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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37과 나의 산 돌이신 예수님 (벧전2:1-10,사28:16)

에반젤(복음) 2020. 12. 10. 19:26

제37과 나의 산 돌이신 예수님

성경본문 : 베드로전서 2:1-10, 이사야 28:16

베드로전서 2:1-10,

1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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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8:1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 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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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제일먼저 이용한 도구는 ‘돌’이었습니다. 이 시기를 석기시대라고 말합니다. 육지가 만들어질 때 크게 두 가지 물질로 창조하셨는데 그것은 흙과 돌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흙은 돌이 부서져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풍화’라고 합니다. 이 과정은 큰 바위 → 작은 바위→ 큰 돌 → 작은 돌 → 왕모래 → 가는 모래 순으로 변하는 것을 기계적 풍화라고 하고 바로 모래나 흙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화학적 풍화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돌 위에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겠습니까? 그것 또한 돌입니다. 그러다 보니 돌들도 한 가지가 아니라 그 종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 중에는 사람들의 관심에도 없는 돌들이 있는가 하면 주목을 받는 돌들도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보석입니다. 그리고 보석 중에서도 여러 가지로 나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최고 좋은 돌(보석)은 다이아몬드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숯과 다이아몬드는 그 원소가 똑같은 탄소라는 것을 아시는지요?

 

한 여인이 꿈에서 시장에 갔습니다. 새로 문을 연 듯한 가게로 들어갔는데 가게 주인은 다름 아닌 하얀 날개를 단 천사였습니다. 여인이 이 가게엔 무엇을 파는지 묻자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무엇이든 팝니다.”

그 대답에 너무 놀란 여인은 생각 끝에 인간이 원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사기로 결심하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평화와 사랑, 지혜와 행복, 그리고 두려움과 슬픔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세요.”

그 말을 들은 천사가 미소를 지우며 말했습니다.

“부인 죄송합니다. 가게를 잘못 찾으신 것 같군요. 이 가게엔 열매는 팔지 않습니다. 단지 씨앗만을 팔 뿐이죠.” 같은 씨앗을 가지고도 어떤 사람은 검은 숯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다이아몬드를 만듭니다.

 

계21:19에 보면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하늘의 성은 각종 보석으로 만들어졌는데,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라고 합니다.

아마 다이아몬드는 이 보석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섬 마을 어린이들이 서울에 올 때 선생님은 미리 서울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미리 약간의 지식을 알려줌으로 서울을 바로 이해하고 당황하지 말라는 뜻에서 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미리 우리에게 천국에 대해서 약간 알려줄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돌은 하늘나라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보석은 천국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를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 보다도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을 ‘산 돌’이라고 말할 때는 비유로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돌을 말할 때는 생명력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시앗(남편의 첩) 싸움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돌은 생명력이 없음을 다 알고 있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며, 남편이 바람을 피면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는 이 생명력이 없는 돌들로 사람들을 고발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셨을 때의 일입니다. 군중들의 환호성과 찬양소리를 바리새인들이 문제를 삼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책망하소서’라고 함으로 이런 문제가 예수의 제자들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19:40)는 대답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찬양하지 않는다면 생명력이 없는 돌(자연)이 그리스도를 찬양할 것이라는 뜻과 둘째는 제자들이 찬양하지 않는다면 돌들이 고발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9)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능력이 전혀 없는 돌들을 통해서도 자녀를 낳는 능력을 주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잉태할 수 없는 나이에 이삭을 태어나게 하신 것을 상기시키는 뜻도 있습니다만 하나님의 전능함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1. 약속의 돌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온 열 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러 가로되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수4:20-22)고 했습니다.

