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룻기 강해

룻기서 연구

에반젤(복음) 2019. 10. 31. 19:40




룻기서 연구

 

 

 

1. 사건 개요

사사들이 다스리던 때에 이스라엘 땅에 흉년이 들었다. 이 때 유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가 흉년을 피해 요단 동편의 모압 땅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거기서 엘리멜렉이 죽고 아내 나오미와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만 남았다. 그후 두 아들이 오르바와 룻이라는 모압 여자를 취하여 결혼을 하였으나 그 아들들마저 죽고 말았다. 먼 타국에서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게 된 것이다.

역사적 배경

룻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4장에 다윗에 이르는 족보가 기록된 것으로 봐서 실제적인 기록 연대는 다윗왕의 즉위 후인 B.C. 11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룻기에 나오는 인물들의 역사성에 대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어서 정확한 사실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야기의 배경으로 미루어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근거로 기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팔레스틴은 수자원이 매우 귀하므로 농경기에 맞추어 비가 내리지 않으면 흉년이 드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럴 경우 팔레스틴 사람들 중에는 비교적 수자원이 풍부한 애굽 지역이나 요단 동편으로 이주하는 경우가 있었다(창12:10). 엘리멜렉이란 이스라엘인이 이주해간 모압은 사해의 바로 동편에 위치한 고원 지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르는 좁고 기다란 지역에는 항상 수자원이 풍부하여 농사와 목축에 유리하였다. 또한 물이 많은 작은 삼각주들이 몇 개 있어서 식수 문제가 원활히 해결되었다. 그러나 가나안을 하나님의 언약의 땅으로 여기는 이스라엘인들 사이에서 고향을 버리고 특히 이방 땅으로 이주하는 것은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며 동족들에게 이방인과 동일한 취급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구속사적 의미

엘리멜렉은 물질적인 풍부함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언약의 땅을 버리고 이방인 모압 땅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결과는 축복이 아니라 죽음이었다. 언약의 백성의 삶의 근원은 세상의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신실하심임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이 주는 종말적인 완전한 축복에 대한 소망이 결여된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이란 보이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확신이라고 말씀하고 있다(히11:1-2)

2.사건 개요

머나먼 타향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어버린 나오미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에 기근이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다. 그래서 두 며느리에게 각자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권고하였다. 처음에는 둘 다 시어머니와 함께가고자 간청하였으나 결국 큰 며느리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가고나 룻은 시어머니 나라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을 섬길 것을 맹세하며 끝까지 따르기를 원하므로 나오미가 이를 허락하였다.

역사적 배경

모압으로 이주한 엘리멜렉의 가족들은 나그네의 신분으로 생활하였다. 고대 근동에서 나그네란 어떤 나라에 반영구적으로 거주하나 일반적인 본토인과는 달리 제한된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나그네는 토지의 소유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는 토지를 생계의 기본으로 하는 농경사회에서 민족의 자존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장례를 위해 토지를 청원한 것도 이런 관습 때문이었다(창23:49). 따라서 나그네들은 주로 목축이나 일용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만 남은 나오미의 일가가 모압에서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들었으며 당연히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을 것이다. 한편 고대 근동에서 과부는 일체 유산의 상속을 요구할 권리가 없었다. 따라서 과부는 자녀가 부양하거나 자녀가 없을 때는 계대 결혼법에 의해 시동생과 결혼함으로 집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친정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기도 하였다(레22:13). 따라서 나오미의 두 며느리는 자식도 없고 남편의 시동생도 없으므로 친정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관습이다. 특히 종교적인 관습이 다른 모압여인이 여호와 신앙을 지닌 이스라엘에서 사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구속사적 의미

룻기의 관점은 시어머니를 버리고 간 오르바와 따라간 룻의 도덕적인 차별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신의 고향으로 간 오르바의 행위는 당시 풍습으로 당연한 것이었다. 단지 시어머니의 백성 속에 동화되고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겠다는 룻의 고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은 누구든지 믿음을 고백하는 자라면 이미 모든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는 것이다

3.사건 개요

마침내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모압을 떠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그러나 나오미는 하나님을 떠나 물질적인 풍족함을 좇았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회개하며 통곡하며 자신의 이름을 괴롭다는 뜻의 마라로 부르기를 원했다. 죄를 범한 자들이었지만 따뜻하게 맞이하는 하나님의 공동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고향에 돌아온 것은 보리 추수가 시작할 때였다.

