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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
빌레몬서 1:1-21 신약성경 가운데 빌레몬서는 단 한 장으로 되어있고 수신자가 개인으로 되어있는 특별한 편지입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보낸 개인적인 사적인 편지입니다. 감옥에서 보냈다고 해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와 함께 옥중서신으로 불러집니다. 빌레몬은 바울 사도가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가르칠 때 그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의 집을 교회로 사용할 만큼 충성된 종이었을 뿐 아니라 노예들을 거느릴 만큼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노예들 중에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이 오네시모가 주인집에서 도망쳐 로마까지 와서 숨어 살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가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 사도에게 복음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이후 오네시모는 자신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빌레몬과 연관된 숨겨진 개인 이야기를 들은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그 판단을 실행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도망치는 종들은 로마법에 의하여 엄한 처벌을 받았고, 거기다가 주인의 돈을 훔쳐 도망쳤다는 것은 큰 위험까지 각오해야할 중대한 잘못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었던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염려하는 마음으로 사적인 편지를 함께 보냅니다. 이 편지가 오늘 우리가 읽는 빌레몬서인데요, 내용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빌레몬서는 크게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1. 먼저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오네시모를 그리스도인으로 구원하고 변화시켰던 전도자입니다. 오네시모가 어떻게 로마에서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을 만났는지는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요, 당시 바울이 갇혀 있던 감옥은 집단 수용소가 아닌 개인적인 수용소였던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시위대 군인의 감시 속에 옥중 생활을 했지만 엄격한 감옥과 달리 찾아오는 사람을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시위대 군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자신의 옥중생활이 오히려 복음의 진보가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연유로 만나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이 오네시모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면서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롬1:16)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오네시모가 구원받고 변화된 것도 바울의 능력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이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은 주인의 돈을 훔쳐 달아난 오네시모와 같은 노예를 구원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노예장사로 악독했던 존 뉴턴을 복음전도자로 거듭하게 한 것도 복음의 능력입니다. 희대의 살인마로 불려 진 고재봉 같은 사람을 변화시켜 구원받게 한 것도 복음의 능력합니다. 1963년 고재봉의 도끼살인사건은 젊은 분들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대장 숙소에 침입하여 대대장과 그의 부인, 세 명의 자녀들, 그리고 식모 등 6명을 도끼로 살해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사건입니다. 막상 자기가 죽이려고 했던 대대장은 죽이지 못하고 그날 새로 부임한 엉뚱한 대대장 가족을 죽이는 실수를 합니다. 6.25 동락전투의 영웅인 대대장 남편과 아내 김재옥씨가 참변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건이기도 합니다. 이름이 고재봉인 한 교장 선생님이 은퇴를 하면서 ‘도끼는 이만 물러갑니다.’ 할 정도로 유명한 사건인데요, 범행 후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1964년에 총살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런 고재봉이 사형을 당하기 전에 목사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여기에서 너와 네 집은 착하고 올바르게 사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반대의 사람들도 해당됩니다. 복음에는 구원의 역사, 변화의 역사, 새롭게 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누구에게나 전해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영접하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믿고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를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귀한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2. 둘째는, 오네시모의 이야기입니다. 오네시모는 이렇게 사도 바울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인생이 변화된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몇 가지 중요한 변화를 언급합니다. ➀무익한 사람에서 유익한 사람으로의 변화입니다. 11절에서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원래 ‘오네시모’ 라는 이름은 ‘유익한 자’, ‘유용한 자’ 라는 뜻입니다. 이런 이름을 지은 것은 저가 유익한 자가 되기를 바라서입니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유익한 자가 아니라 무익한 자가 되었고 특별히 빌레몬에게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런 오네시모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는 유익한 자가 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입니다. 어거스틴도 복음으로 인해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변화된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어거스틴은 30세가 되기까지 마니교라는 이단 사상을 따랐으며, 생활면에서도 방종한 삶을 살았던 무익한 자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 모니카의 눈물의 기도를 통해 “낮 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는 말씀을 깨닫고, 위대한 신학자요 저술가로서 지금까지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한국 초대교회의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인 김익두 목사님도 복음으로 인해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가 된 인물입니다. 그는 양반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과거 시험에 몇 번 낙방하면서 동네 깡패가 되었습니다. 힘이 얼마나 장사인지 주막집 기둥을 빼내어 집을 무너뜨리기도 했고, 온갖 기물을 파괴하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쓸모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장날에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오늘 김익두를 만나지 않게 성황당에서 빌 정도로 악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스왈론 선교사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그는 순한 양처럼 변했습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님이 되어 신천교회를 섬기고, 총회장으로 헌신했고, 전국 교회를 다니면 부흥회를 인도하고 150개 교회를 세웁니다. 