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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내 귀에 안 들리는 저주

에반젤(복음) 2020. 7. 7. 01:37

 

 

◈말씀이 내 귀에 안 들리는 저주 히1:1~2 2014 신년집회 2-1 녹취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버림 받은 인생이 있습니다.

 

▲가장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 아주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이 끊어지는 겁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하나님의 심판 중에 무서운 심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말씀을 거두어가는 것입니다. 무서운 저주입니다.

 

이 사실에 대해서, 구약성경 아모스서 8장에서 한번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암8:11~1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이렇듯 가장 두려운 심판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말씀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양식이나 물이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런 때가 오면 정말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사역자나, 한 개인의 삶에서도, 이런 비극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사사시대의 마지막 사사요, 제사장이었던 엘리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가장 최고 지도자였는데, 이 엘리 가문이 타락을 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식들을 엉만진창으로 키워 얼마나 사악한지요.

갖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짓을 다 하는데, 제사장, 성직자가 이런 짓을 했다는 말입니다.

 

직분이나, 신학적 지식이나.. 이런 것으로, 인간의 타락한 악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직분 가지고 안심할 수 없는 겁니다.

 

교회의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그 사람이 저절로 거룩해지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그 때 엘리 가문에 저주가 임했는데,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귀가 되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대표로 들어야 했었는데

무서운 저주가 임했는데.. 밥을 못 먹는게 아닙니다. 몸도 건강했죠.

허우대는 멀쩡했으나, 문제는 하나님의 종으로 세움 받은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저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비참한 지경에 있는지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무엘이라는 어린 아이가, 엘리 제사장이 있는 성막에 와서 지내게 될 때

놀랍게도 나이먹은 제사장이 못 듣는 하나님의 음성을, 어린 아이가 들은 거예요.

 

엘리 가문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제사장에게 들려준 게 아니라

어린 아이에게 들려주신 거예요.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인간이 타락하면 이 지경이 되는 겁니다.

무슨 직분을 갖든 어떤 위치에 있든 상관 없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대단하고, 위세를 떨치고, 굉장한 조직을 가지고 있다해도

만약에 이런 비극이 임하면.. 진짜 끔직한 일입니다. 가장 무서운 심판이 임한 거죠.

 

그 다음엔 나머지 수순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엘리 가문에는 이미 저주가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겁니다.

 

그 다음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왕이 있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이었고, 역사에 선택을 받은 이스라엘 나라를 세운, 초대 왕이 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아주 인물 좋고, 키도 크고, 똑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자아의 탐욕의 구덩이를 벗어나지 못한 채

하나님께 대한 경외보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권력에 미쳐서,

권력에 중독되면, 기본적인 양심도 작동을 안 합니다.

 

그래서 미친 왕 사울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생애 가운데 무서운 저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어서

나라가 도탄에 빠졌을 때도, 왕은 아직도 왕의 자리에 남아있긴 한데 이미 벌써 폐위된 왕입니다.

 

아직도 왕이라는 자리에 있지만, 하나님으로부터는 이미 버림 받은 거예요.

그래서 미쳐서 발광하던 귀신 들린 왕 사울이, 나중에는 무슨 짓을 하냐면,

나라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어서.

점 치는 무당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음성을 구합니다. 들으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어도, 벌써 폐위된 왕처럼.. 이제 망하는 수순만 남았다는 겁니다.

우리 각자가 두려워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민족도, 말이 그렇지, 지금 밥 먹는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난리도 아닙니다. 세력을 확장하는 판도가 이상하게 역사의 한 순간(백년 전)을 떠오르게 합니다.

 

중국이 지금 기고만장해서 그 세력을 확장하고 있고

일본, 이제 길이 없으니까 늙은 나라요, 더 이상 희망이 없으니까, 곤조가 나오는 겁니다.

일본 말로 곤조가 나오는 겁니다.

서양에서는 히틀러가 미쳐서 사람들 600만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면

동양에서는 일본 사람이 저지른 것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이런 미친 짓을 지금 시도하려고, 법을 바꾸어서,

패전 이후 평화 헌법이라고 해서 항복했을 때 만들었던 법을

아베 총리를 앞세워서, 지금 일본 사람들이 합세해서 헌법을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전쟁이 가능하도록.. 그 본성이 어디 갈 수 없습니다.

이렇게 다급한 상황에 둘러 쌓여 있습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이게 항상 열강들 틈에 끼어서 전쟁판이 되는, 기가 막힌 역사의 상황을 겪어왔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스라엘과 너무 비슷합니다. 하늘을 쳐다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스스로를 대단하게 얘기한들, 듬직한 중국과 맞설 수 있겠습니까.

일본만 해도 그렇죠.

지금. 세상 돌아가는 것만 해도 상황이, 정말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한 순간도 불안해서 살 수 없습니다.

 

이 다급한 상황을 맞이하는 지금

이스라엘은, 타락한 엘리 제사장과, 사울왕의 망조들린 잘못된 리더십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도, 답답한 거예요.

