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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 나타난 거룩의 개념

에반젤(복음) 2020. 12. 27. 15:47

구약성서에 나타난 거룩의 개념

 



김 영 진(연세대학교 신과대학 교수 / 구약학)



오늘날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 살고있는 현대인들은 "거룩" 혹은 "성결"의 개념을 잊고 살고 있다. 따라서 현대인의 삶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속에 많은 세속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聖)과 속(俗)의 구별 기준이 모호한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구약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치고, 요구하는 거룩의 개념과 대상에 대하여 살펴보고 우리의 삶과 신앙을 새롭게 변화시키고자 한다.


"거룩"의 의미

"거룩"을 뜻하는 히브리어 <카도쉬>( )는 구약성서에 약 850여회 등장하는 단어로 고대 근동의 셈어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단어이다. 이 단어의 어원과 의미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하지만 히브리어 <카도쉬>는 "정결하다"(to purify) 혹은 "깨끗하다"(to be clean)라는 뜻을 가진 아카드어 qadu에서 유래되었다는데 대하여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하나님이 자신을 불가운데서 계시하실 뿐만 아니라(출 3:2-3; 신 4:12; 시 18:8-14), 불과 관련된 빛, 연기, 열, 불꽃, 숯, 용광로 등과 함께 하나님의 거룩이 자주 사용되는 것은 이러한 설명을 지지해 준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카도쉬'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구별"이다(레 10:10). 레위기 10장 10절의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라는 말씀은 거룩함이란 속된 것과 구별되는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속의 구별이 모호해져 거룩함이 위협받게 되면 그것은 "세속"적인 것이 된다(겔 7:24; 20:9).
'카도쉬'와 같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단어는 "받쳐진"의 의미를 가진 <헤렘>( )이다. 왜냐하면, 레위기 27장 28절에 의하면 하나님에게 받쳐진 것은 모두 거룩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렘>도 거룩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외에도 거룩을 나타내는 것은 '구별하다'는 뜻을 가진 <바달>( )과 '받치다'(to dedicate)의 뜻을 가진 <하나크>( ) 등이 주로 사용되며, 이 외에도 다양한 단어들이 사용되고 있다.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때, 구약성서에 "거룩"이란 세속이나 부정한 것에서 "구별됨"을 의미한다.


성서적 의미의 "거룩"

구약성서에 사용된 "거룩"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거룩의 근원, 개념 그리고 거룩의 대상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거룩의 근원은 하나님이다. 레위기 11장 44절의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라는 말씀은 이러한 성경의 생각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레 11:45; 19:2; 사 43:14).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성이 창조와 더불어 인간에게 자동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피조물이 거룩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창 2:3; 출 20:11), 제사장과 이스라엘(출 29:44; 레 21:8; 겔 20:12) 그리고 성소(출 29:44; 왕상 9:3) 등을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에 이들이 거룩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과 하나님 이름의 거룩성을 지켜야할 의무가 부여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거룩함이란 곧 하나님의 영광과 동의어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거룩이다. 즉 구약성서의 거룩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거룩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라면 거룩의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의 특성이나 속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 거룩함은 곧 정결함이다.

거룩함이란 정결함과 부정함을 분별하여 정결함을 지키는 것이다. 에스겔 22장 26절의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더렵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구별하지 아니하였으며…"는 제사장들이 정결함과 부정함을 구별하지 못하며 정결함을 유지하지 못한 것을 죄라고 선포하고 있다. 본문을 통해서 볼 때, 거룩함이란 하나님이 명령한 규례를 지킴으로써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이다(레 10:10; 겔 44:23). 특히, 레위기 10장 10절의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라는 말씀을 히브리성경의 독특한 문학적 기법인 동의적평행법(同意的平行法)에 의하여 이해하면 거룩함은 곧 정한 것, 즉 정결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2) 거룩함이란 온전함이다.

하나님은 온전하고(욥 37:16) 깨끗한 분이시기에 거룩함이란 이러한 하나님의 속성을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에게 속하게 되는 것, 즉 인간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기 위하여 온전한 것을 드려야 한다. 부정한 제물, 흠있는 제물, 눈먼 제물, 병든 제물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온전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신 33:10). 이처럼 온전한 제물이 드려져야하는 것은 이 제물이 하나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온전함은 내면적인 완전함은 물론이거니와 외적인 결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말 1:6-14).


3) 거룩함은 곧 위대함이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이니까"(출 15:11). 본문은 공동번역의 "여호와여, 신들 중에 당신 같은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가 당신처럼 거룩하며 영광스럽겠습니까? 당신께서 해내신 놀라운 일에 모두들 두려워 떨며 찬양을 드립니다"라는 번역에서 그 의미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즉 거룩한 하나님만이 위대한 일을 하실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의 거룩성이 위대한 일을 하시는 원동력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놀랍고 기이한 일을 행하시기 전에 그 일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거룩해져야 함을 요구하신다(수 3:5). 그 후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놀라운 행위를 선포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체험하고 이에 동참하는 자에게 거룩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룩함이란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체험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



거룩의 대상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관계되어진 모든 것은 거룩의 속성을 따라야만 한다. 특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것은 거룩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찌어다"(시 29:2)라는 구절에서 잘 나타나 있다. 구약성서가 말하는 거룩해야 하는 대상은 다음과 같다.

