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예레미야 강해

레갑의 교훈과 가진자의 의무

에반젤(복음) 2019. 12. 28. 11:12


          

레갑의 교훈과 가진자의 의무

 

렘 35장

1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4.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의 자손에게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 한 그 명령은 실행되도다 그들은 그 선조의 명령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마시지 아니하거늘 내가 너희에게 말하고 끊임없이 말하여도 너희는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15. 내가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따라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살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6.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17.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내가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내리리니 이는 내가 그들에게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며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18. ○예레미야가 레갑 사람의 가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그의 모든 규율을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행하였도다

19.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레갑 자손들에게 시험하다.

 

 유다 마지막 왕 여호와김 때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레갑의 자손들에게 가서 포도주로 시험하라고 하셨다. 레갑은 겐 족속으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갑은 예후가 아합과 이세벨의 사마리아에 만연해 있던 바알숭배 사상을 파멸하는 것을 도와 주었다(왕하 10:15). 레갑의 아들 요나답이 그 자손에게 명하기를 포도원을 두지 말고 포도주도 마시지 말며, 평생 장막에 살라고 유언을 하였다. 이 명령을 영원히 지키라고 명한 것을 충실히 순종하였다고 한다. 예레미야가 그 자손들에게 가서 술잔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마시라 하였으나 그들은 마시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들의 절제의 삶의 방식을 칭찬하셨다. 레갑의 자손들은 그들의 조상이 명한 것도 철저히 지켰는데 정작 이스라엘 족속들은 하나님의 명을 거스리고 지킬 수 없는지 지킬려고 애를 쓰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아예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조차 없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 왔다.


 유다가 멸망하기전 유다 왕국의 백성들을 대체로 부를 누렸다고 한다.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하였고 유다는 이스라엘 보다 100년뒤 여호와김 왕이 집권 할때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하였다. 멸망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께서 레갑의 자손들의 교훈으로 회개를 촉구하고 절제의 삶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셨다.  오늘날 풍요를 누리는  교회도  신중히 들어야 할 것이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 이었다. 레갑은 예후를 도와 쿠데타를 일으켜 아합의 왕실을 멸하고 새로운 왕권을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는데 기여한 일등 공신이었다. 그의 가문은 공신의 대열에 선 명문 집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답은 아버지의 공로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철저히 절제된 삶으로 검소하고 정직한 가문이 되기를 원했다. 요나답은 자손들이 영구히 자손 대대 살 수 있는 길은 검소하고 욕심없이 사는 것으로 가늘지만 길게 살라고 명한 것이다.

 

아마도 한국인의 사고방식으로서는 전혀 현실적인 감각을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 될 것이다.  바보같이 왜 저렇게 살까? -- 일등 공신의 후예답게 국가에서 주는 토지만 받아도 한 성을 차지하고 종을 부리면서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저들이 떠돌이처럼 장막에 밭 한 뙤기 없이 또 남들이 다 마시는 포도주 한잔 마시지 않고 사는 사람들 보면서 미련하다고 생각 할 것이다. 아마도 술을 마시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신자들이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이 든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지만 세상의 바보가 되는 것이 신자의  지혜일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육신의 약한 것이 강한 것이 되는 것을 믿는 다면--오늘날 십자가의 도의 삶을 사는 자는 레갑의 교훈을 따르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무소유와 절제의 삶을 실천한  바울의 처신에 대한 말씀이다.

 

빌립보4장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은 십자가의 도를 삶 속에 실천한 그리스도의 율법에 완전한 자로 평가하고 싶다. 그는 풍부함에도 넘치지 아니하고 부족하고 궁핍함에도 만족을 누리는 능력을 주님으로 받아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지금의 한국은 돈만 있으면 땅을 사고 집을 사서 값을 올리고 다닌다. 한국은 세계 제일의 비싼 나라라고 하였다. 한국의 부동산 가격을 합산하면 미국을 다 사고도 남는다고 하니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인간의 탐욕으로  부의 우상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이 세상의 불신자들만의  일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이 점에 대하여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다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유대 왕국 당시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것에 대하여  경계하시고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셔도 유대인 들은 듣지 않았다.  오늘날 교회도   믿을 지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교회의 우상은 영적인 우상으로 종교의 영이(음녀)  섬김을 받는 곳이  있다.  레갑의 교훈은 성경 속에나 나오는  전설적인 이야기로 들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허공에 향해  말하는 것 같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은 진정한 삶의 생존 방식을 잘 알았다. 그리고 나라 주변의 이방 족들의 습성도 알고 있어 사람이 부해지고 땅과 집을 소유하고 있으면 위기의 상황이 닥칠때 재물에 미련 때문에 자리를 떠나지 못하므로 재난을 당할 수 있다는 것과 (부자가 되면 마음이 달라지는 것도 문제이다) 포도주는 사람을 망치는 것이다. 술을 즐겨 마시는 사람은 뇌의 손상과 함께 육체가 쇠약해진다. 또 그 자손은 부모의 유전 인자로 또 술을 즐기게 되고 이성적 판단력이 떨어져 실수를 반복하고 추한 삶을 살게 된다.  자손이 우매한 길로 파탄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술을 먹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교훈으로 우리에게 보여준 대사건이 있었다. 세계 2차 대전이 일어 나기전 세계 곳곳에 살던 유대 민족들에게 하나님께서 부르심이 있었다. 이스라엘 나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나 유럽의 유대 지도자들은 시오니즘 운동을 벌렸다. 그중에 별로 미련을 둘 것이 없는 사람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왔다. 그러나 많은 재산과 지위와 세상에 깊게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은  떠나지 못하고 유럽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히틀러에 의해 모두 죽음의 장소로 가야만 했다. 하나님은 절대 예고 없는 심판을 하시지 않는다. 반드시 피할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선택은 자신이 책임지는 것이다. 성경과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듣게 하신다. 그러나 마음은 세상에 묶여 있어 내일로 내일로 미루는 것이다.

