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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신앙상담

에반젤(복음) 2020. 10. 5. 23:20

청소년을 위한 신앙상담

 


1. 참으로 하나님은 계실까요?
2. 그리스도인은 어딘지 나약해요?
3.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란 뜻은?
4. 원죄란 말은 무슨뜻인가요?
5.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신가요?
6. 예수님의 재림은 사실인가요?
7. 성경을 읽는 사람도 자살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8. 사단(악령)이란 정말 있습니까?
9. 미신이란 무엇입니까?
10.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11. 구약에 나오는 도시이름은 가공인가요?
12. 어째서 인간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나요?
13. 전도를 하고 싶은데 어렵게만 생각이 됩니다.
14. 예수님은 왜 가롯 유다를 제자로 삼았나요?
15. 세례식이나 성찬식은 왜 하나요?
16.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17. 코끼리가 있었을때는 성경 어느 시대쯤일까요?
18. 하나님은 전능하신데 왜 기도가 필요합니까?
19. 하나님은 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외면했나요?
20. 그리스도인이 되면 어떻게 달라 집니까?
21. 성령충만이란 말은?
22. 물건을 훔쳤는데 양심이 자책이 됩니다.
23. 세상에는 평화가 오지 않나요?
24. 신앙성장을 위해 어떤노력을 해야하나요?
25. 아일랜드에서는 구교와 신교가 싸우는 이유?
26. 불교를 숭상하니 교회가지 말라고 합니다.
27. 어떻게하면 그리스도인이 될수 있습니까?
28. 교회에 가면 어떻게 되나요?
29.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기독교를 인정안하나요?
30. 왜 자살을 해서는 안되나요?
31. 교인이 되면 꼭 헌금을 해야 하나요?
32. 헌금은 어떻게 사용됩니까?
33. 주일예배 드리는것이 왜 중요한가?
34. 교회학교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35. 기적이란 말은 듣는데 믿어지지 않습니다.
36. 친구을 교회에 인도하고 싶은데요.
37. 장래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38. 진화론과 창조설은 생물학상으로 맞는것입니까?
39. 그리스도인들은 위선자 같이 느껴집니다.
40. 성경에 뱀,나귀가 말한것에 대해.
41. 하나님은 왜 인간을 사랑하시죠?
42. 하나님이 광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이유?
43.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차이점
44. 예수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으시나요?
45. 기독교에 교파가 많은 까닭은?
46. 교회에서 말하는 예언이란 뜻은?
47. 신앙이 현대에는 비과학적으로 믿어집니다.
48. 교회에서 말하는 이단이란 무엇인가요?
49. 성경과 사회에서 말하는 죄인의 차이
50. 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셨습니까?
51. 동정녀가 잉태할 수 있었을까요?
52. 세상의 종말은 꼭 올까요?
53. 지구상에 남자 여자가 왜 있을까요?
54. 왜 남녀가 한 사람씩만 짝이 되어냐 하나요?
55. 성욕은 죄가 됩니까?
56. 성에 있어서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57. 사춘기란 몇살 부터인가요?
58. 잡지의 누드 사진을 보는것도 죄가 되나요?
59. 자위 행위 버릇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60. 여성의 성의 구조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61. 남성의 성의 구조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62. 성교란 말은 무슨 말인가요?
63 수정이란 무엇입니까?
64 정자에 대해서 가르쳐 주십시요?
65 임신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66 임신 출산이 두려워요.


1. 참으로 하나님은 계실까요? ***

"하나님은 영이시니..."(요4:24) 하고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 만난 여인에게 말슴하셨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육체로부터 영혼이 빠져버리면 즉 사망하면 그의 몸은 벌써 부패해가는 물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는 영혼은 절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그렇다면 영은 몸의 어느 부분에 머물러 있을까요? 머리 혹은 심장일까요? 하나님에 계시는지에 대해서만 다루겠습니다.
첫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영적인 존재는 우리들의 육체적 감각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즉 볼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분입니다.즉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서 알 수 있는 분이 아닌 영체이신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영혼은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영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귀가길에 저 지평선에 숨어드는 시뻘건 태양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 당신의 마음 속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자가 존재한다는 사실로 크게 감동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냉이꽃이 피고 죽순이 자라며 호두가 영그는 것과 더운 여름 길가에 돋아난 질경이나 찔레 덩굴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자연의 배후에 창조자가 계신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한 심판을 볼까요? 만약에 2차대전에서 독일의 히틀러가 승리했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요? 또 일본이 미국을 이겼다면 일본이나 세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역사의 지배자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님이 성경에 밝히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게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을 보려면 이 그리스도를 보라고 했습니다(요1:18).


2. 그리스도인은 어딘지 나약해요 ***

그럴지도 모르죠. 늘 싱글싱글 웃기 잘하고 굽실대기 잘하니 약하게 보일지 몰라요.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의 겉모습을 가지고 따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대한 일에서는 강해집니다. 지난 날 미.일전쟁 당시 기독교는 미국의 종교 즉 적국의 종교라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마침 그 때 홋가이도오의 어느 부인회에서 한 장교가 강연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일본은 천황을 신 으로 높이며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해만 됩니다. 지금 일본은 많은 신들의 도움으로 미국을 쳐부숴야만 합니다. 미국의 신은 단지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 일본은 800만의 신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설마 이 가운데서 적국의 종교인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없겠지요"하고 가슴을 펴고 위엄있게 말을 계속하려 하니 맨 앞 좌석에 앉아있던 기품있는 고상한 부인회장이 일어서더니. " 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천지를 창조하신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조국 일본을 사랑합니다. 우상은 숭배할 수 없습니다"하고 단호하게 말했답니다. 둘러 앉았던 모든 사람이 그 부인의 용기에 그만 놀라서 입을 벌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참된 용기란 그런 것으로 평소에는 온유한 모습이지만 막상 어떤 일에 부딪치면 "예"는 "예","아니요"는 "아니요"하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되지 않을까요? 현재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은 이러한 인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특질은 "온유함"에 있으며, 평소에 온유하다는 것도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지요. 바울도 성경에 기록하기를,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갈5:22-25)라고 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외면적으로는 나약하게 보일지 모르나 사실은 강한 것이랍니다.


3.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란 뜻은? ***

예수님은 사단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40일 동안 단식을 하셨으므로 공복으로 인해 당하신 고통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단식을 해보면 알겠지만 단 하루의 단식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 때에 사단은 "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하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말에 대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고 대답하셨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겠습니까?
예수님은 여기에서 직접 대답하시지 않고 구약성경에 기록된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약성경의 뜻을 알면 바른 이해가 될 것입니다. 먼저 신명기 8장 1절부터 6절까지를 읽어보세요. 즉 하나님이 40년간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훈련하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또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기아의 고통도 주시고 아울러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그것을 먹고 기뻐하는 즐거움도 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인간이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렸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였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사람은 육체의 떡과 성경이라는 마음의 양식 두가지로 산다"는 뜻이 아니고, 참으로 모든 인간은 생사를 결정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의 뜻입니다. 전에 안데스 산맥에 비행기가 추락되어 사람들이 70일간 눈속에서 연명을 하다가 구조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그들은 조난 중에 사람의 고기를 먹었다고 해서 아주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 서너 명의 그리스도인은 사람 고기를 먹는 것을 거부하고 죽어갔습니다. 이 사람들의 육체는 영원한 생명의 존귀함을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증거하기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닌"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4. 원죄란 무슨 뜻인가요? ***

