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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와 심방 에티켓

에반젤(복음) 2020. 12. 9. 01:09

목회자와 심방 에티켓

 

 

목회자와 심방 에티켓 ①
목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게 심방이다. 날씨가 좀 시원해지면 또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심방을 해야 하는게 목회생활이다. 우리나라 교인들은 그렇게 심방을 좋아한다. 미국 프린스톤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목회신학’을 가르친바 있는 시워드 힐터너교수는 “활동적 목회법은 심방과 치유에 있다”고 하였다. 그의 책 「목회신학 원론」(민경배교수 번역)에서 “목양이란 양들을 돌보는 것”이라고 했다.
심방을 함에 있어 보이지 않는 에티켓을 반드시 지킬 필요가 있다. 심방에는 정기심방, 위로심방, 환자심방등이 있다. 어떤 심방이든지 심방에 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교인들은 불쑥 들리는 심방까지 좋아한다.

심방은 관심이다
누구든지 알아주는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목회자는 언제나 교인들의 작고 큰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좋은 일에는 축하와 격려를 하고 고민스러운 일에는 연민의 정을 가지고 동정을 하면 좋아한다. 왜냐하면 관심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너무 조용하고 권태가 오는 듯 싶으면 전화로라도 관심을 표하면 그렇게 기뻐한다. 관심에 대한 고마움이다. 심방은 그런 관심을 몸으로 보여주는 실천이다. 교인들은 목회자의 심방으로 축복이 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목회자는 그런 좋은 마음을 기분좋게 하되 아무렇게나 할 것이 아니라 심방 에티켓만 지키면 내 사람으로 완전히 끌어들일 수 있다. 바쁠 때는 전화심방도 가능하다. 전화로 궁금하다는 관심을 표하고 그 쪽의 인사를 받고는 전화로 위로와 격려를 위한 기도를 드려준다.

심방엔 예절이 있다
모든 교인이 다 심방을 좋아한다고 아무렇게나 해선 안될 것이다. 심방을 받는 교인은 좋아라고 자랑도하고 소문을 내지만 그런 소문에 목회자가 휘말려선 아니된다. 잘못하면 편애한다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심코 할때도 골고루 하는 습성이 필요하다. 한쪽에 전화를 걸었으면 가까운 사이에 있는 교인에게도 문안을 하는게 좋다. 가까운 교인이라고 더 잘대해주고 못배웠다고 무시한다는 식의 인상을 주면 목회자는 구설 수에 오를 수 있다. 생활의 여유가 있는 사람보다 생활이 어려운 교인을 더 축복하고 사랑하는 것이 교회 전체를 훈훈하게 만든다. 간혹, 목회자를 싫어하는 교인을 가깝게 접촉하는 심방이 필요하다. 어려울 때는 호기회이고 평범하게 지나가다가도 심방하여 기도하고 관심을 가지면 싫은 감정이 쉬 사라 질 것이다. 그래서 심방이 중요하다. 목회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돌봄’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돌봄’은 심방으로 잘 할 수 있는 일이다.

온 가족의 이름을 외우라
암기법에 아무리 둔한 목회자라도 심방을 가기 전에 그 가정의 가족들 이름을 외우고 가는게 좋다. 특히 아이들의 이름이다. 그들이 몇 살이고 몇 학년인 것을 미리 알고 가서 기도중에는 이름을 부르면서 고3 등 상급학교 진학을 축복하면 심방의 효과는 클 것이다. 그들의 고민도 긍정적인 면에서 기도로 나오면 더욱 바람직스럽게 된다. 시워드 힐터너교수는 심방이야말로 치유의 효능이 있다고 말했다. 치유란 역시 “교인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의 몸으로 비유한다면 어떤 장기가 고장이 나서 병이 들었을 때 치료를 통해서 재생시켜 본래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병이 낫다고 팽개쳐선 아니된다. 마음의 상처가 있거나 육체로 아픔을 갖고 있는 교인을 더 사랑해서 심방으로 치유하면 건강한 교인이 될 것이다.
목회의 원칙은 심방에 있는데 근자에 와서 대중화하는 목회로 흐르고 도시화와 산업화 사회로 전환되면서 바쁘다는 말로 심방이 점점 약화되는 느낌이 있다.

 

목회자와 심방 에티켓 ②
심방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따뜻한 내용이어야 한다. 형식이나 양적 심방은 도리어 부작용을 만드는 수가 있다. 피차 에티켓을 잘 지키면서 꾸준한 심방으로 이어져야 한다.

