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 신학 >>>/- 인 간 론

벌코프 조직신학 인간론 요지

에반젤(복음) 2020. 2. 22. 12:53



인간론의 주요 주제들

인간론(anthropology)은 사람의 본래 상태와 죄의 상태와 언약의 상태에 관한 성경 진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돈한 것인데, 그 주요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제1부: 사람의 본래의 상태
1. 사람의 기원, 2. 인류의 연대, 3. 진화론 비평, 4. 사람의 구성 요소, 5. 개인 영혼의 기원, 6. 하나님의 형상, 7. 행위언약

제2부: 사람의 죄의 상태
8. 죄의 기원, 9. 죄의 본질, 10. 죄의 전가, 11. 죄의 구별, 12. 하나님의 법, 13. 죄의 형벌

제3부: 사람의 은혜의 상태
14. 구속언약, 15. 은혜언약, 16. 은혜언약의 시대들

제1부 : 사람의 본래의 상태

1. 사람의 기원

1-1. 하나님께서 창조하심

구약성경 창세기 1, 2장은 사람의 기원에 관하여 밝히 증거하고 있다.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이 증거대로, 사람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은 창세기 1, 2장의 진실성을 부정하고 성경의 창조 기사를 비역사적인 신화로 본다. 또 오늘날 유행하는 진화론 사상은 사람의 기원에 관한 성경 진리를 대항하고 도전한다. 진화론의 영향은 교회 안에도 매우 커서, 많은 신학자들과 젊은이들이 그 영향 때문에 창조의 기본적 신앙을 잃어버리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성경의 진실성을 부정하는 한 방식은 소위 '문서설'이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자들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순서와 창세기 2:5, 7, 19, 22을 비교하면서 창세기 1장과 2장의 내용들이 창조의 순서에 있어서 서로 모순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구약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들을 하나님의 종 모세가 하나님의 특별한 감동 가운데 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고, 후대의 익명의 저자들이 쓴 소위 J, E, D, P 등의 여러 문서들에 의해 편집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은 성경의 신적 권위를 부정하는 명백한 이단이다. 우리는, 비록 모세가 전승된 구전(口傳)들이나 토판(土版)들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창세기가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서들 중의 한 부분이며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모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모세가 기록한 율법책을 전달 받아 가지고 있었고(수 1:7, 8; 8:32, 34; 23:6), 또 여호수아 24:2-4에 보면 여호수아는 창세기의 내용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언급하였다.

창세기 1장과 2장은 사람의 기원에 관한 바른 진리를 증거한다. 그 내용들은 서로 보충적이다. 1장은 우주 창조 전반에 관해 증거하였고, 2장은 사람의 창조, 특히 남녀의 창조에 대해 좀더 자세히 증거하고, 또 하나님께서 첫사람 아담에게 주신 처음 명령에 대해 기록하였다.

1-2. 사람 창조의 특이성

사람 창조에 있어서 몇 가지 특별한 점들이 있다.

첫째로, 사람은 삼위 하나님 즉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의논 속에 창조되었다. 창세기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둘째로, 사람은 하나님의 직접적 손길로 창조되었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21,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셋째로, 사람은 몸과 영혼이 다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셨고, 또 영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생령이 된지라."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라는 말씀은 사람의 영혼의 창조를 보인다. 창세기 2:7은 창세기 1:27에 대한 좀더 자세한 보충적, 추가적 설명이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셨다'고 해서,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유출(流出)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성경은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다르고 신적 속성들을 소유하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 더욱이 하나님의 본질은 결코 범죄할 수 없다.

'생령'이라는 원어(네페쉬 카야)는 '생명체, 산 존재'라는 뜻이다. 그것은 창세기 1:20과 24에서 물고기와 땅의 짐승에게도 사용된 '생물'이라는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몸을 만드셨고 또 직접 영혼을 창조하여 그 코 속에 생명의 기운으로 넣으셨고 그래서 사람은 산 존재가 되었던 것이다.

넷째로, 여자는 남자에게서 창조되었다. 창세기 2:21,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첨가하여 말한다면, 여자는 남자를 돕는 자로 창조되었다. 창세기 2:18,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돕는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여자의 역할을 증거한다. 남자를 돕는 자로 여자를 창조하신 것이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이었다. 여기에 남녀에 대한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또한 남녀가 사랑으로 결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아담은 하와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표현하였다. 아내는 남편의 종이 아니고 귀중한 몸의 한 부분이며 사랑의 품으로 품어야 할 대상이다. 결혼은 남녀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창세기 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결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 심지어 부모와 자식의 관계보다도 더 친밀한 관계의 시작이다.

1-3. 인류의 단일성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증거는 또한 인류의 단일성(單一性)을 내포한다. 맨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한 남자와 한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인류의 부모가 되었다. 온 인류는 한 부모로부터 나왔고, 넓은 의미에서 한 가족들이며 친척들이다.

인류의 단일성에 대한 성경 진리에 반대하여, 아담 이전에도 세상에 사람들이 있었거나, 아담과 동시대에 사람들이 다른 곳들에 또 있었거나, 아담이 인류의 시조가 아니고 유대인의 시조에 불과하였을 것이라는 추측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성경 기사에 아담의 첫 아들 가인이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했다는 사실과 그가 결혼할 대상이 있었다는 사실(창 4:14, 17) 등에서 그런 추측의 근거를 찾으려 하였다. 그러나 인류의 단일성은 성경이 밝히 증거하는 사실이다. 특히 이것은 원죄의 교리에 기초가 되므로 중요하다.

성경은 여러 구절들에서 인류의 단일성을 증거한다. 창세기 1:27, 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창세기 3:20,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창세기 9: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 좇아 백성이 온 땅에 퍼지니라." 창세기 10:32,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사도행전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성경 뿐만 아니라, 또한 일반 학문들도 여러 각도에서 인류의 단일성에 대하여 증거한다.

첫째로, 역사학은 여러 인종들의 전설들에 근거하여 인류가 공통적으로 중앙 아시아에서 기원하였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유럽의 민족들은 아시아로부터 이주(移住)한 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아메리카 인디언들도 동부 아시아의 몽고족 중에서 폴리네시아(오스트렐리아 동북부 태평양의 섬들)를 경유하거나 알류시안 군도(알래스카와 러시아를 잇는 베링 해협의 섬들)를 밟아서 이주하였다고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둘째로, 비교언어학은 인류의 언어들의 공통적 기원을 증거한다. 특히, 고대 언어들의 어근의 유사성이 그것을 확증한다. 예컨대, 곰은 애굽어로 뎁, 히브리어로 돕, 알메니안어로 뎁바, 아라비아어로 둡이라고 한다.