학생이 국민학생 때에 죄라는 것을 어떻게 배웠습니까? 모르긴 해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제멋대로 하는 행동 등으로 설명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중학생이 되면 좀더 깊게 성경의 진리를 알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원죄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죄의 근원"을 뜻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여러 가지로 악한 짓을 하는 근본에 원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고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원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패"를 뜻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마치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이미 시커멓게 썩어있는 사과와 같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랍니다. 또 어떤 이는 떫은 감 같은 인생을 말한다고 하지요. 이 썩은 사과나 떫은 감은 아무리 열심히 손질을 해서 닦더라도 여전히 썩은 사과, 떫은 감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부패했다는 것은 마음에 조화(평안)가 없다는 것입니다. 학생은 좋은 일을 하면 즐거운 줄 알면서도 저도 모르게 나쁜 짓을 저저르고 마는 때가 있지요? 마음에 사랑이라는 귀한 것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친구를 미워하게 됩니다. 언제까지 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육체를 보면 죽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런 것 모두가 마음의 모순인 것입니다. 즉 이것을 가리켜 원죄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허물"이라는 것인데 이 허물은 악한 짓을 한 결과 자기는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이것은 양심의 아픔만이 아니며 최후의 심판을 이미 마음에 느끼고 미래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이 죄의식에서 해방되고 싶어 일시적인 쾌락을 구하고 자기 인생을 점치는 데 열중하기 마련이며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가 얻고자 하는 만족과 즐거움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참된 구원은 떫은 감나무 같은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감나무에 접붙여져 다시 관계를 맺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신가? ***

창세기 1:26절에 흥미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누구 누구를 가리킨 것일까요?
기독교의 하나님이란 한 분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표현한 것은 좀 이해 하기 어려운데 왜 그랬을까요? 실은 이 "우리"라는 주어는 복수인데 동사는 단수로 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그 본질에서는 하나인데 세 가지 인격적인 활동을 하시는고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이 읽으면 역시 하나님이 세 분인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만 하나님은 한 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면 조금은 이해가 되겠는지요?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양을 쓰시고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 믿는 우리 마음에 들어와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이 우리들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아들이 되시는 하나님, 성령이 되시는 하나님이 한분이신 하나님임을 우리 마음 속에 증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이론이나 어떤 이치로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이 진리를 "삼위일체"의 교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6. 예수님 재림 사실인가요? ***

지금부터 2천년 전의 그리스도인은 거리에서나 어떤 집에서 만나든지 신자들끼리는 "마라나타"라고 인사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 말은 "우리들의 주님, 다시 오시옵소서"하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는데 그 부활하신 예수님을 수많은 제자들이 보았습니다. 바울의 말에 따르면 500명 이상의 사람이 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부활하신 지 40일 후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 상황을 기록한 성령의 말씀을 그대로 적어보면, "...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1:9-11)
교회에서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재림의 징조를 마태복음 24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의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2, 자칭 구세주라는 자가 많이 생긴다. 3.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민족이 싸운다. 4. 사람들이 사랑이 식어진다. 5. 지진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6. 기독교가 박해를 받는다.


7. 성경을 읽은 사람도 자살하는 이유? ***

일본의 다사이즈라는 사람은 "인간 실격"이라는 책을 써서 유명한 사람인데 그는 성경도 많이 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자살을 하고 말아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주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깊은 수심에 싸인듯한 자신의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인간의 어둡고 절망적인 슬픔을 다룬 작품을 썼습니다. 그는 그의 작품 속에서 하나의 사실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안트란 무엇인가?" 였습니다. 안트라는 것은 반대어라는 뜻입니다. 즉 슬픔의 반대에는 위로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반대어 즉죄를 완전히 쳐부셔 소멸시키고 말 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그는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그러나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의 고민은 더해갔습니다. 그 까닭은 성경을 읽을수록 인간의 죄만 들추어지는 것만을 보게 되었지 그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는 죄로 고민하다가 죽음을 선택하는 도리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아라는 두터운 벽속에 갇혀서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인간실격" 이라는 책을 "인간 신격"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마음을 열지 않고 자기를 신으로 삼고 있다는 풍자입니다. 성경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놀라운 위력을 가지고 있는 책입니다. 성경은 신앙심을 가지고 읽을 때 인간을 살리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에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만이 드러나는 두려운 책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참된 삶의 기쁨을 찾으려 할 때는, 하나님의 품속에서 안식을 취할 때에 비로서 주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 내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며 여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8. "사단"(악령)이란 정말 있습니까? ***

있고 말고요. 악령이란 무엇인지 여기에서 분명히 해두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인정하지 않는 영은 모두 " 악마의 영" 입니다. 이런 예를 여러분들은 가끔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큰 공사나 집을 건축하려면 건축하는 주인이나 공사 관계자들이 모여서 제사상을 차려놓고 엄숙한 표정으로 제사를 지내는 모습이 눈에 띄리라고 생각합니다.(이것을 일본 사람들은 지진제, 우리는 고사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공사와 그 집에 살 사람이 그 토지에 사는 어느 신령으로부터 침해를 받지 않도록 기원하는 행사입니다. 이것을 하지 않으면 어떠한 재난이 일어날지 모르므로 예방을 하기 위해서라는 거지요.
또 하나의 예를 든다면, 일본 같으면 큰 고층빌딩 한 구석에 울긋불긋 칠을 해서 마련한 신사 모양의 사당이 있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터줏자리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좀체로 치우거나 없애지는 못합니다. 그 까닭은 섣불리 치웠다가는 내릴지도 모를 재앙을 두려워 손을 못 댄다는 것입니다. 즉 이것도 악령의 일종입니다. 악령의 특징을 적어보면 마가복음5:1-20의 악령에 들렸던 거라사인의 모습을 기록한 것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1.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악령이란 죽음이나 죽은 사람과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2. 사람을 상하게 하고 아주 광폭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재앙을 연상케 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악령보다도 강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며 하등 악령에게 미혹당할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9. 미신이란 무엇입니까? ***

좀 심하게 말하면 못마땅하게 생각하실 어른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미신의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리기 힘들고 민족적인 규모로 대표적인 것이 봄 가을에 있는 오히강과 여름의 오봉을 들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선조들의 영혼이 지옥의 끊는 가마 속에서 돌아오므로 그것을 축하한다는 축제이며 "오히강"은 "춘분","추분" 두 절기를 가리키며 국가적인 축제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또한 "오봉"은 8월 13일부터 16일까지를 말하고 시중에서는 이 날을 휴일로 삼고 있는 회사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가 다 미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국가적인 행사로까지 삼고 있다는 것이 양쪽 모두가 조상을 경배하고 집안의 안정을 바라는 목적에서 지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보통 미신이라고 하면 사회 생활 속에서 실지로 해를 끼치는 것들을 가리켜 말하는 것입니다. 날자의 길흉을 따져서 이사를 하거나 혼인 날짜를 이사를 하거나 혼인 날짜를 잡는다든지 무슨 점패를 보아서 운세를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라든지 또는 이사를 해야겠는데 어느 날은 무슨 방향이 좋지 않다든지 하는 못할 것과 나쁜 것 등을 들어서 공연한 것으로 스스로를 얽어매어 놓고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미신의 중심이 되는 것은 먼저 "가정의 안전"이라는 것이 앞서고 그 다음에 "무덤"과 "저 세상" 즉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공포심이 사람들의 마음을 있지도 않은 엉뚱한 세계로 치닫게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다소 종교적인 것이 가미되면 미신이 탄생하기 마련이고 인간들은 이것을 믿고 안심을 하는 결과로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을 믿으면 그러한 미신에서 해방됩니다.(요8:33).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10. 영생이란 무엇입니까? ***

