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이스라엘의 승리(열왕기상 20:13~34)
* 본문요약
한 선지자가 아합에게 여호와께서 아람의 큰 군대를 아합의 손에 넘겨 그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리라고 전합니다. 아합은 그 선지자가 일러주는 대로 지방 장관들의 젊은 장교 232명과 7,000명의 군사들만으로 싸워 아람 군대를 크게 이깁니다. 이듬해 봄이 되자 벤하닷이 다시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다시 아합에게 와서 이번에도 아람의 큰 군대를 넘겨 그가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실 것이라고 전합니다. 아람이 패하자 벤하닷의 신하들은 베를 허리에 동이고 밧줄을 머리에 두르고는 벤하닷의 생명을 구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아합인 아람과 조약을 맺고 벤하닷을 풀어줍니다.
찬 양 : 216장 (새 424) 아버지여 나의 맘을
509장 (새 456) 거친 세상에서 실패하거든
* 본문해설
1. 벤하닷과 아합과의 1차 전쟁과 아합의 승리(13~21절)
13) 그때에 한 선지자가 (북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나아가서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줄 것이니, 이로써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4) 아합이 물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그렇게 하시리이까?”
선지자가 대답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각 지방 장관들의 청년들(젊은 장교들)을 통해서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합이 물었습니다. “누가 싸움을 시작하리이까?” 선지자가 대답했습니다. “왕이니이다!”
15) 그리하여 아합이 지방 장관들의 청년들(젊은 장교들)을 소집했더니 모드 232명이었습
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모아 보았더니 모두 7,000명이었습니다.
16) 정오가 되자 아합의 군대가 공격하라 나갔습니다. 그때 벤하닷은 자기를 돕는
32명의 지방 영주들과 함께 장막(막사)에서 한창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17) 지방 장관들의 청년들(젊은 장교들)이 먼저 나갔습니다. 그때 벤하닷이 보낸
정찰병들이 와서 보고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서 군사들이 나오고 있나이다.”
18) 벤하닷이 말했습니다. “그들이 화친을 청하러 나왔더라도 사로잡고,
전쟁을 하러 나왔더라도 사로잡으라!”
19) 지방 장관들의 청년들(젊은 장교들)은 자기 뒤를 따르는 군대를 이끌고 성에서 나와서
20) 각각 적군을 만나는 대로 죽였습니다. 아름 군사들이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추격하자 아람 왕 벤하닷은 기마병 몇 명과 함께 말을 타고 도망하였습니다.
21) 이스라엘 왕이 진격하여 말과 병거들을 공격하고, 아람 사람들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 이 큰 무리를 보느냐(13절) :
여기에서 ‘무리’로 번역된 ‘하마’는 ‘당황케 하다‘. ‘혼돈으로 집어넣다’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너를 큰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는 저 무리들을 보고 있느냐’의 뜻입니다.
- 청년들(15, 17, 19절) :
여기에서 말하는 청년들은 젊은 장교들,
혹은 전쟁에 훈련이 전혀 되지 않은 이제 막 장교로 임명받은 초급 장교들을 뜻합니다.
2. 벤하닷의 헛된 전략(22~25절)
22) 그 후 그 선지자가 다시 이스라엘 왕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왕께서는 가서 힘을 기르고 앞으로 왕께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두시고
준비하옵소서. 내년 봄에 아람 왕이 다시 왕을 치러 올 것입니다.”
23) 한편 아람 왕의 신하들이 아람 왕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은 산의 신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산에서 싸웠으므로 우리가 졌지만, 만일 우리가 평지에서 싸운다면 분명 저들보다 강할 것이니이다.
24) 그러므로 왕께서는 모든 지방 영주들을 물러나게 하시고,
그 대신에 총독들(군 사령관들)을 그 자리에 임명하시옵소서.
25) 또 왕께서는 잃어버린 수만큼 군대와 말과 병거를 보충하옵소서.
그리하여 평지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우리가 그들보다 강하리이다.”
아람 왕은 그들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하였습니다.
3. 벤하닷과 아합과의 2차 전쟁과 아합의 승리(26~30절)
26) 해가 바뀌자 벤하닷이 아람 군대를 소집하고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아벡으로 올라갔습니다.
27) 이스라엘 군대도 소집되어 군량(무기와 식량)을 공급받고
그들과 맞아 싸우려고 나아갔습니다. 아람 군대는 그 땅에 가득하였으나
이스라엘 군대는 마치 적은 수의 두 암염소 떼(암염소의 적은 두 떼)와 같았습니다.
28) 그때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이스라엘 왕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람 사람들이 말하기를 여호와는 산의 신이요 골짜기(평지)의 신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이 큰 군대를 다 네 손에 넘기리니, 이로써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라.’”
