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부의 방/장년부 설교

가고 오는 세대

에반젤(복음) 2020. 12. 21. 18:38

가고 오는 세대(14-7, 320-21)

성경본문: 전도서1;4-7; 에베소서3:20-21

전도서1;4-7;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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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3:20-21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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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도 차면 기운다(월만즉휴, 月滿則虧)라는 잘 아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성하면 반드시 쇠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습니다. 번성할 때 쇠퇴가 시작되고 한참 때가 가장 어려움이 많을 때입니다. 인생도 자연의 이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차면 기울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물레방아는 큰 바스켓에 물이 차면 기울어져서 물을 붓고 방아가 돌아가게 합니다. 계곡을 막아 댐을 만드는데 댐도 물이 많이 차면 흘러 보내고 새 물이 댐을 채우게 합니다. 계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여름에는 폭염 때문에 많은 고생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폭염도 자취를 감추고 가을이 다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가 124년 전 이곳에 세워져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영혼들이 구원 받고 많은 일꾼 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셔서 많은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와서 교회를 굳건하게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봐도 오고 가는 세대의 개념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우리교회의 다음세대가 오고 기성세대는 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가 밀려나가는 느낌이 들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밀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성경적 개념에서 볼 때 가고 오는 개념은 하나님의 질서입니다. 기성세대가 가고 다음세대가 오는 것은 자연적 순환을 의미합니다.

 

국가를 보아도 가장 성할 때 쇠망하기 시작합니다.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 같던 바벨론이 페르시아에게 망했습니다. 페르시아는 헬라에 망했습니다. 헬라는 로마에 망했습니다. 영원할 것 같던 로마도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분리되면서 쇠망의 길을 갔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삼국시대가 지속되다가 통일신라시대가 되고 고려시대로 그리고 고려도 망하고 조선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막을 내리자 대한제국이 세워지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루는 아침에 시작하여 저녁으로 마친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는 하루는 저녁에 시작하여 아침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저녁에 시작하셔서 아침을 맞으십니다. 하나님은 일하신 다음에 쉬시지만 인간은 지어지자마자 안식을 하고 그 다음에 노동을 하였습니다. 인간에게는 오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가고 오는 개념이 맞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세요. 족장시대가 끝나고 야곱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이란 공동체를 이루어 애급에서 출애굽하여 광야공동체를 이루고, 광야에서 12지파가 땅을 나누어 동맹을 맺고 사사시대가 됩니다.

사무엘 시대에 백성들이 왕을 원하여 왕조가 시작되고 사울이 초대 왕이 되고 다윗, 솔로몬으로 이어집니다. 솔로몬이 죽자 나라가 나뉘어져서 남유다는 르호보암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됩니다. 하나님은 한 왕을 폐하시고 다른 왕을 세우십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왕조는 바뀌지만 나라는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꾼은 매장하시지만 그의 일은 지속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가고 오는 시대에 많은 일꾼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일꾼들은 바뀌지만 하나님의 일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지금도 사람을 통하여 계속하십니다.

 

세계기독교역사를 보면 바울이 두 번째 전도여행 때에 무시아에서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지만 예수의 영이 막아 드로아로 가게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복음은 서쪽으로 전달되었습니다. 유럽에서 소아시아와 지중해 연안 국가에 먼저 복음이 전파되고,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다시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이제 복음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 복음이 지면 한쪽에서 복음이 뜹니다. 한 세대가 지면 다른 한 세대가 뜹니다. 가고 오는 세대를 통하여 복음이 지금까지 전수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19세기말에 창립이 되어 20세기, 21세기를 거쳐 수많은 인물들이 교회의 역사 속에 있다가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영원하지만 인간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우리교회의 터는 처음 우리교회가 세워졌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가는 세대가 있고 오는 세대가 있어 사람들은 달라졌지만 교회는 이 자리에 굳건히 서 있습니다.

우리교회에는 7대 교인의 가정도 있습니다. 혈연이 흐름같이 성도들도 흘러 124년을 이어옵니다. 이제 위임목사도 7대를 너머 8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난 한 세대를 감사히 보내며 새로운 한 세대를 기대합니다. 장구한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주님 재림 때까지 세대에서 세대를 넘어 이어질 것입니다.

 

전도서는 지혜문서의 하나입니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합니다. 인생이나 사물은 끝없이 유전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회의적 비관적으로 본 솔로몬의 글이 전도서입니다. 최고의 영화를 누렸지만 그 영화란 금방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오늘의 본문은 솔로몬의 입을 빌려서 변하는 인생과 불변하는 땅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세대는 가고 옵니다.

전도서 1:4 상반절에는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라고 합니다. 시간은 흐르고, 인생은 변합니다. 영원할 것 같은 인생도 금방 지나가고 새 세대가 오게 됩니다. 인생이 지나고 보면 얼마나 덧 없고 빠른지 모릅니다.