요새 자살이라는 말을 아주 흔하게 듣습니다.동기는 여러 가지인데 그중에는 두 사람이 서로 좋아서 장래까지 약속을 했지만 주위의 반대에 부딪쳐 투신자살 또는 음독자살을 하는 것이 가끔 지상에 보도되는 것을 봅니다. 이런 자살까지는 몰라도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일이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우리들의 정신은 죽은 뒤의 일까지도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것을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죽어도 살 수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이 문제는 인생 최대의 주제입니다. 이것 때문에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저 거대한 피라밋을 세우고, 옛 임금들은 죽은 뒤의 생활을 위해 거창한 고분을 만들어 그들의 시체 옆에 많은 부장품까지 묻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인 중에는 인생을 종교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인체는 뭐니뭐니해도 정교한 기계이므로 심 장이 멎고 두뇌의 활동이 멎으면 만사는 끝나고 마는 것이므로 사후의 세계 같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성경에서는 사후의 세계에서도 생명이 있다고 명백하게 말했습니다.그리고 영원한 생명 즉 하나님에게 축복을 받은 영원한 생명은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실 세계에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요17:3)고 말씀하셨는데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때부터 영원한 생명이신 그 분의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새롭게 변화를 받으면 그 순간부터 영원한 생명이 주어져 그것을 보장하기 위해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 주시는 것입니다.


11. 구약에 나오는 도시 이름은 가공인가요? ***

분명히 고고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이 가공의 설화라고들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중근동 아시아에 많은 고고학자들이 몰려서 고적을 발굴하는 중에 신기하게도 하나하나 도시의 모습이 나타나 실재했던 사실을 증명 해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헷사람"이 있는데 이들도 히타이트 문명이라는 놀랄 만한 고도의 도시 문화를 이루고 있었음을 증명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잘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제목의 영화도 나왔음) 소돔이라는 거리는 술과 음란과 도박으로 아주 부패하여 타락해버린 인간 사회의 대명사로 오늘날까지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도시의 타락에 진노하셔서 "여호와께서 하는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창19:24-25)고 기록된 것처럼 심판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님을 믿던 롯의한 가정만이 겨우 그 심판날에 구원되었습니다. 이 성령의 기사도 너무나 비참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가공적인 이야기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1976년 전세계의 신문에시 리아의 고대 유적에서 출토한 점토판의 기록 중에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기사가 새겨진 것을 발견했음이 크게 보도되었습니다. 이것은 로마 대학의 지오반니 페티나트 교수가 세계 종교학회 연차 회 의의 강연에서 밝혔던 것입니다. 이 발표는 회의 참석자들에게 역사적 인감동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 이스라엘 민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에 홍해를 건넜다는 것을 여러분은 들었을 것입니다. 그 때 홍해가 둘로 갈라졌다는 것도 결코 가공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시 성경학자들의 현지답사로 인한 연구가 진행되어 지금도 자연 현상으로써 돌풍으로 말미암아 비교적 얕은 여울쪽은 둘로 갈라질 수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의 이런 자연 현상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역시 이것도 하나님의 기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2. 어째서 인간이신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나요 ***

이것은 기독교의 중대한 진리의 문제입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분명히 하나님이라고 마음 속 깊이 확신하기에 이른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보고 또 같이 식사를 하며 같이 지냈기 때문에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이라는 제자는 성경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실감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신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는 것을 요한다운 말로 표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거하여 외쳐 가로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니라 한 것이 이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요1:15)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이 말씀은 나이가 많은 세례 요한보다도 예수님께서 먼저 계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놀라운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예수님게서는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이미 계셨다는 선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스스로 밝히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대한 예수님의 약속은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13. 전도를 하고 싶은데 어렵게만 생각됩니다 ***

우선 전도가 어렵다고하는 것은 악마의 속삭임으로 생각하기 바랍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법, 그렇게 생각하도록 악마는 늘 방해를 합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명령이신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명령하실 까닭이 없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가장 행복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전도함으로써 상대가 구원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의 명령은 행복의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음에는 개인 전도의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1.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그 경위를 3분 정도로 말할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2.그리스도의 복음의 내용을 10분 정도 설명할 수 있도록 잘 외워둬야 합니다.
이것은 옛부터 그리스도인이 말해온 복음의 네 가지 요소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인간의 죄와 죽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한 구원 믿음으로 인한 구원을 꼽게 됩니다.
이 네 가지를 요약하여 설명한 팜플렛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3. 복음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 전도 문서를 늘 준비해 둡니다.
4. 개인적인 접촉을 할 때에는 때와 장소를 잘 생각해서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야기할 시간을 미리 약속해 놓지 않으면 중간에 다른 일로 중단될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5. 복음의 요점을 탈선하지 않고 성경을 바탕으로 잘 설명하도록 합니다. 또한 상대에게 질문을 받게 되면 곁길로 나가기 쉬우므로 질문의 대답은 나중에 할 것으로 미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이야기한 내용을 목사님에게 보고하는 것도 중요하며 이것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고 그 친구를 반드시 목사님에게 소개합니다. 전도는 힘들지 않으며 우리는 씨를 뿌리는 것 뿐이고 자라게 하는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이것이 전도입니다.


14. 예수님은 왜 가룟 유다를 제자로 삼았나? ***

여러분, 잘 아는 속담 가운데 이런 것이 있지요? "기르던 개에게 발 뒤꿈치를 물린다." 이것은 은혜를 해로 갚는다는 비유에서 나온 말입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도 이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까지 택함을 받고 사랑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매매 노예 한 사람의 값어치인 은 삼십을 받고 로마 군병에게 예수님이 계신 곳을 밀고함으로써, 예수님을 잡히게 하여 마침내 다음날에는 십자가의 처형을 받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시기도 한 예수님께서 유다를 제자로 택하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여기리라 생각합니다. 역대의 신학자들도 여러분과 같이 입을 모아 "이것은 교회사의 비의다" 라며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잘 알 수 없다고 해도 몇 가지로 이 문제를 조명해 볼 수 있는 열쇠가 있습니다. 인간의 경우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유와 거역하는 자유를 언제나 갖고 있습니다. 베드로나 요한도 유다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 의지는 여러분도 갖고 있습니다. 즉 이것이 인간이라는 것의 자기 증명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훨씬 이전에 유다의 배신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그 유다를 깊이 사랑하셨던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떨까요? 자기를 배신할 것을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이런 것을 생각해보아도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유다를 제자로 삼으신 것은 이 사랑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기 위한 특별한 뜻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유다를 "친구여"하고 부르시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15. 세례식이나 성찬식은 왜 하나요? ***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포함한 질문입니다. 예를 들면 복음이란 그 내용이 대단히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눈에 보이는 조직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 하고 말씀하셨고 또한 사도 바울도"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3:15) 고 말하며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영적인 것, 정신적인 것은 그 자체로서 자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영과 정신이 육체라는 의복을 두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욱 내용이 중요하면 중요할 수록 그것을 연출하는 의식도 커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의 학교에서도 반드시 입학식이 있고 졸업식이 있을 것입니다. 입학했다고 해서 등교하는 즉시로 교실에서 공부할 수는 없을 것이며 졸업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규모가 커질수록 거기에 따른 격식도 갖추어지는 것은, 조직에는 내용을 표시하는 의식이 따르기 마련이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에서도 세례식과 성찬식이 이 두 가지 의식이 초대교회로부터 오늘날까지전 해내려와 지켜지고 있습니다. 우선 세례식부터 말하자면, 세례를 죄의 고백과 회개 그리고 죄의 용서하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을 통하여 정식 교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례는 로마서 6:1-11 에 나오는 "세례" 즉 죄에 대해서 죽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생명을 얻는 증거로써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찬식에 대해서 말하자면, 성찬식은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게서 돌아가시지 전 날 포도주와 떡을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것에부터 시작되었으며 포도주는 예수님의 피를, 떡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합니다.


