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절 종합

대강절을 보내는 자세

에반젤(복음) 2020. 12. 15. 22:02

대강절을 보내는 자세

(요일 2:28)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작게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찻집에서 벗을 기다리는 것을 시작으로, 주부는 월급날을 사원은 휴가를 기다립니다. 때로는 가슴 졸이며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기도 하고, 결혼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 크리스챤들은 무엇을 기다리며 살아야겠습니까? 말할 것도 없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수천년 전 히브리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대강절이란 바로 이 기다림을 뜻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부끄럽지 않도록 주 안에 거하라고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대강절을 맞이하여 이 절기의 의미와 이 절기를 보내는 성도들의 자세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Ⅰ. 대강절이란 무엇인가?

 

대강절은 강림절로 더 많이 불리우는 교회의 절기입니다. '강림(降臨:Advent)'이란 「옴」,「도착」이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어드벤투스(adventus)'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뜻합니다. 따라서 대강절이란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그런 절기인 것입니다.

대강절은 성탄절 바로 전의 때를 가리키는데, 곧 성탄절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4번째 주일부터 성탄 전야까지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고대에는 대강절을 사순절과 비슷하게 지켰으나 현대에는 많이 완화되어 예배, 기도, 성경 읽기, 찬송 등을 통하여 이 절기를 축하하고 있습니다.

 

Ⅱ. 대강절의 3중적 의미

 

1. 과거적 의미

구약 시대의 히브리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다림의 소망을 가지고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나갔습니다. 마침내 예수께서 오시고 그 후 약 천년간 성도들은 대강절을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기쁨으로 지켰습니다. 대강절은 기다림의 성취요,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기념의 의미로 이어져간 것입니다. 성탄절을 앞두고 4주간을 찬송하며 기도함으로 보내는 것은 바로 대강절의 첫 번째 의미에 속하는 것입니다.

 

2. 현세적 의미

그런데 12세기경부터 강림의 의미가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현재에도 성도들의 마음에 주님이 찾아오신다는 의미가 더해진 것입니다. 즉 오순절 마가 다락방 사건 이후로 우리에게 오신 성령의 임재를 포함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강절은 크리스마스 전의 주님 탄생을 기다렸던 절기로뿐만 아니라, 지금도 내려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기다리는 것으로 그 의미가 확산되었습니다.

 

3. 미래적 의미

이러한 의미 확산은 더 나아가 장차 오실 심판주로서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으로 진일보하게 되었습니다. 요일2:28의 본문 말씀도 바로 오실 예수님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주님은 심판주로 오시지만 믿는 성도들에게는 칭찬과 상급을 주실 은혜의 주, 기쁨의 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는 것도 모두 주님의 재림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대강절의 세 번째 의미인 것입니다.

 

4. 종합적 의미

오늘날은 앞에서 언급한 3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 뜻으로 대강절을 새기고 있으며 특히 세 번째 의미인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뜻으로 더욱 지키고 있습니다.

 

Ⅲ. 대강절을 보내는 자세

 

지금까지 대강절의 내용과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부터 대강절을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대강절은 단순히 성탄절 행사를 준비하는 기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강절은 어떤 자세로 지내야 할 것입니까?

 

1. 거룩한 마음으로 보내야 합니다.

대강절은 그 예전적인 색이 자주빛인 것만 보아도 이 절기가 엄숙한 절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아무 생각 없이, 혹은 흥청망청 세류에 섞여 이 절기를 보내고 있으니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리에는 캐롤 송이 요란하고,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기, 츄리 만들기 등으로 경황없이 대강절이 지나갑니다. 그러나 대강절은 그렇듯 흥청거리는 축제 기간이 아닙니다. 이 절기는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기다리는 엄숙한 절기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결단을 하는 자세로 보내야만 합니다. 또한 다시 오실 심판의 주님 앞에 떳떳이 서기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거룩하게 보내야 합니다.

 

2. 소망을 가지고 보내야 합니다.

꿈이 없는 민족은 망한다고 했습니다. 꿈이 없는 인생 또한 얼마나 허망할 것입니까? 많은 크리스챤들이 고통과 슬픔 그리고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거나, 혹은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강절을 맞이하여 새로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오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가슴에 담고 바른 자세로 대강절을 보내야 합니다.

대강절은 한국 교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절기입니다. 설령 알려져 있다 하더라도 성탄절에 묻혀 그 의미가 미약해져 있습니다. 오늘날 성탄절은 이미 교회의 절기로서의 성격을 넘어서 있습니다. 신자건 비신자건 할 것 없이 모두가 들떠서 흥청거리는 축제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예수 탄생의 고귀한 의미는 사라져 버리고 얄팍한 상술에 현혹되어 유치하고 퇴폐적인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성도들만이라도 눈을 바로 떠야 합니다. 마음을 여미고 새로운 마음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생각하며 참회해야 합니다. 그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 오실날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 가짐으로 대강절을 보낼 때 이 절기의 의미가 비로소 살아나는 것이며, 그때에야 참다운 성탄절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마음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마음

(눅 2:8, 20)

 

