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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도행전45*예루살렘의 바울

에반젤(복음) 2025. 4. 22. 09:58

사도행전45*예루살렘 향하는 바울

사도행전 21장1-40절 / 차용철 목사

 

<본문 말씀 내용>지난 20장에는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에게 설교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21장에는 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돌아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차 전도여행과 예루살렘 여행이 교차되는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내용구조는 두로와 가이사랴에서의 사역 (1-16절), 예루살렘 도착 (17-26절), 예루살렘에서 체포 (27-40절)로 되어 있습니다.

 

1. 두로와 가이사랴의 사역 (1-16절)

 

➤“1. 우리가 그들과 작별한 뒤에 배를 타고 직선 항로로 고스에 이르러 이튿날 로데스에 들르고 거기서 바다라로 가서 2. 페니키아로 항해하여 건너가는 배를 만나 타고 가다가 3. 이제 키프로스를 발견하매 그곳을 왼편에 두고 시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내렸으니 이는 거기서 배가 짐을 풀어야 했기 때문이더라. 4. 우리가 거기서 제자들을 만나 이레를 머물매 그들이 성령을 통해 바울에게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라. 5. 그 날들을 보내고 우리가 떠나서 우리의 길로 갈 때에 그들이 다 아내들과 자녀들과 함께 나와 우리가 도시 밖으로 나갈 때까지 우리를 우리의 길로 내보내매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 꿇어 기도하고 6. 우리가 서로 작별한 뒤 우리는 배에 타고 그들은 집으로 다시 돌아가더라. 7. 우리가 두로를 떠나 우리의 항해를 마치고 톨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문안한 뒤 그들과 함께 하루를 지내고 8. 다음 날 바울의 일행인 우리가 떠나서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사람 중의 하나인 복음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머물더라.

 

9. 바로 그 사람에게 처녀인 네 딸이 있었는데 그들이 대언을 하더라. 10. 우리가 거기서 여러 날 머물고 있을 때에 아가보라 하는 어떤 대언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이르러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발을 묶고 이르기를, [성령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 띠의 임자를 이같이 묶어 이방인들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신다, 하거늘 12. 우리가 이것들을 듣고 그곳 사람들과 더불어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 것을 간청하매 13. 이에 바울이 응답하되, 너희가 무슨 목적으로 슬피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결박당하는 것뿐 아니라 죽는 것도 각오하고 있노라, 하니 14. 그가 설득 받으려 하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목적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그 날들이 지난 뒤에 우리가 짐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 16. 가이사랴의 제자들 중의 어떤 사람들도 우리와 함께 갔고 또 그들이 자기들과 함께 키프로스 출신의 므나손이라 하는 오래된 제자도 데리고 갔는데 우리는 그와 함께 묵어야 했었노라.”

 

 바울의 일행은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과 작별하고 배로 고스와 로도와 바다라와 구브로와 수리아를 지나 두로에 도착했습니다. 두로에 도착한 것은 배가 그 곳에서 짐을 풀기 위해 정박했기 때문입니다. 두로는 시돈과 함께 베니게에 항구로서 번영과 부패의 표본인 도시였습니다. 바울의 일행은 두로에서 제자들을 찾아 일주일간 머물렀습니다. 그 동안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일행은 그들에게 기도로 전송을 받아 두로를 떠났습니다. (1-6절).

 

 바울의 일행은 두로에서 도레마이를 들렀다가 하루를 있다가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빌립의 집에 들어가 유했습니다. 가이사랴는 거대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빌립에게는 딸이 셋 있었는데 모두 처녀로서 예언을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언은 성령님의 은사 가운데 하나로서 성령의 지시로 미래의 일을 알아 제시하는 은사였습니다. 그 곳에서 여러 날 있는 동안 아가보라는 이가 바울의 띠를 가지고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아가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예언자로서 예루살렘에 극심한 흉년이 들 것을 예언한 바 있습니다. (11:27-28).