16.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

인간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여러분의 나이로서는 아직 잘 모를 것입니다. 흔히 술로 인해 실패하는 사람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그로 인해늘 이웃에게 폐를 끼치기가 일쑤고 집안에서는 부인이나 자녀들에게 난폭하게 굴어 못견기게 합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은 이튿날이 되어도 술이 깨지 않아 토하고 두통이 심하고 해서 마치 병자처럼 직장에 출근도 못하게 됩니다. 그 사람 자신은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고 스스로 다짐도 하고 노력도 하지만 또 어느덧 술잔으로 손이 가고 마는 것을 반복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좀더 심한 인간의 연약한 모습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일본에서 "피아노 살인"이라는 사건이 가나와껭 어느 단지내에서 발생했었습니다. 그것은 이웃에게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가 듣기 싫다고 같은 아파트 이웃방의 어린이를 살해한 것인데 범인이 재판정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 변호사는 고등재판소에 공소하도록 권고했습니다. 즉 그것은 다시 한번 재판을 받아 가능하면 좀 형을 줄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권했지만 범인은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그 까닭은 자기는 음에 대해서 신경질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만일 용서받고 다시 사회에 나갈수 있다해도 또 다시 "피아노 살인"을 하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없다는것 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어서 사형에 처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살해당한 어린이도 가엾지만 범인의 이러한 인간적인 약점은 너무나 비참합니다. 우리들은 표면적으로 그저 감추고 있을 뿐이지 크건 작건 죄에 대해서 약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을 어떻게 해서든지강하게 하기 위해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 우편에 계셔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시며 중보의 역할을 하시고 계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17. 코끼리가 있었을 때는 성경 어느 시대쯤 ***

몇해전 시베리아 빙하 속에서 새끼 맘모스 코끼리가 냉동되어 있던 것이 발견되어 원주님들이 요리해 먹고 말았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생물학자가 달려갔을 때에는 이미 뼈와 가죽만 남아 있어 낙심하고 말았었다는 보도였지요. 맘모스 코끼리는 최근까지도 있었던 것이며 연대를 추측하자면 대체로 1만년 전쯤으로 빙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이 때는 맘모스 코끼리, 순록의 전성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이것이 성경 중의 어느 시대쯤인지에 대한 내 의견으로는 아마 성경 이전의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 까닭은 성경 속에는 빙하기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렇게 생각됩니다. 그러나 어느 목사님은 창세기 7장의 노아시대에는 맘모스 코끼리가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몸집이 너무커서 방주에 들어가지 못하고 홍수 속에 빠져 죽었으리라는 거죠.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성경이 지질학에 관한 책이 아니므로 엄밀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과학적인 분석과 역사적인 검토를 하게되면 그것도 진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굳이 성경을 통해 맘모스 코끼리 시대를 찾고자 한다면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의 중간 시대라고 말하는 성경학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성경을 억지로 이치를 따져 역사책이나 과학책으로 교과서처럼 취급하려 들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과학 교과서처럼 보려는 태도는 더욱 위험한 일입니다. 성경이 쓰여진 시대의 사람들에게 알 수 있는 언어로 우주관, 역사관 을 말하고 또한 사람들이 죄에서 구원 받아야만 할 필요성만을 엮어 내려간 것이 성경인 것입니다. 맘모스 코끼리에 관한 것은 역시 고생물학 고고학자들로 부터 배우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18. 하나님은 전능하신대 왜 기도가 필요한가 ***

한국 교회에서는 모든 교회가 새벽기도회 또는 철야기도회 등을 하고 있는데 곳에 따라서는 천 명 2천명씩 모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임에서 느끼게 되는 것은 기도하려는 뜨거운 열심인데, 이것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으나 어떤 "영적인 힘"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으로되 저가 비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약5:16,17)라는 말이 있습니다. 확실히 여러분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들의 필요한 것을 모두 아시고 계십니다. 우리들이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이든지 다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감사"를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건강이 지켜지고, 행복한 오늘이 주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미치면 자신도 모르게 감사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따뜻하게 안식할 수 있는 집이 있는 것, 이 모두가 감사해야 할 조건들입니다.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그림의 정경을 보고 있노라면 그 그림에 있는 젊은 부부의 기도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깊은 감명을 줍니다. 감사가 넘치면 "기도"해야 할 것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둘레에는 너무나 고통받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불행 속에 시달리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 위에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자기에게 주어진 이상의 것으로 베풀어 지도록 아주 열심히 기도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운동이, 가족들을 위해서 또 고장을 위해, 나라를 위하여 전세계를 위한 기도를 하게 됩니다.


19. 하나님은 왜 십자가상의 예수님을 외면했나 ***

그렇지요.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셨습니다. 에수님의 몸은 십자가의 극형에 찢기고 군중들로부터는 조롱을 받고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조차 예수님을 놀렸습니다. 이 정도라면 아무리 괴로울지라도 예수님은 그 고통을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은 참을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비슷한 고통을 경험하는 일이 있을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몇날이고 밤을 새워 공부를 해야만 될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이것이 끝나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에 어떤 괴로움이든 참고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만일 사랑하는 그 누구도 없다면 아마 그 고통은 참아내기 힘들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들이신 예수님을 돌보지 않으셨습니다. 이 괴로움으로 예수님의 몸 안에 있는 피는 피와 물로 나누어지지 않았나 하고 생각됩니다.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는다. 사실은 이것이 죄인인 우리 인간들이 받아야만 하는 심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간이 걸머져야 할 죄의 심판을 대신 지신 데서 그 고통의 표현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로 외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게서 십자가상에서 이 외침을 안 하셨더라면 우리 인간들이 저 지옥의 깊은 불길 속에서 영원토록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외치고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20. 그리스도인이 되면 어떻게 달라집니까 ***

어느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보니까 "숙녀 변신 교실"이라는 재미있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우리 주위에 늘 같이 지내는 평범한 주부를 미용사가 손질을 하고 맛사지 전문가가 얼굴울 다듬어주고 또 양복 디자이너와 구두 디자이너의 손에 의해서 가꾸어지더니 아까의 부인과는 전혀 다른 부인의 모습으로 바꿔지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 부인의 변화보다는 더 엄청난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먼저 마음 속이 변합니다. 그렇게 되면 눈에 띄는 것 모두가 새롭게 신선하며 놀랍게 여겨집니다. 그러고 보니 한 십년 전에 어느 신문의 투고 시가 생각납니다. "그대를 안 뒤부터 비로소 알았네. 너 늪의 아름다움을 ... 또 늪에는 늪만이 같는 아름다움의 빛이 있음을..." 작자명은 잊었으나 너무 좋은 시라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즉 애인이 생겨서 좋아하게 되니 천지가 모두 일변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지저분했던 늪까지도 빛이 있어 빛나 보이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느 여자 청년이 손이 약간 부자유스러워 그것으로 인해서인지 늘 그의 표정은 어두웠었는데 예수님을 믿은 다음부터는 아주 일변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아주 밝아진 모습으로 어느 은행의 타이피스트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환상까지도 변화시키 는 결과가 됩니다. 즉 자기가 변화하므로 다른 사람도 나를 대하는 것부터 달라집니다.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도 화해를 청하게 되고 대인관계도 성별되어 나쁜 친구도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가장 큰 변화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것입니다.


