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 영신/송년 설교

스크랩 [송년]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마 16:1-4, (막 8:11-13, 눅 12:54-56) -민창근

에반젤(복음) 2020. 12. 30. 16:13

마 16:1-4, (막 8:11-13, 눅 12:54-56) /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

(마 16: 01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表蹟) 보이기를 청하니 0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0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天氣)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04 악하고 음란한 세대(世代)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막 8: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께 힐난(詰難)하며 그를 시험(試驗)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表蹟)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歎息)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 (表蹟)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表蹟)을 주시지 아니 하리라 하시고 13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눅 12: 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 외식(外飾)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天地)의 기상은 분변(分辨)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58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 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호리(毫釐)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決斷)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공관복음서에 함께 기록된 비유들을 말씀드린다(13번째).

* 오늘 말씀의 위치는 마태와 마가복음의 경우, 각 복음서의 중간부분에 위치해 있으면서, 7병2어 사건 뒤에 나오며, 수난예고가 시작되기 바로 전에 있는 말씀이다. 누가복음에는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중에 주시는 말씀이다.
마태복음에는 시험하는 대상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며, 마가복음에는 바리새인들이며, 누가복음에는 시험하는 대상은 없고, 무리들에게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 예수님의 공생애 흐름으로 오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해 마지막 노력을 하면서, 죽이려고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에 대하여 조심할 것과 수난예고를 해주는 말씀들로 이해할 수 있다.

*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예수님 당시에 4개 유대교 종교당파가 있었다. 바리새, 사두개, 에세네, 열혈당. 보통 3개 당파를 말할 때는 바리새, 사두개, 에세네파를 말한다. 그리고 이외에 헤롯을 지지하는 헤롯당이 있었다. 정치적인 당파다.

역사적인 면을 말씀드리면,

B.C. 152년 하스몬 왕가의 요나단이 왕직에다 대제사장직까지 겸하자, 소위 '경건한 사람들'(히브리어로 '하시딤')이 이에 반기를 들었다. 그 가운데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바리새파를 형성하게 되었고, 일부 제사장들은 에세네 파를 조직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사장들 즉 사독의 후손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고위층은 하스몬 왕가와 헤롯 왕에게까지 동조하여 사두개 파를 조직했다. 이들 사두개파는 현세주의자들로 이스라엘의 상류 계급에 속했다. 그들은 모세 오경만을 인정하며, 내세와 부활과 천사의 존재 등을 부인했다(행23:8) 그런데 부활 사상은 당시 바리새파의 주장이자, 동시에 유대교의 경건한 신도들에 의해 널리 받아들여진 신앙이었다.

자세히 보면,
1) 사두개인들
'사두개인들'은 초대교회 당시 집권 여당세력으로서 진보 헬라주의를 표방하였다. 구전 전승의 구속력과 권위를 부정하여 모세 오경만을 정경으로 인정하였고, 바리새파보다도 더 문자적으로 해석하였다. 레위인의 정결의식과 제사의식,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한 반면, 모세오경에 없다는 이유로 내세, 부활, 영적세계, 천사와 마귀 등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 이 당시 대제사장들, 성전 맡은 자, 제사장들이 사두개인들이었고, 공회원의 상당수가 사두개인이었다. 이들이 사도들의 부활에 관한 설교를 싫어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두개파는 다윗왕 당시의 제사장 사독(삼하 8:17)의 이름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인다. 사독의 후손들은 마카비 전쟁 당시까지도 제사장을 지냈다. 이 집단은 바리새파와 마찬가지로 하스몬 왕족 때(주전 166-63) 구체적인 집단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종적을 감추었다. 귀족 출신의 제사장들 사이에 유행하였다.)
(참고 ; 사두개파는 요한 힐카누스(주전 134-104년) 때부터 그의 아들 알렉산더 얀네우스(주전 103-76년) 때까지 정권을 장악하였다. 예수의 때와 사도들 때에도 사두개파가 집권하였다.)