성탄절은 참으로 기쁜 절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세계 만방이 축하하며 어떤 이는 찬송으로 기도로 예배로 헌금으로 연회로 선물로 심지어 여행으로 자선 사업으로 성탄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축하가 근본적인 축하가 아닌 줄 압니다. 참 된 성탄 축하는 우리가 조용히 ○○○○년 전으로 돌아가서 주께서 탄생하시던 당시의 사실을 생각하고 그때 그 광경을 마음 속에 깊이 그리면서 우리의 마음에 이 땅에 강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들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세상에 강림하심이 현재 나에게 그리고 내 가족에게 내 민족에게 어떤 의의가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 성탄절을 맞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올해의 성탄절을 맞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의 참 된 의의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Ⅰ.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져다 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불의와 거짓과 죄에 대한 도전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어 주시는 구주 성탄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원수된 인간을 화목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낙원 에덴에서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서 스스로 사망을 자초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위하여 구원의 길을 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무엇을 하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공의에 합일한 것이 있어야 했습니다.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언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는 누군가가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사랑의 하나님은 그 사랑의 실현을 위하여는 범죄한 인간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은 자기의 독생자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시기로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의 실현과 공의의 만족을 피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하셨음이니 이는 곧 원수인 인간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한 하나님의 행사였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분명히 허물과 죄로 하나님과 원수된 자리에 있는 우리를 화목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죄악과 충돌하신 것이요 그 죄에 대한 도전이며 그 죄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죄악 중에 있는 모든 만민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도말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시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다는 이 놀라운 소식 말입니다. 그리고 이 불의와 죄악은 예수 그리스도 강림 앞에는 서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성탄절을 맞이하는 자는 참으로 그 속에 죄를 배격하게 되고 하나님과 참 된 화목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Ⅱ.파괴된 세계를 수리하시는 하나님의 사업의 시작입니다.

 

우리는 이 우주에 있는 가장 무서운 파괴적인 사실이 죄라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인 모든 슬픔의 원인 모든 사람의 공포는 이 죄라는 한 마디 속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죄는 인간의 성질을 역전시키고 인간의 조화를 파괴하고 인간에게서 고상한 것을 빼앗고 그를 마귀의 쇠사슬에 얽어 매어 놓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정신을 파괴하여 정신 이상을 이루어 놓고 모든 사람의 신체의 구조를 파괴하여 모든 질병을 유발시키고 모든 나라의 화평을 파괴하여 전쟁을 불러 일으키고 인간의 두뇌를 파괴하여 광란을 일으키고 인간의 심령에다가 강한 독을 품어서 악독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러한 죄의 파괴력에 의하여 광란한 태풍 분화 중의 화산 정신 병원에서 뛰쳐나온 광인 배회하는 깽 먹이를 찾아 으르렁거리는 사자나 지상을 향하여 돌진하는 번개나 목을 잘라 버리는 단두대 이런 것들이 다 죄악이 휩쓰는 격류인 것입니다. 참으로 죄로 인하여 개인의 정신이 파괴를 당하고 가정이 깨어지고 사회와 국가가 파괴당하고 전인류가 평화와 자유를 상실해버린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이 파괴된 세상을 수리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의 멸망 소돔 고모라의 파괴가 모두 죄악이었으며 로마의 폼페이 성의 대지진 멸망도 음란의 죄악임을 증명하고 산산히 조각난 인간 가정 사회 국가를 하나님은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죄악을 멸하시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모든 병과 모든 악한 자들을 고치셨으며(마4:23) 모든 고난 받는 자들을 고치셨고(눅6:18)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고(눅7:21) 죽은 자를 살리셨으니(요11:43) 진정 주님의 탄생은 파괴된 모든 것을 고치러 오신 주님이십니다. 지금도 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하여 모든 교회는 이 수리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의 탄생을 생각하면서 수리하시는 예수를 믿기를 바랍니다.

 

Ⅲ. 낡은 것에 대한 새 것을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시대의 상징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세상은 이미 낡아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난 대로 바리새인들이요 사두개인들이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낡은 전통, 풍속, 낡은 사상, 낡은 습성에 젖어 있었습니다.

 

1.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저들은 낡은 전통주의에 젖어 있었습니다. 예수를 사기꾼으로 보았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고 제자들의 근본이 천인들이요 무식자들이었으니 우월주의로 가득 차있는 저들 자기 민족에 눈이 어두워진 저들 율법과 전통에 젖어버려 이미 낡아빠진 사상에 젖어져 있었습니다.

 

2. 사두개인들입니다.

저들은 귀족들입니다. 산혜드린 공의회 회원들입니다. 저들은 국가나 사회에 다른 운동이 일어나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저들은 종교를 한갖 정치의 한 부속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야 사상이나 부활을 부인하는 낡은 사상에 포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3. 군중들입니다.

그들은 정치적 혁명으로 민족 해방 운동을 벌이는 군중들이었으며 물질주의로 타락해져 있었던 무리들입니다. 예수의 이적으로 떡 얻어 먹고 왕 삼으려 했던 무리들이 제사장들에게 매수되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달라고 아우성칠 정도로 낡아빠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이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낡은 세상을 새롭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새롭게 하시는 운동을 하셨습니다. 막9:2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으리라고 하셨고 고후2: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 것이 됩니다. 이는 딛3:5에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된다 하였고 롬7:6에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라 하였고 롬6:4에는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 새롭게 하시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으심이요 그 피로 인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또한 이 세상에 오실 때 죄인을 위하여 피흘려 속죄하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죄인을 새롭게 하려고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피흘려 우리를 속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낡은 것을 새롭게 하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성탄절을 맞이할 때 분명 우리는 낡은 것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낡은 생각, 낡은 풍속, 낡은 생활 모든 것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밑에 묻어 버려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모두 씻어 버려야 합니다. 그리하여야 성탄을 맞는 참 된 뜻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성탄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성탄절의 참 된 뜻은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의 화목을 위함입니다. 이 성탄은 우리의 파괴된 정신 몸 가정 사회 국가의 새로운 건설을 위함입니다. 죄를 이기고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몸으로 가정으로 완전한 사회 국가 우리를 건설하

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