21. 성령충만이란 말은 ***

영어 단어에 "Spirit"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일반용어화 되다시피 했으니 잘 알 줄 생각합니다. 이것은 정신이라든지 영혼이라는 의미죠. "스포츠맨 정신"할 때는 " 스포츠맨 스피릿"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스피릿"이라는 말에는 좀더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영어 사전을 보면 마지막에 "독한 술" 또는 화주라고 쓰여 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신약성경의 같은 문장 속에서 이 스피릿이라는 말을 한 쪽에서는 "술"로 표시하고 또 한 쪽에서는 "성령"으로 해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엡5:18) 이 말은 실로 유모어이기도 하고 위트가 넘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단히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면 인간은 어느 쪽이건 스피릿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법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재미있게 표현한 것입니다. 아마 술로 인해 스스로를 그르치고 마는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술의 해독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Holy Spirit)이란? 괴로울 때 도와주고 불가능할 때 도와주면, 성령의 도움은 보통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힘은 큰 것입니다. 1. 기도에 대답해 주신다. 2. 우리를 강하게 하신다. 3. 슬픔을 위로해 주신다. 4. 하나님의 지혜를 주신다. 5. 인간을 정결케 하신다.


22. 물건을 훔쳤는데 양심의 가책이 됩니다 ***

여러분들도 가끔 느끼기도 하고 듣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인 충동으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집어넣고서는 "아차" 하고 돌려주려 하니 부끄럽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여 되돌아가지도 못하고 양심에 가책이 되어 견딜 수가 없는 그런 심정이 질문한 학생의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며 만일 양심에 아무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으로 큰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금 이대로라면 하나님을 믿고 살기는 힘들므로 지금 곧 성경 속의 말씀을 읽고 곧 실행에 옮기기를 부탁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이것을 바라고 역시 용기를 가지고 그 물건을 가지고 온 곳을 찾아가 사과를 하고 오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면 갈 수 있는 용기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물건을 돌려주고 진실을 말하면 그 상점 주인도 기뻐하며 잘못을 용서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돌아온 다음에 "어떻게 되었니?" 하고 물으면 "응 기뻐하며 용서해줬어. 가기를 잘 했어"하게 될 것입니다.
남의 것에 손을 댄다는 것은 크고 작고가 문제가 아니라 나쁜 짓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책방에서나 문방구에서 슬쩍 책이나 문필구 등을 훔쳐 넣고서도 태연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친구들에게 훔친것을 내보이며 자랑삼아 이야기하는 것도 볼 수 있음은 한심한 일입니다. 또 경제적으로 어렵지도 않은데 호기심 때문에 코트나 원피스를 슬쩍하는 주부나 직장 여성들이 있답니다. 이것은 모두 죄입니다. 질문자의 경우는 만약에 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제2,제3의 죄를 낳게되며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서 아주 멀어지고 말게 됩니다.


23. 세상에는 평화가 오지 않나요 ***

텔레비젼에 방연된 캄보디아 난민의 비참한 기아 상황과 또 그곳에서 겨우 빠져나와 갈 곳으로 못찾고 떠도는 비참한 모습 등은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치게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 이상을 넘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아마 이 질문자의 "어째서 이 세상에는 평화가 오지 않을까요?" 하는 질문도 텔레비젼이나 신문을 보고 믄득 생각한 의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평화는 이론이 아니라 체험하고 생활하는 것, 그것은 구체적인 행동이 따르는 것이라야 합니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캄보디아 구원문제만 해도 외국과 일본의 반응이 전혀 다르게 느껴집니다. 정치적으로나 이념에 대한 여러가지 차이나 장점이 있겠으나 현실적으로는 무수한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선에서 헤메고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주위나 정치가 다르다고 방치해도 좋을까요? 스웨덴, 캐나다 등은 20명 이상의 인원을 보내 구호물자의 보급, 또는 의료 지원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젊은 그리스도인으로서 6,7개국 사람들이 들어가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실태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원조를 연기하고 방관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평화를 바란다면 그것을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해 놓고 보아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참된 평화가 찾아오겠느냐 하는 문제인데 지금 상태로는 바라기가 어렵습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죄에 물들고 말아 그 아들 아벨과 가인두 사람이 논쟁을 하다 아벨이 가인에게 죽고 말았습니다.이와 같이 인류의 피 속에서 "전쟁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얼마 동안은 억제할 수 있는 본능이 있지만 아주 누르기는 어렵습니다.


24. 신앙의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

첫째,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이유는 다음에 열거하는 것들을 실행하기 위한 것입니다. 불교의 승려들은 수도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일찍 일어나는 것을 강행하면 극기심이 키워집니다. 둘째,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도 하루가 시작되는데 이와같이 생명이 주어지고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함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생각할 때 마음에서 저절로 감사가 우 러 나올 것입니다. 셋째, 꼭 성경을 읽습니다. 구약과 신약을 각각 1년에 한 번 정도는 통독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넷째, 간절한 소원과 이웃을 위한 기도를 하도록 힘씁니다. 매일의 생활 속에서 많은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마음 먹고 하고자 하면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위해, 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분들을 위해, 또 압박을 받고 있는 난민들을 위해, 기아 속에 시달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내고장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내 교회, 내 가족, 앓고 있 는 친구 등 여러가지 기도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것 같습니까? 자신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시간을 짜서 지키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몇 시쯤 일어나는 것이 좋겠는지 잘 판단하여 결정하고 실시하기를 바랍니다. 다섯째,예배와 기도회 시간에 꼭 참석하는 습관을 갖도록 힘쓰기 바랍니다. 여섯째, 교회의 봉사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도록 노력합니다. 일곱째, 학교나 이웃에게 자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힐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신앙의 타협을 강요 당하거나 뜻하지 않은 다툼이 생깁니다. 여덟째, 좋은 친구를 가려서 사귀도록 합니다.


25. 아일랜드에서는 구교와 신교가 싸우는 이유 ***

종교 전쟁처럼 흉한 것도 없습니다. 종교 전쟁의 비참하고 처절하며 집요함은 보통의 상식을 넘어선 것이어서 우리로서는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서양에서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중세의 십자군이었으며 근세로 내려와서는 30년 전쟁 또 100년 전쟁도 종교 관계가 얽혀 있었습니다. 즉 정치가 연관이 되면 분쟁의 씨가 되고 전쟁으로 번지는 법입니다. 인간들은 죄인인 고로 때로는 기독교의 세력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지키려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근세에 와서는 종교가 분쟁이나 전쟁에 휘말리지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정치와 종교 분야에서 여러 가지고 연구하고 검토되어 왔습니다. 거기에서 나온 것이 "정교분리"원칙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국가적인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이것을 보기좋게 파괴한 것이 이란의 호메이니였습니다.마치 고대 이집트의 바로 쓰탄카멘이 재현했듯이 정치를 종교 밑에 굴복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아일랜드의 카톨릭 교도와 신교도들간의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분쟁을 단순한 종교 전쟁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아일랜드는 본래 카톨릭 교도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의가 빈곤한 생활 속에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그곳에 근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주민들과 이주민들의 경제적인 싸움이 주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참 사랑을 알고 있다면 이러한 비참한 결과는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26. 불교를 숭상하니 교회가지 말라고 합니다 ***