더욱 답답한 것은, 도대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음성을 들려주던 사무엘 선지자는 이미 떠났고,

그리고 이제는 자기가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어린 소년 다윗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정작 왕이었던 사울에게는 들리지 않는 겁니다. 얼마나 비참한 꼴이 되시는 줄 아십니까.

 

악령에 시달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이왕에 하는 짓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려 너무 다급하니까, 신접한 여인을 찾아갑니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왕이, 무슨 꼴로 타락을 했는고 하니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지 않으니까

쉽게 말하면 버림 받았다 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지 않는다는 말은, 등을 돌린다는 말은

주님께서 낯을 돌리셨다는 말은..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사울의 말년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비참하게 죽고 그의 시대는 끝나고 맙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끊어졌다고 하는 건, 정말 비극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인류, 아담 이후에 범죄한 인류가.. 정말 길을 찾을 수가 없는 거죠.

 

 

◑말씀을 주신 복

 

우리를 창조하셨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잃어버렸다는 말은

우리의 모든 근원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나는 어디서 왔지, 어디로 가지. 무엇을 위해 사나?'를 다 잊어버리고,

통째로 표류하는 인생이, 난파선처럼. 목자 잃은 양처럼.

 

이렇게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는 인류는

기억상실증이 걸린 그런 비참한 인생처럼.

내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하기 짝이 없어서

그래서 언제나 장사가 잘 되는게 종교 사업입니다.

 

인류 역사에 끊임없이, 아무리 어려운 때일수록, 더 장사가 잘 되는게 종교 사업입니다.

점 치고요, 굿 하고요. 수많은 이름으로 어처구니없는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도

밥먹고 살고, 사업이 잘 되는 이유는,

 

인간이 영적인 존재인데, 내 갈 길을 물어볼 데가 있어야지..

사람이 참 갑갑하기 짝이 없는 일이, 바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때입니다.

 

방황하는 인류에게, 정말 표류하는 인생들에게, 길을 찾는 인생에게.

진리를 더듬어 갈구하는 그런 생명들에게

정말 잃어버린 나는 누구이며, 혼돈하는 세상은 장차 어떻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어떻게 찾아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문제로 어려워하는 인생들에게, 놀랍게도 하나님은 자비를 거두지 아니하시고

아담 이후에 범죄하여 떠난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버리고 하늘을 등진 그런 인생들에게

하나님이 베푸신 최고의 자비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신, 기록된 성경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드러내신 가장 큰 축복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히브리서 1장 1절, 2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히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하나님이 이 말씀을 하나님을 떠나서 진리를 잃어버리고 표류하는 인생들에게

우리의 지금 잠깐 짧은 백년 인생도 우리가 알 수 없어 불안해서, 점도 쳐야 되고, 토정비결 봐야 되는 판인데

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길을 잃어버린 인생들인 우리를

생명의 근원을 떠난 우리에게 하나님이 내버려두면 죄값으로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셔서

 

어떻게든 옛적부터 영이 죽어 하나님을 알아볼수도 들을수도 없던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구약 시대 내내 여러 부분 여러 모양으로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비유로/ 사건으로/ 역사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계속 알아듣도록, 수단과 방법을 다해서 주님이 말씀해오시다가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아멘. 히1:2

 

때가 차매, 주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육신을 입고,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이 말씀의 진리를 통해서 계속 증거해오신 그 말씀이

그대로 사실이라는 것을 우리가 만지고 감각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우리 가운데 성육신하여 오신 분이, 바로 역사 속에 오셨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렇게도 놀랍게 하나님이 내내 우리를 통해서 역사를 향해서 주님이 말씀해주셨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가장 분명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으로 나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요즘 우리 집에 성경책이 많아요. 여러 권이에요.

근데 언제 전세방을 벗어나나, 주여. 성경책 주지 마시고 전세돈이나 주시고. 아파트 좀 한 채 주시라고,

혹시 이런 짜증 부리시지는 않는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그 은혜는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주님께서 말씀을 통해 전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생명과 복이 달려 있는 말씀,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그 하나님의 사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기만 하면

 

시편 127편 말씀처럼,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면,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주시지 않으면, 그 모든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그러니까 진짜 복 받은 인생은, 다른 것 없이 우리의 범사에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면 이야기는 끝나는 겁니다. 복잡할 것 없습니다. 할렐루야.

 

▲무슨 일을 당했느냐/ 어떤 어려움 가운데 있느냐/ 얼마나 많은 적이 나를 공격하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안전한 보장이란 없는데, 한 가지 분명한 건,

하나님이 날 사랑해서 도와주시기로 하면, 주님이 나를 믿어주시기만 한다면

누가 우리를 감히 망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8장에 보면, 하나님의 복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신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다가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주실만큼 우리를 사랑하시지 아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옆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하시지,

 

성령님은 아예 파견되시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서 나를 도와주시지.