셋째로, 심리학은 인류의 영혼들의 공통적 특질들을 증거한다. 예를 들어, 인류는 공통적으로 식욕과 성욕 등의 본능적 욕구들과 더불어 도덕성과 종교성 등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인간은 공통적으로 신을 찾고 신에게 기도하며 또 영생을 소망한다.

넷째로, 생리학은 인류가 단일 종류임을 증거한다. 예를 들어, ① 모든 종족들의 두뇌, 골격, 치아의 성질이 같다. ② 종족들 간의 결혼과 자녀 출산이 가능하다. ③ 몸의 온도, 맥박수, 혈액의 특질이 같다.

다섯째로, 생물학은 인류의 단일성을 증거한다. 진화론 학설을 발표했던 다윈 자신도 그 사실을 시인하여 말하기를, "나는 오늘날의 인류가 하나 이상의 부부들로부터 발생하였다고 말하게 할 아무 증거도 없다고 믿는 자들 중의 하나다. 나는 하나 이상의 인종이 있다고 믿을 만한 아무 좋은 근거도 혹은 아무 유지될 수 있는 증거도 보지 못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하였다(Origin of Species, pp. 426, 427).


2. 인류의 연대

언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는가? 지구의 나이는 얼마인가? 세상의 많은 과학자들은 진화론과 더불어 지구와 인류의 오랜 연대를 상상하고 주장하고 있다. 지구의 나이를 수십억년 그리고 인류의 연대를 수십만년으로 보는 것은 일반화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구와 인류의 참된 연대가 아니다. 성경은 지구와 인류의 짧은 연대를 명백히 증거한다.

2-1. 성경에 근거한 지구와 인류의 연대

17세기 영국교회 대주교 제임스 어숴(1581-1656년)는 신구약성경의 연대기(Annales Veteris et Novi Testamenti)라는 책에서 아담의 창조 연대를 주전 4004년으로 보았다. 근년에 보수적 구약 학자 J. B. 페인은 인류의 창조 연대를 주전 4175년으로 보았다(Zondervan Picto- rial Encyclopedia of the Bible, I, 831). 이들은 다 성경에 근거하여 인류의 연대를 계산한 것이었다.

성경에 근거한 지구와 인류의 연대는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우선, 천지 창조를 문자적 6일 창조로 보면, 아담의 창조는 지구의 창조와 같은 해이다. 창세기 5장에는 아담의 자손들의 수명이 나오는데, 그것들에 근거하여 그들의 연대를 대략 계산할 수 있다. 그것에 의하면, 아담은 930년까지 살았고, 노아는 아담 후 1056경에 출생하여 2006년경에 죽었고,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은 노아 600세 때 즉 아담 후 1656년경에 있었다. 물론 이런 연대들은 숫자를 그대로 더하거나 뺀 것이므로 대략적인 것이다.

창세기 11장에는 또한 셈의 자손들의 수명이 나오는데, 그것에 근거하여 그들의 연대를 계산할 수 있다. 셈은 아담 후 1558년경에 출생하여 2158년경에 죽었고, 데라는 아담 후 1878년경에 출생하여 2083년에 죽었다. 창세기 11:26은, 데라가 70세에 아브람[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다고 증거했는데, 그것이 데라가 70세에 아브라함을 나았다는 뜻이면, 아브라함은 아담 후 1948년경에 출생하였고 175세를 살았으므로(창 25:7) 아담 후 2123년경에 죽었다는 말이 된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 75세이었으므로(창 12:4) 그 때 데라는 145세로서 아직 죽기 전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창 11:32 비교).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아담 후 2048년경에 출생하여 180세를 살았고(창 35:28) 아담 후 2228년경에 죽었고, 이삭의 아들 야곱은 아담 후 2108년경에 출생하여(창 25:26) 147세를 살았고(창 47:28) 아담 후 2255년경에 죽었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간 나이가 130세이었고(창 47:9) 그 때는 아담 후 2238년경이었다.

출애굽기 12:40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 거주한지 430년에 애굽에서 나왔다고 증거하고 있으므로, 출애굽 사건은 아담 후 2668년경에 있었다. 또한, 열왕기상 6:1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480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4년 시브월 곧 2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고 증거한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연대는 아담 후 3148년경이다. 그런데 솔로몬의 통치 연대는 세속 역사와 비교하여 주전 970-931년경으로 어느 정도 확정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성전 건축의 연대인 아담 후 3148년경은 주전 967년경이 되고, 따라서 아담의 창조 연대 및 세상의 창조 연대는 3148년+967년 즉 주전 4115년경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경에 근거한 지구와 인류의 창조 연대는 주전 4천년 남짓하며, 인류의 역사는 이제까지 6천년 가량임을 알 수 있다.

2-2. 과학자들의 연대 계산

성경에 근거한 짧은 연대와 다르게,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은 지구와 인류의 오랜 연대를 상상하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자들의 연대 측정의 대표적 방법은 우라늄(U-238)에 의한 측정 방법과 방사성 탄소(C-14)에 의한 측정 방법이 있다. 전자는 암석의 연대 측정에 주로 사용되고, 후자는 생물체의 연대 측정에 사용되는데, 그 두 방법의 원리는 동일하다. 방사성 탄소에 의한 측정 방법은 리비(W. F. Libby)가 발표한 방법으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것은 화석이나 오래된 생물체의 연대를 측정하는 거의 유일한 과학적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방사성 탄소에 의한 연대 측정 방법은 다음과 같은 원리에 근거한다: ① 우주에서 지구로 밤낮 없이 들어오는 높은 에너지의 미립자와 그 방사선들[그것을 우주선<宇宙線>이라 부름]은 공기 중에 있는 질소(N-14)에 흡수되어 방사성 탄소(C-14)를 만들어 낸다. ② 이 방사성 탄소는 공기 중에 있는 산소와 반응하여, 이산화탄소(CO2)가 되어 동물들과 식물들 속에 들어간다. ③ 그런데 생물체들이 죽으면, 그 생물체들 속에 있던 이 방사성 탄소는 매우 천천히 붕괴되어 그 양이 줄어들게 되며, 그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기간[반감기]은 약 5700년이다. 따라서, 이 반감기에 근거하여 어떤 생물체의 화석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방사성 탄소에 의한 연대 측정 방법은 두 가지 증명할 수 없는 가설들에 근거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① 지구에 들어오는 우주선의 양, 공기 중에 있는 질소의 양, 그리고 그들간의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방사성 탄소의 양이 언제나 동일하다는 가설. 즉 옛날의 생물체들 속에도 오늘날과 똑같은 양의 방사성 탄소가 들어 있었다는 가설. ② 방사성 탄소의 반감기는 어떤 환경 조건에서도 항상 동일하다는 가설. 이 두 가지 가설들은 객관적 확실성을 가질 수 없는 것들이므로, 이 연대 측정 방법도 객관적 확실성을 가질 수 없다.