그런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사회에서 "소수파" 자리를 면할 수 없습니다. 일본 같으면 신구교 합해서 기껏 110만 정도이고 그밖에는 불교 신도가 많습니다. 일본의 여러 종교에서는 형편대로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라" (출 20:3)고 하셨으니 기독교는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것이며 만약에 타협이 된다면 복음 그 자 체는 죽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꽤 많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너무 그렇게 파고 들 다소의 융통성을 내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이것이 기독교의 근본 도리이며 또 이것이 많은 사람이 싫어하는 중심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여기서 부터 나누어진 잡다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두 가지의 예를 들면 우선 조상을 잘 받들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제사도 안 지내고 묘소에 절도 안 한다는 것 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동양의 본래 관습과 전통에 위배되고 조상을 소홀히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불상,위패 또는 미신적인 숭배 대상,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경배하는 우상인 고로 그 곳에 절을 하거나 합장을 하는 것은 우상 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조상을 소중히 하는 것과 불단 같은 것을 위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하나 예를 들면 그리스도인은 보통 같은 신앙인끼리 결혼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흔히 믿지 않는 부모들의 반대에 부딪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걸맞는 배우자를 결합시켜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가족이 불교니까 하고 걱정하기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가족들를 위해 기도 하고 힘쓸 때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27.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

마태복음 19:16-22절에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였으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어온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단히 진실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과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예수님으로부터,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하는 말씀을 듣고 그 청년은 그만 근심하며 돌아가고 말았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에는 지위도, 명예도 금전도 다 필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 좌우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런 사람이어야 하며 자기에게 나라의 최고 벼슬을 준다 하여도 또 문화 훈장을 주어 명예를 찬양한다 해도 또 수억 원의 돈뭉치를 안겨준다 하여도 그것에 마음을 뺏기지 않는 생애,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생애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시죠? 만일에 실망을 느낀다면 청년처럼 에수님에게서 떠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생의 목표를 잘 선택하라는 교훈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이세상에서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얻을 수 있는 것으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생명 즉 영원한 생명을 자기의 것으로 하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그 특권을 자기의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문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첫째문은 자신의 죄를 아는 대로 고백하는 일이며 이것은 당연히 회개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그 구속의 십자가야말로 자기 자신을 지신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 때에 비로소 마음에 구원의 확신이 주어집니다.


28. 교회에 가면 어떻게 되나요? ***

교회를 마치 컴컴한 터널 같은 기분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부탁합니다. 여러분은 길을 걷더라도 앞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그 속에 들어가 그곳에 생각하지 않았던 놀랍고도 밝은 세계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교회에 들어오기를 잘했다고 생각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흔히 말하는 대로 그렇게 궁색한 곳은 아닙니다. 교회는 출입이 자유로우며 참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우리 인간들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게 감사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이 교회에 오기만 한다면 반드시 모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누구에게 강요당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아마 먼저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예수님이 얼마나 은혜로운 분인가를 열심히 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안 믿고는 여러분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이므로 자신의 결단이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경을 통하여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엄청나게 크고 놀라우신 사랑은 여러분의 마음을 파고들어 그것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자신이 그 사랑에 압도당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인생의 귀한 보화를 얻은 기쁨을 맛보리라 생각하며 또 여러분은 사랑의 사람이 될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러분과 같은 또래의 친구가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려 하니까 어머니가 굉장히 반대를 하더랍니다. 어머니에게 그 까닭을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교회에 나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날에는 세상을 버리고 결혼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생각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본의 어느 그리스도인의 체험담) 이것은 전혀 엉뚱한 오해죠. 교회에 나와 성경을 배우면 여러분의 인생은 몇 배로 불어날 것입니다. 참된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도 되고 이것이 참된 사실이며 진리임이 여러분의 생활의 체험 속에서 반드시 증명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29.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기독교를 왜 인정 안하나 ***

공산주의는 무신론의 세계관을 네세우고 있습니다. 다음의 세 가지가 기독교와 근본적으로 틀린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당신들이 부정하는 하나님이란 어떤 하나님"이냐고 물어보십시오. 모름지기 그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동떨어진 설명으로 제멋대로 하나님을 규정짓고 자기들이 부정하고 있는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는 무신론입니다. 그리고 둘재로는 물질 제일주의로 정신이 그것에 따라간다고 합니다. 즉 물질적 환경이 좋아지면 인간의 심리도 좋아진다고 생각하며 빈곤의 차별이 없어지면 인간의 범죄도 없어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사실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이론입니다. 기독교에서는 마음이 제일이며 그것에 물질이 따라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된 진실과 순결한 사랑을 가질 때 비로소 물질적인 환경도 좋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이 먼저겠느냐 물질이 먼저겠느냐 여러분도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이 있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물질과 정신을 만들어주신 하나님에게 순종을 하느냐 안 하느냐를 기독교에서는 묻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셋째로, 공산주의는 이 인간 사회를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 투쟁에 의하여 성립된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는 여기에 대해서 이 사회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이세상을 나쁘게 하고 있는 것은 경제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하고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살고 있는 죄가 이 세상을 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믿고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결코 좋아지지 않으며 이러한 큰 차이 때문에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것입니다.


30. 자살을 해서는 안되는 이유 ***

나는 지금 가슴을 아프게 하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어느 여학생이 빌딩 옥상에서 투신자살을 하려고 합니다. 그 주변에서는 그를 말리려고 많은 사람이 몰려와 설득을 했으나 효과 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가 나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네가 해달라는 대로 무엇이든 해주지 않았으냐?" 하고 자살해야 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 소녀는 빌딩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은 이 자살의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합니까? 흔히 어른들을 지나친 부모들의 보호 의식에 항거해서 죽었으리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아마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자살이란 용서될 수 있는 일일까요?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즉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즉 산다는 것은 하나의 의무이며 스스로 죽을 수있는 자유는 우리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살들을 감행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즉 살인에 대한 심판은 당연히 그 사람에게 내려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사는 것이 인생의 대원칙입니다. 이 세상에는 갖은 고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 아는 말에 "칠전팔기"라는 말이 있지요?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선다는 말인데 이것이 인생이라는 의미의 말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괴로운 일도 많이 있습니다. 죽고 싶도록 괴롭다고 해서 죽고 만다면 그 사람은 비겁한 사람입니다. 여섯 번이고 일곱 번이고 고난을 통과하는 여기에서 고통의 참의미를 깨닫고 인생의 밑바닥을 알게 됩니다. 어떠한 고통이 있더라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반드시 여러분에게 밝은 인생이 약속될 것을 믿습니다.


31. 교인이 되면 꼭 헌금을 해야 하나요? ***

이것은 남에게 강요당해서 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하는 것이므로 감사가 솟아오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헌금입니다. 교회의 헌금을 일본인은 흔히 신사나 불상에 참배하고 넣는 새전 또는 시주돈 같은 것으로 혼동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그것들과는 성격을 전혀 달리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우리들의 생명도,재산도, 하는 모든 일도 모두 주님의 것 입니다. 우리가 때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맡기신 것으로 원래는 주님의 것인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근원을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즉 여기 어떤 큰 상점이 있는데 그것을 자유롭게 경영하고 있는 지배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니 그는 고용되어 있는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즉 상점의 물건 전부를 자유롭게 할 수는 있느나 상점 자체는 자기의 것이 아니고 단지 경영하는 것만이 맡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점의 소유주는 전수입의 10분의 1을 갖고 오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상점의 모든 것을 필요한 대로 구색을 갖추어 주겠다는 조건을 약속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대로 기독교 복음에서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옆에 성경이 있으면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라기서를 보기 바랍니다.3장 7절부터 12절까지 우리에게 귀한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헌금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도 알 만하고 또 태연히 시주돈 내듯이 하는 사람들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무슨 학교의 수업료처럼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매일 이렇게 축복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감사할 때 기뻐하며 헌금할 수 있습니다.


