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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참회의 기도문

에반젤(복음) 2021. 1. 18. 13:52

참회의 기도문

참회의 기도 -1

주님,

새순이 어김없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자연은 옛 것을 겨울에 버리고 새 봄을 시작하건만 우리 마음은 아직 겨울에 머물러 있습니다.

아직 겨울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겨울 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게으름, 편리함, 익숙해진 절망감, 이기심, 원망, 체면, 변명, 거짓, 운명의 이불을 걷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가 새롭게 변화하지 못하는 것은 변화를 위한 값, 희생을 치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낯을 가리듯 새로운 삶에 두려움을 갖습니다.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 나이 값을 못하고 살아가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그저 품안에서 엄마의 젖만을 기다리며 스스로 일어설 줄 모르는 철없는 아기의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자기 자신 밖에 모릅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내가 기쁠 때 혹 남이 슬퍼하는지, 내가 웃을 때 혹 남은 울고 있는지, 나는 얻었지만 남은 잃고 있다는 것을 돌아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쉽게 마시고 있는 향기로운 커피가 얼마나 많은 제 3세계의 가난한 이들의 값싼 노동의 고통을 담고 있는지, 우리가 빠르고 편하게 가는 고속도로의 건설이 얼마나 많은 자연의 생명을 빼앗아 가는지를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만족하며 살지만 또 다른 이웃은 신음하며 살아갑니다.

나아가 우리는 다른 이들의 희생에 느낌이 없이 살아갑니다. 때론 그 정도의 희생은 발전을 위해 당연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갖습니다.

주님,

우리의 아둔 합, 우리의 무지함을 깨닫게 하옵소서.

나의 말 한 마디, 나의 행동 하나가 하나님의 심판대에 오른다는 두려움으로 삶의 제단 앞에 서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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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 -2

3월의 첫 주일을 주신 주님,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된 사순절도 벌써 20일을 넘기고 있습니다.

회개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회개보다는 나를 찾고 싶습니다.

죄 죄하며 주눅 든 제 모습을 봅니다.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잊고 살았습니다.

잘 사는 사람, 높은 사람, 유명한 사람만 보니 한심한 모습이 제 전부입니다.

어느 날은 너무나 잘 난 사람들만 보여주는 텔레비전을 꺼 버렸습니다.

나이가 서른도 안 된 젊은이가 텔레비전에 연속극에 나와 아직 이룬 것이 없다며 한숨 섞인 말을 할 때는 그럼 오십이 넘은 나는 뭐고 나보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은 뭐냐고 짜증이 납니다.

다른 목사님들은 몇 백명 몇 천명 심지어는 몇 십만명의 교회를 하고 있는데 나는 몇 십명도 힘이 듭니다.

크고 웅장한 교회를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저도 교인도 많고 예산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실제는 그게 아닙니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더욱이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껴안고 사는 것이 너무나 버겁습니다.

사실 내 내면 깊은 곳에는 전도 같은 것 제발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나의 하나님께 묻고 싶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껴안고 살아갑니까?”묻자마자 주님은 단 한마디 대답하십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자 하나”그러나 저는 주님께 다시 묻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자가 어디 하나뿐입니까?”

주님, 저부터 보잘 것 없습니다,

주님,

이 보잘 것 없는 나인 우리들이 이렇게 모였습니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세상의 것에 눌려살지 않게 하옵소서.

버거워도 진실을 잃지 않게 하옵시고, 힘들어도 희망 찬 땀흘림이 있게 하옵소서.

아직까지도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묻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옵소서.

그 뜻을 묻기 위해 우리 < >교회를 주께서 세워주셨으니 우리로 < >교회의 신앙을 이어가는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옵소서.

당신의 생명책 믿음의 계보에 우리 각자의 내 이름을 새겨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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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3

겨울을 벗기시는 주님,

이제 겨우 겨울에 익숙하게 되었는데 어느 새 봄을 단장하십니다.

아직 봄을 맞을 마음이 준비되지 않았습니다.

기지개를 펴기엔 아직 제 마음은 겨울 움츠림을 입고 있습니다.

봄은 겨울에서 시작한다지요?

눈 덮인 흙 속에서, 얼어붙은 개울가 밑으로 봄은 시작합니다.

당하고만 살아온 삶 같아 억울하고 화가 치밉니다.