역사적 배경

룻기의 전체적인 배경이 되고 있는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남서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루살렘을 헤브론과 네겝과 연결시켜주는 남북 간선도로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베들레헴에 관한 역사적인 언급은 B.C. 14세기 초의 아마르나 서신들 중에 나타난다. 그러나 베들레헴이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이스라엘의 왕인 다윗의 출생지이며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의 출생지라는 점에서였다. 한편 모압에서 돌아온 나오미를 사람들이 맞아준 것은 대단한 호의였다. 물질적인 이유로 인해 율법이 금하고 있는 이방인의 땅에 살았다는 것은 심각한 범죄로 공동체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이다. 단지 룻기의 배경이 된 사사시대는 명확한 지도자가 없어 사람들이 율법을 알지 못하고 자의적으로 생활하였기 때문에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진다(삿17:6). 나오미가 고향으로 돌아온 시기는 보리 추수 시작할 때로 보통 4월 말에서 5월 초 사이에 시작된다. 보리는 팔레스틴에서 생산되는 주요 농산물로 한해의 첫 수확물이며 보리를 거두고 나서 초실절을 지키게 된다(레23:9-14). 그래서 보리는 가을 걷이 이후 양식이 떨어진 가난한 자들의 주요 식량으로 사용된다. 이런 점에서 나오미의 귀향은 가장 적절한 때에 이루어진 것이다.

구속사적 의미

최악의 상황에 빠진 나오미와 룻이란 두 여인에게 내린 하나님의 은혜를 주제로 하고 있는 룻기의 배경이 베들레헴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경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절정인 메시야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이 바로 베들레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두 여인을 사랑으로 맞이하는 본 사건은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계시하고 있다.

4.사건 개요

베들레헴에 정착한 룻은 마땅한 생계 유지 수단이 없으므로 밭에 나가 보리 이삭을 주워 생계를 이어나가고자 나오미에게 간청하였다. 나오미의 허락을 얻은 룻은 마침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족인 보아스란 사람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다. 마침 수확하는 것을 보러온 보아스가 룻을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물어 그가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모압 여인임을 알게 되었다. 장차 그리스도의 조상이 될 룻과 보아스의 첫 만남이었다.

역사적 배경

이스라엘에서는 정착자가 된 나그네와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백성들은 주로 날품팔이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였다. 이들은 특별한 경제적인 이유로 자신의 토지를 상실하였던 것이다. 이들의 일용노동은 주로 양떼를 지키는 것(암3:12)과 곡식을 베거나 포도를 따는 것이었다(왕하4:18). 그러나 노동력이 없는 과부나 고아와같은 이들에게는 공동체 전체가 자선을 베풀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땅에 떨어진 과일을 줍고, 잊어버리고 따지 않은 올리브를 나무에서 따고, 포도원과 곡식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허용해야 한다(레19:10; 23:22). 단 이삭을 주울 때는 반드시 땅에 떨어진 것을 주워야 하며 베지 않은 줄기에서 이삭을 따는 것은 도둑질로 간주되었다. 또한 가난한 자들을 위해 매 삼 년마다 농산물의 십일조를 제공하게 되었고(신14:29), 안식년에 밭에 나는 모든 곡식은 가난한 자들의 차지가 되었다(레25:6).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워 생계를 잇고자 한 것도 이와 같은 규례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이스라엘은 하나님 안에서 언제나 공동체로 존재하므로 동족 안에서의 가난은 사회 전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친족의 가난에 대해 부자인 친척은 우선적인 구제의 의무를 져야 한다.