신유은사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기도 했고, 그의 설교에 감동되어 목사가 된 자가 20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음은 쓸모없는 사람을 세상에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유익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과 일터와 학교에서 유익한 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특별히 복음과 구원에 유익한 자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➁바울의 심복으로의 변화입니다. 12절에 “네게 그를 돌려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고 했습니다. 국어사전에 심복은 ‘마음 놓고 믿을 수 있는 부하’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난하주에 보면 심복을 ‘심장’이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당시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식을 심장이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자녀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오네시모를 심장이라고 부른 것은 오네시모에게 자녀와 같은 끓어 넘치는 사랑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깝고 믿을 수 있고 충실하고 없어서는 안 될 귀한 사람인지를 잘 표현한 말입니다. 여러분, 어떤 면에서 우리는 주님의 심복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정말 믿을 수 있고, 가장 사랑하고 신뢰할 수 있고, 심장과 같이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심복은 주님의 뜻을 바르게 헤아리고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것을 언제든지 주님을 위해 기꺼이 사용할 수 있는 주님의 심복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의 심복인 것처럼, 우리 모두 주님의 심복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충성하며 헌신하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➂세 번째는, 사랑하는 형제로의 변화입니다. 16절에 보면,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종이 아니라 형제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예수님을 믿고 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복음 안에는 어떤 차별도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차별, 어른과 아이들의 차별, 주인과 노예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차별을 넘어서서 우리는 한 형제요 자매요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며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입니다. 태어난 지 며칠 안 된 쌍둥이가 있었는데 동생이 심장에 결함이 있어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더 이상 가망이 없었을 때 한 간호사가 두 아기를 하나의 인큐베이터에 넣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원래 두 아기를 한 인큐베이터에 넣지를 않는데 방법이 없자 잠시 고민하다가 나란히 눕히기로 결정했습니다. 얼마 후 건강한 아이가 팔을 뻗어 아픈 동생을 감싸 안았습니다. 그러자 동생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현재도 두 아이는 정상으로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신문기자가 이 소식을 듣고 서로 포옹하는 사진을 찍고 “생명을 구하는 포옹”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의 힘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형제애는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 안에서 한 형제로 자매로 부름을 받은 한 가족입니다. 무익한 자에서 유익한 자로, 주님의 심복으로, 모든 성도의 형제로 변화된 오네시모의 변화가 우리 모두의 변화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세 번째, 빌레몬의 이야기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요 오네시모의 주인입니다. 어느 날 자기 돈을 훔쳐 달아난 오네시모가 나타납니다. 못된 놈이라고 생각하고 잡히기만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그때의 사회적 정서로 보면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못된 놈이(?) 지금 자기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 오네시모를 보는 순간 빌레몬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오네시모는 분명 무릎을 꿇고 백배 사죄하고 용서를 빌면서 지금까지 로마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를 내어놓습니다. 편지를 받은 빌레몬은 자신이 그렇게 존경하고 사랑하는 바울사도의 친 편지를 보면서 정말 감격하여 편지를 읽고 또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 편지의 내용을 보면서 많은 고민도 했을 것입니다. ‘이 못된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시오, 그가 빚진 것이 있으면 내게 말하면 내가 갚아 주겠습니다.’ ‘예전에는 무익한 자였지만 지금은 나와 당신에게 유익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내 심복입니다. 내 심장입니다.’ ‘아니 이런 못된 놈을 어떻게 용서하라는 말인가? 그러면 다른 노예도 기강이 헤이 해져서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떡하나?’ ‘이런 오네시모가 바울 선생의 심장이라니’ ‘이런 노예를 형제로 받아들이라니 이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편지를 읽으면서 빌레몬은 정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 않았겠습니까? 며칠 후 드디어 오네시모를 부르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오네시모, 당신은 이제 내 노예가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형제입니다. 당신을 해방합니다. 당신의 잘못은 다 용서합니다.’ 그리고는 힘껏 껴안아줍니다. 빌레몬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든 오네시모를 받아들였습니다. 노예를 형제로 받아들이고 사랑하였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사도 바울을 위하여 더욱 힘써 일하도록 뒷받침을 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신앙의 능력이 아니겠습니까? 그 후 오네시모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 기록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나중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됩니다. 노예 출신이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풀리게 됩니다. 빌레몬 개인에게 쓴 편지요, 그것도 한 장에 불과한 사적인 편지가 어떻게 신약 정경 중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이런 궁금증이 이해됩니다.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었던 오네시모가 이 편지를 수집하였고 힘썼기 때문에 정경에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성령의 역사이지만 오네시모의 노력이 빛을 보았던 것입니다. 시인 박희준은 <하늘 냄새>라는 시를 썼습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빌레몬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 오네시모, 빌레몬 세 사람은 하늘 냄새를 풍겼던 사람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땅의 냄새가 아닌 하늘 냄새를 맡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일은 바로 이 하늘 냄새를 맡도록 해 주는 일입니다. 복음으로 구원을 전하고, 복음으로 변화되고, 복음에서 하나가 되는 하늘 냄새를 풍기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2025.09.28.) |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권호만barna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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