32. 헌금을 어떻게 사용됩니까? ***

기독교 교회의 사명과 목적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는 형태로서, 전세계 각지에 교회가 있고 또한 기독교계 학교가 있으며 병원이 있고 고아원이 있고 난민 등의 구제, 더 나아가서는 복음의 해외 선교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떨까요? 한 사람 한 사람을 각처에 두고 "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고 전파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생활비를 비롯해서 전도 활동에 필요한 비용으로 그 헌금이 충당됩니다. 병원의 경우 특히 그 시설을 외국에 만들고자 할 때에는 그 스탭들의 생활비,건물이나 시설의 용달 등에 거액의 자금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의 난민들의 구제에 나선 사람들을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정치 문제는 어떠하든 아사 상태에 놓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구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아직 학교에 가지 않은 어린이들부터 양로원에 있는 노인들까지 헌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에서 20명의 의사, 간호원, 식량보급 관계자가 파견되어 있는데 이러한 것들이 정부와는 아무 관계없이 민간인 선에서 헌신적인 봉사와 사랑의 지원을 한 것입니다.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22:39)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모두 분발해서 힘을 모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는 아직도 문자가 없는 민족이 1000여 부족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매우 힘든 활동이지만 그러한 지역에 들어가 주민의 말을 익혀 문자화하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번역하는 사업도 하고 있습니다. 네팔이나 인도네시아, 필리핀 같은 곳에는 각국에서 언어 선교사가 파견되어 그 나라의 언어 사정에 획기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활동의 모태 역할을 하는 것이 여러분의 교회고 목사이며 헌금의 그것을 위해 쓰여지고 있습니다.


33. 주일 예배 드리는 것이 왜 중요한가? ***

여러분은 칠월칠석의 유래를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음력 칠월 칠일밤 직녀가 천제의 허락을 받고 은하수를 건너 맞은편 언덕에 있는 남편 견우와 1년에 단 한번을 만나는데 그 때에 땅 위의 모든 까치들이 줄을 이어 오작교를 놓아 둘의 재회를 돕는다는 슬픈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1년에 단 한번의 안타까운 만남과 헤어짐이니 실제의 부부 같다면 이러할 때 어떻겠습니까? 나는 이것을 겉으로 보는 것보다도 부부간의 서로 그리워하고 서로 사랑하는 면에서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최근에는 남편이 직장의 근무 관계로 토요일 밤에나 겨우 귀가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럴 때 서로의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지고 신뢰로 묶어지는 토요일 밤이 돌아오는 것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 주일예배 =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이날이야말로 기다려지는 날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주일을 기다리고 그래서 주일 예배에 참석합니다. 주일 예배가 왜 그리 기다려지는가? 우선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가 이루어집니다. 물론 가정에서도 될 수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한 사람이 하나님과 갖는 사귐 이상의 친밀한 교제를 갖게 되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둘째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설교와 학습을 통해 더욱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배의 생명은 설교에 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대언자로서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셋째로는 성도 즉 거룩한 무리라는 뜻인데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통하여 횡적인 교제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한 주간만에 모이는 만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과 서로 만나는 반가움과 기쁨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시는 목적과 사명을 확인하고 새롭게 다시면서 감사의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무 특별한 변화가 없는 것같이 반복되는 주일 예배지만 이것이 잘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진전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욱 주일 예배 참석에 노력합시다.


34. 교회학교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

매우 훌륭한 희망이라고 칭찬하고 싶습니다. 교회학교라면 영아부로부터 장년부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야가 있습니다. 이것은 소위 전인 교육 과정이 본래의 생각하는 방향인데 흔히 교회학교 하면 어린이들의 기독교 교육 기관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같이 보여집니다. 여러분도 어린들의 교회학교 교사라는 면에서 말하고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어린이의 기독교 교육이라는 입장에서 여러분의 질문에 대한 내 의견을 검토 해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교회 학교 교사로서의 조건을 말해 보겠습니다. 1.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세계에 대해서는 성령을 받아 경험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이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변화를 받은 사람만이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고전2:10-16,고후5:17). 2.어린이를 좋아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린들과 더불어 모래사장에서 뒹굴며 놀아줄 수 있겠습니까? 또 어린이들과 어울려서 막대 넘기기, 단체놀이 등 모든 활동 속에서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고 무엇에나 융화할 수 있는 마음 가짐에 확신을 갖고 뛰어들 수 있으면 됩니다. 지금 말한 두 가지 놀이는 중요한 것입니다. 즉 어린이들의 창조성을 높여주고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깊게 해주고 한편으로는 단체로서의 어린이들과의 융화를 높이는 것이 됩니다. 3. 봉사 즉 주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학교에서 받는 수업은 그저 수동적인 면에서 받기만 하는 것뿐입니다. 늘 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봉사하는 마음입니다. 4. 마지막으로 성경과 교회사에 대해서 계통적으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성경은 진리의 책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 속에서 여러가지 잘못된 해석으로 시대적인 암흑을 지나온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성경과 교회사를 바르게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참고서는 고가의 것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도서부에서 빌려 보거나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구입하여 보든지 해야 합니다.


35. "기적" 이라는 말을 듣는데 믿어지지 않음 ***

성경에는 기적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은 유명합니다. 예를 들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의 많은 무리를 배불리 먹인 일이라든지, 나사로라는 죽은 청년을 다시 살린 일이라든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순식간에 물을 좋은 포도주로 변하게 하셨다는 등의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기적이라는 정의부터 내리겠습니다. 보통 포도주를 만들려면 포도를 으깨서부터 최저 3개월을 걸립니다. 자연이라는 질서는 그만큼의 시간과 날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5천명의무리를 배불리 먹게 한 떡만 하더라도 그 만큼의 재료가 있어야 만들 수 있습니다. 원료, 연료, 설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기적이라는 것은 이러한 모든 수공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떡이 나옵니다. 손 앞에 있는 독의 물이 포도주로 변합니다. 어느 사람은 "영적인 세계의 것을 물질계에 나타나게 한 것이 기적이다"라고 합니다. 여기에 있는 것은 전능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극히 일반적으로도 기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기적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도깨비를 봤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 신사 앞에서 열심히 비오기를 빌었더니 비가 왔다든지 대학입시에 몇번 응시를 해도 떨어졌는데 시험보기 전날 밤 신사에 가서 그림말을 헌납했더니 시험을 아주 쉽게 풀 수 있었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적일까요? 성경에 나오는 기적이 실로 많지만 어느 것이나 하나의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이며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람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계신 곳에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최대의 기적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인간이 구원되어 하나님의 은헤를 받고 산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6. 친구를 교회로 인도하고 싶은데요 ***