29) 아람 군과 이스라엘 군이 서로 대치한 지 7일째가 되던 날 드디어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스라엘 군대가 하루 만에 아람 보병 10만 명을 죽였습니다.
30) 그 나머지는 아벡 성으로 도망하였으나, 그 성벽이 그들 2만 7천명 위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벤하닷은 성 안으로 도망쳐 골방에 몸을 숨겼습니다.
- 아벡으로 올라갔다(26절) :
아벡은 아람과 이스라엘의 국경 부근의 성읍입니다. 1차 침공에서는 아람이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포위했었는데, 2차 침공에서는 국경을 넘지 못하고 국경 부근의 성읍에서 머문 것은 벤하닷이 아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27절) :
이스라엘 군대의 수는 적은 두 무리의 염소 떼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숫염소가 아니라 나약한 암염소이니 이스라엘 군대가 얼마나 초라하게 보였나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서로 대치한 지 7일째(29절) :
싸우지 않고 7일 동안 대치만 하고 있는 것은, 아합으로 하여금 이 싸움이 자기들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묵상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 평지에 있는 아벡 성벽의 붕괴(30절) :
평지에 있는 아벡 성벽이 붕괴한 것은
하나님이 산의 신일 뿐 아니라 평지의 신이기도 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3.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벤하닷을 살려주는 아합(31~34절)
31) 벤하닷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듣자하니 이스라엘 왕들은 인자한
왕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만일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 왕에게 나가면 그가 혹시 왕의 생명을 살리리이다.”
32) 그들(벤하닷의 신하들)은 허리에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가서 말했습니다. “왕의 종 벤하닷이 ‘부디 내 생명을 살려 주옵소서.’하고 애원하고 있나이다.” 아합이 말했습니다. “그가 아직 살아 있느냐? 그는 내 형제이니라.”
33) 벤하닷의 신하들은 아합의 이 말을 좋은 징조로 여기고 재빨리 그 말을 받아 말했습니
다. “그렇습니다. 벤하닷은 왕이 형제입니다.” 아합이 말했습니다. “가서 그를 데려오너라.” 벤하닷이 나오자 아합은 그를 자기 병거(전차)에 태웠습니다.
34) 그러자 벤하닷이 말했습니다. “나의 부친이 왕의 부친에게서 빼앗은 모든 성들을
다 돌려드리겠습니다. 또 내 아버지께서 사마리아에 상업 중심지인 광장(무역시장)들을 만든 것처럼, 왕께서도 다메섹에 그러한 광장(시장)들을 만드십시오.” 아합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그런 조약을 조건으로 하고 당신을 놓아주겠소!” 하고 말한 뒤에, 그와 조약을 맺고서 벤하닷을 놓아 주었습니다.
- 테두리(31,32절) :
테두리는 고아서 만든 밧줄이나 올가미를 뜻합니다. 밧줄로 만든 올가미를 머리에 쓰거나 목에 두르고 나타나는 것은 참회나 굴복(항복)을 뜻합니다.
- 인자한 왕(31절) :
본문의 ‘인자한 왕’이라는 뜻은 성품이 인자하다는 뜻이 아니라, ‘조약을 잘 지키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과 조약을 맺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 묵상 point
1. 아람과의 두 차례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아합
드디어 아람(시리아)의 벤하닷이 북왕국 이스라엘에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벤하닷은 군사들을 이끌고 나와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성읍 사마리아를 포위하였습니다. 그 수가 얼마나 많은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한 선지자가 아합에게 와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 내가 오늘 그들을 네 손에 넘겨 줄 것이니, 이로써 너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13절)
군사의 수로 보나 무기로 보나 이 싸움은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습니다. 벤하닷은 10만 명이 넘는 군사들이 모두 숙련된 군사들인데 반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은 232명의 초급장교들에 군사들도 불과 7,000명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7,000명으로 그의 10배가 넘는 아람의 군사들을 쳐서 이깁니다.
벤하닷은 이번 전쟁은 산에서 전쟁했는데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산의 신이니 자기들이 졌다면서 다음에는 평지에서 전쟁한다면 자기들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듬해 봄에 다시 10만이 넘는 군사를 동원하여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보병 10만 명을 죽이고, 아벡 성읍으로 도망한 군사들은 무너진 성벽에 깔려 죽는 등 벤하닷이 완전히 참패를 합니다. 벤하닷은 아벡 성읍의 골방에 가서 숨었습니다.