부교역자들의 심방과 담임목사
주로 어느 정도 규모가 큰 교회일수록 부교역자들의 역할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큰 교회는 교구별로 나누어 부교역자들이 심방을 책임지고 있다. 심방은 원칙대로 보면 담임목사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담임목사 혼자서 할 수 없는 목회를 역할 분담으로 팀목회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때문에 부목사나 전도사가 심방을 가도 담임목사가 심방하는 것처럼 교인들을 교육하고 홍보하는 심방이라야 한다. 그렇다고 담임목사 얘기를 해서는 절대 안된다. 어디까지나 교인들을 돌보는 입장이 누가 심방을 해도 같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병원에 입원한 신자를 심방하는 경우가 애매하게 교역자끼리 불편한 일이 생길 수 있다. 다른 분들은 다 다녀갔는데 담임목사만 안왔다는 오해를 갖기 쉽다. 부교역자들이 담임목사의 편에서 병원에 환자심방을 한다고 생각할 일이다. 순진한 부교역자는 기껏한다는 말이 “담임목사님은 바빠서...” 운을 띄워 놓으면 교인들과 담임목사 사이를 우습게 만드는 일이 본의 아니게 생겨날 수 있다.

심방시 말조심과 후유증 없는 일
심방은 원칙대로 해야하고 말의 에티켓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교역자는 물론이지만 함께 가는 심방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심방중에는 토론식의 잡담은 못하도록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만하는게 심방 상식이다. 어떤 분들은 심방을 가서 신경을 곤두세우는 말을 던지길 좋아하는 수가 있다. 절대 금물이다. 예를 들면 그 가정의 약점을 쑤시다가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경운데 말썽많은 둘째딸 이름을 대면서 그동안에 문제해결이 잘 되었느냐(?)는둥 또 어떤 경우는 요사이는 남편이 속은 안썩이느냐(?) 묻는 식이 다 금해야할 말조심이다.
심방 에티켓은 인도자외에는 다른 분들은 침묵하는게 좋다.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희망적으로 격려할 필요가 있다. 심방을 가서 딴 얘기가 안나오도록 분위기를 심방쪽으로 만드는게 심방을 이끄는 분의 책임이다. 괜히 말 잘못했다가 교회 전체로 번질수도 있다. 말조심이다. 에티켓만 잘 지키면 심방은 목회에서 꼭 필요하지만 말썽이 되면 심방을 안하는 것만 못하다. 모든게 교회도 사람때문에 잘 되기도 하지만 잘안되는 것도 사람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심방하다가 말을 잘못해서 구설수에 올라 교회 분쟁으로 확대되는 교회도 있다.

추궁식 심방과 자랑식 심방 금지
강한 표현으로 ‘금지’라고 쓴다. 특히 권사들이나 여전도사들이 심방 갔을때 실수하기 쉬운 것이다. 환자 심방을 가서 대뜸하는 말이 “잘됐다. 잘됐어! 그렇게 기도 안하고 교회 잘 나오라고 해도 순종 안하더니 결국 하나님에게 매 맞았구먼...” 식이다. 물론 연령도 아래이고 신앙도 약하지만 그렇게 반말로 추궁해서 환자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된다. 어떤 권사는 심방을 따라가서는 목회자가 옆에 있는데도 자기 자식 자랑하느라 바쁘다. 심방을 간 그 집의 아들은 지지리 공부도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부 좀 잘하는 아들 두었다는 자랑이 하고 싶어 어쩔줄을 모른다. 어떤 경우는 심방을 가서 자기 자랑식의 간증을 길게 늘어놓는 사람도 있다. 심방은 심방을 받는 집이나 사람을 위한 심방이라야 한다. 정기심방이면 위로와 격려, 축복이고 환자심방일때는 그 사람을 고치는 마음으로 아픔을 함께 나누는 자세를 지키는 에티켓이 필요하다. 사업에 실패를 했거나 직장을 잃고 상심되었을때는 용기를 북돋아주는 심방이어야 한다. 병원에 환자 심방을 가서 고통스러운 환자를 두고 병의 원인을 캐는식의 토론을 하면 옆 자리의 환자나 간호사와 의사들까지 싫어한다. 간단히 희망만 주고 오는게 더 낫다.