이 시간 화를 삭여 봅니다. 늘 받을 것이 있는데 누군가 채 간 듯 눈에 핏발이 섭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시간 내게 줄 것이 있니?“ 하고 묻습니다.

우리는 늘 주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늘 우리의 기도는 구걸이었습니다.

한 번도 주님께 무엇을 드릴까요? 라고 물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사순절 차디찬 제 겨울 옷을 벗고 싶습니다.

십자가에 못을 박는 이들을 위해 이들이 모르고 한 짓입니다 라고 하나님께 극구 변명했던 주님,

주님에게서는 죽음조차도 우리를 향한 껴안음이었습니다.

이제 겉치레의 겨울 옷을 벗고 싶습니다.

이 사순절, 그리스도로 옷 입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옷으로 사람을 껴안고 싶습니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사업장에서도 사람에게서 하나님을 보고 싶습니다.

주님,

우리 < >교회가 서로 퍼가기만 하는 마음 때문에 마르지 않았나 살펴보게 하옵소서. 예배 후 밥을 먹을 때, 씹고 있는 내 입의 즐거움에만 빠지지 않게 하옵시고 남의 입도 보고, 눈도 마주치게 하옵소서. 다가오는 이 봄, 마음 밭 가꾸어 하늘 씨앗을 심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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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4

주님,

또 다시 사순절이 돌아왔습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값진 고난을 따르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을 싫어합니다.

그 고난이 의미가 있건 없건 고난 그 자체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떤 고난이든 피하기 위하여 항상 핑계를 생각합니다.

삶을 고해라고 합니다.

왜 고난의 바다라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 같습니다.

바다 海에 어미 母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렇지요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이가 어머니 외에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큰 폭풍과 태풍이 몰아쳐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그 마저 껴안는 바다는 어머니뿐입니다.

주님,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엄마가 되어주는 영성을 갖게 해달라는 기도도 참으로 부담스럽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화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복을 바랍니다.

그러나 이미 받은 복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내 은혜가 족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주어진 복을 복으로 담아낼 수 없는 우리입니다.

어느 덧 우리는 십자가를 멀리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만의 몫이라고 여깁니다. 그게 참 편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라고 감사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은혜란 갚아야 할 빚임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렇지 않아도 세상 물질 빚이 많은 우리인데 어찌 주님의 은혜를 빚으로 생각하겠습니까?

주님,

이런 우리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조금이라도 이 사순절, 주어진 복을 깨닫고 감격하는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내게 주어진 복을 가꾸어 버거워도 나눌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는 은총을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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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 -5

언제나 우리가 지난 어둔 삶을 버리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주님,

오늘은 주님의 공생애를 묵상하는 주현절 마지막 주일이며 우리 고유의 명절 설입니다.

또한 오는 17일부터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무엇보다도 고향 집 오고가는 우리 하늘샘 식구들의 길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옵고 삶의 뿌리를 찾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믿음의 식구들의 삶을 밝혀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의 뿌리인 조상님들과 부모님들 앞에 왜 겸허히 서야하는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예배하듯 그들에게 왜 예를 갖추며 새해를 시작해야하는지를 알게 하옵소서.

그저 제 삶에만 급급하고 그저 제 형편만 생각해온 마음을 열어 주옵소서.

내 뿌리는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나를 통한 미래의 열매는 어떻게 열어가는지 마음의 옷깃을 여미는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형식이 아닙니다. 마음과 영을 새로이 하는 설입니다.

임산부의 배처럼 나온 조상들의 묘를 보면서 바로 거기에 생명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로 하늘 뜻을 되새기며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십니다.

주님,

주님은 우리가 죄로부터 돌아서기만 하면 우리를 안아 주심을 압니다.

주님은 악인의 심판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다시 걸어가야 할 낯선 설의 삶은 어둠으로부터 돌아서 빛을 향해가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언제나 돌아서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주님 은총을 깨닫게 하옵시며 결코 낯설지 않은 희망이 보이는 삶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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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 -6

내 안에 계신 주님,

내 삶에 급급해 다른 사람, 다른 일을 돌아볼 틈이 없이 없습니다.

누구를 받아들일 마음의 방도 없는 우리입니다.

힘든 이웃에 잠시라도 눈을 돌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오히려 ‘너나 잘해’라고 핀잔을 주기도 합니다.