더구나, 이 측정 방법이 불확실하다는 과학자들의 증거들도 있다. 예를 들면, 살아 있는 달팽이 껍질이 2,300년 된 것으로, 산 나무의 일부가 10,000년 된 고목으로, 갓 잡은 물개가 1,300년 된 것으로 나타나는 우스광스러운 결과들도 있었다. 또한, 어떤 이들은 방사성 탄소의 생성 속도와 붕괴 속도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고, 어떤 이는 "대기 중으로 유입되는 우주선의 양, 물리적 압력, 화학 결합 상태, 전기 및 다른 외적 요인들에 의해서도 방사성 탄소를 포함한 모든 방사성 원소들의 붕괴 속도가 달라짐을 입증하였다." (한국 창조 과학회,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178-180쪽).

2-3. 지구의 짧은 연대에 대한 과학적 증거들

더욱이, 지구의 나이가 젊다는 과학적 증거들도 많이 제시되어 있다. 예컨대, 첫째로, 지구의 자기 능률의 감소이다. 나침판의 지침이 항상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는 데서 입증되듯이 지구는 하나의 자장(磁場)인데, 지구의 자기 능률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그 붕괴 속도의 반감기가 1,400년임이 알려졌다. 그러나 자장의 붕괴시 높은 온도가 생기므로, 만일 지구의 연대를 2만년으로 가정할지라도 큰 자장의 붕괴를 상상해야 하고 그 때의 고온 때문에 지구는 액체로 변했을 것이며, 100만년을 가상한다면 지구는 완전히 기체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자장이 크면 클수록 우주선(宇宙線)의 유입은 작아진다고 하며, 그렇다면 수천년 전의 방사성 탄소(C-14)의 생성량은 오늘날에 비해 매우 작았을 것이다.

둘째로, 지구의 회전 속도의 감소이다. 지구의 회전 속도는 점점 느려진다고 알려졌다. 만일 지구의 연대가 10억년이고 그 때의 자전 속도를 현재와 같이만 보아도, 현재 지구의 자전은 멈추었을 것이고, 만일 지구의 현재 자전 속도에서 꺼꾸로 더해가면 10억년 전의 지구는 상상할 수 없이 빨리 돌아 지구의 모양은 구형이 아니라 빈대떡 모양이었을 것이다.

셋째로, 우주진의 두께이다. 우주진(cosmic dust)이란, 우주 공간에 흩어져 있는 미세한 석질(石質) 혹은 철질(鐵質) 미립자들[먼지들]을 가리키는데, 이러한 우주진이 지구에 연간 약 1,400만톤이나 떨어진다고 한다. 특히 니켈의 함량은 지구의 물질 속에 있는 것보다 매우 많다고 한다. 만일 지구의 나이가 10억년이라면, 지구는 지금 약 15m 이상의 우주진으로 뒤덮혔을 것이지만, 현재 지구와 달에 있는 우주진의 양은 단지 몇 천년의 역사에 해당한다고 한다.

넷째로, 방사성 탄소(C-14)의 생성 속도와 붕괴 속도의 차이이다. 방사성 탄소의 생성 속도와 붕괴 속도는 다르며, 그 차이를 계산한 결과 지구는 약 8,000년 전에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다섯째로, 지구상의 지표흙의 두께이다. 지구상의 평균 지표흙의 깊이는 약 20cm라고 한다. 여러 실험 조사에 의하면, 지표흙이 2.5cm 쌓이는데 약 300-1,000년이 걸린다고 추산되는데, 이 추산에 의하면, 지구의 나이는 수천년에 불과하다. (최영상, "창조론을 뒷받침하는 과학의 연대," 과학적 증거는 진화를 부정한다, 한국 창조 과학회 편, 23-27쪽.)

결론적으로, 우리는 지구와 인류의 연대에 대한 성경의 증거를 포기할 아무런 정당한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연대를 믿음으로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인 과학자 헨리 모리스(Henry Morris)는 말하기를, "어숴의 일반적 방법, 즉 성경의 자료들에만 의존한 방법은 창조의 때를 결정하는 유일 합법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 . . 사실, 전통적인 주전 4004년 연대의 완전한 불가능이나 불합리성은 없다"고 하였다(진화론과 현대기독교, 81, 82쪽).


3. 진화론 비평

오늘날 세상과 교회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진화론은 도대체 무엇이며 과연 어느 정도의 확실성을 가지고 있는가? 진화론(進化論)이란 영국의 박물학자 촬스 다윈(1809-82년)의 종들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1859년)이라는 책에 의해 널리 퍼진 생각이다. 다윈은 그의 책에서 다음 몇 가지 점들을 가정하였다: ① 생명은 무생물에서 자연 발생하였으며, 그것은 역사상 단 한 번만 일어났다. ② 바이러스, 박테리아, 식물들, 그리고 동물들은 모두 상호 연관되어 있다. ③ 단 세포 동물(아메바 등)에서 모든 동물이 진화되어 나왔다. ④ 무척추 동물에서 척추 동물이, 척추 동물에서 양서류(물과 육지 양쪽에서 사는 것들, 개구리 등)가, 양서류에서 파충류(뱀 종류)가, 파충류에서 조류나 포유류가 진화되어 나왔다. 사람은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기번 등 소위 유인원(類人猿)인의 자손이거나 그들과 공통의 조상을 가졌을 것이다.

3-1. 불확실한 가설에 근거함

진화론은 확실한 객관적 사실들에 근거되지도 않고 확실히 증명되지도 못한 불확실한 가설(假說)에 불과하다.

3-2. 생명의 자연 발생설에 대하여

다윈이 가정했던 생명의 자연 발생설에 대하여 오늘날 과학자들은 오히려 부정적이다. 1862년 파스테르의 실험은 생명체의 자연 발생론을 반박하고, 생물은 생물에게서 생긴다는 생물 발생론이 타당함을 증거하였다. 또한 가장 간단한 생명체 하나가 우연히 생성될 확률은 한계점인 10의 50제곱분의 1보다 휠씬 작고, 이것은 그것의 불가능성을 보인다고 한다. 더욱이, 생명의 신비를 담고 있다고 오늘날 알려진 DNA의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와 작용은 고도의 지적인 존재, 즉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개입을 더욱 요청하고 있다.

3-3. 생물학적 변론에 대하여


진화론이 가정하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식물들, 동물들, 그리고 사람의 연속성, 즉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변이는 결코 생물학적으로 관찰되지 않았다. 어떤 종이 그 종 안에서 가지는 작은 변이[그것을 흔히 '소진화'라고 함]는 보통 인정되지만, 한 종에서 더 고등한 다른 종으로의 변이[그것을 '대진화'라고 함]는 결코 생물학적으로 관찰되지 못했다.

