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열왕기상,하 강해

열왕기서 연구- 김성수 교수(합신)

에반젤(복음) 2019. 11. 11. 18:52



  

열왕기(םיכלמ; Reges)

 

 

 

마태복음 ?? 아브라함 → 다 윗(14대) - 1 section

? 다 윗 → 바 벨 론(14대) - 2 section

?? 바 벨 론 → 그리스도(14대) - 3 section

다윗 왕국의 확장 때에서 드러난 것은 영원한 왕국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 왕국에서 잘못할 때는 징계하시겠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완전한 심판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히 불온전한 역사 과정을 거쳐서 영원한 왕국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윗왕은 영원한 왕국의 궁극적 왕이 아님을 시사하는 것이다.

밧세바 사건과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사건이다.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인구조사를 통해 다윗이 징계받는 장면이 나오고 그것으로 인해 성전의 장소(아라우나의 타작마당)가 결정된다. 다윗의 범죄로 인해 ‘성전마당’의 하나나님의 용서로 변한 것은 ‘성전의 기능’이 하나님과의 교제회복에 있음을 보임이다.

cf) 성막제정(제사)이 금송아지 범죄 context에 나온다.

 

* 제 2 segmant의 역사를 핵심적으로 다루는 사건이 엘리야 사건이다.

< 엘리야 사건 >

엘리야의 성경적 위치는 신구약 여러 곳에 나온다.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이 광야로 기도하러 가신 것이 나온다.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사역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데 세례 요한의 잡힘(세례 요한의 사역이 끝남 = 준비기간)을 듣고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다 → 새로운 시대의 도래

여기서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이 광야로 기도하러 가신다. 이 관계를 염두에 둘 때, 요한의 죽음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느끼셨는가? 요한의 사역이 예수님 사역의 준비자 역할이라면, 예수님은 요한의 죽음을 통해 자기 자신의 죽음을 직감하셨을 것이다. 이제 자신의 죽음의 때를 앞두고 기도하러 광야로 가신 것이다.

마태복음 14:23절의 밤 중에 바다 위를 걸으신 사건 후에 베드로가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다. 신적인 사역이 거듭 드러나고 예수님 사역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마태복음 16장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드러난다. 예수님이 이런 고백을 유도해 내신 목적은 바로 베드로의 고백 후에 예수님의 죽음을 선포하신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됨의 고백’과 선포는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봄이다.

그리고 마태복음 17장에 변화산 사건이 나타난다. 이때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난다. 여기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논하신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죽음을 말함이다. 십자가와 부활사건은 공관복음 기록의 방향이요, 목적이다. 이 사건은 예수님 자신의 삶에서만 방향적인 것이 아니고 전 구속역사의 방향이요, 목적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나타내는 변화산 사건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

* 모세가 나타난 것 - 이스라엘 건국의 주요 인물로서 예수님의 사역과 대비적 역할이기 때문이다.

* 엘리야는 왜 나타났는가? 엘리야 출현이 가지는 구약적 의미는 무엇인가? 엘리야와 그의 사역의 의미가 어떤 것이기에 예수님과 모세의 사역의 동일한 차원에 들어가는가?

열왕기상 16:29절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왕 아합왕의 죄악상을 나열하면서 엘리야 출현의 서장(배경)을 말한다. 엘리야의 처음 등장은 13장이다. 아합(오므리 왕조)은 바알종교(시돈)를 받아들임으로 여로보암의 죄를 가볍게 여기고 이전의 어떤 왕보다 악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한다. 이 상태는 이스라엘의 막다른 골목에 진입하여 무슨 일인가 일어나야 할 것을 암시한다.

솔로몬의 치세는 처음에 잘 순종하였으나 말기에 여러 아내를 거느렸으므로 הוהי의 명에 불순종했다. 이 결혼정책은 정략결혼이며 외교정책인데 ‘평화’를 위한 정책이었다. 외교상 관례로 이방 공주들의 종교관습을 그대로 존중해 주게 되어있으므로 이 관습으로 말미암아 이방종교가 이스라엘에 들어오고, 이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은 2개로 분열된다(이스라엘과 유다).