 

목회자와 심방 에티켓 ③
심방을 가볍게 생각해선 안되는게 심방예절이다. 무심코 지나다가 들리는 심방도 심방자는 담임목회자가 되었든지 부교역자가 되었든간에 절도있는 심방이라야 된다.

객관성이 있는 심방
예수님도 제자들을 보낼 때는 둘씩 둘씩 보냈다. 뜻이 있는줄로 안다. 언제나 혼자서 하는 습관보다는 객관성을 보이기 위함인 것으로 생각이 된다. 옛날에는 요사이처럼 주택들이 현대화되지 못했을 당시 신학교에서 목회학을 가르칠 때는 심방시 아낙네(여인) 혼자 있으면 방문을 열어놓고 심방을 하라고 하였다.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객관성을 보이라는 것이다. 둘이 가면 하나는 증인이 된다. 아무리 작은 교회라도 목회자는 두 사람 이상이 함께 가는게 바람직하다. 정기심방은 예고된 것으로 여러 사람이 심방을 하지만, 수시로 할 때는 불쑥 들릴수도 있다. 아무리 바빠도 목회자는 사모님이라도 함께 가는게 좋다. 사모님 심방 얘기가 나왔는데 매우 좋은 방안이다. 사모는 듣기만하고 남편이 꼭 필요한 말을 건넨다. 왜냐하면 사모님이 약점이 잡히거나 구설수에 오르면 목회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문화 속에서는 사모님은 목회자의 뒤에 있는 것이 좋은 모습으로 비추인다.

듣는 심방이 아름답다
심방을 가서는 그 가정의 얘기를 듣는 습관을 가지면 좋다는 말이다. 앉자마자 예배를 드리기보다 그동안의 형편이나 환자이면 차도가 있는지, 혹은 상태를 들어본 후 위로하고 격려할 얘기감을 얻는다. 아이들의 근황도 묻고 일반적인 흐름을 듣는게 심방에는 아름다운 것들이다. 궁금증을 가볍게 표시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다 말해 준다. 그러면 수긍만 하면 된다. “예, 그렇군요.” “그랬군요.” 계속 들어만 준다. 듣는 심방으로 시작하면 상담역할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 한참 말을 들어주곤 찬송은 그 가정에서 고르도록 하면 좋다. 좋아하는 찬송이 집집마다 있다. 아이들이 함께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찬송가를 넌지시 주문해 보는 것도 그들을 동참시키는 방법일 수 있다. 누구나 자기를 인정하거나 알아주는 것은 관심을 끌어내는 매너가 된다.

남의 말은 심방시 삼갈 것
심방하면서 주고받는 말들이 말썽이 생기면 큰 문제로 확대하기 쉽다. 심방예절엔 절대 남의 말을 삼가야 한다. “누구는 어떻데.” “그 사람은 왜 그런지 몰라” 등등 누군가 말을 뱉으면 누군가 그 말을 받아 토를 붙이면 결국 우습게되는 꼴이 이어진다. 그래서 담임목사는 부교역자들을 포함해서 심방대원이 될 구역장이나 권찰들에게도 평소 심방에티켓을 미리 가르치는게 좋다. 심방은 어디까지나 그 가정이나 심방을 받는 사람에게 집중해야지, 괜히 남의 말로 토론식이 되면 안된다. 흔히, 교회 분쟁의 불씨도 개인적으로 비방하다가 일어난다. 말을 했느니, 안했느니 티격태격하다가 문제가 커진다.

심방예절은 희망 주는 일
심방을 가는 분들은 누가 간다해도 그 사람과, 그 집에 희망을 주고 와야 한다. 문제는 그 자리에서 다 해결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결국 문제는 그 집이나 그 자신이 풀어갈 수 있도록 희망을 주는데 심방의 목적이 있다.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주면 스스로의 믿음으로 확신을 갖는다. 그런데 어떤 심방은 해결사처럼 비추일 때가 있다.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부흥회를 인도한다. 박수를 치고 열을 올리다가 안수도 하고 심지어 안찰을 마구 해댄다. 준비성이 없는 열정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안수, 안찰은 아무나 해선 안되고 아무때나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심방 에티켓은 어디까지나 용기를 주고 희망을 주는데 있다. 심방을 받고 난 후에는 평안해야 한다. 그래서 심방을 선호한다. 심방은 움직이는 목회이다. 심방으로 목회자와 교인들 사이가 부드러워진다. 뜻있는 심방이 그렇다.