성부 성자 성령님이 주최측인데. 주최측이 나를 짜고 밀어주고 나면

그 누가 우리를 주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으리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시는데, 누가 우리를 망하게 하리오.

 

그러니까 로마서 8:28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느니라.

 

제일 저주 받은 인생은, 세속의 모든 기회가 사울처럼 엘리처럼 주어졌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복과 기세가 저주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복이 있다면 하나님이 나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코치하시고, 주님아 나를 이끌어 주시고 나를 인도해주시는 것.

주님이 다른 약속 안하시고 성경의 주의 백성들에게 하신 유일한 약속이 있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할렐루야.

 

모세가 죽고 나서, 어린 아이같은 여호수와가 그 큰 과업을 맡고 떠나는 그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한 마디입니다.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과 같이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우리에게는 주님이 다른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올 한 해 주님께서 다른 보장이 필요한 게 아니라

모세와 여호수와와 함께 했던 것처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게 그냥 결론인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감히 나를 건들겠습니까. 누가 나를 망하게 할 수 있으며. 누가 나를 끌어내릴 수 있겠습니까.

주님만 함께 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교제하시고, 늘 그 음성을 들려주시고

그리고 혹시나 듣기만 하면 잃어버릴까봐 기록된 말씀을 주사 날마다 확인하고

그 말씀 붙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으니 가장 큰 축복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 - 말씀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 사랑의 증거가, 기록된 성경을 주신 게 가장 큰 증거라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주님이 인정하실만한 성도인가

가장 뚜렷한 증거도 놀랍게,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걸 보면, 그 사람이 직분이 뭐냐 이런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뭘 대단히 많이 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진짜 살아있는 참 신앙을 가진 사람이냐를 알아보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가.. 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그 사랑을 마음껏 충만하게 누리는

이 마지막 세대를 뚫어내는 능력 가장 큰 은사요, 가장 좋은 일인 사랑을

어떻게 누리고 그 사랑 안에 거할 수 있느냐하는 말씀을, 오늘 본문에 말씀하신 걸 다시 한번 살펴봅니다.

 

요한복음 15장에 우리가 읽었던 말씀을 다시 한번 봅니다.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사랑을 애걸하거나, 예수님 붙들고 사랑해주세요 이렇게 말할 게 아니라

사랑은 이미 확정되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 말씀하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은 영원한 사랑을 하시는데

내가 그 사랑을 느끼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하는 이 비극 가운데 사는 게, 우리의 비극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변함 없으십니다. 그 사랑은 흔들릴 수도 없고 변할 수 없도록 확정된 사랑인데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는다면 그 아들을 포기하신 거나 다름 없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죽일만큼 나를 사랑했기에, 이 사랑은 변제되거나 취소될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인 겁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은 변함 없는데

문제는 내가 그 사랑을 알지도 못할뿐만 아니라, 믿지도 못하고 누리지 못하니, 이런 비극이 어딨냐는 겁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내가 누릴 수 있는데, 이 때 주님이 말합니다.

어떻게 그 영원한 사랑을 우리가 거하면서 누리느냐. 하는 것을 10절에 말씀합니다.

요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 사랑 안에 거한다구요. 내 계명을 지키며 주의 말씀을 지키면

너희가 내 사랑 안에 거할 수가 있다. 할렐루야.

 

이 사랑을 찾아 먼 산을 넘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어마어마한 기독교 지도자를 찾아갈 필요가 없고

이 사랑을 경험하고 누리는 그 길이 바로 여러분 그 앞에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습니다. 그게 바로 그의 계명을 지키며 순종하면 그럴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에게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오는데

수많은 이유와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따라왔더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가장 완전한 사랑의 증표.

그것은 영원히 순종하기만 하면 영원히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진리를

우리 안에 기록된 성경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성경을 사랑하고 이 성경 순종하고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기적 중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받고 순종하는 이 일이 우리 안에 일어나기만 하면

하나님은 가장 큰 은사, 가장 좋은 길로 말씀해주셨던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실제가 되어지는 그런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이 말입니다. 아멘.

이 성경은 우리에게 주신 그 말씀을 그토록 소홀히 하여

정말 보석처럼 시편 119편에 나오는 성경 기자는 말합니다.

내가 이 말씀을 꿀보다 더 내 입에 달고, 내가 밤중에도 일어나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헐떡이며

그 말씀을 구했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길의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생명의 양식입니다.

죽을 듯 배고플 때 양식을 찾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찾고.

위험한 적이 공격해올 때 나의 피난처를 찾아 헤메듯이 삶의 위기가 다가올 때

다른 곳에 기웃거리지 아니하고 주님의 말씀을 생명을 걸고 찾고 주의 말씀은 나의 피난처, 아멘.

나의 산성. 나의 구원의 꿀. 나의 검. 할렐루야.

 

말씀을 이렇게 사모하고 집중하고 온전히 의지할 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시대에 가장 흔들리지 않는 최고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