신명기에서는 왕에 대한 경계 명령이 가장 강조되는데 이처럼 솔로몬의 배역은 곧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지켜야할 골목에 이르게 되고, 10지파를 떼어 순수성을 지키려 하였다. 그리고 여로보암에게 10지파를 주었는데 여로보암은 종교적 집합을 위해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하나님을 배역한다. 이 금송아지와 관련된 여로보암의 죄는 이후 이스라엘 열왕의 불순종을 취급하는 근거로 기록된다. 즉, 악한 왕의 기록은 ‘여로보암의 죄를 좇았다’는 것으로 나온다. 그리고 ‘금송아지’는 여호와 종교를 떠난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형상화한 죄악을 말한 것이다(제 2계명을 범한 것).

cf) 시내산의 금송아지도 완전히 הוהי를 떠난 것이 아니라 금송아지는 ‘이것이 너희를 구원한 הוהי’라는 변질된 표현, 즉 하나님의 상을 금송아지로 표현한 것이다. 이 변질된 하나님의 상은 우상숭배와 본질적으로 같은 죄악이다(롬 1장의 반역은 하나님을 잘못 아는 것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한다).

금송아지는 이방종교의 영향이다 : syncretism. 그런데 열왕기상 16장에 와서 아합의 죄악이 여로보암의 죄를 가볍게 여기고 모든 왕보다 더욱 악했다고 한다. 여로보암의 죄는 혼합주의였지만, 완전한 배도는 아닌데 반해 아합은 완전한 배도를 시도한다(바알 숭배).

아합의 아비 오므리는 뛰어난 왕으로서 오므리의 정책 중 하나가 두로, 시돈과 화친하고 아람을 대항한 것이다. 당시 화친 정책은 정략결혼을 수반하므로 오므리는 아합과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결혼시킨다. 이때 바알 종교가 들어와 완전히 여호와 종교를 대치시켜 여호와의 선지자를 모두 죽여버린다. 아합이 ‘이전의 어떤 왕보다 악했다’는 말은 그가 여호와 종교를 완전히 바알 종교로 대치했다는데 있다.

엘리야의 출현은 바로 이런 배도적 배경에서 나타나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3년 동안 기근을 주시겠다고 하신다(기근은 언약 파기의 심판으로 나타나는 결과이다). 모세와 엘리야의 연결은 시내산 언약과 언약의 파기의 관계이다. 언약의 파기는 아합에 와서 절정에 이른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와 갈멜산에서 대결을 한다. 누가 참 신인가를 증명하는 것이다.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들의 신을 부르고 자기 몸을 해한다 → 바알 cult. 엘리야는 하나님을 부른다.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이 사건 이전에 어느 쪽을 선택하라고 하자 백성이 묵묵무답이다.

18:38절을 보면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 제물을 사르자 온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הוהי 그가 하나님이시다’고 고백한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인을 모두 쳐죽이고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하자 큰 비가 내린다. 비가 내렸다는 것은 심판이 그쳤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바알 종교는 분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회개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고, 바알 선지자는 모두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이제는 심판이 끝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이세벨의 대응은 더욱 심했다.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하매 엘리야가 도망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 엘리야의 낙심에 하나님께서 먹이시며, 엘리야는 40주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고 동굴에 유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강한 바람, 지진, 여기에 הוהי가 계시지 않는다. 세미한 소리가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명을 다시 주신다. 이전에 엘리야가 말한 것(왕상 19:10) ‘저희가 주의 언약을 어기고 주의 단을 헐며 주의 선지자를 죽였나이다’ 로마서에는 바울이 이 말에 대하여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했다고 한다.

엘리야의 송사

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송사 -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요구

② 하나님 자신에 대한 불평 - 하나님께서 왜 가만 계시는가?

