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느헤미야 강해

[스크랩] 구속사의 관점에서 본 느헤미야서 파노라마

에반젤(복음) 2019. 11. 27. 18:59



    

                                        느헤미야 파노라마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은 3차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제1차는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이루어졌으며 이들에 의해서 제2의 성전은 재건되었습니다

제2차는 약 80년 후에 에스라의 지도하에 귀환하였고

제3차는 그로부터 13년 후에 느헤미야의 인도하에 이루어져 그들이 성벽을 재축성합니다

학사 에스라는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에 다 등장하는데 연대를 감안할 때 느헤미야와 동역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7장까지는 느헤미야가 주도한 성벽의 복원 역사이고

8-13장까지는 에스라가 주도한 언약갱신과 부흥운동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성벽은 그 성읍의 존립을 좌우하는 방파제 역할을 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외침을 막고 대내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로써의 결속을 촉진시켜 주었던 것입니다.

느혜미야는 독려합니다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읍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2:17)라고 합니다.

성경 66권 중에서 느헤미야서 만큼 역동적이고 박진감이 넘치는 그런 책은 달리 없습니다.

느헤미야서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도전하게 만듭니다.

느헤미야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내외적인 방해와 반대를 무릅쓰고 악전고투 끝에 52일이라는

최단시일 내에 성벽 복원을 완성합니다.


여기서도 에스라서에서 역사하시던 여호와의 “선한 손은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 나를 도우셨다고 느헤미야는 증거합니다(2:8,18)

적들까지도......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느6:16)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벽을 쌓는 일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 대목을 상고하노라면 신약 성경 에베소서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를

“교회론”이라고 말하고 있듯이 1장에서는 교회 건축에 필요한 재목들이 선택됩니다.

창세 전에 택하시고 택하신 자들을 그리스도께서 값을 주고 사시고 성령은 소유의 인을 치십니다

2장에서 그 재목들은

서로 연결하며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지어져 갑니다(2:21)

3장에서봉헌식에 해당되는 기도가 올려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건축(교회)을 마치고

6장에서는종말로....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6:10-11)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마지막으로 성벽을 쌓는 일에 해당된다 하겠습니다.

만일 성벽 역할을 하는 이러한 영적 경계가 없다면 교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믿음의 방패와 성경의 검을 가지라고 명합니다.

느헤미야서 4장에 보면

“그 때로부터 내 종자의 절반은 역사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다 각각 한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4:16-17)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라서에서는 성전이 중건되고 느헤미야서에서는 성벽이 복원되는 것으로

구약의 역사가 끝맺고 있음은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대외적으로는 외침을 막고 대내적으로는 선민으로써의 거룩을 지키면서

오실 메시아를 대망해야만 했고

신약의 성도들은

외적으로는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면서 내적으로는 서로 사랑하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벽의 효용성을 깊이 생각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내적으로 거룩과 성결이 유지되는 한에서만 필요한 것입니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적보다는 내적으로 부패시키는 누룩을 더욱 경계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벽이 완성된 후에 제사장 에스라를 중심으로 전개한 회개운동과 언약갱신은 크나큰 의미가 있습니다.

8장에서부터는 육적인 재건에서 영적인 재건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새벽부터 정오까지”율법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8:3)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고(8:7),

“해석하며”(8:8)주었습니다.

이 날에 낮 사분지 일은 그 처소에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지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9:3)하였다고 말씀합니다.


9장에는 에스라가 대표로 드렸을 기도가 나오는데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9:36)하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기까지의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인간은 얼마나 성실하지 못했는가를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9:38)하고 그의 기도는 결단과 헌신으로 끝나고 있습니다.

견고한 언약”을 세웠다고 말씀합니다

영적 성벽을 견고히 쌓은 것입니다.

그리고 인친 사람들의 명단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서의 마지막 장은 그들이 쌓은 성벽이 다시 허물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바사로 돌아갔다가

10여년 만에 재차 귀환해 보니 그들은 굳게 세운 언약을 지키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하신 것이 이때입니다.

그들이 파기한 언약(13:29,말2:8)

①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였고(13:15-22)

②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였고(13:10,말3:8)

③ 이방 여인과 통혼하였고(13:23,말2:11)

④ 제사장직분을 더럽힘으로(13:29,말1:6) 예배를 경멸히 여기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죄 등이었습니다.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던 성벽은 다시 무너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서는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13:31)하고 마칩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신의 개혁의 수고가 헛된대로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는 탄원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겔22:30)했다고 말씀합니다.


느헤미야 뿐만이 아니라 인간 누구도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기에는 역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자기 팔로 스스로구원을 베풀며”(사59:16)하고 하나님이 친히 나서신 것입니다.

이때에 세움받은 말라기 선지자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말4:2)하고 우리의 시선을 느헤미야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옮기게 해 줍니다

그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사26:1)

예수 그리스도만이 성이 무너진 데를 막아설 중보자가 되십니다.


형제여!

이 종말론적인 시대에 유일한 소망으로 남아 있고 최후의 보루인

 교회의 성벽이 붕괴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당신의 마음을 지켜 줄 성벽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가정은 안전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