또한 후천적으로 얻어진 형질들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9세기 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은 생쥐꼬리 실험을 통해 후천적으로 얻어진 형질이 유전되지 않음을 증명하였다. 돌연변이의 유전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같은 종 안에서는 변이의 유전이 가능하지만 종과 종 사이의 유전 변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G. 멘델은 돌연변이가 결코 새 종이 되지 못함을 발견하였다. 또한, H. G. 뮬러는 돌연변이가 대부분 해로운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사실도 알아내었다. 이러한 사실들과 결론들은 진화의 개념과 반대된다.

또한, 생물들 간의 유사성, 특히 해부학적인 유사성이나 태생학적 유사성은 진화를 증명하지 않는다. 그 유사성은 하나님의 창조의 방식으로 얼마든지 설명된다. 또한 그것은 물건들이나 기계들의 유사성이 상호의 진화를 증명하지 않는 것과 같다. 특히, 최근의 혈액 시험은 사람의 피와 동물의 피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퇴화 기관들이 진화의 증거라는 주장도 타당치 않다. 오래 전에는 학자들이 사람의 신체에서 180여개의 퇴화 기관을 말하였으나, 최근에는 모두 6개뿐이라고 한다. 그것은 의학의 발달로 그 기관들의 기능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즉 주장된 퇴화 기관들은 그 기관들의 기능들에 대한 무지에 나온 잘못된 가정들이었다. 예를 들어, 맹장도 흔히 쓸데 없다고 생각되었으나, 오늘날에는 그것이 창자에 염증이 생기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3-4. 화석학적 변론에 대하여

화석이란 퇴적암 지층에 보존되어 있는 생물의 유해나 자취를 말하는데, 화석학적 증거들은 전혀 진화론을 증명하지 못했다.

화석들의 연대를 측정하는 한 방법에 의하면, 이미 생명체들의 긴 시대 동안의 진화를 가정하고 화석들을 여러 지층으로 분류하고, 어떤 지층에 있는 화석의 종류에 따라 그 지층의 연대를 측정한다. 이것은 순환적 논리이므로 아무런 객관적 증명이 되지 못한다.

특히, 종과 종 간의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는 중간 형태의 생명체들의 화석들이 없다는 사실, 즉 소위 '대진화'의 화석학적 증거가 없다는 사실은 진화론자들의 고민이 되고 있다. 사람과 유인원의 중간 형태로 주장된 것들이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무엇을 증명하지 못했다.

① 인도에서 발견된 1400만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된 라마피테쿠스는 몇 개의 치아와 턱 조각들인데, 예일 대학의 데이빗 R. 필빔은 그것이 멸종된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말하였다.

② 동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200-300만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대해서, 영국의 유명한 해부학자 솔리 로드 쥬커만은 그것이 원숭이에 불과하다고 진술하였다.

③ 쟈바에서 발견된 50만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된 쟈바인 혹은 피테칸트로푸스 에렉투스(직립 원인)는 그 뼈들을 발견하고 발표했던 듀보아(E. Dubois) 자신에 의해 긴 팔 원숭이라고 선언되었다.

④ 북경 부근 주구점(Choukoutien)에서 발견된 북경인 혹은 신안트로푸스 페키넨시스는 치아 두 개를 제외한 모든 자료가 분실되어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이다.

⑤ 미국 서부 네브라스카에서 발견된 네브라스카인 혹은 헤스페로피테쿠스 헤롤드쿠키는 치아 한 개에 근거하였는데, 후에 그것은 멸종된 멧돼지로 판명되었다.

⑥ 영국 필트다운 근처에서 발견된 50만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된 필트다운인 혹은 이안트로푸스 도소니는 턱뼈와 두개골의 일부에 근거하였는데, 그것은 후에 완전히 조작된 작품임이 드러났다.

⑦ 독일 뒤셀돌프 부근 네안데르 계곡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혹은 네안데르탈렌시스는 관절염으로 인한 불구와 및 비타민 D 부족으로 인한 곱추병 환자이었거나 미토콘드리아 DNA가 오늘날의 인류와 전혀 다른 것을 보면 인간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한다.

⑧ 독일 마우어에서 발견된 25만년 전의 것으로 주장된 하이델베르그인은, 그러한 턱뼈를 가진 종족이 오늘날에도 뉴 칼레도니아 지방에 있고, 그러한 두개골 형태를 오늘날의 흑인들 중에서 발견할 수 있으므로 유인원이라 볼 수 없음이 판명되었다.

⑨ 프랑스 크로마뇽의 바위 밑에서 발견된 크로마뇽인은 현대인으로 밝혀졌다.

3-5. 열역학의 법칙들에 반대됨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으로 반박되고 있다. 특히 진화의 개념은 물리학의 열역학 제1, 2 법칙에 배치된다고 한다. 열역학(熱力學, thermodynamics)은 다양한 형태들의 에너지와 그 변화에 관한 학문인데, 열역학의 제1 법칙은 보통 '에너지 보존 법칙'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단순한 사물이든지 복잡한 기계이든지 한 조직체 속에 있는 에너지는 창조되거나 파괴될 수 없고, 단지 한 조직체에서 다른 조직체로 이전되거나,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환될 수 있을 뿐이며, 에너지의 총량은 불변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칙에 의하면, 최초의 물질이 신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은 가능하지만, 진화론으로는 최초의 물질의 존재를 결코 설명할 수 없다.

열역학의 제2 법칙은 보통 '에너지 감소 법칙'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은 에너지의 질적 쇠퇴 현상을 말한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은 그 자유 에너지를 가장 낮은 상태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열 에너지는 자연적으로 더 뜨거운 사물로부터 더 차가운 사물로 흐른다. 증기 기관에서의 열 에너지의 일부는 주위의 차가운 사물들에게 이전되므로 연료의 모든 열 에너지가 기계적 에너지로 변환되지 못한다. 이 때 감소된 에너지의 양을 '엔트로피'(entropy)라고 부른다. '엔트로피'는 물체의 내적 무질서의 정도를 나타내기도 한다. 열역학 제2 법칙에 의하면, 우주는 시간이 감에 따라 쓸 수 있는 에너지가 감소되고 '엔트로피'가 증가되고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주는 낡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성경 말씀에 정확히 일치하지만, 진화의 개념에는 정면으로 반대된다.

(한국창조과학회 편,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 참조.)