 

인생은 흐르는 물(流水)과 같습니다. 물은 어디론가 흐르게 마련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쏜 살 같이 빨리 흐릅니다. 흘러가는 물이 있는가 하면 흘러오는 물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 가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다가오는 시간이 있습니다.

“가는 세대 잡지 못하고 오는 세대 막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고 오는 세대를 막지 못하는 것은 가고 오는 것은 자연계의 창조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흘러가는 시간을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흘러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세대”라는 말의 히브리어는 ‘도르’인데 ‘동시대에 사람 사는 시대’ 혹은 ‘기간’이란 뜻입니다.

성경에는 이 단어를 ‘시대’ 혹은 ‘세대’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 세 대는 30년 혹은 40년을 말합니다. 때로는 세대를 100년으로 말할 때도 있습니다. 창세기 15:13에는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라고 하며, 15:16에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당시에 한 세대는 100년이었다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장수시대가 되어 증손주 보기도 예사입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증손 보기가 힘들 것입니다. 장수시대이지만 상대적으로 젊은이들의 결혼 연령이 늦어지고,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져 한 세대가 길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지는 해”, “뜨는 해”라는 표현을 씁니다. 한참 인기나 주가가 오르는 자를 뜨는 해라고 하고, 그렇지 못하고 반대로 내려가는 자를 지는 해라고 합니다. 인생살이에도 지고 뜨는 해가 있다는 말입니다. 인생은 가고 오는 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서의 주제는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유한하고, 흘러가고,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무상이라고 하기도 하고,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기도 합니다.

“가고...오되”라는 말은 ‘할레크...’라는 히브리어인데 인생의 유한성과 가변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인생이 한 세대가 가는 듯하면 또 다른 세대가 온다는 말입니다. 가는 세대가 있으면 오는 세대도 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5장에는 10명의 고조(古祖)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930년을 살았던 아담부터 950년을 살았던 노아까지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아 최장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장수한 사람들이지만 그 기록은 아주 간단합니다. 몇 세에 아무개를 낳았고, 몇 년을 지내고 몇 세에 죽었더라”라고 적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이 장수한들 하나님의 영원하심에 비하면 허무하고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산 개가 죽은 정승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문상을 가도 정승이 죽으면 문상을 가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인간의 간사함을 단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세대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지나간 선배는 겁나지 않고 다가오는 후배가 겁난다는 말입니다.

 

 

모세의 시인 시편 90:9-10에는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표현합니다.

 

순식간에 날아가듯 인생이 지나가 버린다는 말입니다. 내 인생이 끝나면 내 후손의 인생이 다시 온다는 뜻입니다.

 

‘하숙생’이란 가요의 가사에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정말 인생은 잠시 이 땅에 머물다가 훌쩍 떠나는 하숙생 같다고 하는데 이 가요를 부른 최희준씨도 얼마 전에 하숙생 생활을 마치고 떠나갔습니다.

 

2000년에 나온 책 가운데 Life Counts’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태초부터 2000년까지 지구에 산 사람을 컴퓨터로 계산해보니 약 1,060억 명이었고, 구원 받은 사람의 수는 약 700억 명이라고 합니다. 이 땅에 태어나고 이름을 남기고 죽은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말입니다.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서 언뜻 우리교회도 성도의 수를 전수조사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동안 우리교회에 등록하고 신앙생활을 한 성도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제법 많은 수일 것입니다.

 

‘인생무상(人生無常)이란 말이 있습니다. 인생이란 항상 같지 않고 덧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서 잠시 소유하던 재물이나, 관직이나, 부귀영화나, 희로애락은 모두가 일시적이고 영원하지 않습니다. 특히 ‘인생무상’의 정신은 불교나 도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은 종교적 의미가 강하지만 동양문학에도 이 개념이 강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김만중의 ‘구운몽’은 우리교회 게일 목사님이 최초로 한국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은 인생무상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성진은 현실세계(인간계)에서 환몽세계(선계)로 다시 현실세계로 오가는 과정에서 인생의 진리를 깨달음을 얻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성진은 인간 세계에서 팔선녀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는 속세에서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덧없음을 깨닫고 불교에 귀의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 잠에서 깨어납니다. 인간사의 모든 일, 부귀공명이 한 순간의 꿈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인생의 귀천을 막론하고 인간은 덧없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지으신 땅은 영원합니다.

전도서 1:4 하반절에는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합니다. 인간세계는 마치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땅은 영원합니다. 오늘의 성경은 시간과 공간을 대조합니다. 시간은 변하지만 공간은 변하지 않습니다. 공간이 왜 변하지 않습니까? 다음에 오는 세대가 사용하라고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여 모든 것 가운데 으뜸이라고 합니다. 흔히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사람), 호모 파베르(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라고 하여 사람이 다른 피조물보다 월등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물의 영장입니까? 인간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보다도 못합니다. 흙보다도 못한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사람이 흙보다도 못한 것입니다. 사람은 영원하지 못하나 흙()은 영원합니다.