이것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야 한다는 것이다. 엘리야가 요구했던 ‘하나님의 개입’은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의 형태였다(왕상 19:11). 엘리야는 실제로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 큰 승리했던 것이 생각났다(큰 능력 → 큰 결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진이나 바람 형태 속에 계시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가 요구한 ‘하나님의 개입’ 형태를 아니라 하시고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이것이 하나님의 개입 형태).

하나님의 심판 ?? 아람왕 하사엘 ??

?? 예후 ?

?? 엘리사 ?? 를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엘리야의 호렙산 경험이 얼마나 큰 context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는가?이다. 신약에서 엘리야의 사역 의미를 모세, 예수님과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고 할 때, 엘리야의 의미는 전 구약적 배경을 가진다.

엘리야의 로뎀나무 사건은 하나님의 힘으로 떡과 물을 먹음이다. 그리고 도달한 곳은 호렙산이다. 그리고 나중에 엘리야 승천직전의 사역은 길갈 → 벧엘 → 여리고 → 요단강을 건너 강건너편에서 승천한다. 그런데 벧엘은 곧 아이를 연상시킨다. 꼭 이스라엘의 정복사역의 경로와 역순으로 나간다. 엘리야의 행적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대표적 역할임을 암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내산’인데 이것은 언약체결장소이다. 열왕기상 19:9절에 보면 시내산의 동굴에 엘리야가 들어간다. 동굴은 הרעמ(메아라)인데 정관사를 붙인다. 즉, 그 동굴(הרעמה; 하메아라)이다. cf) 출애굽기 33:22절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받을 때 רוצה תרקנ(니크라트 하추르; 돌틈)인데 이것은 바로 굴을 말한다. 모세는 이 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Teophany, 신현현상). 엘리야 역시 이 호렙산 동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이것은 신학적 차원에서 같은 의미를 갖는데,

①모세는 왜 이 산에 올라왔는가? 이스라엘이 언약을 파기했으므로 그 문제를 하나님께 묻기 위하여 올라온 것이다. 이때 모세는 이스라엘을 위해 간구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회복시켜서 새로운 두 돌판을 주신다. 첫째 돌판을 깨뜨려 버린 것은 모세가 화가 나서 던진 것이 아니다. 돌판의 가장 첫 계명은 우상숭배금지인데 이들이 이것을 범함으로 이 돌판의 증거적 의미가 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두 돌판을 주신 것은 언약을 회복시켜주신 것이다.

②엘리야도 역시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의 문제를 가지고 올라갔다. 호렙산에서 다시 언약의 문제를 취급한다. 그 결과는 모세 때와 같지 않고, 이스라엘을 철저히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볼 때 엘리야는 모세와 거의 동일한 차원에서 대표하는 의미를 갖는다. 제 2의 모세의 의미를 가지는 엘리야의 사역은 상당히 넓은 역사의 segment를 cover하는 것이다. 엘리야가 받은 계시의 핵심은, 언약을 범한 이스라엘을 철저히 심판하시되, 신실한 남은 자를 남겨두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멧세지의 핵심이 된다.

모세와 대조해 볼 때 순종과 불순종이 조건으로 제시되는데 엘리야 때 와서는 아합의 패역으로 인해 완전히 불순종해버린 것 때문에 앞으로 이들을 어떻게 하시겠는가?에서 완전히 멸절(심판)시키나 남은 자를 구원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보면 엘리야 이전과 이후는 전 구속역사의 흐름을 한 번 회복시키고 전환시킨다.

모세 → 엘리야 → 8세기 선지자 → 예수 그리스도

(조건)→?조건 없음(멸망→심판, 긍휼→남은 자)

그렇다고 보면 예수님의 죽음에서 변화산에 나타난 엘리야의 의미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엘리야는 9세기 선지자이고, 그 사역을 엘리사가 계속하며 엘리사가 죽고 여로보암 2세의 융성이 나타나고, 8세기 선지자들의 활동이 나타난다. 8세기 선지자들은 엘리야의 멧세지의 확대 해석인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8세기 선지자 멧세지의 근거와 토대를 제시한다.

