 다릅니다. -------------- (고후5:1-3)

2. 낙원에 제일 먼저 간 사람은 강도입니다.

① 회개와 기도함으로 낙원에 갔습니다. ------------------------ (눅23:41-42)

②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 (눅23:40)

③ 예수가 의인이요,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함으로

낙원에 갔습니다. ------------------------------------------ (눅23:42)

3. 주님이 가시고 우리가 갈 낙원입니다.

① 거기서 세세토록 왕노릇 합니다. ---------------------------- (계22:5)

② 세상 끝까지 함께 계십니다. -------------------------------- (마28:20)

③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 (요14:3)


제 3언의 말씀 :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27)


세 번째 주님의 눈동자가 집중된 것은 여기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계신 곳입니다. 25절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클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등 네 여인이 울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은 울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요한에게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면서 부탁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때문에 고난을 격은 여인입니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하게 되어 남편에게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제 예수님을 먼저 보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한없는 슬픔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제 4언의 말씀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말할 수 없는 고뇌에서 비롯된 절규였습니다. 죄 없는 자가 정죄를 당하고 허물없는 자가 박해를 받으며 은혜 베푸는 자가 잔인하게 죽어가는 일이 역사상 처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죄를 홀로 지시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시는 순간 주님으로서는 매우 심각한 세 시간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주님은 세상에 대하여는 더 할 말씀이 없고 성경에 응하기 위한 말씀을 하실 뿐이었습니다. 이런 절규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도 우리와 같은 육신의 몸을 입고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5언의 말씀 :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을 입증하고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내가 목마르다" 하심은 곧 목마른 인생을 부르시는 뜻도 있습니다. 인생은 어디서 무슨 물을 마셔도 그 심한 갈증을 해소할 길 없으나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한 갈증을 해소합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 : 1).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거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 13-14)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6 언                                                 이루었다! It is finished!

 

그런데 이루었다!라는 말은 헬라어로는 " 갚았다!"라는 뜻입니다.

Tetevlestai 테텔레스타이!

 

Tetevlestai 테텔레스타이! 부채를, 빚을 갚았다는 뜻입니다!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가죽 채찍으로 서른 아홉 대의 매를 맞으셨습니다. 가죽 채찍 끝에는 다섯 갈래의 가지가 있고 그 가지마다 낚시와 같은 쇠고리가 달려 있어서 가죽 채찍이 살에 닿을 때마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터져 엉켜 붙었습니다.

또한, 가시관을 쓰신 머리와 대못에 박힌 양손과 양발에서도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무지한 군병의 창에 옆구리를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주님의 옷은 군병들이 제비 뽑아서 나누어 가졌고, 벗기운 채로 주님은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계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분이 바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죄도 없으시면서 가장 죄 많은 자처럼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것입니다. 그가 하실 일을 이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제 7언의 말씀 :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예수님은 아버지란 말씀을 즐겨 사용하셨으니 산상설교 가운데서 17번, 유월절 다락방에서 45번(요 14, 16장), 요한복음 17장에서 6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세상에서 마지막 말씀을 아버지로 끝맺으셨습니다. 아버지란 명칭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자신을 갖게 하는 이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들은 아무리 값진 것이라 해도 아버지 손에 맡기고 부탁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육체로부터 분리되려는 찰나에 있는 그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셨습니다.

 

출처: 자기부인 원문보기 글쓴이: 그분을 뵙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