 

  아가보의 예언을 들은 바울의 일행과 가이사랴 사람들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울면서 권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권함을 듣고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면서 권함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요지부동하자 주의 뜻대로 이루어질 것을 바라고 여러 날 후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길에는 구브로사람 나손도 함께 데리고 갔습니다. 그것은 그 집에 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마 나손의 집이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7-16절)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 두로와 가이사랴를 지나오면서 두번에 걸쳐 수난을 예고 받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는 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 청을 거절하고 죽음을 각오하며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전부터 가진 계획이었으며 성령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19:21, 20:22-24).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려는 것도 성령의 감동에 의한 것이었고 두로의 그리스도인들의 예언도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바울과 그들이 받은 성령의 감동이 다른 것처럼 보이고 모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르지 않습니다. 성령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다만 그 곳에 가면 고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두로 사람들과 아가보에게 감동된 것은 예루살렘에서 고난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시켜 준 것입니다. 그런데 두로 사람들과 바울의 동역자들과 가이사랴 사람들은 존경하는 바울이 환난과 결박과 투옥으로 고난을 겪게 될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만류한 것뿐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 할 때 베드로가 만류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16:22). 바울은 그들의 예언을 들으면서 성령님께서 고난당할 것을 재차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알고 동요없이 성령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과 예민 하려고 해야 하며 성령님의 지시를 철저히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비록 자기에게 고난이 임한다 해도 성령으로 깨닫게 하는 사역을 이루는 자가 진정한 사역자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정신이고 바울의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고난을 두고 기도하면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마26:39)

 

 그는 하나님의 목적이라면 죽기까지 복종하는 자로서 (빌2:8) 오직 '예'만 있는 분이었습니다. (고후1:19). 바울도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거 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고 (행20:22-24),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했습니다. (13절)

 

2. 예루살렘 도착 (17-26절)

 

➤“17. 우리가 예루살렘에 이르매 형제들이 우리를 반갑게 받아들이더라. 18. 그 다음 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갔는데 모든 장로들이 있더라. 19. 그가 그들에게 문안하고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역을 통해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신 일들을 낱낱이 밝히 알리매 20. 그들이 그것을 듣고 [주]께 영광을 돌리며 그에게 이르되, 형제여, 너도 보거니와 유대인들 중에 믿는 자 수천 명이 있는데 그들은 다 율법에 열심이 있는 자들이라. 21. 그들이 너에 대해 곧 네가 이방인들 가운데 있는 모든 유대인들이 자기 아이들에게 할례를 행하여서는 안 되며 또 관례대로 걸어서도 안 된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가르쳐서 모세를 저버리게 한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도다. 22. 그런즉 어찌할까? 네가 온 것을 그 무리가 들으리니 그들이 반드시 함께 오리라.

 

23. 그러므로 우리가 네게 말하는 이것을 행하라. 자기를 두고 서원한 사람 넷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가서 그들과 함께 너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그들을 위해 비용을 대서 그들이 자기들의 머리를 밀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 일들 곧 자기들이 너에 대하여 들은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며 오히려 너도 스스로 율법을 지키며 질서 있게 걷는 줄 알리라. 25. 믿는 이방인들에 관하여는 우리가 편지를 써서 결론을 내리되 그들이 그러한 것을 지킬 필요가 없고 다만 우상들에게 바친 것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하라고 하였느니라. 하니 26. 이에 바울이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이튿날 그들과 함께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성전에 들어가 그들 각 사람을 위하여 헌물을 드릴 때까지 정결하게 하는 날들을 채운 것을 표적으로 보이니라.”

 

 바울의 일행이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교회의 일부 형제들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다음날 야고보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곳에는 야고보 뿐 아니라 장로들도 있었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최고 지도자라 할 수 있고 그 곳에 모인 장로들은 환영에 참여한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바울은 그 곳에서 이방에서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를 통해 행하신 일들을 낱낱이 고했고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야고보가 바울에게 말하기를 예루살렘에 믿는 자가 수만 명에 이르는데 그들은 율법에 열심 있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이방에 있는 유대인에게 가르치기를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규모를 지키지 말라고 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이방 지역에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누명을 벗기 위해서 서원한 4사람이 있으니 데리고 가서 함께 결례를 행하고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바울에 대해 오해를 풀고 율법을 행하는 자로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17-24절).