2) 바리새파
'바리새파'는 보수 유대주의로서 주전 2세기경 '하시딤'파(Hasidim)에서 생겼다. 하시딤은 '경건한 자들'이란 뜻으로서 유대지방을 통치하던 에피파네스 안디오쿠스 4세(Antiochus Epiphanes/ 주후 175-164)의 반유대교주의 헬라화 정책에 반대하여 투쟁한 그룹이었다. 당시 안디오쿠스 4세는 유대교 말살 정책을 펴, 성경을 금하고, 성전에 우상을 세우는 등 유대인들에게 혹심한 종교적인 박해를 가했다. 바리새파란 이름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요한 힐카누스(John Hyrcanus/주전 134-104; 마카베오상 2:42) 때였다.
바리새파들은 모세 율법이외도 각종 구전 전승을 정경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구전의 구속력을 인정하였다. 예정과 자유의지를 주장하였고, 영혼 불멸, 몸의 부활, 영혼의 존재, 천사와 마귀의 존재, 사후 상벌, 성경의 영감설, 죽은 자의 미래, 인간의 평등을 믿었으며, 주로 원리적인 가르침에 치중하여 민중 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바울도 바리새파였다.
율법을 중시하는 바리새인들은 당시 민중들의 존경의 대상이었다. 민중과 밀착된 그들의 교리는 신약성경에 자주 등장하여 예수의 비판을 받았다. 그들의 교훈은 신학적인 면보다는 윤리적인 면이 강했다.
(참고 ; 바리새파 계통의 대제사장들이 유대인을 통치한 것은 안디옥쿠스 4세에 대항하여 독립을 쟁취한 맛다디아와 그의 아들들(하스몬가/주전 167-166년)의 때부터 요한 힐카누스(주전 134-104년) 때까지이다. 요한 힐카누스는 바리새파 엘르아살이 대제사장 직에 도전을 해오자 이에 격분하여 사두개파와 손을 잡았다. 힐카누스의 아들 알렉산더 얀네우스(주전 103-76년)의 죽음 이후에는 다시 바리새파가 정권을 장악하였다. 알렉산더 얀네우스는 반역군 바리새파를 색출하여 800명의 랍비들을 십자가에 처형하였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에는 바리새파의 등용을 유언하였다.
얀네우스의 두 아들인 힐카누스 2세는 바리새파와 손을 잡고 대제사장과 왕위를 지켰다. 그리고 아리스토불루스 2세는 사두개파와 손을 잡고 국군 통수권을 맡았다.)

-- 세례 요한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을 독사의 자식들아 라고 했고(마 3:7), 예수님은 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고(마 16:6,11), 외식하는 그들을 책망하셨다(23:3-36) .

*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협력의 문제

처음에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올 때는 비교적 객관적 자세로 예수의 능력이나 율법에 대한 예수의 진리를 알아보려고 하였지만, 안식일에 병고치는 사건들로 인해 예수님의 치유역사를 삐딱하게 보면서, 사단의 능력으로 치유한다고 몰아세우더니, 오늘 말씀에는 정치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전혀 다른 사두개인들과 연합하여서 예수를 넘어뜨리기 위해 시험하였다.
(참고 ; 오늘 말씀에 관사를 하나만 써서 그들이 함께 예수님을 시험했음을 증거한다.)

시험하여(헬, '페이라조')는 '조사하다', '입증하다', '유혹하다' 등의 뜻이 있다. 이것은 사단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여 넘어뜨리려 했던 말과 같은 것이다(4:1).
그들은 예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좀 더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라,
(1) 처음부터 자기들의 기존 신앙 체계만 고집하는 선입관을 가졌다.
- 자기들의 위선과 심각한 종교적 문제를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자기들의 입장만을 고수하려는 고집불통 신앙인들이었다.

(2) 예수를 무조건 해꼬지(음해하)려는 저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예수님으로 인해 그들의 가르침과 위치가 불안해지고, 종교적 위선이 드러나자 결국은 죽이려고 시험하는 것이다.
→ 우리도 고집불통 종교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올바로 믿으며 성령의 새로운 역사에 열린 맘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잘못된 협력관계 -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의 협력, 빌라도와 헤롯의 협력 모두 잘못된 협력관계이다.
(예) 고라 자손들과 협력한 사람들,
잘못된 정탐꾼들과 협력한 사람들,
우상섬김에 협력한 사람들....모두 징계를 받았다.

누구와 손잡고 일하느냐가 중요한 성공의 변수이다.
하나님과 손을 잡고, 올바른 믿음의 사람들과 손을 잡고 일해야 한다.
다윗....
(예) 링컨 - 하나님 편에서 노예해방전쟁 치름

교회 안에 나와 함께 손잡고 일할 사람은 누구인가? 좋은 협력관계가 형성되어야 교회가 재미있고, 성장하고, 역사가 나타난다.

2) 시험하지 말라.
마 4장에서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 마귀가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천사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는 시험을 할 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말씀하셨다.
-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요 6장에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죽일 것인가? 풀어줄 것인가? 예수를 시험하기도 하였다. - 죽이라 하면 사랑의 계명에 어긋나고, 풀어주면 율법에 어긋나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보호하심, 인도하심, 성실하심, 의로우심,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시험하면 안된다. 이런 모든 시험은 사단적인 것이다. 태초부터 사단은 하와를 통해 이런 것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시험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었다.
예수님을 시험하다가 결국 십자가에 죽인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A.D.70년의 예루살렘 멸망 때 죽임을 당했다.
초대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헌금 드리는 문제로 성령을 속이려다 죽음의 심판을 당했다. 그래서 고전 10:9에서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다.

시험의 말, 의심의 말을 하지 말고, 믿음의 말을 하라! 확신을 가로막는 것을 차단하라.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일어난다.

