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베소서 강해

[스크랩] 바울이 보여준 기도의 본질과 모범 I >박동근목사

에반젤(복음) 2019. 12. 11. 16:12



            

바울이 보여준 기도의 본질과 모범 I >
에베소서 3:14-21

1. 기도란 무엇인가?

“이러므로”(14)

칼빈은 “기도를 믿음의 최상의 표현이며 우리는 이것을 통해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다”고 가르칩니다(Inst. 3. 20). 사람들이 보통 기도할 때, 자신의 염려나 염원하는 바를 중심으로 기도합니다. 즉,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를 가지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기도에는 그 사람의 신앙 관심사가 나타납니다.

관심사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기도에 있어서도 역시 관심사가 중요합니다. 기도를 넘어서 우리가 24시간을 살아가며, 무엇을 토대하여 무슨 목적으로 살아가느냐가 그의 관심사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 관심사라는 것이, 곧 그의 생에서 필요와 목마름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의 염려도 그의 관심사에 따라 나타납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의 제자도를 듣고 난 후, 돈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해 근심하며 떠나간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부자는 자신의 풍성한 소출 둘 곳을 염려하였습니다(눅 12:16-20).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에 열심을 내며 각자의 관심사를 기도에 풀어 내놓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기도 속에서 어떤 관심사가 드러나는지 관심이 많으십니다.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는 바른 관심사에 토대된 기도입니다.

참된 기도를 드리기 위해 우리는 칼빈이 내린 기도의 정의를 다시 상기해 보는 일이 중요해 봅니다. 칼빈은 기도를 믿음의 최상의 표현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외적 표현 중에 중요한 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믿음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생명은 그 대상에게 있습니다. 구원받는 믿음과 역사하는 믿음은 분명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하나님을 그 대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할 수 있는 믿음의 대상은 믿음의 대상되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입니다. 믿음은 하나님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바라보는 믿음이기도 합니다.

즉, 믿음은 하나님과 언약 안에 있는 약속을 알고, 확신하고, 신뢰하는 마음과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믿음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 언약의 약속을 기록한 성경을 바라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최상의 표현이 기도라면, 기도 역시 하나님과 그의 약속을 염원하며 바라봅니다. 믿음의 시행될 때, 우리는 기도합니다. 기도는 특히 하나님 안에 거하고, 그분의 약속을 받아 누리기 위한 믿음의 시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얻기 위해 믿음이 작용할 때 성도에게 나타나는 행위입니다.

칼빈에 따르면, 하늘 아버지 곁에 우리를 위해 저장되어 있는 보물에 우리의 손이 닿으려면 기도의 힘을 빌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교통이 있으며 또 하나님께서는 말씀만으로 약속하셨지만, 우리는 그것을 믿었고, 필요한 때에는 그 약속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기 위하여 우리는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서 직접 하나님께 호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대해도 좋다고 약속하신 것은 또한 기도를 통해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셨다. 주의 복음이 우리에게 가리켜 주었고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본 보화를 기도로 파낸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Inst. III. 20. 2.).

그러므로 기도자의 최대의 관심사는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교훈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의 제목들이 앞에 놓이고 우리의 필요가 뒷부분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구원과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공급받아야 할 하늘에 속한 양식과 능력들이 되어야 합니다.

칼빈이 가르친 기도의 정의와 원리를 보면, 바울의 근원에서 자신의 사상을 끌어온 듯 합니다.

바울은 3:1-13까지 예수님의 피로 세우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된 새로운 공동체를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계시와 소명이 이 교회를 위한 것임을 고백하였습니다. 바울은 만세 전에 계획된 하나님의 비밀, 구속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설립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약속을 에베소 교회에 소개하였습니다. 이것이 은혜 언약 안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그들이 바라볼 약속을 제시하고, 이제 기도합니다. 바울의 교훈과 바울의 기도는 철저히 일치합니다. 바울은 약속을 전했고, 약속의 실현을 위해 기도합니다. 바울의 기도에서 최대의 관심사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는 약속을 믿었고, 그 믿는 약속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에 모아져야 할 것입니다. 이 땅의 것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이 땅의 것들도 역시 하나님의 약속 속에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도 약속의 길을 걸을 때 존재 가치를 갖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나라와 그 의,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 기도할 때, 그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땅의 것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기도의 관심사가 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속의 약속 성취와 진보가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사랑하십니다.

오늘 바울의 기도는 약속에 근거한 기도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전한 뒤, 전한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과 기도는 언제나 함께 해야 합니다. 말씀 속에 깨달은 것들이 곧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에서 인식되고 확신된 약속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에 대한 무지, 말씀에 대한 무관심,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있는 곳에 참된 기도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때문에 성경 읽기와 기도가 언제나 결합되어야 한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나타내시며, 기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그렇게 해 달라고 구하기 때문이다.”

외적 형식이야 어떻든, 진리를 거역한 바리새인의 기도를 예수님께서는 정죄하셨고, 경계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를 배척하신 이유는 그들이 약속을 붙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복음의 약속과 아무 상관없는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의 그림자가 가리키던 실체,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배척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회심 이전에 이러한 잘못된 열정 속에 기도하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기 전에, 성경을 묵상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를 정립하고, 깨달은 진리에 순종하며 사는 삶의 연장선상에 기도가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약속이 지향되지 않는 곳에 믿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약속과 무관한 것은 어떤 모양새를 취할 지라도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고 약속과 무관한 것이 믿음이 아니듯, 믿음과 약속이 지향되지 않은 기도도 은혜 안에 있는 기도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는 앞 구절들과 본문의 기도가 인과관계를 가짐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즉, 앞의 구절들에서 소개한 바가 하나님의 약속이 분명하기에, 그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약속을 소개하고, 이제 그 약속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