 

 야고보는 또 바울에게 자신들이 믿는 이방인들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하라고 결의하고 편지했다고 했습니다. (25절). 이는 예루살렘 공회에서 결의한 네가지를 이방인들에게 편지했다는 것입니다 (15:20,29). 야고보가 이 말을 한 것은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2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전에 예루살렘 공회에 참여하여 할례문제를 거론했습니다. 이방인이 주를 믿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있어서 유대인들이 할례를 요구하므로 이방인들이 개종을 꺼려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공회에서는 격론 끝에 바울의 요구를 들어주어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이방인들이 습관적으로 지을 수 있는 4가지 곧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규례화하여 그 4가지 규례를 지킬 것을 요구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각 이방교회에 보내기로 했었습니다. 야고보가 이 시점에서 그 사실을 바울에게 말한 것은 그 때 유대인 출신 사도들이 바울의 선교활동을 위해 바울의 주장에 양보했으니 이번에는 바울이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의 서원 만기보고(報告)

 

바울은 야고보의 말을 듣고 서원한 4사람을 데리고 가서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 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했습니다. (26절). 민수기 6장에 보면 서원을 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자신들을 드리기로 서원한 자들로서 나실인이라고 했습니다. 서원 기간은 일생동안인 경우도 있지만 자신들이 정한 한시적 기간도 있었습니다. 서원한 자들은 서원기간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머리를 깎지 말고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서원 기간이 끝나면 머리를 깎아 제단 불에 태우고 희생제물을 드려야 했습니다. 희생 제물로는 번제물로 1년 된 수양 1마리, 속죄 제물로 1년 된 어린 암양 1마리, 화목제로 수양 1마리, 그 외에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은 떡)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례를 행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었는데 4사람의 결례비용을 바울이 다 대어 규례대로 결례를 행하고 결례를 마친 후에 제사장에게 서원만기가 지났음을 공식적으로 보고한 것입니다.

 

 바울이 야고보의 말대로 네사람과 함께 서원 결례를 행한 것은 야고보의 말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율법 거부자로 오해하고 있기 때문에 서원 결례를 행하면 오해가 불식될 것이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바울이 유대주의자들과 타협하는 것처럼 보이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주를 믿는 자가 율법에서 자유하게 된 것을 가르쳤고,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할례로 얻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가르친 것은 율법 자체에 얽매여 스스로 의롭게 되려 하고 형식과 외식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았어도 된다고 가르친 것은 할례 자체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고 이방인에게 할례를 요구하므로 선교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율법의 필요성을 가르치기도 했고 (롬7:12, 갈3:24), 할례에 대해서는 어떤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지만 (고전7:18-19, 갈5:6) 할례를 행하든 안 행하든 무방하다고 했으며 디모데에게는 행하기도 했습니다(행16:2-3, 비.갈2:3). 그래서 바울은 진리문제가 아닌 것에 대해 교회연합과 선교사역에 유익이 되는 편을 선택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20절에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이는 바울이 옳지 못한 것과 타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위하고 선교를 위하고 영혼을 살리는 일을 위해 그렇게 행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를 위해서라면 절대적 진리에 어긋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공동체와 사역에 유익한 것을 위해 자기 방법을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3. 예루살렘에서 바울이 체포당함 (27-40절)

 

➤“27. 그 이레가 거의 끝나갈 때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그를 보고는 모든 사람들을 선동하여 그에게 손을 대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모든 곳에서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대적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자인데 또한 그가 그리스 사람들도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그 도시에서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그와 함께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더라.) 30. 온 도시가 격동하고 백성이 다 같이 달려들어 바울을 붙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내매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그들이 가서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소동 중에 있다는 소식이 군대의 총대장에게 이르매 32. 그가 곧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데리고 그들에게로 달려 내려가니 그들이 총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을 때리는 것을 그치니라.