세상은 변할 수 없다고 여깁니다.

원래 세상이라는 게 그런 것이라고 세상에 대해 달통한 사람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어둔 세상을 밝게 하기 보다는 그 세상에 익숙해지려고 합니다. 그게 사는 길이라고 여깁니다. 오히려 어둠을 벗기려는 사람들을 귀찮아합니다. 피곤해합니다.

한편으로 ‘내 주제에..’라고 겸손으로 위장하기도 하고 오히려 세상을 바꾸려는 이들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애써 남이 만든 소중한 것들에 적당히 편승합니다. 너도 나도 ‘나 하나쯤이야’라고 여깁니다. 의인 열이 없어 세상은 소돔이 되고 고모라가 됩니다.

너도 나도 착하게 살아갑니다. 적당한 착함으로 말입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한 적은 없다고 강변합니다. 그리고 남들도 다 하는 잘못에는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죄에 둔감해갑니다.

주님은 끊임없이 의인 열을 찾습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하겠지 하며 생각합니다. 설마 의인 열이 없을라고 하며 살며시 나는 빠집니다. 아직 우리 마음이 불쾌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원망과 불평, 정욕과 시기의 불쾌한 제 마음을 다스려 상쾌한 일꾼이 되게 하옵소서.

이 땅에 보잘 것 없는 자로 오신 주님을 영접하는 은총을 주옵소서.

도처의 신음소리를 듣게 하옵시고 동체대비의 마음을 갖게 하옵소서.

우리의 상쾌함으로 세상을 상쾌하게 하는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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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 -7

주님,

우리 얼굴이 어둡습니다. 아니 삶과 세상을 보는 우리 눈이 어둡습니다. 표정 없는 얼굴, 찌푸린 얼굴, 힘든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마음도 절로 어두워집니다.

삶이 고달픕니다. 세상을 보고 있는 우리 자신도 어둡다는 것을 압니다. 경제적 어려움, 건강, 직장, 자녀의 문제, 이룰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등 많은 것들을 우리를 어둡게 합니다.

당연히 감사는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어디선가 누군가에 거침없이 말하고 싶습니다. 잠깐이라도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속은 시원할 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분출하는 원망과 불평, 분노가 사실이라며 상처를 줍니다.

마음 깊은 곳에 원망과 불평은 더욱 쌓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감사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라고 항상 기뻐하라고 오래 참으라고 등 말입니다.

이게 명령한다고 억지로 될 문제인가요? 감사할 일이 있어야 감사하지요. 때론 가까운 가족도 사랑하기 힘든데 원수까지 사랑하라니요? 기쁠 일이 어쩌다 있는 일인데 어찌 웃음이 나오겠습니까? 바보처럼 참기만 해야 되나요?

그래도 ‘감사합니다’라고 일단 말하라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오늘은 주님 말씀 듣겠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는 밤중에 재료도 없는데 맛있는 국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기쁘고 좋은 재료만 있는 인생이 아니라 슬프고 나쁜 재료가 더 많은 인생, 그러나 그 나쁜 재료로 더 좋은 인생을 만들 수 있음을 주님은 깨닫게 하십니다. 주님, 오늘은 한 번 해볼 랍니다. 입술만이라도 감사합니다를 되뇌이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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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 -8

주님,

주님은 우리 각자를 통해 주님의 몸이신 교회를 이루십니다. 우리는 몸 된 당신의 지체들입니다. 함께 가야할 지체들입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해야 하는 지체들입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기심을 좀처럼 넘어서지 못합니다. 좀처럼 가족주의를 극복하지 못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저 환상일 뿐입니다. 강도 만난 이웃, 아니 가까운 옆 자리의 교우조차 마음을 나누기에는 너무나 멉니다.

우리는 하나 된 몸을 이루기 위해 교회를 함께 세웠습니다. 그렇지만 하나의 몸이 되기에는 너무나 많은 마음의 장벽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가릅니다. 내 편, 네 편으로 가릅니다. 끼리끼리 삽니다. 혈연이 있고 지연이 있고 학연, 이념이라는 벽이 있습니다.

내 아이의 작은 흉터는 크게 보여도 재앙을 만난 내 이웃의 고통에는 쉽게 눈감아 버립니다. 어느 덧 양심이 무뎌지고 이기심이 당연한 사유화로 변명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로 미화됩니다.