구속사적 의미

룻이 베들레헴에 온 시기가 바로 보리 추수를 시작한 때였고, 마침 이삭을 주으러 나간 곳은 장차 룻의 남편이 될 보아스의 밭이었다. 또한 처음 일을 나갔을 때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추수를 보러 밭에 나왔다. 이 모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 이루어진 것이다. 바로 장차 룻에게 내려질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의 결과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5.사건 개요

자신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을 발견한 보아스는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자신의 밭에서 우선적으로 이삭을 줍고 하인들이 떠온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특별한 은혜를 베풀었다. 이는 보아스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행한 모든 선행과 하나님을 믿게 된 믿음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통해 룻의 아름다운 행동을 보상하시고 은혜를 베푸셨던 것이다.

역사적 배경

율법에 약한 자의 대표적인 인물을 고아와 과부로 표현하고 있다. 남자에 비해 사회적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이스라엘에서 남편까지 없는 과부는 그야말로 약한 자였기 때문이다. 이집트에서는 여인에게 종종 가장의 모든 권리가 부여되고, 바벨론에서는 부인이 재산의 소유주가 될 수 있고 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자기 남편의 상속재산 중에서 일정 부분 얻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이스라엘 여인의 사회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여인은 남편을 부를 때 종이 주인을 대하는 것과 같이 불러야 하며(창18:12), 남편의 소유물에 속하였다(출20:17). 또한 여인의 서약은 아버지나 남편의 허락이 있어야만 유효한 것이 된다(민30:4-17). 그러나 노예와 달리 정식 부인을 팔 수 없고 남편이 내어쫓으면 다시 자유로 결혼할 수가 있다. 또한 지참금에 대한 소유권이 그대로 보전되었고 가정에서 아들을 낳으면서 위치가 상승된다(창16:4). 그리고 율법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똑같이 존경하도록 명령하고 있다(레19:3). 그중에서도 과부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하여 있었다. 그래서 과부들은 주로 율법을 통해 보호되었고, 백성의 자선에 의존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더구나 이방 여인인 룻에 대한 보아스의 친절은 타인의 멸시로부터 보호하고 생계를 보장하는 특별한 것이었다.

구속사적 의미

여호와께서 룻의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날개 아래 보호 받으러 온 그에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보아스의 고백은 모든 구속사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상급의 원리이다. 이는 세상에서의 선행의 결과로 주어지는 상급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한 구원의 상급을 모두 포함하고 있으며, 둘 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말하고 있다

6.사건 개요

룻에게서 보아스가 베푼 친절에 대해 들은 나오미는 룻을 친척인 보아스와 결혼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룻에게 이르기를 그날 밤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일 때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서 기다렸다가 보아스가 자리에 누우면 그 눕는 곳에 들어가서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명하였다. 이에 룻은 시머어니의 말씀대로 순종할 것을 약속하고 그대로 행하였다.

역사적 배경

보아스가 자신의 기업 무를 친척임을 안 나오미는 룻과 보아스를 결혼시키기 위해 계획을 꾸몄다. 그것은 밤에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룻을 보아스의 이불 속에 눕게 함으로 보아스로 하여금 기업 무를 의무를 시행하도록 강제하고자 한 것이다. 당시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서 잠을 잔 것은 아마 모든 보리 타작이 끝나고 일꾼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양털을 깎는 날 잔치를 벌이듯이(삼하13:23) 한해 농사의 첫 수확인 보리 타작을 마치는 날 잔치를 벌이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오미가 룻으로 하여금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가게 한 것은 마치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을 단장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이로써 보아스로 하여금 자신의 기업 무를 것을 강력하게 소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한편 과부인 룻이 보아스가 자고 있는 이불 속에 누운 것은 간음에 해당하는 중한 죄로 율법에 따라 엄중한 형벌을 받게 된다. 보아스가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는 새벽에 룻을 집으로 돌려보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나오미가 룻에게 이런 일을 시킨 것은 보아스에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여줌으로 보아스에게 기업 무름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구속사적 의미