 

또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평안과 안전을 믿고 있는 것이다. 레갑 자손은 후일 바벨론의 침공이 있을 때 미련 없이 정리하여 예루살렘 성안으로 피신을 하였다고 한다. 지금 여러분들에게 말하건데 지금이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은 스스로 결단을 내릴 때이다. 세상에서는  피난처가 없으므로 이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갈 때이다.


지금은  하나님의 경고를 들어야 할 때이다!!

세상의 것에 마음이 묶여 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세상은 모든 것이 유한한 잠깐의 시간 속에 존재할 뿐이라고 영원한 것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지금에 준비하지 않으면 늦고 말 것이다. 밭에 감추인 보물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재물을 다 팔아 밭을 산 지혜로운 농부 같이 하나님의 나라의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할 때이다. 노아의 시대 비가 오지 않는 때에 배를 만드는 노아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었다. 노아는 100년 동안 자신의  모든 것을 방주를 짓기 위해 투자하였다. 자신과  가족들을 살리기 위한 다면  진정 이 시대에 우리가 사는 길이 무었인가  알고 준비해야 한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의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노아의 방주와 같이 모든 환란에서 우리를 건져 보호해 주실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을 부인하고 그 분을 따라 갈려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 분이 원하시는 데로 성령이 인도를 받아야 한다.


가진자의 의무

 

딤전 6장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용어가 있다. 이 용어의 의미를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프랑스어로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전 당시의 귀족들의 사치와 방탕은 도를 넘었다. 그들은 날마다 파티에 나아가 먹고 마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굶주리고 병에 시달리고 수도 파리는 거리에 배설물이 넘치고 악취가 나서 향수가 발달하였다고 한다. 혁명이 일어난 후 귀족 삼천명이 단두대로 사라졌다. 그 후에  이 용어는 귀족이 누리는 대가에 대한 책임이 땨른다는 말로 생겨났다.  귀족으로 정당하게 대접받기 위해서는 '명예(노블리스)' 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해야 한다는 사회의 유력자들의 교훈이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로 사회로부터 정당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리는 명예(노블리스)만큼 의무(오블리제)를 다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교회 안에서도 있는자의 의무는 반드시 따른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성경에서 나타내고 있다 “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 바울은 선을 행하는 것과 선한 사업을 하고 어려운자와 연약한 형제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 유력한 자들이 자신이 가진 재물을 말씀대로 사용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하였다. 교회에 부한 자들이 직임은 월등한 것을 받아 헌금은 많이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족한 형제들을 위해 얼마나 쓰고 있는지 부정적이다. 목회자들의 승용차는 외제차로 수억대의 차로 바꿔 주면서 정작 어려운 형제를 돕지 않는 것은 다 헛된 것이다.

 

그러나 착한 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 부자가 구원 받기가 어려운 것은 부자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도  군림하는 자세로 있어 마음이 교만해 지고  자신이 하나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에  주님께  믿음으로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자가 구원의 빙거를 만들려면  남의 고통을 자신이 함께 지려는 마음을 가지고 실천해야한다.  즉 사랑의 마음이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면  어려운 때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급이 있다. 구원의 근거가 믿음이지만 믿음으로 주를 위해 자신의 것을  주를 위해 사용하는 행함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을 얻는 축복이 있을 것이다.  부자의 의무에 대한 이행이 없다면  오히려 많이 가진자에 대한 벌이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많이 가진자에게는  주님이 많이 요구하신다고 하셨다. . 한국의 교회는 이제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라  말씀을 따라 행하지 많으면 그 말씀이 당신을 정죄 할 것이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 짐이 그리 멀지 않았다. 평안의 시대에 방주를  예비하지 않으면 때는 늦고 말것이다.

 

* 사도행전에서 나타난 사랑을 실천한 자가 받는 은혜

 

예1) 욥바의 도르가 여제자의 선행으로 예수님의 은혜를 받음

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9:40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예2) 의로운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구원

행10: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사도행전에  나오는 선행으로 사랑을  실천한 두 사람은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 다비다는 죽었으나  살림을 받았다.  고넬료는 이방인 이었지만 이방인 으로서 최초의 구원을 받은 사람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  교훈을 받아야 한다. 부자 교인이 헌금 많이 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안다면 성경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결코 사람에게 빚을 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율법에서도 자신의  예물에 대해서는  제사장이 축복하여 주어 그 복을 이미  현세에서 다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행하는 선행은 주님이 주시는 약속이 있다.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선행과  인간의 의로운 것 만으로는 구원의 빙거가 되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자의 믿음으로  선을 베푸는 자는 예수님이 사랑하신다. 나는 교회에 다니는 형제나 자매들이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악한 행동과 말로 주위의 사람들에게 해를 주는 사람들과  양심을 속이는 자들에게 주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신자들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성경이 기록한 대로 되므로 새삼스럽게 말 할 필요가 없다. 

 야고보5장

1.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2.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4.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