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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흥밋거리 설교와 감동적이고 능력 있는 말씀 /나두산 목사

에반젤(복음) 2020. 2. 9. 16:03



흥밋거리 설교와 감동적이고 능력 있는 말씀

나두산 목사

요즘 목회자들은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성도들의 영혼을 보살피며 기도하는 영적인 추구 보다는 교인들에게 특별한 흥밋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과 함게 한국 교회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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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도시화되어 있고 디지털화 되어 흥미 있는 프로그램들에 대해 교회들 간에 상호 비교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교회도 소위 성공하기 위해 특성화를 도입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마다 알파코스, G 12, 신사도 운동, 다락방 운동, 영성 운동, 관상 기도 운
동, 셀 처치, 가정 교회, 십자가의 길 등 각종 인스턴트식 교회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등장
하고 있다.
결국 영성보다는 흥미 있는 교회로 몰려드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 일어나면서 교회들이 신학을 상실하고 교단의 정체성이 무너지면서 재미를 찾는 시대가 되었다.

참된 교회의 조건은 ① 하나님 말씀이 얼마나 올바르게 증거되는가, ② 성례가
바르게 시행되고 있는가, ③ 권징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참된 교회의 조건대로 한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는 그렇게 재미나 흥미를 추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설교자들은 유머 책을 찾으러 서점가를 돌고 유머가 있는 사이트를 방문하면서 재미있는 설교를 하고자 애쓰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인지 요즘은 설교가 재미있을 때 ‘은혜로운 설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기독교 유선 방송 채널에 등장하는 이름 있는 사람들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교인들에게 감흥을 일으키고 웃기기도 하고 울리려고 애쓰는 것 같다. 그것을 위해 성경 말씀에 조화되지않은 예화들을 무분별하게 사용하며 교인들을 자기의 언변 속으로 이끌어 들이려고 한다.
저급한 코미디 같은 강사들이나 설교자들이유명세를 타는 세대가 되고 있다.

로이드 존스는 설교를 준비하거나 강단에 설때 세 가지 원리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첫째, 설교는 반드시 신학적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잘 파악하고 조직신학에 대한 지식을 갖추라고 권한다.

둘째, 설교문은 반드시 강해적이어야 한다. "강해설교"란 한 구절 또는 몇 구절에 대한 강해가 아니며, 그에 대한 연속적인 주해도 아니고, 단지 본문 에 대한 탁월한 설명을 모은 것도 아니다. 그는 설교문은 마치 교향곡과 같이 특정한 형태를 가져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셋째, 설교는 성령의 통제 아래서 행해져야 한다. 그는 이것을 설교의 전달 행위를 지배하는 핵심원리로 파악했다. 탁월한 복음주의자인 로이드 존스는 학문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대중적 강해설교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베드로후서 강해설교"를 시작으로 성경의 한 책에 대한 연속 설교를 본격적으로 시작, 21년 동안 줄곧 연속 설교를 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은 "산상수훈 강해설교"와 5년에 걸쳐 끝마친 "에베소서 강해설교", 그리고 장장 12년이나 걸린 "로마서 강해설교"이다

설교라는 것은 말 잘하는 설교자의 언변을 듣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할 때 오히려 경건해지고 엄숙해지며 하나님을 더욱 경 하게 되는 것이다.


바르게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교회가 흥밋거리나 재미나 제공하는 것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수종 들어 하나님이 예정하여 구원하여 사용하려하는 성도들에게 영적인 양식을 먹이는 목사가 흥밋거리로 설교를 대처하거나 단편적인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에게 가르치면서 그것이 전부인 냥 선전하는 것을 보면 슬픔 마음이 더 든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엄숙하게 예배드려야 한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은 사람들의 자기 만족을 위한 시간이 아니 다. 혹 신앙이 없거나 어린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예배 시간은 재미없는 시간일 수 있다. 그러나 예배 시간을 통해 점차 말씀을 익혀가며 그렇게 함으로써 신앙이 자라가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만들어야 한다.

설교자의 가장 추한 죄악은 성령의 방식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전해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가게 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교묘한 육적인 편법을 동원해 사람들을 끌어 자신이 유명해지고 영광과 찬사를 받으려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영혼 구원을 위한다는 명분을 철저히 내세우면서도 자기 영광을 은밀히 추구하는 것이 설교자가 가장 빠지기 쉽고 극복하기 힘든 죄악이다.

지금 한국교회의 강단에 나타나고 있는 ‘웃기는 설교’의 붐은 교회 역사 속에 그 전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아주 변칙적인 설교의 행태이다. 이렇게 강단의 메시지가 말씀의 깊이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가벼운 담소거리로 전락해 버린 적이 없었다.

설교자의 황제라고 불리는 스펄젼은 설교자가 말재간과 유창함을 의존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저주스러운 일이며, 영원한 형벌을 받을만한 중대한 범죄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이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하였다.
우리 강단에 참으로 감동적이고 능력 있는 말씀이 회복되어야 한다. 은혜도 없고 지루하기만 하여 교인들의 인내 연습을 시키는 설교보다는 차라리 재미라도 있는 설교가 낫다고 보는 교인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다.
그들에게 참된 설교의 진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유머와 예화를 남발하여가며 구태여 웃기려 하지 않더라도 십자가의 도와 하나님 나라의 보화와 권세를 온전히 밝혀주는 말씀을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서 전하면, 회중에 큰 감동과 기쁨이 임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르게 선포될 때 그와 같은 저질 코미디와 같은 유형의
재미는 기대할 수 없다.
참된 기쁨의 세계로 들아 가는 관문은 회개의 눈물이다. ‘너희 웃음을 울음으로 바꾸라’는 야고보의 말씀은 특별히 이 시대에 절실한 메시지이다. 공허한 웃음을 회개의 울음으로 바꿀 때, 우리는 진정으로 웃게 되며 말할 수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영원히 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