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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5대 제사 (레 7:37-38)

에반젤(복음) 2024. 2. 26. 16:29




5대 제사 (레 7:37-38)



37 이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위임식과 화목제의 규례라 38 여호와께서 시내 광야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그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라 명령하신 날에 시내 산에서 이같이 모세에게 명령하셨더라


이 시간에는 성막론에서 “5대 제사”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릴 5대 제사는 번제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와 화목제입니다. 이 제사는 모두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한편 이 제사는 우리에게도 귀한 신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번제입니다.


레1:9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번제’란 히브리어로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즉 불에 태울 때 불이 올라가듯 하나님께 제물을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리고 번제에는 집단적으로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 개인적으로 드리는 번제가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드리는 번제 제물은 소와 양과 염소와 비둘기로서 이 제물은 각인의 형편과 능력에 따라서 드렸습니다.


이 번제는 전체를 불태워 드리는 제사로 완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 제사인지 향기로운 냄새니라 하셨습니다. 롬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했는데 몸과 마음을 드려 예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입니다.


2. 소제가 있습니다.


레2:1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에게로 가져올 것이요” ‘소제’는 원문에 ‘민하’라 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곡식 제사로서 피가 없는 제사인데, 제사란 피 없이는 드리지 못하기 때문에 소제 단독으로 드리지 못하고 번제와 함께 드렸고 그때 반드시 포도주의 전제를 곁들였습니다(민15:3-6). 그런데 소제는 번제와는 달리 하나님께는 한 웅쿰만 취하여 드리고 나머지는 제사장의 회막 양식을 삼았습니다.


소제에 쓰이는 제물은 고운가루와 기름과 유향과 소금과 포도주입니다. 이건 모두 희생의 상징입니다. 고운가루는 깨어져야 만들어집니다. 기름도 기름틀에서, 그리고 부드럽습니다. 향도 소금도 모두 희생의 상징입니다. 함께 드린 포도주도 으깨져서 만들어집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기쁨으로 순종하고 충성하는 것이 바로 소제입니다. 요8:29에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처럼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가장 귀한 선물이 됩니다. 그러나 누룩과 꿀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세속사상과 세상사랑입니다. 이게 틈타는 순간 하나님을 제일로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속죄제가 있습니다.


속죄제는 레 4장과 6장에 나타나 있습니다. 속죄제의 특성을 보면 이 제사는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속죄제는 다른 제사와 달리 번제단이 아니라 진 밖에서 태웠습니다. 이것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성문 밖에서 죽으실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속죄제는 피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막 문에서 짐승을 잡아 제사장은 그 피를 성소 앞 즉 휘장 앞에서 7번 뿌립니다. 그 후 나머지 피로 번제단 뿔과 분향단 뿔에 손가락으로 찍어 발랐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았습니다. 그러면 그 피는 흐르고 흘러 기드론 시내를 붉게 물들였습니다.


이렇게 휘장 앞에 뿌림으로 용서의 확신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번제단 뿔에 바름으로 사죄의 확신과, 분향단의 뿔에 바름으로 기도할 때 양심의 자유를 의미했고, 붉은 물이 되어 흐르는 기드론 시내는 영원한 속죄를 의미했습니다.


이 제사는 주님이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으므로 다시 드릴 필요가 없지만 그 피 공로를 온전히 믿는 것이 속죄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자유함을 누릴 때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받으셨는데 우리가 자신을 받지 않는다면 주님의 피 공로를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4. 속건제가 있었습니다.


속건제는 레 5장에 나타나 있는데, 속건제는 ‘아쇠암’이라 해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다” “범죄하다”의 뜻입니다. 속건제는 성물을 범했을 때, 여호와의 금령을 범했을 때, 남의 물건을 취했을 때, 행음했을 때, 혹은 나실인 서원 때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속건제를 드리는 과정 중에는 자복의 순서가 있었고(레5:5), 배상했습니다(레5:15).


여기서 보여주는 진리는 우리가 영원한 속죄를 받았다 할지라도 죄를 범했을 때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4:8-9에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속죄를 받은 자로서의 회개니까 사탄의 참소가 있는 절망적인 회개가 아닙니다.


마지막. 화목제가 있습니다.


화목제는 ‘제바크 쉬라빔’이라고 하여 ‘화해한다’, ‘조정한다’는 뜻입니다. 화목제는 약 3방향 즉 하나님과 화목, 제사장과 화목, 그리고 이웃과의 화목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을 위해서 피와 내장과 거기 덮인 기름을 드렸고, 제사장을 위해서는 가슴과 우편 뒷다리, 자신을 위하여는 나머지 고기를 사용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화목, 주의 종들과 화목, 자신과 화목이 중요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화목제를 드린 후에는 다 같이 잔치했는데 그것이 바로 화목의 증거였습니다. 함께 기쁨으로 식사할 수 없다면 아직 덜 화목한 것입니다. 이 화목에서 문제가 생길 때 우리 영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9:13에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하시면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제사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그 무엇을 드린다 해도 사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그리고 자기도 용서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신령한 산 제사를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