3-6. 성경에 반대됨

무엇보다도, 진화론은 성경의 진리에 명백히 반대된다.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분명히 증거한다(창 1:1). 또한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식물들, 물고기들, 동물들을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음을 반복하여 증거한다(그런 표현이 10번이나 나옴). 특히 사람의 창조에 관하여,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흙으로 만드셨고 그의 영혼을 직접 창조하셨음을 증거한다(창 2:7). 성경의 이러한 증거에는 진화의 여지가 도무지 있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사람의 몸과 동물의 몸이 질적으로 다름을 말한다. 고린도전서 15:39은 증거하기를,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고 하였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죄의 형벌을 선언하실 때에도, 동물의 상태로 돌아가라고 하시지 않고, 흙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3:19, ". . .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근래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진화의 방법으로 하셨다는 소위 '유신론적 진화론'(有神論的 進化論, Theistic Evolutionism)이라는 사상이 나타났다. 이것은 창조와 진화를 조화시켜 보려는 생각이다. 유신론적 진화론은 흔히 무기물과 유기물 사이에, 또 비이성적 동물들과 이성적 존재 사이에 하나님의 특별한 활동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신론적 진화론은 진화론도, 창조론도 아닌 괴이한 잡종이며, 성경적 교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사상이다.


4. 사람의 구성 요소

사람이 진화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존재라는 사실이 확립되었다면, 이제 사람이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살펴 보자.

역사상, 사람이 몸과 영과 혼의 세 실체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소위 '삼분설'(三分說, trichotomy)이라는 견해가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의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이 이성적 영, 동물적 혼, 그리고 몸의 세 실체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초대 교회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오리겐, 닛사의 그레고리, 다메섹의 요한 등의 교부들이 이러한 견해를 취하였다. 삼분설은 초대 교회의 어떤 이단자들과도 관련이 있었는데, 그노시스주의는 사람의 영이 신적 본질의 일부분이므로 범죄할 수 없다는 비성경적 주장을 하였고, 아폴리내리스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혼만을 가지셨고 신적 로고스가 그의 영을 대신하였다고 잘못 생각하였다.

사람이 몸과 영혼의 두 실체로 구성되었다는 소위 '이분설'(二分說, di- chotomy)은 교회의 전통적 견해이었다. 그것은 초대 교회의 터툴리안과 어거스틴, 중세 교회의 안셈, 종교 개혁 시대의 루터와 칼빈의 견해이었고 그 후 개신 교회들의 절대 다수의 견해가 되었다. 그러면 이분설의 근거는 무엇인지 성경적으로 정리해보자.

4-1. 이분설의 근거

이분설의 근거는 한마디로 영(spirit, 히브리어 루아크, 헬라어 프뉴마)과 혼(soul,?히브리어 네페쉬, 헬라어 프쉬케)이라는 두 말이 성경에서 구별 없이, 교대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따라서 그것들이 한 실체를 나타내는 두 개의 용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있다. 그 구체적인 예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경은 인간[혹은 인성] 전체를 묘사할 때 어떤 때는 몸과 영, 어떤 때는 몸과 혼이라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을 구별하지 않는다.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창조주를) 기억하라." 고린도전서 5:3, 5,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둘째로, 성경은 죽음의 묘사에서, 어떤 때는 영이 떠난다, 어떤 때는 혼이 떠난다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의 구별이 없음을 증거한다. 누가복음 23:46, (예수 그리스도) "아버지여 내 영혼[영]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사도행전 7:59, (스데반) "주 예수여, 내 영혼[영]을 받으시옵소서." 창세기 35:18, (라헬)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셋째로, 성경은 죽은 자의 회생(回生)의 묘사에서도, 어떤 때는 영이 돌아온다, 어떤 때는 혼이 돌아온다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을 구별치 않는다. 누가복음 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열왕기상 17:21, 22,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넷째로, 성경은 죽은 자의 묘사에서도, 어떤 때는 영들, 어떤 때는 혼들이라고 말함으로써 영과 혼의 구별이 없음을 증거한다. 히브리서 12:23,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 요한계시록 6:9, "죽임을 당한 영혼들[혼들, 프쉬카이]." 요한계시록 20:4,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

다섯째로, 흔히 삼분설에 의하면, 영은 보다 고상한 기능을 하는 것이고, 혼은 보다 저급한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동물에게도 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하나님께도 혼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영과 혼을 구별하지 않는다. 전도서 3:21, "인생의 혼[영, 루아크]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영, 루아크]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시편 11:5, "여호와는 (악인을) . . . 마음[혼]에 미워하시는도다." 이사야 1:14, "내 마음[혼]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이사야 42:1, "내 마음[혼]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예레미야 6:8, "예루살렘아 너는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마음[혼]이 너를 싫어하고." 예레미야 9:9, "내 마음[혼]이 이런 나라에 보수하지 않겠느냐?" 아모스 6:8, "주 여호와가 자기를 가리켜[그 혼으로] 맹세하였노라."

또한, 성경은 사람의 종교적 활동들을 영에게만 돌리지 않고 혼에게도 돌림으로써 영과 혼의 기능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신명기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영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누가복음 1:46, 47, "내 영혼[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영]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이와 같이, 성경에서 영과 혼은 구별 없이, 교대적으로 사용된다. 그것들은 별개의 두 실체들이 아니고, 한 실체를 가리키는 두 용어에 불과함이 분명하다.

성경에 삼분설을 보이는 듯한 구절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은 성경의 전체적인, 보다 명확한 빛 아래서 해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전서 5:23,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는 말씀은 인성 전체("온")의 성화를 강조하면서 영과 혼을 반복하여 말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 . .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는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깊은 곳을 꿰뚤어 감찰하심을 강조하면서 영과 혼을 반복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4-2. 영혼의 활동

그러면 영혼의 활동은 무엇인가? 이분설에서 볼 때, 몸은 비생명적, 물질적 실체이며, 영혼과의 결합으로만 생명체로서의 기능들을 할 수 있다. 몸의 죽음은 몸에서 영혼이 떠나가 버리는 것이며, 죽은 몸에서 몸의 특질을 본다. 그러나 영혼의 특질은 생명과 인격성이다. 사실, '영'이라는 말(루아크, 프뉴마)은 또한 '호흡, 생명의 기운'을 의미하며, 또한 '혼'이라는 말(네페쉬, 프쉬케)도 성경에서 빈번히 '생명'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인간의 생명 원리인 영혼은 또한 인간의 인격적 요소를 형성한다.