 

33. 그때에 총대장이 가까이 가서 그를 붙잡아 두 사슬로 결박하라고 명령하고 그가 누구며 무엇을 하였느냐고 다그쳐 물으니 34. 무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외치고 어떤 사람들은 저것을 외치거늘 그가 소동으로 인해 진상을 알 수 없어서 그를 성채 안으로 옮겨 가라고 명령하더라. 35. 바울이 계단 위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들의 폭력으로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뒤를 따르며, 그를 없애 버리라, 하고 외쳤기 때문이더라. 37. 바울이 성채 안으로 끌려 들어갈 때에 총대장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해도 되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네가 그리스말을 하느냐? 38. 너는 이전에 소동을 일으켜 살인자 사천 명을 이끌고 광야로 들어간 그 이집트 사람이 아니냐? 하거늘 39. 바울이 이르되, 나는 길리기아의 도시 다소 출신의 유대인으로 결코 미천하지 않은 도시의 시민이니 간청하건대 내가 백성에게 말하도록 허락하라, 하매 40. 그가 그에게 허락하거늘 바울이 계단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아주 조용하게 하고 그들에게 히브리말로 말하여 이르니라.”

 

 바울과 4명의 서원자가 7일간의 결례 기간을 마감하려는 무렵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붙들고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훼방했다고 했습니다.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므로 거룩한 성전을 더럽혔다고 했습니다.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들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27-29절). 아마도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은 정황을 볼 때 에베소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에베소에서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의 설교를 들고 오해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왔을 것이고 예루살렘에서 자기들이 알고 있는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성전에 들어왔을 때 당연히 이방인인 드로비모를 데리고 왔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입니다. 당시 성전은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이 있었는데 이방인인 드로비모를 유대인 남자만 들어갈 수 있는 유대인의 뜰에 데리고 들어와 거룩한 성전을 불결하게 하였다.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을 죽이려는 계획을 가지고 행동한 것입니다.

 

 에베소에서 온 유대인들이 충동시키는 말을 들은 무리는 분노하여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 때 로마 군대의 주둔지 안토니아 요새에 있던 천부장이 소동에 대한 정보를 듣고 백부장들과 군사들을 이끌고 현장으로 갔습니다. 무리가 천부장과 군사를 보고 바울을 치기를 그쳤습니다.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두 쇠사슬로 결박하게 하고 바울이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무리들이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소리 지르니 천부장은 소동하는 소리 때문에 그 실상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고 했습니다. 바울을 심문하기 위해 안토니아 요새 영문으로 데려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군사들은 바울을 안토니아 진영 안으로 올라가는 층대 곧 돌계단으로 데려갔습니다. 무리들이 계속 따라오면서 바울을 죽이라고 외치며 몰려들었기 때문에 군사들이 바울을 손으로 들고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바울은 영문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자신이 변호할 수 있는 말을 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천부장에게 헬라말로 물었습니다. 천부장은 바울이 헬라말로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30-37절). 당시 헬라말은 로마 제국의 통용어였지만 지식과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을 의심한 천부장

 

천부장은 바울이 헬라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전에 난(亂)을 일으켜 4,000명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간 이집트인이 아닌지 의심했습니다. 사학자 요세프스에 의하면 A.D.54년경에 한 이집트인의 거짓선지자에 의해 예루살렘에 반란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스스로 선지자로 자처한 이집트인이 추종자 30,000여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광야와 올리브 산에 웅거하면서 예루살렘 성벽 파괴와 로마군 멸망을 예언하며 반란을 꾀했다고 합니다. 그 음모는 로마 총독 벨릭스 군대에 의해 진압되고 이집트인은 도망했다고 합니다. 천부장은 바울을 그 사람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은 천부장의 의심에 대해 자신은 유대인이며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서 그 이집트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무리에게 말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천부장이 허락하자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무리에게 손짓으로 조용히 시킨 다음에 히브리말로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38-40절).

 

<結言>바울은 자신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가면 환난과 결박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또한 두로에서 제자들도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을 받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교회 예언자였던 아가보도 동일한 예언을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악한 모함과 충동에 의해 결박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런 상황을 예루살렘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또한 멀리 총독과 왕 앞에서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습니다. 후에 로마에까지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습니다. 바울은 고난을 하나님 나라 사명을 감당하는 기회로 삼는 자였습니다. 로마로 가서 세계에 복음 전하려는 계획을 죄인 되어서 군대와 같이 로마에 가게 됩니다. 바울과 같이 성령에 이끌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