시어머니 나오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룻이 순종하였을 때 보아스의 은혜를 받는 축복을 얻게 되었다. 이와 같은 룻의 태도는 구속사를 계획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에 대한 인간의 전적인 신뢰와 완전한 순종의 요구를 담고 있다. 비록 그것이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순종할 때 하나님의 구원이 주어지며 영원한 축복을 얻을 수 있음을 계시하고 있는 것이다.


7.사건 개요

한밤 중에 일어난 보아스가 자신의 이불 속에 누운 룻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룻은 나오미가 시킨 대로 보아스에게 자신의 기업 무를 것을 간청하였다. 이에 보아스는 룻의 행위를 선히 여기고 그녀가 현숙한 여인임을 칭찬하였다. 그리고 자신보다 먼저 기업 무를 친척을 찾아 보고 만약 그가 권리를 포기하면 자신이 기업을 무를 것을 약속하고 룻으로 하여금 새벽까지 자신의 이불에 머물도록 하였다.

역사적 배경

나오미가 룻을 통해서 보아스로 하여금 기업 무를 것을 강권하도록 한 것은 보아스가 친척으로 율법에 명시된 고엘제도의 해당자이기 때문이다. 고엘제도란 넓은 의미에서 가정의 성원들이 서로 돕고 보호할 책임을 규정한 것으로 아라비아와 같은 다른 민족들에게서도 발견된다. 고엘이란 가장 가까운 친척의 부채를 갚아주고, 그를 원수에게서 방어하는 자요, 자기 집단과 개인적인 친척의 이익을 보호하는 자다. 고엘은 몇 가지의 특정한 경우에 개입한다. 친척 중에 하나가 부채를 갚기 위해 노예로 팔려가지 않을 수 없을 경우에, 가장 가까운 친척들 중에서 어떤 사람이 팔려간 위치에서 다시 사오게 된다(레25:47). 또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상속 재산을 부채로 인하여 팔게 되었을 때 고엘이 선매권을 행사하여 자기 가족에 속한 재산을 외부로 매각하지 못하도록 방지한다(레25:25). 그리고 어떤 사람이 무고하게 살해당했을 때 가장 가까운 친척이 그 복수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후사가 없이 사망한 친족의 후대를 이어주는 것이다. 롯의 경우는 바로 후대의 계승과 기업을 회복하는 경우에 해당되며 보아스가 바로 그 친척에 속한 것이다. 그래서 나오미는 롯을 보아스가 잠자는 이불에 몸을 단장하고 들어가게 함으로 보아스에게 고엘의 권리를 행사하도록 강권한 것이다.

구속사적 의미

룻이 과부지만 몸을 단장하고 외간 남자인 보아스의 이불 속에 눕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룻은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였고 그로 말미암아 축복의 기회를 얻게 된다. 이 장면은 룻의 순종이라는 선행이 아니라 시어머니의 계획에 대한 순종이 가져오는 결과인 축복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대한 전적인 순종만이 구원의 축복을 가져온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8.사건 개요

룻을 돌려보낸 보아스는 성문에 올라가서 장로들을 청하여 놓고 룻의 기업 무를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권리를 행사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권리를 거부하고 오히려 자신의 기업 무를 권리를 보아스에게 양도하였다. 그리고 그 증거로 자신의 신을 벗어 보아스에게 주었다. 이로써 보아스는 장로들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룻의 공식적인 기업 무를 자임을 선언하고 룻을 축복하며 자신의 언약을 이행하였다.