 

목회자와 심방 에티켓 ④
『중소교회 목회론』을 쓴 죤 씨. 디쎈 목사는 “심방은 목회자의 영적 방문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심방이 교회를 위한 방문으로 보지 말고 교회가 사람이나 집을 찾아서 위하는 ‘동적 목회’라는 것이다. 그는 심방을 논하면서 목회자가 기도로 영성을 강화하고 책을 통해선 지식을 보강함은 ‘정적 목회’를 돕는 일인 반면에 심방은 ‘움직이는 동적 목회’라는 지론이다.

곤경에 처한 교인심방
수년 전 IMF가 왔을 때 교회는 영적으로 뜨거워진 적이 있다. 그 때 목회자들의 메시지는 위로와 격려로 일관했고 희망적인 설교였다. 그리고 찾아가는 심방이 많았었다. 사람이 곤경에 처하면 마음은 더 가난해진다. 낮아지는 마음가짐은 희망이 있는 자세이다. 비관하고 낙심하기보다 없던 신앙도 생기고 옛날의 첫 믿음을 회복시키는 목회가 그럴 때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위기적인 체험을 겪기 마련이다. 심방은 곤경에 처했을 때 효력이 발휘된다. 그런 때 심방 에티켓은 반드시 지킬 일이다. 먼저는 사필귀정식으로 몰아 세워선 안된다. 또는 죄값으로 책망하지 말 것이다. 둘째론 곤경에 처한 자는 심각한데 너무 가볍게 받아들일게 아니라 목회자도 함께 걱정해 주는 편이 더 낫다. 예수님께서도 “우는 자와 함께 울라”고 하셨다. 농담식으로 고통을 쉽게 대하질 말고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모습으로 위로를 할 때 힘을 실어준다.

외로운 교인을 심방하라
군중속의 고독이 더 심한게 현대인들이다. 자식을 두었는데도 외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노인이 많고 부족할게 없는데도 남이 보는 것 이상으로 고독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심방이 그런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에티켓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훌륭한 자녀가 있는 부모님의 고독을 보면서 자식들을 흉보는 식의 심방은 조심할 일이다. 들어보면 딱한 경우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평조로 말의 흐름에 맞장구를 쳐선 안 된다. 그렇다고 부모를 달래는 식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들어주는 것으로 끝날 일이다. 잘못하면 심방이 남의 가정을 재판하는 식이 되면 더 복잡해진다. 말을 듣다보면 목회자도 흥분이 될 수 있고 요사이 세태를 나무라는 식의 심방은 의미가 없다. 다만 말씀으로 위로를 하도록 하면 된다. 문제는 스스로 해결될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고아와 과부들을 돌아 보라”고 말씀하셨다. 심방을 뜻한다. 외로운 사람들은 사람이 그립다. 목회자의 심방은 가장 희망있는 만남이다.

환자를 찾아보는 심방
사람들은 병도 가지각색이다. 육신으로 병이 들 때도 있지만 마음으로 병든 환자도 있다. 어떤 병이든 목회자는 환자 심방을 빼지 않고 잘할 것이다. 병자를 심방할 때의 에티켓은 목회자가 의사처럼 꼬치꼬치 물어대는 식의 심방이 되어선 아니된다. 왜 병에 걸렸으며 이론적으로 너무 알려고 하지 말 것이다. 병자는 현재를 놓고 기도를 해주어 낫는다는 희망을 주는데 심방의 목적이 있다. 병원을 찾아가서 하는 심방이야말로 오래 머무는 일은 삼가야만 한다. 찬송가 소리도 가능하면 신경을 쓰고 생략하는 것도 지혜로운 처사이다. 옆자리의 환자들도 배려해서 조용 조용 말하고 기도할 일이다. 에티켓은 정해있지 않은 것을 그때 그때 무리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게 다 에티켓이라 할 수 있다. 성경도 환자에게 맞는 구절을 찾아 읽어주고 말씀은 간단하게 전하는게 좋다. 기도할 때는 가능하면 손을 잡고 편안한 마음을 환자에게 갖게함도 좋을 듯 싶다. 그렇다고 함부 로 머리에 손을 얹거나 환부에 손을 대는 것도 삼가는 것이 병원심방의 에티켓이다. 말씀은 이사야 41장 10절 같이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는 말씀이나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는 이사야 43장 2절에 있는 말씀처럼 “물 가운데로 지날 때나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도 불꽃이 사르지 않게 한다”는 말이 매우 희망적이다.