 

 

“영원히 있도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기초하시고 견고히 존재하게 하신 땅이 변함없이 존속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신뢰를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이 영원하여 지난 세대가 밟던 그 땅을 우리가 밟고 있다는 말입니다.

시편 119:90에는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라고 합니다. 주의 성실하심은 한 세대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대대에 이르게 하십니다. 땅을 세우신 하나님은 그 땅을 영원히 있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

“있도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마데트’인데 어떤 사건이나 행동의 연속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순간이나, 유한이 아닌 연속성과 영원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야훼’는 ‘하야’라는 존재동사에서 나온 말입니다. 있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계시는 분이시며, 땅을 영원히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이 지으신 땅이 함께 영원히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성경 5절에서 7절을 보세요. 해가 뜨고 지고, 바람이 불다가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강물이 흘러 바다로 가고 모든 것이 변하지만 땅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해가 뜨고 진다고 해도 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불지 않고, 물이 흘러갔다고 하더라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영원합니다.

 

당나라의 시성(詩聖)이라고 하는 두보(杜甫) ‘춘망(春望)이란 시에는 “나라는 무너져도 강산은 그대로구나”라는 시의 구절이 있습니다. 고려말의 학자 길재“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도라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이런가 하노라”라는 시조를 읊었습니다.

인생이나 나라나 정권이 변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땅, 자연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이 변하지 않아야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 후대가 영원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땅이 변하지 않고 영원한 까닭은 우리만 쓰는 것이 아니라 다음세대까지 쓰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후손에게 빌려 쓰는 자산”이란 말도 있습니다.

 

땅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변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변합니다. 지각변동도 일어나고, 화산도 터지고, 지진도 납니다. 땅이 변하지만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제가 오래 전에 살던 미국 서부는 옛날에는 바다 속이었는데 솟아 오른 땅이라고 합니다.

 

러시아의 캄차카와 미국의 알라스카는 원래 붙은 땅이었지만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근동지방에서 아메리카로 이주하였다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몽골계로서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습니다. 땅은 변하지만 없어지지 않고 존재하지만 인생과 세대와 시간은 없어지므로 변합니다.

전도서 1:9-10에는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고 합니다. 해 아래 새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낡아지고 지나고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땅 외에 모든 사람들, 모든 세대들은 다 사라지고 변하고 없어집니다. 11절에는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고 합니다. 몇 세대가 지나가면 자기의 조상이라고 기억조차 하지 못합니다. 저도 저의 조부모님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증조부모님은 보지도 못했고 기억조차 하지 않습니다.

 

지난여름에 저의 큰 외손자가 혼자서 한국에 왔습니다. 외손자가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 가운데 하나가 저의 선친 산소였습니다. 외손자는 외증조부를 본 적도 없는데 가보고 싶다니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장수시대가 되어 증조부모는 볼지 모르지만 고조부모는 보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니 기억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합니다. 만물을 지으셨도다”, “지으신 것이 아름답도다”.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 등 하나님의 지으심을 찬양하는 말씀들이 다양합니다. 인간은 죄로 추악하게 변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은 영원히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21에는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유한하고, 한계가 있고, 가변적이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영광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땅이 우리 후손을 위해 영원히 잘 보존되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이 우리의 협조 없이는 하나님께서 보존하시지 못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문화명령인 이 땅을 잘 관리하여 우리 후손을 위하여 이 땅이 영원히 살기에 아름답게 잘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하우와 윌리엄 스트라우스가 저술한 ‘새천년 세대의 부상’(Millenials Rising)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X세대’가 가고 ‘밀레니엄세대’가 뜬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천년 세대의 가치와 경향을 예견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2000년이 막 시작될 때 ‘밀레니엄’ 얘기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새로운 시대가 거창하게 도래할 것 같이 말했지만 막상 18년 동안을 살아보니 최첨단과학의 발달 외에 이전과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고, 달라졌다고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적응이 되어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제는 ‘밀레니엄’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새천년 세대도 우리 머릿속에서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오는 것은 무엇이나 지나갑니다. 그것도 신속히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시간과 공간은 두 가지 차원의 생존의 조건입니다. 그런데 이 둘 다가 우리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내 것이라 착각하고 살면 무질서하게 되고, 파괴하게 되고, 죄악이 됩니다.

 

우리는 전 세대의 다음 세대입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의 전 세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이란 시간 속에서 중요한 한 시점을 하나님이 보내셔서 살고 있습니다. 내가 없으면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에는 흠이 됩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한 희생의 세대가 됩시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영원한 땅을 잘 보존하는 슬기로운 세대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