마음(레브, 카르디아, heart)이란 일반적으로 영혼의 활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의 활동들은 지식, 감정, 의지의 요소들로 요약되며, 그것에 양심이 덧붙여질 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의지의 활동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어떤 이들은 의지가 인식이나 감정과 독립하여 움직인다고 본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의지는 그 자체 외의 어느 것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으며(의지의 자결정성), 따라서 의지의 활동은 매 경우에 우발적이다. 이것을 '비결정론'이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의지가 인식이나 감정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움직인다고 본다. 이 견해에 의하면, 의지는 그 자체 외의 여러 다른 요소들, 예를 들어, 이유, 동기, 권면, 먼저 있은 일들 등에 의해 결정되며, 이와 같이 의지의 활동은 자신의 지식, 감정, 욕망, 경향, 성격 등과 관계된 영혼의 총체적 행위이다(영혼의 자결정성). 이것을 '결정론'이라고 한다. 물론, 영혼은 어떤 외계의 세력에 억압됨이 없이 자발적으로 동작한다는 의미에서 자유롭게 행동하며, 따라서 그 행위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가진다.

양심이란 도덕적 분별력과 선한 경향성이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에 심겨진 하나님의 율법이요 하나님의 음성이다. 그것은 사람의 영혼의 법정이다. 로마서 2:14, 15, "양심 . . .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 그러나 양심은 하나님을 섬기는 선하고 깨끗한 마음이지만 더러워질 수 있고 심지어 완전히 마비될 수도 있다. 사도행전 23:1,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디모데전서 3:9, "깨끗한 양심." 고린도전서 8:7, "양심이 더러워지느니라". 디모데전서 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영혼의 활동 혹은 마음은 몸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지식은 뇌와 감각 기관들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감정도 대개 몸의 감각 기관들과 분리시켜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이라고 할 때, 그것은 몸과 분리된 영혼의 순수한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영육의 결합 상태에서의 영혼의 활동을 의미한다. 특히, 사람이 구원 받은 후에 성화의 불완전은 단순히 중생한 영 자체의 문제가 아니고, 몸과 결합된 영혼 즉 영육의 통일된 인격체의 문제이다.


5. 개인 영혼의 기원

첫사람 아담의 몸과 영혼은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었다. 그러면 그 후의 사람들의 영혼들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가? 각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가에 관하여는 역사상 세 가지 견해들이 있었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명백히 비성경적이고, 나머지 둘에 관하여는 성경적으로 어느 것이 옳은지 확정하기 쉬워 보이지 보인다.

5-1. 선재설(先在說, Pre-existentianism)

첫째로, 개인의 영혼은 세상에 출생하기 전부터 존재했다는 견해가 있다. 이것을 선재설(先在說)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 견해는 보통 각 개인의 영혼이 전세(前世)에서 범죄하였다고 본다. 역사상 플라톤, 필로, 오리겐, 칸트 등이 이런 견해를 가졌다.

그러나 선재설은 성경적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말라기 2:15에 배치된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有餘)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특히, 선재설은 인류의 단일성과 원죄의 교리에 배치된다. 사도행전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로마서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더욱이, 사람은 전세(前世)에 대한 아무런 기억도 갖고 있지 않다. 물론 범죄에 대한 기억도 없다. 이러한 사실들을 생각할 때, 선재설은 명백히 잘못이다.

5-2. 유전설(遺傳說, Traducianism)

둘째로, 개인의 영혼은 부모로부터 출생의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견해가 있다. 이것을 유전설(遺傳說)이라고 한다. 역사상 터툴리안, 어거스틴, 루터, 델리취, 로버트 댑니, 윌리암 쉐드, A. H. 스트롱 등이 이런 견해를 가졌다.

유전설이 제시하는 주요 근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경은 자손들이 조상의 허리에 있다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개인의 영혼이 조상에게서 전달됨을 암시한다고 한다. 창세기 46:26, "이는 다 야곱의 몸[야레크, 넓적다리, 허리]에서 나온 자며." 히브리서 7:9, 10,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이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날 때에 레위는 아직 자기 조상의 허리[오스퓌스, 생식기관의 자리]에 있었음이니라."

둘째로, 성경은 자손들이 죄 중에 출생한다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개인 영혼의 기원과 그것의 죄악성이 부모에게서 나옴을 보인다고 한다. 욥기 14:4,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 있으리이까? 하나도 없나이다." 시편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요한복음 3: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그 외에도, 셋째로, 자녀 출산이 사람에게 맡겨졌다는 점을 든다. 창세기 1:27, 2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넷째로, 성경은 하와의 영혼 창조에 대하여 침묵한다는 점도 든다. 창세기 2: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고린도전서 11:8,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다섯째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창조의 6일 이후 중지되었다는 점도 든다. 창세기 2:2,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 . . 마치니." 여섯째로, 가정의 정신적 특성들이 자손들에게 유전된다는 점도 든다.

그러나 이러한 그럴 듯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유전설이 가지고 있는 어려운 점들도 있다. 첫째로, 유전설에서는 개인 영혼의 전달 방식에 대한 적절한 대답이 가능하여 보이지 않는다. 자녀의 영혼이 부모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는가? 부모가 자녀 영혼의 창조자인가? 아니면, 자녀의 영혼이 부모의 영혼으로부터 물질처럼 분할(分割)되는가? 혹은, 자녀의 영혼이 부모의 영혼 안에 선재(先在)하였는가? 그 어느 대답도 적절하여 보이지 않는다. 부모는 자녀들의 영혼들의 창조자라고 불리울 수 없을 것이다. 또 인간의 영혼들이 물질처럼 분할될 수 있다는 생각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또 자녀들의 영혼들이 부모의 영혼 안에 존재해 있었다는 것도 매우 부자연스럽다.

둘째로, 유전설은 인류가 첫사람 아담 안에 실제로 존재했다고 가정하는데(즉 인류의 공통적 실체를 가정하는 것), 그러한 가정은 불합리해 보인다. 왜냐하면 만일 그러하였다면, 사람이 부모나 자식의 마음을 아는 공통적 의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성경은 각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독립적 인격임을 말하며, 따라서 비록 성경이 원죄에 대해 말할지라도, 선조들의 누적된 죄책(罪責)의 전가(轉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셋째로, 유전설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무죄성(無罪性)을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만일 자녀의 영혼이 부모에게서 유전한다면,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에서 마리아의 원죄의 죄책과 부패성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겠는가?

5-3. 창조설(Creationism)

셋째로, 개인의 영혼이 하나님의 직접적 창조에 의해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것을 창조설(創造說)이라고 한다. 이것은 역사상 고대의 동방 교회의 견해이었고, 서방 교회도 제롬과 힐래리 이후 거의 보편적으로 이 견해를 수납하였다. 중세 교회는 일반적으로 이 견해를 취하였다. 피터 롬바드는 말하기를, "교회는 영혼들이 몸에 들어올 때 창조된다고 가르친다"고 했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성적 영혼이 출생 방식으로 전달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단적이다"고 말했다. 종교 개혁 이후, 칼빈, 베자, 투레틴, 핫지, 박형룡 등 개혁 교회의 신학자들 대다수는 이 견해를 채택하였다.