 

목회자와 심방 에티켓 ⑤
미국의 목회신학자인 토마스 씨. 오덴박사는 그의 책 「목회신학」에서 심방을 가리켜 ‘목회의 전인적 관심’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심방이야말로 목회자의 교인을 향한 관심이라 할 수 있다. 관심을 끌어내는 목회자의 할 일은 가깝게 느낌을 주면서 교인들의 말을 듣는데 있다.

심방을 위한 10계명
심방의 범위는 목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제는 나열된 심방얘기를 열가지로 요약한다.
①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라.
② 감사가 저절로 나오게 하라.
③ 사생활에 징계할 생각 버리라.
④ 희망과 축복된 말을 전하라.
⑤ 말하기 보다 듣는데 힘쓰라.
⑥ 가족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라.
⑦ 칭찬은 하되 추궁을 금하라.
⑧ 남의 말 나올 때 분위기를 바꾸라.
⑨ 목회 차원에서 심방범위를 지키라.
⑩ 비판을 피하고 목회를 홍보하라.
이상의 말들은 평범하게 쓸 일이다. 목회심방은 교회를 대표로 해서 행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교역자들은 심방시 담임목사를 대신해서 간다는 것을 명심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심방은 안왔어도 부교역자들을 보내주었다고 인식이 되도록 할 것이다. 심방은 목회의 방향에 도움이 되어야지, 별도로 딴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심방을 마친 후에는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에게 심방 결과를 보고함으로 목회에 도움을 주고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심방엔 심방의 ‘선’을 지켜야
심방자들은 누구든 심방의 예절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도 몇 가지 지킬 에티켓이 있다. 반드시 예절의 ‘선’안에서 실천할 것이다.
① 몸가짐을 바로 가져야한다.
② 말을 주고 받을 때 선을 지키라.
③ 부담을 주는 행위는 삼가라.
④ 특히 이성간에 선을 지키라.
⑤ 음식을 먹을 때 예의를 잊지 말자.
⑥ 그 집, 살림살이를 논하지 말라.
⑦ 심방을 가서 자신을 돋보이지 말라.
⑧ 교역자는 심방대원을 다스리라.
⑨ 아이들이 있을땐 특별히 사랑하라.
⑩ 심방시는 그 가정이 주인공이다.
가끔, 이런 심방의 원칙을 지키지 않고 심방 교역자나 심방 대원들이 에티켓을 어기면 잡음이 생길 수 있고 심방의 목적도 흐려질 수밖에 없다. 심방대원들이 여성일 경우, 사전에 교육이 되지 않으면 말많은 분은 엉뚱한 말로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 예를 들면, 살림 도구를 보고 “언제 샀느냐?” 묻고는 “얼마나 주고 샀느냐?” 꼬치 꼬치 궁금증을 풀고는 비싸게 샀다느니, 바가지를 썼다고 하면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심방을 인도하는 교역자 외에는 다른 분들은 말을 아껴야 한다. 꼭 필요한 말만해야 좋은 심방이 될 수 있다. 어떤 이는 심방을 따라가서 자기 자식 자랑으로 열을 올리고 그 가정의 자녀를 깍아내리는 사람도 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분위기로 바뀔 수 있다. 언제나 심방은 심방이라야 한다.

심방도 ‘스펀지식’이라야
사랑의 심방을 뜻한다. 부드러워야 한다. 무슨 말을 들어도 일단 수긍하는 쪽을 택하면 스펀지식 심방이다. 교육을 시킨다는 생각을 먼저 갖기 전에 그 가정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게 바람직하다. 여기에도 몇 가지 지킬 자세가 요구된다.
① ‘예’만 하고 ‘아니오’를 피하라.
② ‘잘됐군요’만 하고 ‘왜’를 삼가라.
③ 어려운 실토엔 ‘기도하겠습니다’로 응하라.
④ ‘칭찬’은 쉽게 하되 책망은 조심하라.
⑤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보이라.
⑥ 어려운 사정은 들음으로 임하라.
⑦ 대답은 언제나 ‘기다려 봅시다’하라.
⑧ 중요한 대목엔 ‘성경구절’을 읽어주라.
⑨ 부드러운 심방은 ‘권면’으로 여운을 남기라.
⑩ 말에나 몸가짐을 사랑한다는 인상을 풍기라.
심방은 수시로 하는게 좋다. 지나가다 집밖에 서서 위로함도 좋은 심방이요, 생각날 때
전화로 기도함도 심방이 된다. 더 좋은 심방의 분위기가 교회마다 가득했으면 좋겠다.