* 하늘로서 오는 표적

그 당시 랍비들은 지상에서 연출되는 각종 이적들은 사단과 그 수하의 졸개들에 의해서도 능히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대신 하늘로부터 전해진 이적들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런 관점에서 그들은 예수에게 모세의 때에 내려졌던 만나 사건(출 16장 ; 요 6:32)이나, 여호수아의 간구로 인해 해와 달이 멈춰졌던 사건(수 10:12-14), 사무엘 시대의 우뢰 사건(삼상 7:10) 및 엘리야의 갈멜산 승리 사건(왕상 18:30-40)과 같은 초자연적인 하늘의 기사들을 요구했던 것이다(chrysostom).
이러한 요구에 응할 때에만 그들은 예수의 메시아됨을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의도는 그러한 이적의 유무(有無)와는 관계없이 어떻게든 예수를 넘어지게 하려는 데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눅 16:31). 따라서 그들이 표적을 구한 것은 그들이 예수를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과연 하늘로부터 오신 메시아인지 당신 스스로 입증해 보라는 지극히 도전적인 행동이고, 사실은 그런 일을 기대도 안하지만, 그런 일을 행한다해도 믿지 않겠다는 것이다.

불신앙으로 시험하는 이들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마태복음) 0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0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天氣)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04 악하고 음란한 세대(世代)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2 예수께서 마음 속에 깊이 탄식(歎息)하시며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 (表蹟)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表蹟)을 주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누가복음) 54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 외식(外飾)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天地)의 기상은 분변(分辨)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 유대인들은 하늘의 변화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 변화들을 통해 때의 징조를 예측했다고 한다(Virgil, Pliny). 그리고 랍비들은 기상의 변화에 따른 각종 생활의 지혜를 교육했으며, 신년(新年)에는 그 해의 강우량을 예측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이 지금까지 일으킨 수많은 기적적인 사건들을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의 많은 표적들을 믿지 않았다.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이 마 12:39과 똑같이 요나의 표적만을 말씀하셨고, 마가복음에는 표적을 주지 않으셨고, 누가복음은 표적이야기는 안하시고, 다른 말씀을 더해주셨다.

(눅 12:) "57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58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호리(毫釐)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決斷)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이 말씀은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계속 보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면서 하나님과의 불편한 관계를 올바로 해결하지 않으면(화해하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는 뜻이다. 여기서 "길에서"라는 말은 주어진 시간안에, 즉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기 전에 화해하라, 심판받기 전에 올바로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는 말씀이다.

- 요나의 표적을 보여주겠다는 것은 지금 당장 불신앙적인 것에 대응하지 않겠지만, 결국 요나처럼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표적을 보여주시겠다는 의미이다. 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고 죽이지만, 분명히 3일만에 다시 살아나 메시아됨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 1) 불신앙에서 말하는 사람은 표적을 보여줘도 믿지 않는다.
표적의 가치는 믿을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 화기중대 군종이 밤에 이동 중 포탑차에 낀 채로 차가 뒤로 밀리면서 우측으로 넘어갔는데, 주여....외쳤다. 약간의 모래톱 때문에 기적적으로 구르지 않아 살아났는데, 앞에 탔던 중사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다가 결국은 우연히 살아났다고 한다.
김순호 집사 사고 - 뒤에서 박은 차에 의해 앞으로 밀려가면서 차가 완전히 박살나 폐차할 수밖에 없는데, 믿음의 집사님은 하나님의 도우심이고, 다른 사람은 그냥 우연히 살아났다고 한다.

믿어야 할 때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 2) 우리는 천기를 분별할 줄도 알아야 하지만, 이 시대의 표적인 종말적인 자연의 경고를 보고, 주의 때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생각보다 빨리 북극과 남극의 얼음이 녹고 있다. 해수면이 높아지고, 큰 재앙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계 곳곳의 화산들이 터질려고 준비되고 있다. 혼란의 시대가 예비되고 있다. 미국방부 보고서에 의하면 내년부터 재앙의 시작이다.
우리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주의 나라를 위해 힘쓰다가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 저희를 떠나가시다
마태복음은 "저희를 떠나가시다"로, 마가복음은 "저희를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로, 누가복음은 3년을 기다려 실과가 맺지 않는 나무는 찍어버린다는 말씀을 더하셨다.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흐름으로 이해하면 예수님의 3년 공생애의 기간동안 주신 말씀들을 믿지 않고 결실을 맺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심판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눅 13:1-9).

"저희를 떠나가시다"는 것은 그들을 두고 떠나가셨다는 것인데, 그냥 떠나간다는 것만이 아니라, 의미로는 그들과의 교제 단절의미도 될 수 있고, 복된 교훈을 받을 기회를 박탈하는 의미도 될 수 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이려하는 입장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마지막 말씀만을 주시고 떠나시는 분위기이다.

- 예수님이 기쁨으로 찾아가고 치유해주는 마을들과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깊이 탄식하며 만나고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 주님 앞에 올바른 모습으로 나오며, 주님이 "함께 가자, 함께 일하자"고 하는 사람이 되자!

⇒ 한해가 저물어간다.
올 한해도 감사한 맘으로 마무리하고, 새해에 더욱 새로운 협력관계로, 확실한 믿음으로 귀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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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복있는 그리스도인 원문보기 글쓴이: 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