때론 옆 교우의 얼굴도 마주하지 못한 채 앞만 쳐다보며 예배를 드리다가 급히 세상으로 사라져 갑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 옆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교회를 다닌다고 생각합니다.

주님,

이제라도 앞만 아니라 뒤도 그리고 양 옆도 살피는 영적인 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함께 예배 드리는 내 교우가 내 발이요, 손이요, 눈이요 귀임을 알게 하옵소서. 그리고 오늘 귀가 아프지 않은지, 발을 절룩거리지는 않은지 손으로 밥은 제대로 뜨고 있는지 내 몸인 이웃을 살피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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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 -9

주님,

계속된 한파가 우리의 삶을 더욱 움츠리게 합니다. 아니 우리의 삶 자체가 한파를 만듭니다.

서로를 쳐다보는 눈들이 더 차디찹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대결, 경쟁의 눈입니다.

그 눈빛만으로도 몇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살벌한 시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시기로 가득 차 있고 이미 다툴 준비를 갖추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우리말에는 언제나 가시가 돋쳐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도 경쟁을 부추깁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며 친구를 경쟁의 적으로 몰고 갑니다.

나눔이란 내가 많은 것을 소유했을 때요,

섬김은 내가 높아졌을 때의 이야기라며 시기와 다툼을 미덕처럼 말합니다.

이미 우리 가정이 이 시기와 다툼 속에 있습니다.

서로의 약점을 감싸주기보다는 그 약점을 서로를 제압하는 화살로 이용합니다.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고 깊은 상처를 안겨줍니다.

잘 되라고 한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거짓임을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부부사이, 부모 자녀 사이, 형제 사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 나아가 우리 이웃들과의 사이에서도 그 앙금은 쌓일 대로 쌓입니다.

평화의 주님,

이 참회의 시간, 하나님께 참회하기 전에 회복해야 할 우리의 잘못된 인간관계가 있음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서 해야 할 참회입니다.

주님,

화해의 씨앗, 평화의 씨앗을 심기 위한 우리의 참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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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10

화해의 사절로 오신 주님,

주님은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막힌 담을 허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로 다른 우리 이웃들과 막힌 담을 허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린 십자가를 외면합니다. 아니 겉으로는 끄덕이지만 삶으로는 답하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말로는 동정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물질, 우리의 시간을 내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갈라져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의 일부를 절제해도 우리는 고통받고 있는 우리 이웃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목사로 부름 받은 지도 벌써 25년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교우의 눈물을 닦아내지 못하면서도 교우들에게는 전도를 하자고 말합니다. 마음에 욕심만 있었습니다. 화해는 없었습니다.

이 강단에서 십자가를 외치지만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였습니다.

다시 돌아오는 메아리에 마치 뭔가 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내 십자가가 없었습니다.

주님,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지만 우리는 늘 남을 비난하는 것으로 불화를 만들어 갔습니다.

내 주장, 내 생각에 갇혀 내 작은 말 하나로 다른 사람이 얼마나 상처 받는 지를, 나의 작은 행동 하나로 다른 사람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경쟁하고 가르고 누르고 지배하는 마음이 가득 합니다.

주님,

이 시간 막혀있는 우리 마음에 화해의 대로를 열어 주옵소서.

고통 받고 있는 이웃과 자연에 마음을 다한 화해를 열어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이 주신 화해의 직분을 감당케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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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의 기도-11

우리를 아시는 주님! 우리의 죄인 됨을 아시는 주님!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크신 의로 저희들을 살피시사 이 시간 새사람, 새 심령으로 주 앞에 서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만한 깨끗한 입술을 주시옵고, 주님을 모실 수 있는 마음의 성전이 있게 해주시고, 저희들의 손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쓰여지기에 부족함 없는 깨끗하고 정한 손이 되게 해 시기를 원하옵니다.

사랑할 자를 사랑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를 향하여 손을 편자를 외면한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앞세우며 하나님의 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보다 나 자신의 안일을 위하여 살아온 모든 생을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옵기를 기도하옵나이다.

주여!

교만한 것과 변명하는 죄와 게으른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십자가의 보혈로 속량하시고 그 크신 의로 새롭게 하사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세워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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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