창조설을 지원하는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민수기 16:22, "모든 육체의 생명[영들]의 하나님이여." 전도서 12:7, "흙[몸]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영]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이사야 42:5,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영]을 주시는 하나님." 스가랴 12:1, "사람 안에 심령[영]을 지으신 자." 히브리서 12:9, "모든 영의 아버지." 예레미야 38:16, (시드기야 왕의 말) "우리에게 이 영혼을 지으신(아사)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이 외에도, 성경은 아담 이후의 각 개인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고 말씀한다. 욥기 31:15,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자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 속에 지으신 자가 하나가 아니시냐?" 욥기 34:19, "왕족을 외모로 취치 아니하시며 부자를 가난한 자보다 더 생각하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들이 다 그의 손으로 지으신 바가 됨이니라." 시편 100:3,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잠언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잠언 22: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사람의 몸뿐인가? 더욱이 사람의 몸의 기원만 하나님의 창조에 돌리고 그의 영혼의 기원을 부모로부터의 출생 방식에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설에도 어려운 점들이 없지 않다. 첫째로, 창조설은 죄의 책임에 대한 문제를 일으킨다. 하나님께서 죄악된 영혼을 창조하실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깨끗한 영혼을 창조하여 즉시 원죄의 죄책과 부패성을 갖는 죄인이 되게 하심으로써 죄악의 간접적 책임자가 되시지는 않겠는가?

둘째로, 창조설은 원죄(原罪)의 진리와 조화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창조된 영혼은 어떻게 원죄의 죄책과 부패성을 가지게 되는가? 특히, 원죄의 부패성은 부모에게서 자녀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가? 그것이 단지 자녀들의 몸에만 전달된다고 볼 수 있겠는가? 만일 그것이 자녀들의 영에도 전달된다면, 언제,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셋째로, 가정의 정신적 유전 문제도, 비록 그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긴 하지만, 창조설에 있어서 어려운 문제의 하나이다.

결론적으로, 개인 영혼의 기원에 관하여 선재설(先在說)은 성경적 근거가 없고 성경 진리들에 배치되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유전설(遺傳說)과 창조설(創造說)은 둘 다 상당한 성경적,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카이퍼나 바빙크 같은 신학자들은 어느 한 쪽의 근거도 결정적이지 못하다고 본다. 우리는 둘 중에서 창조설이 더 성경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녀의 출생 과정에서 하나님의 창조적 권능과 인간 부모의 역활은 신비하게 상호 작용하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개인의 영혼을 창조하시되 부모를 통하여 하신다고 말하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6. 하나님의 형상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몸과 영혼으로 구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 창세기 1:26, 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6-1.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우선, 창세기 1:26의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말은 의미상 차이가 없다고 본다. 성경에서 '형상'(히브리어 첼렘, 헬라어 에이콘)과 '모양'(히브리어 데무트, 헬라어 호모이오시스)은 의미상 차이 없이 사용된다(창 1:27; 5:1; 9:6; 고전 11:7; 골 3:10; 약 3:9).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어떤 물질적 형상이나 모양을 의미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영의 특성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의 특성들을 따라 창조함을 받은 사람의 특성들은 무엇인가?

6-2. 지식과 도덕성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장 중요한 특성은 지식과 도덕성이다. 지식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계를 아는 것을 말하며, 그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여 행동하는 지혜를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땅을 정복하고 땅의 생물들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지식과 지혜가 있음을 증거한다. 과연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이 만드신 들짐승들과 새들의 이름을 지음으로써 그의 지식과 지혜를 잘 나타내 보였다(창 2: 19, 20).

도덕성은 이성적 판단과 의지적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사람이 본래 가졌던 거룩과 의(義)이다. 이것을 흔히 '본래의 의'(原義, original righteousness)라고 부른다. 전도서 7:29은 증거하기를, "나의 깨달은 것이 이것이라. 곧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은 많은 꾀를 낸 것이니라"고 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4:2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을 부여하셨고"라고 진술하였다.

어떤 이들은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도덕적 중립 상태에 있었다고 추측하나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느 기간 동안 지켰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 동안 그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행위이었다. 첫사람은 얼마 동안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다.

이상 두 가지의 요소는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상실되었다. 사람이 다른 생물들에 비해 여전히 지혜롭고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사람이 알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실인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사람에게 참 지식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또 도덕성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사람은 본래의 그 거룩과 의를 다 잃어버렸다. 사람은 지금 심히 죄악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은 이 두 요소의 회복에 촛점이 있다. 골로새서 3:10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말씀했고, 에베소서 4:24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증거했다.

6-3. 그 밖의 요소들

그러면 범죄한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가? 그렇지는 않다. 성경에는, 타락 이후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표현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창세기 9:6에는,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고 말씀했다. 또 고린도전서 11:7은,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 말씀했고, 야고보서 3:9에는, "이것[혀]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라는 말씀도 있다.

타락 이후에도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이 지식과 도덕성뿐 아니라 또한 그 외의 요소들도 포함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시킬 그 외의 요소들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사람이 다른 피조물들과 다른 그 밖의 독특한 점들을 거기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 독특한 점들이란 무엇인가?

그것들은 사람의 영혼의 불멸성, 인격성, 양심 등을 포함할 것이며, 또 사람의 몸도 영혼의 활동 기관 혹은 표현 기관이라는 점에서 거기에 포함될 것이다. 특별히 창세기 9:6에 살인을 하나님의 형상을 해치는 것으로 정죄한 것을 보면, 사람의 몸까지도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함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다는 사실과 사람이 생물들을 다스리는 권한 혹은 의무를 가진다는 사실이 함께 언급되어 있다. 창세기 1:26-28,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 속에 사람에게 주신 생물 통치권도 포함됨을 보이는 것 같다. 우주 통치권은 하나님의 고유적 권한이지만,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 그 권한의 일부를 부여하신 것이라고 볼 때, 생물 통치권도 하나님의 형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

6-4. 여러 가지 다른 견해들

역사상,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견해들이 있다. 천주교회는,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구별하며,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의 영성, 의지의 자유 등 자연적 재능들을 가리키고, 하나님의 모양은 사람의 욕망들을 통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초자연적 은사를 가리킨다고 본다. 그리스 정통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의 이성적 성질뿐이며 도덕성은 제외된다고 본다. 루터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의 본래의 의와 거룩뿐이라고 본다. 펠라기우스주의, 알미니우스주의, 및 합리주의는, 하나님의 형상이 사람의 이성적 성질, 의지의 자유, 및 종교적, 도덕적 성질을 가리킨다고 본다.