 

저도 가끔 해변 가에 가면 돌들을 가져오곤 합니다. 저는 그저 돌이 반들반들하여 가져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후손들에게 요단강을 건넌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상징하여 열 두 돌을 길갈에 세웠습니다. 또한 다윗이 블레셋 거장 골리앗을 죽이게 한 것도 물매돌 이었습니다.(삼상17:41-49)

이스라엘 민족에게 ‘돌’이란 이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상징이요 언약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구약성경은 오실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를 가리켜 ‘시험한 돌’, ‘귀하고 견고한 돌’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28:16)

 

‘시험한 돌’이라는 것은 ‘모든 시험을 다 거친 돌’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사단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마4:1-11).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을 지심으로 승리하시기 전까지 생애 전체가 시험의 과정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 제사장들의 끝임 없는 시험 곧 넘어뜨리려는 질문들이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예언했지만 이와 같이 ‘시험한 돌’로 말씀하시고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신약에서는 ‘산 돌’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진짜 좋은 돌(보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산 돌’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죽어있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산 개가 죽은 호랑이보다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산 돌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제가 어렸을 때 수정이라고 해서 뾰쪽하게 솟아난 돌이 있는데 이 돌에 물을 주면 돌이 자라난다고 해서 물을 주고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돌도 변하고 있는데 그것은 부서지는 것과 아니면 산에 있는 돌이 굴러 내려와 물매 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산 돌’ 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왜 산 돌에 비유했을까요?

돌은 쉽게 부식하지 않기 때문에 기록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기록은 십계명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직접 돌에 새겨서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때 십계명을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돌에 기록된 문자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산 돌’이란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2에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3. 돌은 집을 짓는 기초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돌’로 묘사한 것의 제일 중요한 것은 성전의 종석(宗石, keystone)으로서 머릿돌, 모퉁이 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직접 마태복음 12:10과 누가복음20:18에서 직접 이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때 버림받으실 것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종석이 되게 하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게 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기초하여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벧전2:7)라는 말을 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모퉁이 돌이 되시고 머릿돌이 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만이 ‘시험한 돌’ 즉 우리를 위해서 같은 고통과 시험을 대신 당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자 되시기 때문입니다.

 

 

4. 돌은 깨뜨리는 심판 역할을 합니다.

항아리를 깨뜨리는 돌에 대한 이야기가 유대인에게 있었습니다(단2:31, 사8:14 참고).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시켜서 불 항아리를 만들고 그것을 깨뜨려 적진을 혼란에 빠뜨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경험이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는 유대인들은 ‘돌과 항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항아리는 사람에게 비유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심판하는 것은 돌입니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는 사람들은 돌에 부딪혀 깨지는 항아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했을 경우, 두 사람을 다 끌어내어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어떤 남자가 한 남편과 결혼한 여자와 동침하는 것이 발견되면 그들을 둘 다 죽일지니”(신22:22)라고 하십니다. 돌을 던지는 것은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을 유대인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2:8)고 하셨습니다. 우리 속담에 ‘돌을 차면 제 발부리만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에게는 예수님이 부딪히는 돌이 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탈무드에는 ‘사람들은 길에서 넘어지면 먼저 돌을 탓한다. 만약 돌이 없으면 언덕을, 언덕이 없으면 자기의 구두를 탓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좀처럼 자기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넘어지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을 순종치 않기 때문입니다.

 

 

5. 돌(반석)은 생수의 근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기록하는 돌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대표적으로 십계명을 말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에게 돌(반석)에 대한 사건이 또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 때 르미딤에 장막을 쳤을 때 물이 없어 모세를 돌로 치려고 할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출17:1-6).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출17:6)

이 사건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대로 이어졌으며 하나님이 생수를 직접주신 사건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장막절에 물을 붓는 예식을 행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그들의 심정을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기회를 얻어 ‘큰 날’(장막절)에 물을 성령으로 비유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

 

유엔에서 우리 나라도 물 부족국가로 분류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물의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 이스라엘은 1년 평균 강우량이 300밀리입니다. 우리 나라의 장마철 같으면 집중적으로 올 때는 하루에도 100밀리씩 쏟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태풍 매미는 제주도에 하루동안 400밀리, 경남에 300밀리를 뿌리고 갔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물은 곧 생명을 상징합니다. 이 물이 어디에서 나온다는 말씀입니까? 바로 ‘산 돌’이신 예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이 생명수는 성령입니다.

 

‘산 돌’이신 예수님께는 바로 교회의 머리와 구원하시는 주되심과 동시에 항아리를 깨뜨리는 심판하는 돌과 같이 심판 주되심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들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아니라 교회의 머릿돌이시며 성전의 기초가 되는 반석이 되십니다. 아울러 우리 성도에게는 성령의 생수를 공급하시는 ‘산 돌’(반석)이십니다. 이러한 축복은 오직 주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벧전2:10)하신 축복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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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