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무엘하 강해

[스크랩]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삼하 18:24~33)

에반젤(복음) 2019. 11. 23. 17:37



    

* 오늘의 말씀 :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사무엘하 18:24~33)

 

* 본문요약

 

  다윗은 마하나임의 두 성문(성의 안쪽 문과 바깥쪽 문) 사이에 앉아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파수꾼이 사람이 온다고 말하니 그는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일 것이라고 말했고, 그가 아히마아스라고 말하자 그는 좋은 사람이니 틀림없이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히마아스는 승전 소식만 알리고 압살롬의 안부는 모른다고 둘러댑니다. 이어 구스 사람이 와서 압살롬의 죽음을 알립니다. 그 소식을 듣고 다윗은 마음이 아파 성문 위 다락방에 올라가 큰 소리로 울부짖습니다.

 

찬 양 : 193(259)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194(260)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 본문해설

 

1. 압살롬의 소식을 기다리는 다윗(24~27)

 

24) 그때 다윗은 두 성문(성의 안쪽 문과 바깥쪽 문) 사이에 앉아 있었는데, 파수꾼이 성문의

지붕 위로 올라가서 눈을 들러 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25) 파수꾼이 큰 소리로 이 사실을 왕께 알리니, 왕은 그가 혼자 오는 것이라면 그 입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점점 더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26) 파수꾼이 보니 또 한 사람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파수꾼이 큰 소리로 문지기에게

또 한 사람이 달려온다하고 외치니, “그도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하고 말했습니다.

27) 파수꾼이 다시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 달리는 품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

같으니이다.” 그러자 왕은 그는 좋은 사람이니 틀림없이 좋은 소식을 가져왔을 것이다.”하고 말했습니다.

 

 

2. 압살롬의 소식을 묻는 다윗(28~30)

 

28) 아히마아스가 앞에 가까이 이르러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한 , 소리로 왕께 말했습니다.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 찬양을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왕을 대적하는 모든 자들을 물리치셨나이다.”

29) 왕이 소년 압살롬은 잘 있느냐?”하고 물으니, 아히마아스가 대답했습니다.

요압이 왕의 종인 저를 보낼 때 큰 소동이 있는 것을 보았사오나, 그 일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나이다.”

30) 왕이 이쪽으로 물러나서 곁에 서 있으라.” 하고 말하니,

그는 곁으로 한 발 물러나 서 있었습니다.

 

 

3.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31~33)

 

31) 바로 그 때 구스(에디오피아) 사람이 들어와서 왕께 아뢰었습니다. “내 주 왕께 아뢸

좋은 소식이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대적하던 모든 원수를 갚으셨나이다.”

32) 왕이 구스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소년 압살롬은 잘 있느냐?” 구스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내 주 왕의 원수들과 왕을 대적하는 자들은 누구든지 다 그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33) 이 말을 듣고 왕의 마음이 찢어질듯 아파서 성문 위의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울었습니다.

그는 올라갈 때에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하고 울부짖었습니다.

 

 

* 묵상 point

 

1. 압살롬의 소식을 기다리는 다윗

 

1) 두 성문 사이에서 앉아 기다리는 다윗

 

  다윗은 마하나임의 두 성문(성의 안쪽 문과 바깥쪽 문) 사이에 앉아서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곳은 성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지나는 곳으로 왕이 앉아 있을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나 도무지 초조해서 그의 거처에서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령이 오면 제일 먼저 도착할 성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저 멀리서 사람이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고 하자, “혼자 오는 것이면 아마도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것이겠지하고 말하고, 그 다음에 또 한 사람이 달려온다고 하자 그도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사람일 거야하고 말합니다. 그러다 앞에 오는 사람이 사독의 아들 아히마아스라고 하자 그는 좋은 사람이니 틀림없이 좋은 소식을 가져왔을 것이다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좋은 소식이 오기를 얼마나 갈망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아히마아스와 구스 사람에게 압살롬의 안부부터 묻는 다윗

 

  이윽고 아히마아스가 다윗에게 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먼저 소년 압살롬은 잘 있느냐?”하고 묻습니다. 아히마아스가 승전에 대한 소식만 전하고 압살롬에 대한 말은 적당히 얼버무리자 바로 곁에 서 있으라고 하고는, 곧 도착한 구스 사람에게도 소년 압살롬은 잘 있느냐?” 하고 묻습니다. 다윗은 승전에 대한 소식이 하나도 즐겁지 않습니다. 그저 압살롬이 잘 있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묵상 : 우리를 기다리는 주님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15:20).

 

  자기를 죽이려 했던 못된 자신 압살롬이지만 아버지 다윗은 그가 살아있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압살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자기는 시골에서 조용히 살걸 그랬다고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또 중얼거립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봅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유산을 받아가지고 갔다가 허랑방탕하여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반겨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특히 눅 15:20에는 아버지가 혹시 내 아들이 오나 보려고 항상 저 먼 곳을 응시하며 지내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압살롬의 소식을 기다리는 다윗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모습이 우리를 기다리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빠져 신령한 영의 생명을 잃었을 때나, 영이 병들었을 때 우리가 바른 믿음의 길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이 모습입니다.

 

 

2.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1) 그 소식을 듣고 성문 위 다락방에 오르며 울부짖는 다윗

 

  구스 사람으로부터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다윗은 곧바로 그 성문 위에 있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면서 울부짖습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조용히 슬픔을 안으로 삭이며 우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절규하며 우는 것입니다.

 

2) 전에 죽은 아이(삼하 12:19~23)보다 슬퍼하는 이유

 

  다윗의 아들이 죽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난 갓난아이도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아이가 죽어갈 때에는 슬퍼 울다가, 막상 죽자 더 이상 울지 않았습니다. 목욕을 하고 머리에 기름까지 바른 후에 음식을 차려오게 하여 먹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압살롬에 대한 소식을 기다릴 때에는 울지 않고 초조해하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절규합니다.

 

  그 이유는 전에 아이는 비록 죽었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죽었기에 슬퍼할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삼하 12:23에서 다윗은 자신이 그 아이 있는 곳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 아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죽었고, 그러므로 장차 자기가 가는 그 나라에 그 아이가 먼저 갔다는 확신이 있으므로 슬퍼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압살롬은 장차 다윗이 가는 곳이 간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지 못한 저주의 자식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차라리 내가 죽었다면 압살롬이 회개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텐데하며 슬퍼하는 것입니다.

 

묵상 :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다윗은 차라리 자기가 죽고 아들 압살롬이 살았어야 했다고 울부짖었지만, 다윗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 자신도 죄를 지은 자이므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죽는다면 자기 죄 때문에 죽는 것이지 압살롬을 대신하여 죽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저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하며 슬퍼할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윗이 하지 못한 바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 중에 유일하게 죄 없는 참 인간이셨으므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죄 없는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 모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었어야 했다하는 그 간절한 사랑을 실제로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 받으셨습니다.

 

 

* 기도제목

 

1. 우리의 믿음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2.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3. 주님의 그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