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부 자료/학생부 설교

우리를 안고 오신 하나님 (신명기 1:30∼32)

에반젤(복음) 2021. 2. 18. 09:39

우리를 안고 오신 하나님 (신명기 1:30∼32)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무엇일까요? 실패? 낙방? 실연? 죽음? 죽어 가는 사람이 자식들에게 남기는 "안녕!"이라는 말, 사랑하는 이들을 남겨두고 떠나는 입에서 나오는 "안녕!"이라는 말-가장 슬픈 말 같아요. "죽는다"는 말은 너무 잔인한 단어이기에 서양인들은 "굿바이"-"안녕!"이라는 말로 최후 인사를 대신합니다. "안녕!"이라는 말속에는 "굿나잇"이 아니라 "이제 마지막이야! 다시는 못 볼 거야!"라는 슬픈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오늘이 바로 한 해의 그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요단강 앞에서 광야를 졸업하려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면 광야생활은 끝!입니다. 마지막. 여기 마지막인 사람이 또 있습니다. 모세! 모세는 백성들과 고별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 때문에 모세는 비감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 이스라엘은 광야 마지막 끝에서 자신들의 죄를 돌아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뒤로하면서 지난 세월을 돌아봅니다. 광야 40년-그것은 한마디로 방황입니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고비마다 위기들이 많았습니다. 마음놓고 살았던 날 거의 없습니다. 뒤돌아보면 "어휴!" 라고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었던 40년입니다.
이런 방황은 죄로 온 것입니다. 그 죄는 개인적인 죄일 뿐만 아니라 민족적인 죄였습니다. 불신앙의 죄였습니다. 백성들은 죽음을 바라보며 광야 40년의 방황의 세월들을 바라보면서 자신들의 불신앙을 회개합니다.


모세가 마지막의 재강론(再講論)을 하는 까닭은 바로 그것입니다. 죄를 직시하고 죄 된 세월을 청산하라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죽음의 의미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기에서는 죄를 짓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도 죽음과 함께 여기에 묻어두고 가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기쁨도 슬픔도 뒤로하고 한 해를 마감해야 합니다. 마감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제대로 살지 못했던 것들을 살펴야 합니다. 사람들과 매끄럽지 못했던 것들을 살펴야 합니다. 구부러졌던 것들을 펴야 합니다. 모든 이들과 화해해놓고 가야 합니다. 한 해를 이런 마음으로 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새로운 해에게까지 묵은 감정을 갖고 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봅니다.
광야 40년은 하나님의 은총의 세월이었습니다. 모세는 광야를 '크고 두려운 땅'이라고 했습니다(19절). 크고 두려운 땅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기적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세상에 이런 백성이 어디 있느냐고 합니다. 광야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누구도 생각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살아남았고 지금은 광야를 졸업하기 직전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하게 된 것을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31절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 같이" 광야 40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앞뒤에서 보호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안고 오신 세월이라 합니다. 참 멋진 표현입니다. 안으셨다! 완벽한 보호였고 공급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안았습니다. 싫다고 하는 사람을 안고 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아내를 안고 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죗덩이' 이스라엘을 안았다고 합니다. 업고 갔다고 합니다. 은혜로 업은 것입니다. 죄를 죄로 갚지 않고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은혜를 덮고 여기까지 오신 '은혜의 하나님'을 모세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안아주시지 않았다면 너희들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저기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심판을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보아야 한다" "무서운 하나님이 아니라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보아야 한다!"


지금도 물질로 고통 당하는 분들도 있고 지금도 중병으로 시달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에 대해 불평했고 신앙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습니다. 장례식을 마친 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그 은혜를 찬양하며 간증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안고 가시는구나!'
'이분들은 하나님의 품안에서 위로를 받고 있구나!'
떠나온 광야를 돌아보며 이스라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죽음도 방황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셨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고 오셨구나! 그 사실 앞에 저들은 감격하며 고마워하며 가나안 땅에서의 새로운 삶을 기대합니다.
우리에게도 같은 마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 해의 마감은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그 동안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망년(忘年)의 의미로만 한 해를 마감해서는 안 됩니다. 고비마다 보여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내고 감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3. 십자가 나무에 슬픔을 걸어버리십시오!
히브리인들에게 <슬픔의 나무>라는 전승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서 있다는 슬픔의 나무. 슬픔을 걸어두는 나무. 히브리인들은 죽으면 슬픔의 나무 밑으로 가게됩니다. 세상에서 당했던 자신의 불행을 적어 슬픔의 나뭇가지에 걸어놓습니다. 한(恨)도 많고 슬픔도 많은 히브리민족-세상에서 죽어 하늘나라로 올라간 히브리인들은 먼저 슬픔의 나무로 다가갑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슬픔의 나무에 자신의 고통을 적어놓고 실컷 울고 난 다음 그 종이를 나무 가지에 걸어놓습니다. 그렇게 한 다음 천천히 슬픔의 나무 주위를 돌면서 다른 사람들이 걸어놓은 슬픔의 사연들을 찾아 읽습니다. 그 사연 중에 자신의 것보다 덜 불행하고 덜 고통스러워 보이는 인생이 있으면 자기의 것과 바꿀 수가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의 인생과 자기의 것을 바꾼다면 그만큼 자신의 불행과 슬픔은 작아지게 되겠지요. 그러나 자기의 고통보다 작은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인들은 자기의 생애를 사랑하게 되며 그만한 고통으로 족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슬픔을 걸어두는 나무-예수 그리스도. 마리아는 평생을 그 십자가의 나무에 자신의 슬픔을 걸어두었습니다. 우리도 그 슬픔의 나무에 자신의 슬픔을 걸고 눈물로 다 풀어버립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생각하면서 울어줍시다! 그들이 다시 일어서게 해 달라고! 그리고 웃음 짓는 모습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기쁨의 땅, 그 땅에서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