남의 교회 교인 심방윤리
현대인들은 교회가 멀어도 교통수단이 잘되어 있으므로 교회는 옮기지 않고 주로 새벽기도회는 가까운 교회로 출석하는 경우가 있다. 거의 매일 만날 정도이다. 수요일 기도회도 가끔 생긴다. 목회 윤리상 그럴 경우, 자연스럽게 두는 것이 에티켓이다. 혹시 그 출석 교인이 외부의 권유가 일체 없이 교회를 옮겨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목회자는 담담하고 냉정하는게 좋다. 만약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자신의 교회 교인이 먼곳에 살다가 다른 교회로 옮긴다고 하면 얼마나 서운할 것인가. 스스로 결정했다고 해도 화살은 그쪽 교회 목회자에게로 쏠리게 된다. 제일 큰 문제는 심방을 해서 데려갔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남의 교인 심방은 쉽게하면 오해를 만들 수 있다. 예외는 있을 것이다. 갑자기 병이 나거나 급히 가정에 문제가 생겨 심방요청이 있을 경우는 목회자의 심방 에티켓을 지키는 자세로 목회심방을 하는 것도 무방하다. 단 어느 때, 심방결과를 그 쪽 교회 목회자에게 상세한 자료를 전하는 매너도 좋은 심방 에티켓이 된다. 심방으로 지나친 욕심을 안갖는게 좋다.

온가족이 다 믿지 않는 심방일 때
한마디로 쉽게 표현하면 ‘쪽믿음’일 경우이다. 며느리는 교회집사인데 시어머니는 불신자인 경우가 더러 있다. 그런 때는 심방자들 모두가 그 가정의 풍습대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무엇보다 목회자 혼자서 심방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너무 많은 심방대원들이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적당한 인원에, 입고 가는 의복도 자연스러운 복장으로 예의를 깍듯이 나타내서 우선 시어머니에 대한 예절을 반드시 지킬 것이다. 가능하면 예배시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예의 바른 사람들임을 보여야 한다. 말을 조심하고 관심을 갖고 건강상태, 생활 중 있을 수 있는 얘기로 기분을 어색하게 하지 않는 범위에서 관심을 가져주는게 그런 경우의 심방 에티켓이다. 자극적인 말은 피하고 며느리편에서 두둔하는 인상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

심방에는 친절이 제일이다
어떤 경우의 심방이든 심방자들의 몸가짐부터 심방에 임하는 자세는 전적으로 심방을 받는 가정을 중심으로 행할 일이다. 한마디로 ‘친절’에 있다.

첫째, 밝은 얼굴로 심방할 것이다.
좋은 소식을 갖고 가서 축복을 하러 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화제도 좋은 얘기를 주로 만들 것이다. 심방대원들 모두가 다 그런 모습이 되도록 교회에 모여서 기도도 하고 몇 마디로 목회자는 교육도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입고가는 옷이나 악세사리이다.

너무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쓰게 만드는 옷차림이나 몸에 달고 다니는 악세사리는 눈을 피곤하게 하면 안좋다. 수수한 차림이라야 한다.

셋째는 칭찬을 많이 하는게 좋다.

심방시에는 목회자의 설교도 간단한게 좋고 내용도 책망조로 겁을 주는 일은 삼갈 것이다. 아이들 문제로 칭찬하고 남편얘기로 좋은 얘길, 화제로 만드는 것은 심방에서 찾아내면 좋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목회자의 심방으로 교인들의 사기를 북돋을 수 있다. 반면에 잘못하면 교인들의 ‘기’ 를 꺽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반드시 심방 에티켓은 지켜야만 한다. 교회에서 주일 낮 예배시간에 전체를 놓고 부담스러운 말씀을 해도 오해를 하는 수가 있는데 하물며 개인 심방에서 하면 오죽하겠는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심방에티켓
심방은 개인적인 목회가 아니라 교회 전체의 일이다. 부교역자들은 심방을 마치고 난 보고를 담임목사에게 꼭 하라는 얘기다. 구두로 하면 좋고, 서면으로라도 심방 결과를 상세히 보고하면 담임목사가 교회 전체를 잘 파악하게 된다. 누가 심방을 해도 담임목사가 하는 생각이 바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