1) 거룩한 인간
하나님은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거룩하게 하셨다. 특히, 인간가운데서 제사장은 더욱 더 거룩하다. 왜냐하면, 이들이 하나님께 드려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제사장들이 인간가운데 가장 거룩하기 때문에 이들이 거룩한 성소에 접근하여 향을 피우고 지성소를 지킬 수 있는 것이다(레 16:3). 구약성경의 제사장은 대제사장과 일반제사장으로 나누는데 높은 직급의 제사장은 낮은 제사장에 비하여 더 거룩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대제사장이 죄를 짓게 될 경우 그 성결 예식은 다른 제사장에 비하여 더욱 더 엄숙하게 치루어졌다(레 4:3).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은 다른 일반 제사장에 비하여 더 엄격한 결혼과 순결 그리고 통곡의 억제 등을 요구받았다(레 21:1; 겔 44:22). 이처럼 제사장들이 거룩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이들이 제의 때 입는 의복 역시 거룩하다(출 28:2,4; 29:9; 31:10).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들과 같은 거룩함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어느 정도 거룩함을 지녀야 했다(신 14:21; 레 11:44).
구약성서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레위인들이나 장자가 거룩하다고 묘사하고 있다(대하 23:6; 35:3).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 역시 거룩하다고 이해하였다. 따라서 예언자였던 엘리사의 경우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라고 불리워졌다(왕하 4:9). 또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태중에서부터 예언자로 구별하였다(렘 1:5). 따라서 예언자에게 기름을 붓는 것은 곧 거룩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왕상 19:16).
이처럼 구약성서에서 하나님은 모든 백성의 거룩성을 요구한다. 특히, 하나님에게 드려져 성직을 담당하는 자들의 특별한 거룩성을 강조하고 있다.



2) 거룩한 물건

(1) 거룩한 장소:구약성서에 기록된 거룩한 장소는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모두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다. 먼저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이 거룩한 곳이다(신 26:15). 땅에 있는 곳으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는 장소(출 3:5)와 성소 그리고 에스겔 48장 8절에 기록된 예물로 드릴 땅('트루마'), 그리고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이 거룩하다(레 18:25; 민 35:33-34).
땅에 있는 곳으로 가장 거룩한 곳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다(시 74:3; 대상 24:5; 대하 29:5). 따라서 거룩한 이곳에서 일을 행하는 제사장뿐만 아니라 성전을 드나드는 사람, 성전에 있는 제의와 관계된 것 그리고 제물은 모두 거룩해야 한다. 성전은 늘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특히, 성전의 지성소는 휘장으로 일반 성소와 구별되는 땅의 장소가운데 지극히 거룩한 곳(Most Holy place)이다.
이처럼 성전이 거룩한 장소이기 때문에 성전에서 제사와 관련된 모든 사람과 물건의 거룩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성전 제사와 관련된 법궤, 분향단, 진설병을 두는 상, 등잔대, 번제단 그리고 물두멍 등은 거룩하다(출 40:9). 또한 제사에 사용되는 각종 향(출 30:34-38)과 기름(민 35:25)이 거룩할 뿐만 아니라 성전에서 사용하는 물 역시 거룩하다(민 5:17).

(2) 제물의 거룩함:사물가운데 가장 거룩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된 것이다. 특히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하나님의 식사로서 가장 거룩함이 요구되어진다. 왜냐하면 제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제물가운데서 '지극히 거룩한 것'(<카도쉬 크도쉼> )은 속죄제와 속건제, 소제의 제물이며(레 2:3; 6:10; 7:1; 14:13; 민 18:9), 이것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화목제물은 단순히 지성물(<크도쉼> )이라고만 부르며(레 21:22; 민 18:9), 제사장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먹을 수 있다. 이러한 거룩함의 관점에서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하고, 온전한 것을 드려야 한다(참고, 말 1-2장).

(3) 시간의 거룩함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 거룩해야 한다. 시간가운데 안식일이 거룩한 날이다. 이사야 58장 13절의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욤하 코드쉬> 聖日)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라는 구절을 통하여 안식일이 거룩한 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 감사함을 드리는 축제의 시간들 역시 거룩한 날이다(스 3:5).
너희에게는 첫날에도 성회요 일곱째 날에도 성회가 되리니… (출 12:1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민 28:26, 민 23:21).
일곱째 달에 이르러는 그 달 초하루에 성회로 모이고(민 29:1).
일곱째 달 열흘 날(=대속죄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민 29:7).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레 23:36).
위의 성경 구절들을 통하여 무교절의 첫째 날과 일곱째 날이 거룩한 날이며(출 12:16; 레 23:7), 칠칠절, 일곱째 달 초하루(민 29:1; 레 23:24), 대속죄일(레 23:27; 민 29:7), 초막절 첫째 날과 여덟 째날(레 23:36; 민 29:12) 등을 거룩한 날(<미크라 코데쉬> )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날들이 거룩하다는 것은 곧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뿐만 아니라, 희년을 거룩하게 지내야 한다. 레위기 25장 10절에 의하면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간들이 거룩한 것은 하나님이 거룩하게 만드셨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이 시간들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하나님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거룩한 것이기 때문에(단 11:28,30) 이 언약을 배반해서는 않된다고 말하고 있다(말 2:10; 시 55:21; 89:35). 또한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싸우는 전쟁, 즉 성전(聖戰)은 거룩하다.



결론

구약성서에 나타난 거룩이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하나님의 피조물은 거룩해져야 한다. 특히, 하나님과 관련된 사람이나 사물은 더 높은 정도의 거룩성이 요구되어진다. 그런데 이러한 거룩은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을 지킬 때 가질 수 있는 것으로 모든 기독교 신앙인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가운데 하나이다. 거룩함이란 우리 삶의 결단을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얻어지는 것이다.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레 10:10).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레 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