 

 

성경 역사의 구조 = 하나님 나라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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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 타락 아브라함 출애굽 가나안정복 사사시대 다윗 성전 포로회복 JX초림 JX재림

⑴ ⑵ ⑶ ⑷ ⑸ ⑹

 

1. ① 아브라함의 약속은 종말론적 성취를 소망한다. 여기에서의 성취는 초림과 재림을 한날(הוהי의 날)로 보는 종말론적 성취를 궁극적으로 지향한다(히 11:8-10, 16).

② 그런데 1차적으로는 창세기 12:1-3절의 약속은 바로 5절에 성취된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건이다(히 11:9-16).

③ 2차적으로는 아브라함부터 가나안 정착이라는 구약적 segment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 - 이삭 - 야곱 - 12지파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약속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 1차 Exodus → Canaan이라는 segment에서 이해하는 2차적 성취이다. 여기에서는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가나안 정착과 아울러 다윗과 솔로몬을 잇는 하나님의 성전(하나님의 안식) 건축까지를 한 segment로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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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출애굽 가나안 다윗 솔로몬 성전건축

(약속) (백성안식) (하나님안식) = 한 사건으로 본 성취

 

2. 출애굽 사건을 중심으로 보면 이 사건은 자기 백성의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재림)을 예표하는 것으로서 가나안까지를 한 segment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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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 --- 광야(긴장) --- 가나안 → already not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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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림 --- 긴장 시대 --- 재림 긴 장

 

3. 가나안을 중심으로 보면 이 segment는 다윗왕국 건설까지를 한 주기로 볼 수 있다. 이 시대는 사사들의 시대인데 사사는(עישׁומ; 모쉬아)로서 다윗왕조를 바라보는 중간기이다.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정착(안식)으로부터 시작하여 다윗왕조(솔로몬→성전건축 포함)로 완성되는 하나님의 안식으로 일단락 맺는다. 그러므로 실패의 역사이면서 왕국과 성전을 기다리는 예비적 역사이다.

긴장상태(예비) 다윗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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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 정착 다윗 솔로몬 성전건축

(백성들의 안식) (완전한 안식) = 한 사건으로 보는 성취

이미 이루어진 ←------------→ 아직 이루어지 않은

① 이 정착은 여호수아로 인해 이미 원리적으로 땅을 차지한 정복완성의 정착이다. 그러나 아직 정복해야 할 전쟁이 남아있으니, 이미 주신 땅을 그 백성의 믿음의 전쟁으로 성취해야 할 시기인 것이다.

② 그러므로 사사들의 성격은 불완전한 지도자(실패한 지도자)이면서 완전한 지도자(다윗왕조)를 기다리는 예배적 구원자요, 궁극적으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할 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그림자 역할이다.

 

4. 다윗왕국을 중심으로 보면 사무엘하 7장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과 다윗의 집(왕조)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볼 때 이 왕국은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을 예표한다.

새 시대의 시작 → 하나님 나라의 완성

?????????????????????????????????????????????????????? = 한 사건으로 본 성취

다윗왕국(약속) 성전 JX초림 재림

그러므로 사사시대에 비교하면 다윗왕조는 안정되고 온전한 성격이지만 궁극적인 하나님의 왕국에 비교하면 아직 예비적 성격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격으로 이미 안식하신 하나님이 더 나은 안식을 바라보게 하시는 긴장의 성격을 주신다. 다윗왕국의 왕들은 불안정한 지도자이지만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지도자이므로 다윗왕국은 또한 실패이면서도 완성을 향해 가는 예비적 왕국인 것이다.

 

5. 선지시대를 중심하여 볼 때, 그들은 다윗왕국과 바벨론 포로를 이어 포로귀환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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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왕국 분리 선지자들의 지적 Is의 멸망 Jd의 멸망 포로기 JX초림 JX재림

= 한 사건으로 보는 성취

이들은 포로의 심판과 회복의 멧세지를 전하며 약속의 땅 귀환을 곧 영원한 왕국의 회복과 동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