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 어떻게 해야 하나 (마6:1∼4)
이 시간에 “구제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말씀입니다.
1. 구제는 좋은 동기로 해야 합니다.
1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여기 주의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동기가 중요합니다. 어떤 동기로 하느냐 하나님은 그 마음 보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숨겨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동기가 내 의를 나타내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물질 맡은 청지기로서 그저 힘껏 충성하려는 것인가? 주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지적하신 것은 그들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범하기 가장 쉬운 육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서기관의 마음이 우리 죄된 인간의 마음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하거나 주고 나면 자랑하고 싶고 알아주기를 기대 심리가 큽니다. 사람들이 알아주고 교회도 알아주면 좋겠고 알아주지 않으면 속상해지는 것이 육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면 하나님께 상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나팔 불며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2절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나팔을 분다는 것은 구제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과제 하나가 생겨납니다. 그럼 모든 구제는 모르게만 해야 옳은 것인가? 그러나 마5:16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신 말씀을 보아 모르게만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사람들 앞에서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병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영공만을 위해서 하셨습니다. 물론 의를 행할 때 구제 받는 사람이 부끄럽지 않도록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볼 수밖에 없다고 구제를 그칠 이유는 없습니다. 문제는 의를 행하는 동기가 어디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생각해 보십시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나 다 빼앗기고 맞아서 거반 죽게 된 채로 길가에 버려졌습니다. 그 길을 제사장이 지나가고, 레위인이 지나가지만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왜 그랬을까요? 가장 주된 이유는 깊은 산중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똑같은 사람이 장소만 다르게 예루살렘 한복판에서 쓰러져 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그를 피해서 지나갔겠습니까? 텔레비전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면 그냥 지나쳤을까요?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이 보면 하고 사람이 보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은 구제가 아닙니다. 동기가 불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는 하나님 앞에서 상을 얻지 못합니다.
3. 은밀하게 해야 합니다.
3∼4절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이 말씀은 아주 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구절 역시 앞 절의 설명입니다. 자기 의를 자랑하는 태도여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르게 하므로 우리 기독교가 손해 보는 일이 많습니다. 만약 방송사에서 길거리 모금방송을 한다면 거기다 교회 이름으로 구제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내 이름이 아니라 교회 이름,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면 됩니다. 몰래 해서 선행하고도 전도길 막힐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마을에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활도 그다지 넉넉하지 못할 텐데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를 못했습니다. 자기 생활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웃에는 부잣집 할아버지가 살았습니다. 그는 구두쇠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는 남에게 동전 한 푼 보태주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손가락질하며 그를 욕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두쇠 할아버지가 죽었습니다. 그가 죽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구두를 수선하는 할아버지가 더 이상 구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구두 수선하는 할아버지가 구제한 것은 전부 구두쇠 할아버지가 뒤에서 준 돈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더 잘한 걸까요? 몰래 시켜서 구제한 구두쇠 할아버지나 돈을 전달해 준 구둣방 할아버지 두 사람 모두 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둣방 할아버지가 상을 받는다고요? 저는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구둣방 할아버지의 구제도 마음 없으면 하지 못합니다. 심부름이라도 마음 있으니 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놓고 생각하면 구둣방 할아버지나 우리나 같습니다. 우리 물질 어차피 하나님이 것이지 우리 것 아니잖아요. 일부 내가 수고했지만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제가 심부름만 한 구둣방 할아버지와 다를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심부름만 해도 하나님의 영광 도적질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렇게 만해도 은밀한 중에 보시는 우리 아버지가 갚아주십니다. 선행하고서도 다 잊으시기 바랍니다. 달리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하시고 그 의인들에게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케 하시고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 모두 불순종과 외식의 마음을 버리고 물질 맡은 청지기의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에게 한 것이 예수님에게 한 것이라는 믿음 가지고 하늘의 상 받도록 구제하는 성도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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