역사적 배경

앞의 사건에서 설명한 이스라엘의 고엘제도의 성격과 형식이 가장 잘 나타난 사건이 바로 룻과 보아스의 사건이다. 이 경우는 계대 결혼과 토지의 회복이 중첩되어 있다. 나오미는 가난하기 때문에 자신의 기업을 회복할 수 없었으며 그녀의 며느리 룻은 과부이며 자식이 없었다. 그리고 보아스는 그들의 고엘이었다. 그러나 보아스에게는 자기보다 먼저 이 선매권을 행사할 수 있는 친척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룻과 결혼하고 기업을 무를 능력이 있었으나 자신의 의무를 행사하지 않고자 하였다. 왜냐하면 룻과의 결혼에서 태어날 아이는 이미 죽은 본남편의 성을 딸고 자기 재산의 상속자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보아스가 재산을 매입하고 룻과 결혼을 한 것이다. 여기에 따르면 고엘의 권리는 부계의 삼촌, 그 다음에는 삼촌의 아들, 그 다음에는 다른 친척과 같은 서열순으로 행사되었다(레25:49). 또한 고엘이 자기의 권리를 포기할 때는 신발을 벗음으로 권리의 양도를 표시한다(롯4:7). 한편 시형제의 결혼 권리를 포기할 때는 과부가 된 형수가 시동생의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모욕과 저주를 한다(신25:9). 이는 고엘의 권리는 곧 공동체를 지키는 신성한 의무였기 때문이다.

구속사적 의미

보아스는 비록 룻의 기업 무를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지만 룻을 위해서 자원하여 언약을 이행하였다. 이러한 보아스의 모습은 자원하여 하늘 보좌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 오셔서 자신의 몸을 희생시키시고 인간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은혜를 예표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룻을 향한 보아스의 은혜는 곧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나타내며 구속사가 지니는 은혜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9. 사건 개요

모든 사람들 앞에서 룻의 공식적인 기업 무를 자가 된 보아스는 룻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다. 그후에 그가 동침하여 아들을 낳으니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축복하며 찬양하기를 이 아이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명한 자가 되기를 간구하였다. 그리고 이웃 여인들이 그 아들의 이름을 오벳이라고 하였는데 그가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버지였다. 믿음의 사람 보아스와 룻은 위대한 왕이요 언약의 상속자인 다윗의 조상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적 배경

오늘날 팔레스틴에서 결혼식을 할 때 신혼부부의 집 앞에서 석류를 터뜨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그 속에서 나오는 씨만큼 많은 자녀를 낳기를 기원하는 풍습이다. 이와 같이 많은 자녀를 낳는 것은 고대인들의 한결 같은 소망이었다. 이는 고대 사회는 노동력을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으로 하였고 많은 자녀는 가정을 보호하는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아스와 결혼하는 룻을 향한 사람들의 축복도 라헬과 레아와 같이 되는 것이었으며(11절) 이는 많은 자녀의 축복을 의미한다. 반면에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험이요(삼상1:5) 징계요, 수치에 해당된다(창16:2). 따라서 보아스와 결혼한 룻이 아들을 낳은 것은 그녀에게 최고의 영광이요 축복이었다. 한편 룻의 아들에게 이웃 여인들이 섬기는 자란 뜻의 오벳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보통 어머니에 의해 신생아의 이름이 지어지는 관습에 비해 볼 때 매우 특이한 경우이다(창35:18). 그런데 이 오벳은 후에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인 다윗의 조상이 되었다. 이것은 후손 중에 위대한 인물이 나오는 것을 가장 큰 영광으로 여겼던 이스라엘의 관습으로 볼 때 보아스와 룻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영광이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구속사적 의미

다윗의 조상이 된 것은 룻과 보아스에게 더없이 큰 영광이요 축복이었다. 이는 곧 다윗으로 대표되는 구원과 영원한 나라의 언약에 동참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다윗의 계보는 메시야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내려간다. 이런 점에서 룻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택함 받은 자들이 동참하게 될 구원의 언약과 영원한 하늘나라의 영광과 축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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