꼭 데리고 가 주실 바랍니다. 성경에는 이런 말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말씀을 전파한다"는 것이 우리로서는 좀 거창한 느낌이 들겠지만 그 것은 친구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으로는 데리고 오고 싶은데 하는 생각을 하리라 여겨 집니다. 즉 그 생각은 데리고 가고는 싶으나 아직 권해보지 않았다는 말이고 인도하고 싶지만 말을 못꺼내고 늘 혼자 교회에 오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런데 어느 어린이는 아주 열심히 친구에게 전화도 걸고 찾아가고 교회에 가자고 권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너 오는 주일 오후 두 시에 우리 교회학교에 같이 좀 가자. 아주 재미있어." 또 어떤 특별한 모임이 있으면 "얘 너 오는 주일날부터 우리 교회에서 특별한 전도집회가 있는데 같이 가자. 앞으로 꼭 교회에 같이 나가자." "응 그런데 오늘은 곤란해 친구하고 스케이트를 타러 가기로 했거든." "어디로 가기로 했는데?" "응 장소는 아직 결정 안했어?" "얘, 그러면 교회로 가자. 응? 같이 가자 얘." "그래. 그러면 내 친구도 같이 데리고 갈까?" "그래 참 고맙다. 친구들이 기뻐할거야." 이렇게 해서 친구를 열심히 교회에 인도하는 모습을 보고 그 열심있고 정성스러운 태도에 감탄했습니다. 앞서 여러분은 잠자코 교회를 간다고 했는데 그것은 아직도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없는 탓이 아닐까요? 어떤 분위기에 그저 끌려가고 있는 것인지, 또는 자기도 친구에게 이끌려 마지못해 의리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그저 부모님이 그리스도인이니까 그럭저럭 끌려서 간다든지 하는 교회 생활은 아닌지요. 이러한 상태이니까 친구들에게 떳떳하게 교회에 가자는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먼저 여러분이 확고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라고 믿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면 생각대로 자유롭게 친구들을 교회로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에는 많은 호기심으로 꽉 차 있으니 열심히 성의를 다해 전하기 바랍니다.


37. 장래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

반갑군요. 나의 동료가 한 사람이라도 더 늘어나 준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입니다. 지금 일본의 교회 수는 약 6천, 목사,전도사 수는 6천 5백에서 9천이라고 하며 신도 수는 60만을 좀 넘습니다 (1980년도 일본 기독교 연감을 참고로 한 숫자임). 그러보니 카톨릭 교도까지 합쳐 전국민의 1%가량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 한국의 전국민의 23-28%에 비하면 실로 적은 숫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9:36-38). 다른 직업을 희망하는 사람은 많으나 목사가 되겠다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목사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기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재로 자기 자신의 문제. 우선 진실로 주위의 사람들을 신앙으로 이끌려고 하는 열의에 불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명감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목사로서의 생명선입니다. 다음에는 정의감과 인정 즉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입니다. 또 여기에다 행동이 따르고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심리학이나 필요한 학문과 상식을 고루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한가지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목사로서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소명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 소명감이 있으면 장래 어떤 고통 속에서도 견디며, 여러분에게 이것이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열심히 기도하는 중에 깨닫게 됩니다. 희생과 인내의 봉사이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서 갖는 최고의 활동이라고 믿으며, 행복하고 축복된 활동입니다.


38. 진화론과 창조설은 생물학상으로 맞는것 ***

사실 우리 머리 속에 혼란을 가져올 만한 일이기도 하죠. 교회에서는 천지 창조설을 가르치고 있으니까 학교에서 가르치는 생물의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시험을 칠 때에 배운 것의 정반대로 답안지를 낸다면 그 생물 시험 성적은 빵점이 되고 말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진화론 즉 생물은 아메바라는 단세포로부터 차차로 진화하여 복잡화되어서 그것이 원숭이인 침판지가 되어 다시 사람으로까지 진화했다는 이론은 아직 학문의 단계에서 가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세계의 생물학자 중 한 사람도 이 진화론이 진리라고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학교 시험에서는 진화론이 "가설"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확실하게 알고난 후에 배운 것을 써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진화론은 생물학계에서 가설에 불과하며 하나의 이론입니다. 이것 을 알고 공부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중요한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역시 창조설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게서 이 우주의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 즉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게서 친히 하나하나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흥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질소는 대단히 유비성이 있지 않나 하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다리 즉 말의 다리나 사람의 다리 같은 것도 아주 닮은데가 많습니다. 역시 다리라는 것의 기능을 생가하면 이러한 형태가 가장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손 모양 팔의 길이 코의 위치나 눈의 수... 등 각 생물을 보면 거의 비슷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미루어 진화론자들은 말도 인간으로서의 진화의 한 과정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아뭏든 하나님께서 질서있는 우주 또는 생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39. 그리스도인들은 위선자 같이 느껴집니다 ***

그것 참 따끔한 질문이군요. 이 말은 자신의 반성으로서도 깊이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문제는 성경을 "율법적인 책"이라고 규정짓고 보면 인간들은 거의가 위선자로 보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은 율법의 표준이 너무나 고상하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5:22)든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거의 누구든지 "그런 일이 없습니다"하고 대답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위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늘 율법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스스로를 돌아다보고 스스로 묻고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율법 감각이 무디게 될 때에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은 느슨하게 되므로 역시 자신을 항상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율법도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에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1:8) 매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죄사함을 받는 체험 즉 이것이 그 사람을 위선으로부터 구원하며 한편으로 성령의 충만한 체험을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다음 위선자에 대해서 한 가지 더 말하겠습니다. 신자가 다른 신자의 언동을 볼 대에 취할 태도의 하나로 상대가 위선자라고 생각하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교회에서는 저렇게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받도록 하면서 학교에서의 태도는 저게 뭐람 하고 비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떻든지 남을 비판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남의 것을 눈여겨 볼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40. 성경에는 뱀.나귀가 말을 한 것에 대해 ***

분명히 창세기 3장을 보면 뱀이 하와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뱀이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민수기 22장에서도 나귀가 발람에게 말하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냐 하는 말이죠? 마태와 마가, 누가, 요한 이 네 사람이 기록한 예수님의 부활절 아침의 장면은 각가 모두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그것은 서로 모순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차이가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조사해 본 적이 있는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성경은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감"이라는 면에서 생각해가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면 열렬히 사랑하는 한 쌍의 부부가 있습니다.낮에는 남편이 직장에 나가서 근무하느라고 집에 있습니다. 집에는 많은 손님이 찾아옵니다. 은행원, 보험 회사원, 가스 회사 수금원 또는 근처의 주부들 등등... 그런 사람들을 응대하는 것은 그 때 그때의 아내의 생각이고 말이지만, 그 내용이 남편의 의사에 반대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 한마디가 자기의 의지와 말이지만 그것은 남편의 뜻에 따르는것인데 그것은 사랑이라는 영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라는 책은 이렇게 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뜻을 사람드에게 전하고자 자신 들의 견문을 바탕으로 썼는데 이것이 성경입니다. 그러나 부부의 이야기와 다른 것은 성경을 기록할 때에 하나님게서 같이 역사하셔서 바르게 쓰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것을 바울은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3:16)이라고 말했습니다.


41. 하나님은 왜 인간을 사랑하시죠 ? ***

여러분은 과학자 중에 그리스도인이 많은 것을 알고 있나요? 특히 천문학자 중에는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것은 역시 하나님이 인간을 한사람 한사람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므로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는 감사와 공경으로 하나님을 믿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신앙과 과학은 결코 모순되지 않습니다. 다른 항목에서도 이 성경 귀절을 인용했습니다먀ㄴ 이 질문에 가장 적합한 회답으로 생각되어 다시 한번 여기에 적어보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