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가 은인입니다 (마 5:43~48)
43 또 너희가 들었으니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하여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니라 그는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시느니라 46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거든 무슨 상이 있느냐 세리들도 이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만일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거든 다른 이보다 무엇이 특이하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시간 “원수가 은인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목이 다소 낯설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 말씀 듣고 우리 생각이 바뀌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주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지키기 어렵지만, 동시에 가장 영광스러운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원수 사랑에 대해서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행위라” 했고, 마르틴 루터는 “복음의 핵심이자 참된 그리스도인의 표지" 표지란 영어로는 'Mark' 누군가를 보았을 때 "아, 저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인이구나!"라고 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결정적인 증거를 의미합니다. 너희가 사랑할 때 내 제자인 줄 알리라“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존 칼빈은 “원수 사랑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함을 의미라는 것"이라 했고, 존 웨슬리는 “기독교 완전성의 필수 요소”라 했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비폭력 저항 운동의 신학적 근거”라 했고, C.S. 루이스는 “감정이 아닌 실질적인 선의를 베푸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씀에 불신자들도 찬사를 보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그는 산상수훈을 읽고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는데, 특히 원수 사랑의 가치를 사회 운동에 도입할 만큼 귀히 여겼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4절) 이 얼마나 좋은 말씀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 말씀대로 살아보겠습니까? 말씀은 아름답지만 이대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잘하고, 해를 주는 사람에게는 잘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러나 더 알아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 믿음은 진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그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우리도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원수 사랑이 꼭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령 충만 받으면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사랑은 나의 믿음을 점검할 수 있는 필수 중의 필수입니다. 또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원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려고 붙이신 사람으로, 믿음 부족한 우리 때문에 그가 악역을 하고 있는 은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면 우리가 원수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원수가 우리에게 왜 은인이 될까요?
1.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닮아가는 성화의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45절에 "이같이 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기에 자기를 십자가에서 못박는 자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이 운명하실 때 백부장이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지진 때문만이 아닙니다. 지진이 일어났어도 다투고 욕하며 원수 사랑이 없었다면 하나님 아들이었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랑이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가 죄지을 때마다 벼락을 내리셨다면 이 자리에 살아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랑하되 가장 어려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46-47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거든 무슨 상이 있느냐 세리들도 이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만일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거든 다른 이보다 무엇이 특이하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하지 아니하느냐” 하셨습니다.
그들이 서로 사랑한다고 그들이 성화에 이르렀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원수만 사랑하셨나요? 그러므로 원수든 원수가 아니든 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엡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한 것처럼 참사랑이 우리 변화의 목표입니다.
2. 원수가 나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만드는 은인입니다.
행13:22에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사울과 달랐다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입니까? 찬송하며 살아서입니까? 골리앗을 죽여서입니가? 그보다 자신을 10년 넘게 죽이려 쫓아다닌 원수 사울 왕을 두 번이나 살려주었기 때문입니다.
하기 어려운 일을 하나님께 대한 믿음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아비새가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라고 부추겼으나,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내가 손댈 수 없다"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윗은 매사에 여호와께 여쭈었고,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이것이 사울과 다른 점입니다. 순종할 수 없는 일에도 순종했습니다.
요셉도 그랬습니다. 그의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노예로 팔아버린 원수 중의 원수였습니다. 요셉이 그들을 원수 시 하진 않았으나, 훗날 총리가 된 후 형들 앞에서 말합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창 45:5). 형들의 악역이 없었다면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없었고, 이스라엘 민족은 기근에 멸절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원수들에게도 빚진 자입니다. 롬1:14에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했는데 바울이 언제 그들에게 빚졌습니까? 그럼에도 빚진 자라고 한 것은 자기의 복음 전도의 의무를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니 그들에게도 전해야 한다는 수혜자로서의 부채감, 혹은 책임감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원수에 대한 관념이 달라져야 합니다. 고난은 변장된 축복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들은 나 때문에 악역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하다. 내가 바로 산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붙이실 리가 없지 않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나를 훈련시키는 고마운 은인들이며 우리는 그들을 위해 사랑하고 축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3. 그들을 축복함이 내 영혼을 치유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시35:13에 "나는 그들이 병들었을 때에 굵은 베 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다윗이 자신을 해치려는 원수들을 사랑했을 때 영적인 회복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는 '내가 살기 위해서'입니다. 상대방을 미워하면 그 미움이 가장 먼저 내 영혼을 공격합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내 영혼이 독을 마시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그를 축복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의 구역장 이야기입니다. 그 구역장은 어느 교인에게 5천만 원을 빌려주었는데, 그 교인이 야반도주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충격을 받고 화가 나든지 "하나님, 저 사람 다리가 부러지게 해주세요!"라고 저주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마음은 지옥이 되고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성령께서 그 집 아이들을 생각나게 하시고 그 집 아이들이 불쌍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그는 그렇다 치고 그 집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어디 가든지 밥 굶지 않게 하시고, 돈 벌어서 꼭 갚게 해주세요." 긍휼 가지고 축복 기도를 시작하자 놀랍게도 마음의 응어리가 녹아내리고 마음이 왜 그렇게 편안한지 그날부터 단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3년 뒤, 그 교인이 찾아오더니 눈물로 회개하며 돈을 들고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용서할 때 내가 자유해집니다.
혹은 어린 시절 의붓아버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평생을 증오 속에 살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말기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그녀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의붓아버지를 용서하기로 결단하며 통회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용서의 눈물을 쏟아낸 후 재검진을 받았을 때, 온몸에 퍼졌던 암세포가 깨끗이 사라졌다는 간증입니다.
이처럼 용서는 영혼의 치유이자 육체의 치료제입니다. 혹시라도 용서하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복을 막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원수는 없지만 사랑의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온전히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4. 차원 높은 사랑이 십자가의 복음을 증명하고 기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요12:24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원수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리스도는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1948년 여순사건 때 두 아들을 잃은 손양원 목사님은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손목사님이 법정에 탄원하여 그를 사형장에서 끌어낸 것은 "내 아들은 이미 천국 갔으나, 저 청년은 그대로 두면 지옥 간다"는 그 절박한 구령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원자탄'입니다. 이 사랑 때문에 양아들의 자손들이 목사가 되어 한국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 간증입니다. 술만 먹으면 폭행을 일삼아 아내의 팔까지 부러뜨렸던 남편이 사고로 실명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그 아내인 권사님은 자신의 한쪽 눈을 뽑아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수술 후 붕대를 푼 남편은 자신에게 눈을 준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가 평생 괴롭힌 아내임을 알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바로 아내의 사랑이 그를 회개시켰고 신앙생활 열심하여 교회의 장로가 되고 온 가문이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무고한 고난이 다가올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믿으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무고한 고난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다윗은 시므이가 자기를 저주할 때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라 하면서,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16:10-12) 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때부터 원수 압살롬의 기세가 꺾이고 다윗이 승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수는 먼데도 있으나 가까운 데도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자는 나 자신이고, 다음은 내 가족 내 교회 내 이웃 내 국민, 그러나 우리 관념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들은 내가 사랑해야 할 자요, 나를 축복하러 온 고마운 은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 말씀에 서서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할 만큼 믿음이 자라나 하나님이 온전히 함께하심으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치유가 임하고, 막혔던 하늘 문이 열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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