6-5. 사람의 본래의 상태

사람의 본래의 상태 즉 타락 전 사람은 성숙한 인격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어린 시절이 없는 성인이었고, 불멸적 영혼을 가진 존재이었다. 그들은 지정의를 조화 있게 조절하는 인격자들이었고 도덕적으로 거룩하고 의로운 상태에 있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충만한 기쁨과 평강을 누렸을 것이다.

또한 타락 전 아담과 하와의 몸은 완전하고 아름답고 건강하였음에 틀림 없다. 그들의 몸에는 허약과 피곤과 질병과 고통이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은 사람의 범죄한 이후 형벌로 내려진 것들이었다. 또 비록 죽음의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몸은 죽지 않을 수 있는 몸이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몸으로 에덴 동산에서 얼마 동안 즐거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건강한 몸으로 생물들을 다스리는 그의 직무를 잘 수행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타락 전 본래의 상태는 최종적으로 완전한 상태는 아니었다. 아담과 하와의 의와 거룩은, 이미 그들이 미칠 수 있는 최상의 상태에 도달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에덴 동산에서 인간의 상태는 예비적 시험 단계이었다. 만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간 동안 그 시험하신 첫명령(창 2:16, 17)에 순종하였다면, 그들은 더 큰 존귀와 영광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즉 그들은 다시는 범죄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영원한 생명을 누렸을 것이다.


7. 행위언약

사람에 관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첫사람 아담에게 한 명령을 주셨다는 것이다. 창세기 2:16, 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피조물들에게는 주시지 않고 오직 사람에게만 주신 독특한 명령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순종, 불순종을 선택할 수 있는 인격적 영을 가진 존재임을 증거한다.

7-1. 첫 명령의 언약성

하나님의 이 첫 명령을 흔히 '행위언약'이라고 부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2은 진술하기를, "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첫번째 언약은 행위언약이었는데, 그 언약에서 아담 자신의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그와 그 안에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고 했다.

이 첫 명령을 '행위언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 첫 명령은 언약의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그 명령에는 언약의 두 당사자, 언약의 조건, 언약의 내용, 벌칙 등의 요소들이 있다. 둘째로, 호세아 6:7은 "저희가 아담처럼(케아담) 언약을 어기고"라고 증거했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 첫 명령을 가리키고 그것이 하나의 언약이었음을 증거한다고 본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을 전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구주 예수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은혜언약은 행위언약의 실패에 근거한 것이다. 넷째로, 로마서 5:15-21의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는 행위언약의 개념을 증거한다. 한 사람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였으므로 그의 범죄는 온 인류의 범죄와 죽음이 되었으나, 한 사람 그리스도께서는 택함 받은 자들을 대표하였으므로 그의 의와 순종의 행위가 모든 택함 받은 자들의 의와 생명이 되었다. 한 사람 아담이 온 인류의 대표의 위치에 있었던 사실이 행위언약을 증거한다.

7-2. 행위언약의 요소들

행위언약의 요소들을 좀더 살펴 본다면, 첫째로, 언약의 당사자는 하나님과 아담이었다. 물론, 하나님의 언약은 일방적 언약, 즉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하신 명령이었다.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의 주권적 조치이었다. 행위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는 삼중적이었다. 첫째, 피조물인 아담은 창조주 하나님께 절대 순종할 위치에 있었다. 이것은 본질적 관계이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본질적 관계 위에 약속의 한 명령을 주심으로써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심으로써만 가능한 관계이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7:1은 적절히 진술하기를, "하나님과 피조물의 차이는 매우 크기 때문에, 비록 이성적 피조물들이 그들의 창조주로서 그에게 마땅히 순종할 의무가 있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언약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하기를 기뻐하신 하나님 편에서의 어떤 자원적인 낮추심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에게서 나온 어떤 성과도 그들의 행복과 상급으로 결코 가질 수 없었다"고 했다. 셋째, 하나님의 언약은 단지 아담 개인과의 언약이 아니고, 인류 전체와의 언약이었다. 아담은 이 언약에서 온 인류를 대표한 언약의 대표자로 서 있었다.

둘째로, 언약의 조건은 순종이었다. 그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순종이어야 했다. 이 원리는 구약의 도덕법에서 다시 강조되었고 신약성경에서도 다시 확증되었다. 신명기 27:26,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또 갈라디아서 3:10와 야고보서 2:10 참조. 이 순종의 명령은 시험의 일정한 기간에 제한되었을 것이다. 만일 그 시험이 일정한 기간에 제한되지 않았다면, 아담은 비록 그 기간 동안에 범죄치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장차 누릴 것과 같은 영생 즉 다시는 죽을 수 없는 영생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시 잃어버릴 수 없는 완전한 생명을 주시기를 의도하였음을 보이며, 그 의도는 일정한 시험 기간을 요구한다.

셋째로, 언약의 내용은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었다. 이것은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벌칙의 경고 속에 암시되어 있다. 즉, 만일 아담이 하나님의 정하신 시험 기간 동안 하나님의 금하신 그 열매를 먹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살았을 것이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이 아담이 본래 소유한 생명과 다른 점은, 그 약속된 생명이 다시 범죄하거나 죽을 수 없는 생명이라는 데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생명은 아담이 이미 소유한 생명보다 더 영광스러운 생명이었다.

넷째로, 언약의 벌칙은 죽음이었다. 그 죽음은, 성경 전체가 증거하는 대로, 영적 죽음(하나님과 분리됨), 육신적 죽음(영혼과 몸의 분리), 영원적 죽음(지옥 형벌, 둘째 사망)을 다 포함한다.

다섯째로, 언약의 표는 생명나무이었다. 동산 중앙에 있었던 생명나무는 약속된 생명을 상징하였다. 생명나무의 열매 자체가 어떤 효능을 가졌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며, 사람이 타락 전에 그 열매를 먹었는지도 단정키 어렵다. 창세기 3:22에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는 말씀은 문자적으로나 혹은 풍자적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7-3. 행위언약의 영속성 문제

그러면 이 행위언약은 오늘날도 유효한가? 행위언약의 영속성의 문제는 이중적으로 관찰된다. 우선, 행위언약은 구원의 방법으로서는 폐지되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는 아무도 없다.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로마서 3:21, 22,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 . .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믿는 자는 이제 은혜 아래 있고, 율법 아래 있지 않다. 로마서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러나 다른 한편, 행위언약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으로서는 영원하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순종의 기본 의무를 보이고, 택함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 심판의 정당성을 증거해 준다.

출처 : 김효성 목사 (Th.M., Ph.D)/
http://cafe.daum.net/

'<<< 조직 신학 >>> > - 인 간 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빈의 인간론  (0) 2020.02.22
인간론/정신섭  (0) 2020.02.22
조직신학 - 인간론(Anthropology)  (0) 2020.02.22
인간론(anthropology)   (0) 2020.02.22
인간론(人間論, Anthropology)  (0) 2020.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