2.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 알게 하시려고
아합은 남북 왕조를 다 합쳐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사악한 왕입니다. 다른 왕들은 그저 우상을 세워 백성들의 우상숭배를 조장한 정도인데, 아합은 자기도 바알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바알을 섬기지 않거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적발되는 즉시 처형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이 주님을 믿는 성도들을 학살한 로마의 황제 도미티안을 사탄과 동일시했던 것과 같이 아합은 사탄 그 자체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합이라도 회개하여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 많은 기적을 보이셨습니다. 본문의 기적은 엘리야가 아닌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더 엄청난 기적을 보이셔서 아합으로 하여금 회개의 자리로 돌아오도록 촉구하십니다.
1) 아합을 큰 혼란에 빠뜨리는 장면 : 이 큰 무리를 보느냐(13절)
벤하닷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성읍 사마리아를 포위하였을 때 한 이름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합에게 와서 한 첫 마디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네가 이 큰 무리를 보느냐?”위의 단어해설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것은 “너를 큰 혼란에 빠뜨린 저 큰 무리들을 보느냐?”하는 뜻입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벤하닷의 큰 군대가 아합의 마음을 큰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 : 이로써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되리라(13, 28절)
1차 전쟁에서는 벤하닷의 큰 군대가 사마라아를 포위하여 아합으로 하여금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두려움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때 아합이 얼마나 두려웠는지는 13~14절에서 아합이 하나님의 사람과 말할 때 마치 자기가 신하이고 하나님의 사람이 왕인 것처럼 그를 높여 말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또 2차 전쟁에서는 벤하닷이 12만 명이 넘는 군대를 이끌고 와서 7일간 전쟁은 하지 않고 대치하기만 하여 역시 아합의 마음을 졸이게 했습니다.
이렇게 두 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아합이 마음이 졸여서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 되게 하신 것은, 그 일이 해결되었을 때에 그의 마음이 감동되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난 번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 450명과의 대결은 큰 감동이기는 하지만 그가 구경하는 자에 불과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그 자신이 전쟁의 선봉에 서서 싸우는 자였으므로 하나님의 기적을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게 경험한 자입니다.
3) 지극히 적은 자들을 통해 큰 무리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모든 지방 장관들의 수하에 있는 젊은 장교들을 모두 모았으나 그들의 수가 232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군사들 역시 7,000명에 불과합니다. 젊은 장교들은 말이 장교이지 전쟁터에 한 번도 나가본 경험이 없는 그야말로 오합지졸들입니다. 그에 반해 상대편인 벤하닷은 말과 병거까지 준비하여 무기도 완벽하게 갖추었고, 군사들도 모두 숙련된 군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작고 연약한 무리들을 통해 그 강하고 큰 무리들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3. 사악한 아합을 회개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
벤하닷의 군대와 비교하여 볼 때 아합의 군사들은 적은 수의 두 염소 떼와 같이 보였습니다. 그나마 숫염소가 아니라 연약한 암염소 떼입니다. 바람만 조금 심하게 불어도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그런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런 연약한 군대를 친히 이끌고 가야만 하는 아합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전쟁터에 나가면 전쟁의 경험이 전혀 없는 이스라엘 군대가 마치 이 세상 최고의 실력을 가진 군인들처럼 펄펄 날면서 적을 물리치고, 전쟁의 경험이 많은 벤하닷의 군대가 마치 초짜들처럼 맥없이 죽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에게 전쟁터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도우시는지 직접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사악한 아합을 회개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자기가 직접 기적을 경험하면 사악한 이세벨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라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이렇게 사악한 자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간절한 마음과 그 은총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과 은총으로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사랑과 은총으로 아합과 다를 바 없는 죄인인 우리들을 구하시기 위해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에 감사합시다.
4.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아합
그러나 아합은 끝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몇 번이나 기적을 보이시면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셨으나 그는 하나님을 택하기를 거부하고 그의 사악한 아내 이세벨만을 의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벤하닷을 죽이라 명하셨으나 그는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그를 풀어줍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긴 것입니다.
벤하닷은 그의 아버지 벤하닷 1세가 빼앗은 사마리아의 성읍들을 다시 돌려주고, 사마리아에 아람의 무역시장을 두게 했던 것처럼 이번엔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이스라엘의 무역 시장을 두라고 말합니다. 아람을 어른의 나라로 섬겼던 군신관계가 해소되는 순간입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것보다 그의 왕권의 지위가 올라가는 것을 더 좋아하였습니다. 그 달콤함에 빠져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 묵상 :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자기의 왕권이 높아지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조차 못한 것이라 해야 맞을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기억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또한 영적인 감각이 둔해진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둔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윗처럼 항상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않는 자들이 되어서 영적인 감각이 둔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 기도제목
1. 허물과 죄에 빠진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 지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아합과 같은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우리는 다윗처럼 항상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여
예민한 영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신구약 성경강해*** > - 열왕기상,하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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